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90 리즈의 레전드 수비수 재키 찰튼

시북(허지수) 2020. 7. 11. 23:26

 

 잉글랜드 레전드 라면, 60년대 바비 찰튼, 70년대 케빈 키건 등이 손꼽힙니다. 그런데 바비 찰튼의 친형인 재키 찰튼도 매우 훌륭한 축구선수 였지요. 재키 찰튼은 국가대표로의 활약이 적었고, 리그우승을 한 번 밖에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수비수 였기 때문에 별로 조명은 받지 못했지만, 재키 찰튼 역시 잉글랜드 수비 레전드로 부르기에는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재키 찰튼 이야기로 떠나봅시다.

 

 프로필

 

 이름 : John "Jack" Charlton
 생년월일 : 1935년 5월 8일
 신장/체중 : 191cm / 82kg
 포지션 : DF
 국적 : 잉글랜드
 국가대표 : 35경기 6득점


 리즈 유나이티드 역대 최다 출장을 자랑하는 - 재키 찰튼 이야기

 

 1952년 17살 때,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재키 찰튼. 당시 리즈는 2부리그에 속해 있었고, 10대 소년 재키 찰튼은 출장 기회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스무살 무렵인 1954-55시즌 드디어 재키 찰튼은 주전자리를 차지했고, 소속팀 리즈도 리그 2위를 차지하면서, 1부리그 승격에 성공했지요.

 

 이후 리즈 수비는 재키 찰튼이 오랜 세월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리즈는 60년대 초반 잠깐 2부리그 강등도 경험하지만, 60년대 중반부터는 멋지게 부활하며 멋진 시절을 보내게 되지요. 1968년 아스날을 잡으며 리그컵 우승, 1969년에는 대망의 리그우승까지 달성하게 됩니다. 1919년 창단한, 리즈 유나이티드가 50년의 세월 끝에 마침내 첫 번째 우승을 차지한 것입니다. 재키 찰튼은 수비의 핵심 멤버로서 대단한 존재감을 자랑했습니다. 잉글랜드리그에서 손꼽히는 명수비수로 통하던 재키 찰튼이었기에, 1967년에는 기자단선정 MVP에 선정된 바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재키 찰튼은 장신수비수라 높이싸움에 강했고, 득점력도 겸비하고 있어서 수비수임에도 상당한 득점을 올립니다. 리즈에서 629시합을 소화하면서 70골이나 넣었지요. 출장 경기수는 지금까지도 리즈 역대 최다기록입니다. 밀리지 않는 타이트한 수비 덕분에 존재감이 대단했고, 혹자는 동생 바비 찰튼과 형 재키 찰튼이 붙으면 수비수인 재키가 이긴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조명은 화려한 플레이의 캐논 슈터이자 맨유에서 뛰었던 바비 찰튼이 월등히 많이 받았지만, 견실한 수비 실력을 자랑하던 리즈의 재키 찰튼 역시 대단했던 선수임을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로는 30살을 앞둔 1965년이 되어서야 데뷔합니다. 그 전까지 리즈가 강등도 당하고 약체였기 때문에 재키 찰튼은 늦게 부름을 받았지요. 그럼에도 1966년 월드컵에서 모든 시합에 출장하며 수비수로 활약, 잉글랜드 우승에 공헌합니다. 1970년 월드컵에도 35살의 나이로 참가하였지요. 재키 찰튼은 어쩌면 늦게 핀 꽃이었고, 화려하지 않은 꽃이었지만, 잉글랜드의 뛰어난 수비수로 평가받는 스타이자, 리즈의 영원한 레전드 이기도 합니다.

 

 한편, 1972년 현역 은퇴 후, 감독생활을 시작한 재키 찰튼은 지도자로도 성공하면서 명성을 날립니다. 유럽의 약체 아일랜드 국가대표팀을 맡으면서 매우 놀라운 성과를 보여줍니다. 어쩌면 재키 찰튼 답게 견실하고 단순한 축구였지요. 전방에 센터포워드 보내놓고, 길게 공올리고 죽어라 뛰는... 세련됨은 없었으나, 이 투지의 아일랜드 팀은 이후 사고를 칩니다. 월드컵 예선에서 늘상 탈락하던 아일랜드였는데, 88유로, 90월드컵, 94월드컵을 연속으로 예선돌파하며 본선 참가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 전까지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아일랜드의 대약진이었지요.
  
 게다가! 1990년 월드컵에는 무려 8강 진출까지 성공했으니, 재키 찰튼의 인기는 흡사 우리나라의 4강 전설 히딩크 못지 않았습니다. 94월드컵에도 16강에 성공했고, 이탈리아를 잡기도 하는 등 정말로 신기한 강팀 아일랜드가 되었지요. 1993년 아일랜드의 피파랭킹 6위는 재키 찰튼 감독이 만들어 놓은 전설적 순위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하. 아일랜드 국가대표팀을 약 10년 가까이 이끌었으며, 명장 소리도 듣고, 종종 구시대적 축구를 펼친다는 욕도 먹고... 그럼에도 아일랜드에서는 가장 사랑받은 잉글랜드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온화하고 겸손한 동생 바비 찰튼에 비해서, 재키 찰튼은 쾌활하고 농담도 잘하는 유쾌한 사람이었습니다. 94월드컵 첫 경기부터 우승후보 이탈리아를 휴튼의 골로 잡아내자, 재키 찰튼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지요. "아, 휴튼은 그렇게 넣으려고 연습을 많이 했었지. 물론 실제로 그렇게 골을 넣어버린 것은 처음 봤지만 말야" 위트 넘치는 지도자 재키 찰튼은 아일랜드를 일약 세계적 강호로 만들었던 신기한 인물로도 평가받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치며, 동영상을 덧붙입니다. 화려한 동생 바비 찰튼에 비한다면, 거칠고, 투박하며, 과감한 선수였던 재키 찰튼. 앞으로도 아일랜드 국대의 전설적 감독이자, 리즈의 전설적 수비수로 종종 회자될 것입니다. 애독해주시는 독자님들께 늘 감사드리며, 좋은 하루 되세요.

 

 덧붙여. 인생이라는 것이 정말 알 수 없네요. 업데이트를 하며, 전설의 선수 사망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아무쪼록,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1. 06. 03. 초안작성.

 2020. 07. 11.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