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축구자료들을 살펴보다가, 흥미로운 스타를 발견합니다. 우루과이의 희망, 골의 시인 등 많은 찬사를 받은 선수였던 "루벤 소사"입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우루과이의 대표적인 스타이자, 화려한 플레이로 팬들을 열광하게 하던 선수. 레코바가 동경하던 선수였다는 루벤 소사... 그의 이야기로 떠나봅시다 ^^
프로필
이름 : Ruben Sosa Ardaiz
생년월일 : 1966년 4월 25일
신장/체중 : 172cm / 71kg
포지션 : FW (왼쪽 윙어로도 활약)
국적 : 우루과이
국가대표 : 46시합 19득점
섬세하고 눈부신 개인기를 자랑하던 아이돌 - 루벤 소사 이야기
1982년 우루과이의 다누비오 팀에서 데뷔한 소사는, 등장 이후 화제를 모으는 신동 선수였고, 1984년 18살에 국가대표로 발탁되기에 이릅니다. 스무살도 되기전에 유럽진출에 성공하는 루벤 소사였고, 1985년 스페인으로 건너가서 사라고사팀에 몸담게 됩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루벤 소사는 순식간에 라리가에 적응하며, 인기를 한몸에 받습니다. 탁월한 개인기가 돋보이는 공격수였고, 1987-88시즌에는 18골을 몰아 넣으며, 라리가의 인기스타로 성장했지요. 실력을 인정받으며 1988년 세리에A의 라치오로 무대를 옮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섬세하게 공을 다루고, 화려한 드리블 기술을 자랑하며, 경쾌한 왼발 슈팅에, 빠른 스피드까지, 그야말로 놀라운 선수였고, 우루과이의 희망으로까지 불립니다. 1989년 코파 아메리카 당시에는 (우루과이는 준우승) 남미에서 가장 주목받던 선수 중 한 명이 루벤 소사였습니다.
1990년 월드컵이 열리자 우루과이는 엔조 프란세스콜리, 루벤 소사 등 인기스타가 자리잡고 있었기에, 다크호스로까지 평가받았습니다. 결국 조별리그에서 한국에게 이기면서, 토너먼트에도 진출합니다 ㅜㅜ 그러나 이태리에게 패하면서 16강에서 탈락. 소사의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기대만큼은 펼쳐지지 못했지요.
아마 루벤 소사가 가장 유명했던 시절은 1992-95까지의 인터밀란 시절일 것입니다. 그림 같은 골들을 넣으며, 인터밀란의 공격을 주도했고, 수비수를 달고 다니면서도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재치있는 돌파와 많은 어시스트, 절묘하고 정확한 슈팅으로 팬들을 사로잡습니다. 1993년 20골을 넣으며 찬사를 받았습니다. 1994년에도 16골을 넣었고, 인터밀란은 UEFA컵 우승도 차지했습니다.
활약을 이어가지만, 소사는 너무 공을 오래 가지고 있는다는 평가도 종종 들었습니다. 소사의 플레이는 보기에는 좋지만, 리그성적은 중위권으로 떨어져 버렸으니, 불만도 나오기 마련이었지요. 한편, 뛰어난 선수들이 부상에 자주 시달리듯이, 소사 또한 20대 후반부터 자주 다치기 시작합니다. 인터밀란은 과감하게 소사를 포기합니다. 팬들이 꿈의 조합으로 기대를 모았던 베르캄프 - 루벤소사의 조합도 실전에서는 거의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마음이 잘 맞는 공격조합을 찾기란 쉬운 법이 아니지요.
인터밀란을 떠나서, 30대가 되면 소사는 독일과 스페인리그를 거쳐서, 우루과이 리그로 복귀하게 됩니다. 우루과이로 돌아와서는 몇 차례 우승을 경험했고, 나름대로 행복한 말년을 보내다가 2005년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합니다.
어쩌면 부상과 불운 등이 겹쳐서, 중요한 순간에서 이름을 알릴 기회를 놓친 경우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94년 월드컵에서는 우루과이가 남미예선에서 탈락하는 아쉬움을 맛보았고, 95년 우루과이가 코파아메리카를 우승할 당시에는 정작 부상으로 고생중이었지요.
이야기를 마치며, 루벤 소사의 동영상을 덧붙입니다. 정리하면 90년대 우루과이의 희망으로 불렸으며, 화려한 플레이가 특징인 스타이자, 국대로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는 걸로 요약되겠습니다. 애독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2011. 05. 08. 초안작성.
2020. 06. 25. 가독성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