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36 마라도나 - 아르헨티나 축구전설

시북(허지수) 2019. 12. 8. 17:03

 

 2019-20시즌 EPL 손흥민 선수의 특급활약은 앞으로도 영원히 회자될 전설이 될 것입니다. 폭풍질주를 이어가면서 그림 같은 골을 성공시켰으니까 말입니다! 아아, 놀랍고, 아아, 고맙습니다. 아르헨 마라도나 혹은 브라질 호나우두도, 부럽지 않고, 라이베리아의 영웅 조지 웨아도 부럽지 않았던 겨울날 입니다. (웃음) 아, 그건 그렇고, 마라도나 이야기 오늘은 업데이트 하려고 합니다. 멋진 팝송 틀어놓고, 따뜻한 커피를 곁에 준비해 놓고, 마음을 잘 챙겨가면서 키보드 두드리고 있습니다! 드디어 마라도나의 차례가 왔습니다. 물론, 긴 글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역사적 스타, 신의 아들 마라도나에 대해서 포스팅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자, 우리 같이 마라도나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자구요! (*이 글은 블로그 완전 초기인 2008년 2월에 작성된 글임을 밝혀둡니다!) 가독성을 올리고, 동영상을 좀 넣어보려고... 하하.

 

 프로필

 

 이름 : Diego Armando Maradona (보통 디에고 마라도나 라고 부릅니다)
 생년월일 : 1960년 10월 30일
 신장/체중 : 166cm / 67kg
 포지션 : FW, MF
 국적 :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 91시합 34득점

 

 신의 아들, 아르헨티나 레전드, 천재 마라도나의 이야기

 

 마라도나는 궁핍한 가정의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공을 너무나 좋아했던 이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무서운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천재 축구 소년으로 불리면서 12살 때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팀의 하부조직에 입단하게 되었죠. 1976년 10월 20일, 아직 16살 생일도 맞이하지 않았던 이 천재 신동은 드디어 톱팀에서 출장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로 친다면, 중학생인 소년이 프로무대에서 출장을 한 것인데요. 게다가 실력도 성인 못지 않게 매우 뛰어나서 급기야 1977년 2월 27일,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선정되었습니다.

 

 1978년 모국 아르헨티나에서 월드컵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이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려서 국가대표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다음 해인 1979년 제2회 세계 청소년 선수권이 일본에서 열렸습니다. 월드컵에 나갈 수 없었던 것에 대해 분풀이라도 필요했던 걸까요? 마라도나는 맹활약을 펼치면서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명성이 점점 높아져만 가던 마라도나는 1981년 보카 주니어스로 400만달러의 이적료를 기록하면서 이적하였으며, 그 다음해인 1982년에는 600만 달러의 이적료를 기록하면서 FC바르셀로나로 이적합니다. 이 때까지도 불과 20대 초반이었습니다. 마라도나는 커리어 시작부터 화려함, 그 자체인 듯이 보였는데...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 출장한 마라도나는 집요한 집중수비에 시달립니다. 급기야 브라질 전에서는 상대팀 선수의 배에 발차기를 날리면서 퇴장! 아르헨티나도 2차리그에서 탈락하고 맙니다. 바르샤 시절에는 간염을 앓게 되었는 데다가, 빌바오 전에서 악의적인 태클에 크게 부상도 당해서 결국 반년 이상 뛸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말하자면, 마라도나의 좌절의 시간들이었죠. 실의에 빠진 가운데 1984년 이탈리아 세리에A의 나폴리로 이적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폴리에서 멋지게 부활하는 마라도나! 그의 플레이는 정말 멋진 것이었기에, 이후 나폴리의 수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서포터로부터 "나폴리의 왕" 이라고 불리기 까지 하면서 엄청난 사랑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당시 나폴리의 경기 티켓은 구하기 조차 힘들었고, 나폴리 구단은 마라도나에게 막대한 이적료와 급료를 지불하면서도 재정은 날로 탄탄해져갔습니다. 덕분에 몇 년 뒤, 나폴리는 당시 브라질 국가대표 에이스였던 카레카를 영입할 수 있었습니다.

