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에서 첼시 구단주 이야기를 잠깐 언급하다보니, 이참에 선덜랜드의 구단주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10년 현재 구단주는 나이얼 퀸이 맡고 있지요.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동갑인 40대 구단주 나이얼 퀸은 사실 축구선수 출신입니다. 그것도 아일랜드 대표팀의 간판 공격수 였지요. 요즘 대인배 열전을 계획한 건 아닌데, 여하튼 오늘도 한 인품 하신다는 나이얼 퀸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로필
이름 : Niall John Quinn
생년월일 : 1966년 10월 6일
신장 : 193cm
포지션 : FW
국적 : 아일랜드
국가대표 : 92시합 21득점
아일랜드 대표팀의 간판 공격수 - 나이얼 퀸의 이야기
나이얼 퀸은 현역시절 큰 키를 살려서 포스트플레이에 능했던 공격수 였습니다. 최전방에서 뛰면서 공중전에도 매우 강하고, 볼을 잘 키핑하는 것도 장점이지요. 골폭풍을 몰아치는 공격수까지는 아니라지만, 전방의 타겟맨으로 활약하며 어시스트 능력도 좋았습니다. 10년 이상 아일랜드 대표팀의 스타 공격수로 활약했으며, 팀의 공헌도는 컸습니다. 물론 축구스타답게 인기도 상당했지요 :)
1983-84시즌 아스날에서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렇게 타고난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데뷔하고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드디어 주전공격수가 되었고 35시합 8득점을 올리지요. 겸손하고 부드러운 나이얼 퀸은 팬들에게는 좋은 선수였지만, 아직 실력적으로는 탁월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서전에서 퀸은 재밌는 표현을 하지요. 나는 아스날에서 내 트레이드를 배웠고... (어이 축구를 배워야지!)
1989-90시즌 도중 그는 맨체스터시티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맨시티에서 재능에 한층 눈을 뜨면서, 훌륭한 공격수로 성장하게 됩니다. 본인의 말처럼 맨시티에서 비로소 축구선수가 되었습니다! 국가대표로도 활약이 컸는데 1990년 월드컵에서 아일랜드는 처음으로 참가하게 되었지요. 잉글랜드, 네덜란드와 한 조 였습니다. 그리고 조별리그 탈락위기가 닥쳐오지요.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0-1으로 밀리다가, 후반 드디어 나이얼 퀸의 귀중한 동점골이 터졌습니다. 덕분에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지요. 전방에서 긴 패스를 받아서 다양한 전술적 흐름으로 연결할 줄 아는 나이얼 퀸은 이후에도 국가대표로 오랜기간 활약하게 됩니다. 여하튼 아일랜드는 16강전에서 루마니아도 물리치고, 첫 출장에 8강까지 나갔지만 이탈리아의 골잡이 스킬라치에게 통한의 골을 허용하며 0-1로 패합니다. 지금까지도 아일랜드의 월드컵 8강이 최고의 기록으로 남아있지요.
90년대 2부리그에 있던 맨시티에서 중심선수로 대활약하며, 시즌 20골을 기록하기도 하는 등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소속팀 맨시티도 힘을 내어서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하는데 성공했습니다. 1996-97시즌 나이얼 퀸은 또 한 번의 이적을 경험합니다. 이번에는 선덜랜드 였지요. 나이는 좀 있었어도 나이얼 퀸에게는 행복한 추억이 많았던 선덜랜드 시절인 것 같습니다. 선덜랜드의 스타 였던 케빈 필립스와 콤비네이션을 짰고, 동료였던 필립스는 1999-2000시즌에 30골을 기록하면서 득점왕에 오릅니다! 전방의 타겟맨 퀸의 역할도 매우 컸지요. 나이얼 퀸도 30대 중반의 나이로 14골을 기록하면서, 강등권 팀에서 리그 7위라는 수직상승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나이얼 퀸도 나이가 많아지면서 전성기의 빛은 잃어갔고, 2002-03시즌을 끝으로 은퇴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선덜랜드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나는 선덜랜드를 사랑합니다! 은퇴 후, 나이얼 퀸의 2번째 인생이 시작됩니다. 평소 적극적으로 자선 활동을 하면서 많은 존경을 받았었지요. 연봉도 높지 않았지만, 자선 기부를 위해서 100만 파운드(한화 약 18억)를 모아서, 아이들을 위해서 몽땅 기부해 버립니다. 그는 어깨에 힘을 주지도 않습니다. 나는 특별한 인생과 커리어를 즐기면서 살아온 운 많은 사람으로서, 내가 하는 일은 당연한 일일 뿐이다 라고 말합니다. 더 많은 사랑과 더 많은 기쁨을 누릴 수 있었으니, 당연히 그것을 나눠준다는 것. 멋집니다. 사람의 깊이라는 것이 이럴 때 보면 참 근사하다랄까...
한편 아일랜드의 악동 스타 선수 로이 킨(http://suparobo.kr/131)과 사이가 다소 나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나이얼 퀸이 주최하는 자선대회에 로이 킨은 나오기로 해놓고 경기 며칠 앞두고 아프다며 안 나오기도 하지요) 그러다가 두 사람은 2006년 당시 2부리그로 강등되어 있던 선덜랜드를 살리는데, 뜻을 같이 하는 진풍경이 일어납니다. 2006년 나이얼 퀸은 구단주가 되었고, 로이 킨은 선덜랜드 감독이 됩니다. 둘은 죽이 잘 맞았지요. 로이 킨이 바라던 선수가 있다고 하자, 나이얼 퀸은 차례차례 획득하게 합니다. 3부리그 강등이 우려되었던 최악의 선덜랜드는 이후 미친듯한 연승을 달리더니, 주위의 염려를 다 박살내면서, 2부리그 우승을 기록합니다!
성적부진의 이유로 로이 킨 감독은 훗날 선덜랜드를 떠났지만(나이얼 퀸이 이번에도 붙잡아 봤지만 어쩔 수 없었지요), 현재 2010-11시즌에도 선덜랜드는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첼시와의 원정경기에서 3-0 대승을 거두면서, 많은 축구팬들을 놀래키기도 했고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인생에는 다양한 길이 있고,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10대 청소년들 중에는 수능시험 같은 큰 시험을 치고 나면, 내 인생은 막혔나봐, 이제 안 되나봐 같은 좌절감을 가지는 경우도 자주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사실 괜찮습니다. 그 나이에서 함부로 나머지 인생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어떤 분야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인생은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가령 축구선수에서 출발하였지만, 많은 존경을 받으며, 구단주가 되었던 나이얼 퀸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한비야 누님이 책에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약간의 살을 입혀서 소개하자면, 전반 19분을 뛰고, 전반 29분을 뛰고, 더 이상 못 뛰겠다면서 경기를 포기하는 축구선수는 없습니다. 설령 0-1로 지고 있고, 0-2로 지고 있어도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겨우 19살, 29살 혹은 39살을 살아왔을 뿐입니다. 남은 시간들이 있습니다. 포기하면 안 됩니다. 인생이 끝나는 그 날까지, 나는 어떤 삶을 살다가 갈 것인지, 고민하면서 계속 움직이는게 필요하지요. 그러다보면 조금씩 자신이 나아갈 길을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 역시 동영상과 함께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애독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 힘내세요. 당신 역시도 무엇인가를 배우고, 무엇인가를 사랑하며,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목표를 향한 즐거운 여정, 고된 삶 속에서 이런 나침반이 있다면 흔들리더라도 충분히 좋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