축구스타열전

#102 네덜란드의 명수비수 프랑크 데 보어

시북(허지수) 2020. 8. 1. 23:28

 

 프랑크 데 보어는 네덜란드의 명선수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선수입니다. 그는 국가대표로 112시합 이나 출장했습니다. 지금까지 네덜란드 국가대표 선수 중 100경기 이상 출장한 선수는 10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2020년 기준, 프랑크 데 보어는 3위) 오늘은 명수비수 프랑크 데 보어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프로필

 

 이름 : Franciscus De Boer (데보어, 드부어, 더부르 등으로 표기 : 저는 한국어 UEFA의 표기를 따랐습니다.)
 생년월일 : 1970년 5월 15일
 신장/체중 : 180cm / 76kg
 포지션 : DF (중앙수비수)
 국적 : 네덜란드
 국가대표 : 112시합 13득점

 

 패스의 명인, 프리킥의 달인, 프랑크 데 보어 이야기

 

 프랑크 데 보어는 로날드 데 보어와 함께 쌍둥이 형제로서 활약한 축구선수로도 유명합니다. 프랑크 데 보어가 10분 더 늦게 출생해서 동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쌍둥이라 그런지 형, 동생을 굳이 별로 따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쌍둥이 축구선수라고도 많이 부르더군요. 자 그럼 프랑크 데 보어는 어떤 선수였는지 살펴봅시다.

 

 그는 흐름을 읽는 날카로운 시야와 정확한 위치선정이 돋보이는 명수비수였습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도 10년이상 부동의 수비수로 활약했기 때문에, 네덜란드 팬이라면 한 번쯤 그의 이름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수비에 있어서 중심적인 기둥과도 같은 선수였으며, 게다가 공격적인 면에서도 굉장한 공헌을 하는 선수였습니다. 프랑크 데 보어의 특기는 바로 절묘한 롱패스! 당시 베르캄프나 클루이베르트 등에게 한 방에 보내주는 정확한 패스로 멋진 기회를 많이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어떻게 본다면 수비수임에도 공격의 기점이 되는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왼발을 잘 사용하면서, 프리킥까지도 잘 찼습니다. 멋진 폼으로 강렬한 프리킥을 날리기도 했지요. 프랑크 데 보어는 공수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선수였습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 역사상 최초로 100경기 출장을 돌파했던 선수가 바로 프랑크 데 보어 였는데, 이것은 그가 정말 공수양면에 꾸준한 활약을 펼쳐나갔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의 출발은 아약스의 유소년팀이었습니다. 유소년팀을 거쳐서 성인무대에 1988년 데뷔하면서, 프로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명문 아약스에서 핵심적인 수비수로 성장한 프랑크 데 보어는 항상 꾸준하게 출장하면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90년대 아약스는 정말 놀라운 팀이었습니다. 1992년 UEFA컵을 따내더니, 1994년부터는 3년 연속으로 리그 우승! 그리고 1995년, 그들은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황금기를 보내게 됩니다. 반데사르, 레이카르트, 데 보어 형제, 다비즈, 리트마넨, 세도로프, 클루이베르트, 오베르마스 등등 아, 이름만 들어도 짜릿한 그 황금기의 주축 멤버들! 90년대 중반 아약스는 당대 최고의 명문 AC밀란을 침몰시키며 유럽정상에까지 섰던 것입니다.

 

 국가대표로도 1990년부터 소집되어서 수비의 핵심선수로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유명한 경기로는 1998년 월드컵 8강전에서 프랑크 데 보어는 특기인 롱패스를 베르캄프에게 절묘하게 연결시켰고, 베르캄프는 예술적인 볼터치로 결승점을 넣습니다. 우승후보 아르헨티나가 침몰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네덜란드의 4강 진출에 큰 공헌을 하게되는 프랑크 데 보어 였습니다. 이윽코 네덜란드는 4강에서는 브라질을 만났고, 1-1 무승부. 승부차기의 혈전에 돌입하는 양팀입니다. 호나우두, 히바우두, 둥가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침착한 성공을 거두는 브라질이었고, 네덜란드도 시작은 프랑크 데 보어, 데니스 베르캄프 가 모두 성공을 하면서 순조로웠습니다. 프랑크 데 보어가 1번 키커였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큰 신뢰를 받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필립 코쿠, 로날드 데 보어의 실축으로 눈물의 패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 네덜란드!!!

 

 이 시절 화끈했던 네덜란드는 팬들도 많았습니다. 이들은 유로 2000에서도 우승후보로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첫 경기 체코전부터 프랑크 데 보어의 PK골로 승리를 하더니, 프랑스까지 잡고 예선 3전 전승. 8강전 유고는 대폭격하며 6-1로 대파하는 네덜란드 (...) 그렇게 4강에서 이탈리아와 운명의 일전을 펼칩니다. 철벽의 수비 앞에 스코어는 0-0. 결국 승부차기로 돌입하는 양팀. 2년 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는 4강전 승부차기로 패배한 경험이 있는데 이번에는 결승까지 갈 수 있었을까요.

 

 첫 번째 키커는 이번에도 역시 프랑크 데 보어 였습니다. 하지만 신들린 톨도에게 막히고 맙니다. 중앙 수비의 두 기둥, 프랑크 데 보어와 야프 스탐 두 선수 모두 승부차기 실축... 승부의 추는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이탈리아가 네덜란드를 잡고 승리를 따냅니다. 네덜란드는 그 엄청난 파워에 비해서 마지막 승운이 따라가 주지 못했습니다. 승부차기 악몽이라는 수식어도 따라붙기도 했었습니다.

 

 한편 프랑크 데 보어는 1999년 부터는 소속팀을 아약스에서 FC바르셀로나로 옮겨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바르샤에서 5년간 143경기를 출장하면서 활약했습니다. 이후에는 터키, 스코틀랜드, 카타르를 거쳐서 현역에서 은퇴하게 됩니다. 유로 2004 예선에서 네덜란드 국가대표로는 처음으로 100 시합 출장의 위엄을 달성했으며, 한동안 네덜란드 국가대표 최다출장자는 바로 프랑크 데 보어였습니다.

 

 은퇴 후에는 자신이 축구를 시작했던 아약스로 돌아와서, 현재 유소년팀 코치를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의 코치도 겸임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프랑크 데 보어는 당대에 워낙 걸출한 네덜란드 스타들이 많았기 때문에 큰 조명을 받지는 못했지만, 항상 든든한 기둥으로써 활약을 펼쳐나갔던 훌륭한 수비수였습니다. 앞으로도 네덜란드 스타수비수를 꼽을 때면,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제나 재밌게 애독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08. 09. 24. 초안작성.

 2020. 08. 01.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