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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스타열전

#95 세리에A의 빛나는 전설, 군나르 노르달

친절한 시북(허지수) 2020. 7. 2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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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95번째 업데이트 입니다. AC밀란을 좋아하는 제이엘님이 생각나서 몇 명을 연이어 갱신하면 좋겠다 싶네요. 세리에A의 전설적 공격수인 그의 이야기로 한 번 빠져봅시다.

 

 프로필

 

 이름 : Gunnar Nordahl
 생년월일 : 1921년 10월 19일 (1995년 9월 15일 작고)
 신장/체중 : 185cm
 국적 : 스웨덴
 포지션 : 공격수
 국가대표 : 33시합 43득점
 주요기록 : 세리에A 통산득점 3위 (2020년 기준, 통산225골), 1948년 올림픽 득점왕 (금메달획득)

 

 거침없이 돌진하자! 군나르 노르달 이야기

 

 1시합에 혼자 7골을 넣는게 가능하던... 오늘의 주인공 군나르 노르달은 바로 그런 공격수 였습니다. 스웨덴 국가대표 공격수였으며, 스웨덴리그에서는 득점왕만 5차례나 차지합니다. 1시합에 7골을 넣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초특급 공격수였습니다. 1948년 올림픽에도 참가해서, 득점왕 차지, 스웨덴은 금메달을 목에 겁니다. 바로 그 시절의 주포가 노르달이었지요. 국가대표시절 혼자 5골을 넣기도 했습니다. 정말 엄청난 포스지요.

 

 솔직히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그의 활약은 값지며 전설로 불릴만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런던올림픽에서의 대활약으로 순식간에 유럽에 이름을 날리게 된 노르달에게 이탈리아의 밀란이 오퍼를 보낸 것이지요. 그리하여 1949년 만 27살의 나이로 그는 AC밀란으로 이적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두 명의 스웨덴 선수가 AC밀란으로 또 이적하게 됩니다. 이 세 명의 스웨덴삼총사는, 밀란의 그레. 노. 리. 삼인방으로 불리며 전설적인 활약을 펼쳐나갑니다. 이적하자마자 15경기 16골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자랑하는 노르달이었지요.

 

 이듬해... 군나르 노르달은 한 시즌 35골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달성합니다. 그야말로 최강자의 위용이었지요. 엄청났지요. 그 다음시즌에도 34골을 넣어버리지요. 그의 득점폭풍은 계속되어서, 세리에A에서 득점왕 5회, 통산 225골을 기록합니다. 불과 10년도 안 되어 달성한 대기록입니다. 만약 그가 조금 더 이탈리아에 빨리 왔다면, 세리에A 최다골의 주인공은 실비오 피올라가 아닌 군나르 노르달의 몫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대체 어떤 선수였을까요.
 우선 체격이 좋았습니다. 큰 키에 한 덩치를 자랑했지요. 파워가 엄청났습니다. 발이 빨라서, 수비수가 있더라도 페널티에리어에 그대로 돌입하여서 강렬한 슛을 날리는 게 그야말로 "명품"이었지요. 지금도 전설로 전해집니다. 노르달 같아... 노르달식의 슛이군... 그만큼 득점기계의 전형이었습니다. 인기도 물론 엄청났고요. 요즘말로 한다면 밀란의 아이돌이라고 할까. 뭐, 그렇습니다. 세리에의 경기장을 뒤흔드는 초특급 공격수였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르달을 막고자 악착같이 수비수들이 달라붙고, 셔츠를 잡아끌었는데도, 노르달은 "이쯤이야!" 라는 기세로 그대로 힘으로 뚫고 밀어붙이면서 골을 넣어버립니다. 어찌나 그 모습이 강렬한지... 이윽코 별명이 붙습니다. 들소, 그러니까 야생에 사는 소라는 말입니다. 스페인의 투우 보셨지요. 사나운 소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노르달은 마치 그런 기세로 골을 넣고자 들이대는 선수였고, 상대팀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후후.

