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남미의 축구영웅, 알베르토 스펜서

시북(허지수) 2010. 8. 24. 18:30

 오늘은 잘 알려지지 않은 전설적 남미선수 한 명을 소개할까 합니다. 우선 국적부터 에콰도르 선수. 이름은 알베르토 스펜서. 1937년생... 국가대표 11경기 출장. 이러니 잘 알려지지 않을 수 밖에요 :) 그런데 재밌는 자료가 있습니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라는 대회가 있습니다. 남미 각국 최상위 축구클럽들이 참가하는 대회로서, 대회에서 우승하면 FIFA클럽월드컵에도 나갈 수 있습니다. 보다 쉽게 이해하자면, 남미의 챔피언스리그 정도 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의 역대 최다골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스펜서 입니다. 그를 한 번 살펴봅시다.

 프로필

 이름 : Alberto Pedro Spencer Herrera
 생년월일 : 1937년 12월 6일
 신장/체중 : 188cm / 78kg
 포지션 : FW
 국적 : 에콰도르
 국가대표 : 11시합 4득점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의 전설, 스펜서 이야기

 남미축구하면 역시 떠오르는 것은 브라질 혹은 아르헨티나일 것입니다. 혹은 그 이전에 우루과이가 이름을 날리던 시절도 있었고요. 이것은 부정하기 힘든 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합니다. 남미의 강호를 꼽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의 기록만 봐도 자명합니다. 1960년 이 대회가 시작한 이후, 50년동안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의 클럽팀이 우승을 차지한 경우가 43회나 됩니다. 남미에서도 베네수엘라나 에콰도르는 흔히 말하는 "듣보잡" 취급받기에 좋을 정도로 축구와는 거리가 먼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나마 베네수엘라는 야구라도 알아주지만...

 이러한 축구약소국 에콰도르 출신인 알베르토 스펜서. 그는 재능만으로 남미를 평정한 60년대 가장 파괴적인 공격수 였습니다. 14살에 축구를 시작하고, 1955년 본격적으로 프로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그는 재능이 돋보이던 선수였습니다. 에콰도르 대표선수로도 발탁됩니다. 당시 그의 시합기록을 살펴보면 90시합 101골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기회가 찾아오지요. 1959년 겨울, 국가대항전 우루과이 vs 에콰도르 의 경기에서 우루과이 스카우터는 엄청난 움직임을 보여주는 에콰도르의 스펜서를 주목하게 됩니다. 덩치는 큰데,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지요.

 이듬해 스펜서는 우루과이의 가장 명문팀으로 손꼽히는 "페냐롤"팀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그리고 10년동안 수 많은 골을 쌓아 올려나갑니다. 그는 페냐롤팀의 슈퍼스타로 우뚝 서게 되었지요. 훌륭한 스피드에다가 놀라운 점프력, 발군의 득점력을 고루 갖추고 있었고, 60년대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페냐롤 데뷔전부터 헤트트릭을 날리면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10년간 510경기 326골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깁니다. 득점왕도 4차례나 차지했고, 소속팀 페냐롤도 7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게다가 남미의 최강을 가리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에서는 무서운 활약을 계속 펼쳐나가며 득점왕 2회에, 총 48골을 넣었으며, 3번의 우승에 멋지게 공헌합니다.

 현역 마지막에는 에콰도르로 돌아가서 바르셀로나 스포르팅 팀에서 활약하는데,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리그전 18골,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6골을 넣으며 좋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통산 54골. 통산 2위와도 17골이 넘는 워낙 압도적인 기록이라 당분간은 깨질 일이 없는 기록이지요. 1회 대회 때부터 우승에, 결승골까지 넣었던 스펜서는, 이후에도 눈부신 활약으로 역사에 남을 기록을 세운 것입니다. 그가 남미전역에서 많은 존경을 받는 것도 다 이 때문이지요.

 재밌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우루과이 팬들로부터 사랑도 엄청나게 받다보니, 아예 이 참에 에콰도르 대표팀 접어두고, 우루과이에서 뛰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1962년에 실제로 영국의 축구성지 웸블리구장에서 열린 친선경기 - 잉글랜드 vs 우루과이 경기에서 우루과이멤버로 경기를 뛰기도 했습니다. 경기는 1-2로 패했지만, 이 때에도 골을 넣으며 그 특별한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뛰는 것은 주위의 시선이 참 곤란하지요. 남미 각국에서 비판이 쏟아지자, 스펜서는 4시합만 뛰고 우루과이 대표팀 옷을 벗어야 했습니다. 국적을 마음대로 왔다갔다 할 수 없었으니, 국가대표 커리어가 아쉬워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에콰도르는 당시 한참 약하디 약한 팀이었으니까요. 월드컵 첫 출장이 한참 후인 2002년이었습니다. 만약 우루과이 대표팀으로 인정되어서, 혹은 아예 우루과이에서 태어나 월드컵에 출장했다면 또 하나의 무서운 기록을 남겼을지도 모르지요. 그는 그야말로 당대 남미의 특급선수 였으니까요.

 유튜브에도 그를 기념하는 영상이 있기에 덧붙입니다. 맨유의 긱스도 마찬가지겠지만, 비록 국대로는 활약이 힘들어도, 클럽팀에서 눈부신 포스를 발휘하던 선수는 오래도록 레전드로 불리면서, 그 이름이 회자되겠지요. 오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칩니다. 애독해 주시는 분들에게 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