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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스타열전

포르투갈의 득점기계 파울레타 이야기

친절한 시북(허지수) 2010. 12. 28. 11:10

 박주영 선수가 활약하는 프랑스리그! 2000년대 들어와서 이 "리그 앙"에서 펄펄 날던 한 포르투갈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파울레타, 포르투갈 국가대표의 간판 골잡이였던 그는, 꾸준히 20골 정도는 넣어주던 결정력 있는 스트라이커 였고, 마침내 2005년 전설 에우제비오의 기록을 넘어서며, 국가대표로도 역대 최다골 기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떤 스트라이커 였는지, 차분히 살펴볼까 합니다. 즐겁게 출발~

 프로필

 이름 : Pedro Miguel Carreiro Resendes
 생년월일 : 1973년 4월 28일
 신장/체중 : 180cm / 80kg
 포지션 : FW
 국적 : 포르투갈
 국가대표 : 88시합 47득점


 프랑스 "리그 앙" 의 최고의 공격수 였던 - 파울레타 이야기

 파울레타는 색다른 선수였습니다. 그의 축구인생의 시작점에는 그 어떤 화려함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비슷한 연배의 포르투갈 골든제너레이션(루이스피구나 루이코스타등)이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화려한 우승을 차지하고 있었을 때, 파울레타는 단지 아마추어 축구선수로 활약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일하면서, 또 축구를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지요. 20대가 되어서야 드디어 프로계약을 하고, 하부리그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합니다. 하부리그에 뛰면서 19골이라는 꽤나 인상적인 활약을 올리면서 주목받게 된, 파울레타는, 이번에는 이웃나라 스페인의 2부리그 팀으로 이적합니다. 살라망카라는 팀이었지요.

 드라마같은 활약이 계속 이어집니다. 무명의 공격수였던 파울레타는 2부리그에서 19골을 넣으며, 소속팀의 프리메라리가 승격에 큰 도움이 되었고, 이듬해 그 험난한 라리가에서도 15골을 넣는 거침없는 활약을 이어갑니다. 드디어 많은 주목이 파울레타에게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98년 당시 잘 나가던 강호 데포르티보와 계약하는데 성공합니다. 라리가에서 성공을 발판으로 국가대표로도 발탁되었지요.

 데포르티보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는 활약을 펼쳤고, 라리가 우승에 공헌하였고, 2000년 드디어 프랑스의 보르도로 이적! 여기서부터 그야말로 끝내주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프랑스 "리그 앙"을 초토화 시키지요. 데뷔전부터 해트트릭을 작렬시킨 공격수는,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으면서, 20골을 넣어버립니다. 생애 첫 20골이었지요.

 발군의 활약은 계속됩니다. 2001년에는 22골을 넣으며 득점왕과 MVP를 석권했으며, 2002년 역시 23골을 넣으며 2년 연속 리그앙 최고의선수로 선정되었습니다. 포르투갈산 득점기계 였지요. 위치선정이 뛰어나고 테크닉이 있는 기교파 스트라이커로 통합니다. 한순간의 재빠른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진들을 붕괴시키고, 깔끔한 슈팅으로 수 많은 골장면을 만들어 냈습니다. 정확하게 차는 감각적인 슈팅은 좋은 스트라이커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천재 패서 루이 코스타 등이 있던 포르투갈 대표팀에게도 파울레타의 존재는 커다란 힘이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유럽예선이 펼쳐졌고, 파울레타는 전 경기에 출장하며 8골을 몰아넣으며, 포르투갈이 한국 땅을 밟는데 큰 공을 세웠지요. 또한 월드컵 본선무대 조별리그에서도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을 위기에서 구해냅니다. 그러나 마지막 경기에서 우리 한국의 박지성에게 통한의 골을 얻어맞으며, 포르투갈은 짐을 싸야 했습니다. 사실 파울레타는 국가대표로 정말 많은 골들을 넣었지만, 그 세대 포르투갈 대표선수들이 그러하듯이 뛰어난 실력에 비해서 국가대표 주요무대에서 우승은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월드컵이 끝나고 파울레타는 프랑스의 명문팀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 30대 시절을 보내며, 역시나 많은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2006년과 2007년 연속으로 득점왕에 올랐으며, 2008년 은퇴할 때까지, 프랑스리그 통산 265시합 141득점이라는 걸출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생제르맹이 강등 위기에 처하면서, 고생을 거듭할 무렵에도 파울레타는 묵묵하게 팀을 위해서 끝까지 뛰던 모습 역시 인상적이었고요.

 한편 유로2004에서는 폭넓은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진들을 괴롭혔고, 결과적으로 중원에 있던 선수들이 활약할 틈을 열어주는데 일조했습니다. 포르투갈은 준우승을 차지합니다. 2006년 월드컵에서는 첫 경기에서 결승골을 기록했고, 포르투갈은 4강 진출을 달성하지요. 큰 무대에서 엄청난 기록들을 남기지 못했다고 볼지도 모릅니다만, 공격수 부재로 고생하던 포르투갈에게 파울레타의 존재감은 귀중한 존재였다고 평할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 1부리그에서 단 한 경기도 뛰어보지 못했던 청년이, 결국 포르투갈 역대 최다득점자의 기록을 남기고 은퇴하였습니다. 참, 묘하지요. 그는 황금세대의 멤버도 아니었고, 하부리그에서 축구를 수년간 해야 했습니다. 그런 선수에게 유튜브 추천댓글은 최고의 선수였다, "RESPECT" 라고 달려 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지요. 존중하다, 존경하다 라는 의미... 이런 말은 단지 골을 잘 넣는 공격수에게 붙는 단어가 아닐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렇지요. 파울레타는 험난한 길을 걸어왔고, 또 선수로서 잘 나가게 되었음에도, 우승팀 리옹의 오퍼를 거부한채 소속팀의 강등을 막고자 뛰었고, 프랑스리그 최고의 선수였음에도, 프랑스리그 우승트로피는 없었던 어떤 바보같은 남자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받는 스타였던 파울레타의 영상을 덧붙이며 오늘의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애독해 주시는 독자님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또 뵙지요. 하하.



댓글
  • 프로필사진 별소년 골든 제너레이션..91년 세계청소년 선수권대회 우승한 포르투갈의 그멤버들의

    문제는 창조력이 좋은데 골결정력이 없다는걸..성인대표팀에서도 고질적인 문제였죠.

    그나마 파울레타가 꾸준한 득점력을 보여주었는데..

    그가 은퇴하고 나니 포르투갈의 공격수 부재는 아직까지도..

    여담이지만 이탈리아의 비에리 같은 선수가 포르투갈에 있었다면..

    황금세대 시절에 있었다면..유로 2004 는 아마 포르투갈이 우승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네요..
    2011.01.01 10:04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맞아요, 강력한 중원에 비해서 골든 제너레이션은 결정력 부족에 시달려야 했지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파울레타 급의 선수가 한 명만 더 있었어도 포르투갈은 뭐라도 하나 우승을 챙겼을 거라 생각해요. 큰 무대에서 집중견제에 시달려야 했을만큼, 파울레타도 나름대로 고생이었지요. 하하. 2011.01.01 13:2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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