 

 현역시절 영광으로 가득찬 축구인생을 보냈지만, 대표팀 이야기는 지금도 돌아보면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바로 스웨덴의 방침 때문이었지요. 당시 스웨덴은 프로선수를 국가대표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마추어만이 국가대표로 뛸 수 있다는 방침이지요. AC밀란으로 이적해서 "프로"가 된 노르달은 대표팀에서 나가야 했습니다. 당대 세계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었으나, 법을 무시할 수는 없던 겁니다. 1949년 이후 노르달은 국가대표 커리어를 접습니다. 경기당 1.5골... 33시합 43득점의 공격수 였는데도 말입니다. (*스웨덴리그에서 뛸 때는 소방관이라는 일종의 형식상 직업을 가진채로 뛰었고, 이 때는 아마추어로 분류되었기에 국가대표로 뛸 수 있었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1958년 월드컵 준우승에 빛나는 스웨덴에게, 만약 "군나르 노르달"이 뛰었다면, 가장 박수갈채를 받은 선수는 17세의 브라질 소년 펠레가 아니라, 이제 축구인생 황혼기에 접어들었던 전설의 공격수 노르달 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가 규정의 제한을 받지 않고 대표로 계속 뛰었다면, 많은 국가대표팀 세계기록들이 그의 발에서 나왔을 거라고 추정하는 팬들도 많습니다. 국대 100골도 넣을 수 있는 선수였으니까 말입니다.

 

 뭐, 이렇게 돌아본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비운의 공격수가 아니라, 최고의 전설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선수입니다. 세리에A의 가장 이름 높은 공격수 중 한 명이었으며, AC밀란의 전설적 아이돌이었으며, 골대를 향하여 무섭게 질주해서 골문에 그대로 공을 쏘아버리는 "노르달식의 슛"을 쏘던 시대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월드컵에서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축구사에는 이처럼 위대한 플레이어들이 많습니다. 스포츠에서는 역시 "스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간판선수와 함께 시절을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훗날 이야기거리가 될 수 있고요. 오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칩니다. 늘 관심을 가지고 애독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동영상을 추가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2009. 10. 17. 초안작성.

 2020. 07. 20.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추가 - 축구팬 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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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리자 1경기 7골을 넣은 선수는 군나르 노르달과 알폰소 알베스 밖에 없지요 ~

    스웨덴의 명문클럽인 노르셰핑이 선반공 일을 하고있던 군나르 노르달을

    영입과 동시에 소방수 직업을 얻게 해주었지요.. 이로 인해 군나르 노르달은

    "골을 구해내는 소방관" 이라는 별명도 생겼구요 ..

    상대선수 군나르 노르달의 강철같은 몸에 부딪혀 쓰러지면 먼저 손을뻗어 미안하다는 말을붙이고 일으켜주기도하고.. 매너도 좋은선수였지요

    스키아피노 라는 패스센스가 뛰어났던 선수와 호흡도 좋았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
    2009.10.17 20:09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리자님의 현란한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 부족한 부분을 훌륭한 댓글로 다 보충해주시니... 하하하. 이래저래 유명한 선수인데, 많은 조명을 못 받은 것 같아요. 2009.10.18 03:42 신고
  • 프로필사진 오오 북유럽쪽에도 괴물들이 많네요... 2014.07.11 08:26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북유럽에 멋진 선수들 많지요. 스웨덴의 이브라히모비치도 국적이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개인적 사견) ^-^; 2014.07.12 02:59 신고
  • 프로필사진 즐라탄이브라히모비치 크.. 스웨덴의 전설이라.. 군나르와 즐라탄이짱 2016.09.01 16:35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군나르 노르달을 기억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네요 :) 축구스타열전 복귀하는 날이 오게 된다면, 즐라탄도 한 페이지를 차지할텐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하. 2016.09.02 10:1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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