 

 마라도나는 나폴리를 세리에A 정상에 세우면서 빛나는 시기를 보냅니다. 1926년 SSC나폴리 창단 후, 사상 첫 우승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카레카 등의 화려한 멤버들과 함께 한 번 더 리그 우승을 이룩합니다. (이탈리아는 북부와 남부가 갈등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가 북부에 축구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거의 모든 것이 독점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나폴리는 이러한 분위기를 깨부수며 이탈리아 남부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훌륭한 기억을 선사했던거죠!) 정말 티켓을 못 구할 정도였다니까, 그 열광적인 나폴리의 인기가 어떠했었는지 지금은 그저 이렇게 추측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하하

 

 그리고, 또, 대망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여기서 또 하나의 전설이 시작됩니다. 몸과 마음 모두 준비를 철저히 하고 마라도나는 이 대회에 참가합니다. 그리고 5골과 5어시스트의 대활약으로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끕니다. 이 대회에서 마라도나의 대활약은 정말 엄청난 것이라서, 혹자는 1986년 월드컵은 마라도나를 위한 대회였다 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유명한 것이 잉글랜드와의 8강전. 축구 역사상 가장 훌륭한 골 중에 하나인 슈퍼드리블에 의한 골과 신의 손에 의한 골을 동시에 터뜨리면서 잉글랜드를 침몰시켜 버리죠.

 

 시간이 흘러,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신의 장난이었을까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은 준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만나게 됩니다. 그것도 그 나폴리에서. 승부차기 끝에 웃은 팀은 다름 아닌 아르헨티나 였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준우승을 했고, 마라도나는 열심히 했었지만, 월드컵이 끝난 후 나폴리의 분위기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더 이상 마라도나에 열광하지 않았습니다. 일부의 나폴리 서포터들 마저도 마라도나에게 예전처럼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랬습니다. 현실이란 이렇게 가끔 혹독한 법이죠. 이탈리아에서 이태리 월드컵 탈락의 주범! 역적으로 몰린 것이었습니다. 터질 건 곧바로 막 터집니다. 곧이어 마라도나는 코카인 사용이 발각됩니다. 이탈리아에서 15개월의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게 되자, 설 곳이 없던 마라도나는 1992년 스페인의 세비야로 이적하고 맙니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도 도핑 문제로 출장할 수 없었으며, 1995년에 보카 주니어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축구천재는 1997년 자신의 생일을 맞이해서 37살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합니다.

 

 은퇴 후에도, 약물 문제로 뉴스에 종종 오르던 마라도나는 최근에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아서 TV프로그램의 사회도 진행하는 등 건재하고 있군요. 현재까지도 아르헨티나의 신동선수는 제 2의 마라도나 라고 불릴 정도로 마라도나의 명성은 식지 않고 있습니다.

 

