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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스타열전

#5 브라질의 슈퍼스타 호나우두

친절한 시북(허지수) 2019. 11. 7. 06:54

 

 이른 새벽에 깨어서, 손흥민 선수의 골장면을 시청하면서, 하루를 신나게 시작합니다. 역동적으로 뛰어다니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생 역시 힘을 내야 한다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또 생각하지요. 오늘 이야기는 호나우두 편인데요. 예전에 300번째까지 오게 된 기념으로 썼던 글입니다. 말하자면, 글과 영상을 고쳐서, 8년만에 업데이트라 하겠지요.

 

 저의 어린시절 마음 속 스타로는 단연 브라질 호나우두의 화려한 발재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호나우두는 슈퍼스타이자, 무서운 공격수이며, 앞으로도 축구사에서 언제까지나 회자될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입니다. 일화 하나 소개하면서 시작하겠습니다. 1996-97시즌 FC바르셀로나 시절, 바비 롭슨 감독이 전술이 없다며 미디어에게 욕을 먹자, 임팩트 있게 명언을 남깁니다. "내 전술은 호나우두다" 홀로 수비진을 돌파하며 골을 결정할 수 있는 환상적인 선수. 그가 바로 전성기의 호나우두 였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출발해 봅니다.

 

 프로필

 

 이름 : Ronaldo Luís Nazáriode Lima
 생년월일 : 1976년 9월 22일
 신장/체중 : 183cm / 95kg
 포지션 : FW
 국적 : 브라질
 국가대표 : 97경기 62득점
 주요기록 : 1997년, 2002년 발롱도르 수상, 월드컵 통산 15골 기록

 

 

 브라질의 괴물 스트라이커 - 호나우두 이야기

 

 매우 유명한 선수라서, 그냥 글 끝에 덧붙이게 되는 동영상을 보시는 편이 그를 이해하는 데 더 빠를 것 같습니다 (웃음) 경이적인 순발력과 섬세한 테크닉, 정확한 결정력, 그 현란한 움직임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90년대 호나우두는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서도, 수비진들을 제쳐나가며, 귀중한 마무리까지 할 줄 아는 눈부신 스트라이커 였습니다. 전성기 60미터를 드리블 질주하면서 골을 결정하는 장면은 나이키의 광고로 까지 사용될 만큼, 이목을 사로잡던 호나우두 였습니다.

 

 1994년 3월 만 17세의 호나우두는 브라질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이후 네덜란드 PSV로 이적하게 됩니다. 너무 빠른 유럽 진출이 아닌가 생각되었지만, 10대 꼬마 호나우두는 1994-95시즌, 33시합 30득점을 올리며, 리그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유럽 데뷔 시즌에 득점왕을 차지해 버립니다. 당시까지도 그는 경기 출장 수와 득점 수가 비슷한 놀라운 공격수였고, 1996년 명문팀 FC바르셀로나 로 이적합니다.

 

 1996-97시즌, 감독이 내 전술은 호나우두 라고 말할 만큼, 그는 압도적인 모습을 자랑하였고, 37시합 34득점을 기록하며 라리가 득점왕을 차지합니다. 화려한 플레이와 광고 등으로 인지도도 매우 높아집니다. 1997년이 되자, 호나우두는 90년대의 인기무대인 세리에A로 이적, 인터밀란에 몸담으면서, 여전히 발군의 존재감을 보여주지요. 세리에 데뷔시즌에 25골을 넣으며 UEFA컵 우승에 공헌합니다. 1998년까지 호나우두는 막을래야 막을 수 없는 선수로 평가받았고, 98월드컵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 중 한 명이었지요.

 

 98월드컵에서 호나우두는 4골을 넣었고, 브라질은 결승까지 진출합니다만, 지단이 이끄는 개최국 프랑스에게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합니다. (정작 결승전에서 부진해서 아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만) 호나우두는 대회 최우수선수로 선정되었지요. 만 21살의 이 친구는 이미 수 많은 축구팬들의 마음을 빼앗았습니다.

 

 호나우두의 인생이 좌절을 맛본 것은 1999년 입니다. 무릎 인대가 끊어진 것입니다. 그야말로 심각한 중상이고, 은퇴까지도 우려되었지요. 1년 반 동안 그는 재활을 가집니다. 일반적으로 무릎 인대 파열은 순발력을 강하게 요구하는 배구 등의 종목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기에 누군가는 전성기 호나우두의 순발력과 피지컬이 인간의 몸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무시무시했던 것이 아니냐고 언급하기도 합니다.

 

 아! 그리고, 정말 다행입니다! 슈퍼스타가 다시 일어서니까요! 2002년에 드디어 그라운드에 복귀, 월드컵을 앞두고 재기에 성공한 축구황제 호나우두! 돌아온 호나우두는 무릎 쪽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했고, 더 이상 속도형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체중도 꽤 많이 늘어났지요. 하지만 더욱 영리해지고, 냉정해 졌습니다. 득점감각은 오히려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평가까지도 듣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호나우두는 득점쇼를 펼치며 8골을 기록. 득점왕을 차지하였으며, 브라질도 우승을 차지합니다. 각종 상도 휩쓸었지요. 이후 호나우두는 명문 레알마드리드의 옷을 입게 됩니다.

 

 다음 월드컵이 열릴 때까지, 레알마드리드에서 호나우두는 시즌별로(`03`04`05`06) 23-24-21-14 득점이라는 안정된 활약을 이어가며 리그 우승도 경험합니다. 97년 바르샤의 유니폼을 입고, 2004년에는 레알의 유니폼을 입고 라리가 득점왕을 차지한 호나우두 입니다. 이 시절 레알의 공격진에는 워낙 화려한 스타들이 많아서 지구방위대 라고 불리던 꿈의 팀이었지요.

 

 2006년 월드컵이 열리자, 호나우두는 또 다시 주포로 활약하며 득점을 올리더니, 급기야 통산 15골이라는 역사적 기록을 세웁니다. 당시까지 월드컵 역대 최다골 기록으로 호나우두가 첫 15골 시대를 열었습니다. 다만, 브라질은 8강에서 프랑스와 접전 끝에 0-1로 패배합니다. 지단과 앙리가 합작한 절묘한 골에 아쉽게 브라질은 탈락하고 말았지요.

 

 이후 호나우두는 국가대표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더욱 불어난 체중과 활동량 저하로 소속 클럽팀에서도 출장 기회를 잃어가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30대가 되면 이제 과거와 같은 재빠름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지요. 2007년 AC밀란에, 그리고 2009년에는 브라질로 복귀하며 코린치안스에 몸담았다가, 2011년 2월 마침내 현역 은퇴를 발표하게 됩니다.

 

 다치기 전의 호나우두는 믿기 힘든 재능을 지닌 괴물 공격수였고, 무릎이 완전히 고장나 버린 그 순간에도 인터밀란은 고액을 지불하며 그의 복귀를 기다려주었지요. 그리고 2002년 한일월드컵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었고요. 천재, 불사조, 그리고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은퇴 회견에서 그는 자신의 축구인생이 아름답고, 굉장했다며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2007년부터 (인체를 조정하는 기능을 하는) 갑상선에 문제가 있어 체중 조절이 힘들었다는 사실도 언급하였지요. 어쩌면 그렇게 눈부시고 경이롭게 달려왔기에, 그의 몸은 이렇게 한계를 지나버렸는 지도 모릅니다.

 

 저는 전싱기 시절의 호나우두를 볼 수 있어서 즐거웠고, 그의 플레이를 완전 어설프게 따라해보며, 함께 친구들과 웃고 떠들었던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로서는 언어로 모두 표현하기 힘든, 특별하고 놀라웠던 재능의 공격수, 호나우두. 글을 이렇게 이만 마무리하며, 오늘 축구스타열전은 마칩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2011. 05. 10. 초안작성 2019. 11. 07. 업데이트, 축구팬 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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