 자, 그럼 이쯤에서, 마라도나의 플레이 스타일을 한 번 살펴볼까요. 왼발을 잘 사용했으며, 특히 드리블 기술은 엄청났습니다. 키는 작지만, 마라도나의 드리블을 보면 공이 마치 다리에 달라 붙어있는 것 같다는 찬사도 이어졌습니다. 비결도 여기 있습니다. 마라도나는 스스로도 나는 키가 작아서 몸을 부딪히는 플레이가 아무래도 불리하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상대가 닿지 않는 곳에 볼을 컨트롤 해서 드리블로 돌파하는 기술을 연마해 왔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마라도나는 30m를 3.9초에 돌파하는데, 이러한 순간적인 폭발적 스피드를 활용해 강행돌파 해버리는 무서운 드리블 실력 때문에 심지어 상대수비수가 일부러라도 파울을 해서 멈추게 했다고 전해집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이 마라도나를 멈추기 위해서 공이 아닌 자꾸 몸에 몸싸움과 태클을 걸기도 하는 등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서 많은 팀이 애를 먹었습니다. 한편 이런 수비방식은 후에 문제가 되었으므로, 시간이 흐르면서 공이 아닌 선수에 대한 태클(특히 백태클)은 엄벌처벌되는 규정이 점차 적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킥실력도 매우 뛰어나고 왼발로 부터 나오는 슛은 스피드, 타이밍, 코스 모두 절묘한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보여주었던 바 있듯이, 상대팀 수비수 네 사람이 마라도나에게 달라붙어 있어도, 이 기회를 틈타 공격수에게 절묘한 어시스트를 해주는 센스를 겸비하고 있는 선수이기도 합니다. 걸출한 볼 키핑 능력과 패스 센스, 득점 능력을 가진 마라도나가 있었기에 당시 아르헨티나 대표팀과 마라도나의 소속 팀 (대표적으로 나폴리팀) 성적은 뛰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 언급하게 되는데요. 수 많은 명플레이를 남긴 마라도나지만, 특히 전설의 다섯 명 제치기와 신의 손 골은 가장 유명합니다.
 1986년 6월 22일. 멕시코 월드컵 8강전, 강호 잉글랜드와의 경기였습니다. 팽팽하게 흐르던 경기, 후반 4분 잉글랜드 수비수가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하는 순간 마라도나는 갑자기 폭발적으로 달려듭니다. 마라도나는 재빠르게 왼손으로 공을 쳐서 골을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건 뭐... 퇴장도 당할 수 있는 교묘한 핸들링 반칙이었지요. 골키퍼는 핸들링 반칙이라고 당연히 항의했지만, 심판은 마라도나의 골로 인정했습니다. 역사적인(?) 골이 만들어 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마라도나는 그 골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남겨서 화제가 됩니다. "그것은 신의 손과 마라도나의 머리로부터 태어난 골이다" 후에 사람들은 이 장면에 대해서 "신의 손 골" 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더욱 유명한 명장면은 이로부터 4분 후였지요.

 

 센터라인 부근에서 공을 빼앗은 마라도나는 오른쪽 사이드에서부터 드리블 돌파를 시작합니다. 차례 차례 수비수들을 제치고 경이적인 스피드로 페널티에리어 까지 진입, 잉글랜드의 명골키퍼 실튼까지 그대로 제치면서 골을 성공시킵니다. 이 골은 전설의 5명 돌파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마라도나의 플레이스타일을 상징하는 골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 정말 대단하다는 감탄사 밖에 나오지 않는... 판타지 같은 골이라는 평가를 받는 월드컵 특급 명장면입니다.

 

 여하튼 이 두 개의 유명한 골 덕분에, 축구를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마라도나는 안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 입니다. 그리고 이후 마라도나는 이 사건 덕분에(?) 잉글랜드에서 대단한 미움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만, 음.... 요즘 아주 멋진 플레이가 나올 때면, 마라도나 같은걸 이라고 평가하면서 마라도나의 실력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워낙 마라도나가 잘 찼으니까요. 그 세대 최고 스타 중 한 명이었습니다.

 

 지금도 나폴리 팀의 10번은 마라도나의 번호로,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다. 한편 마라도나가 진행하는 TV프로그램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는데 2005년에는 시청률 34.9%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의외로(?) 굉장한 인기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신의 손은 내 손 이었다고 발언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마라도나의 삶을 노래한 신의 손 이라는 노래도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이 곡은 인기가 대단히 높은데, 마라도나의 TV방송 1회에서는 마라도나가 직접 이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재치가 넘치네요. 또한 아르헨티나의 밴드나 솔로 가수 대부분이 마라도나를 위한 노래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그의 인기와 명성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실감하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하기야, 월드컵 우승을 시켰으니 말이지요! 이건 날강ㄷ... 아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못한 일이거든요. (에헴.) 잠시 말이 거칠게 나와서 사과드립니다.

 

 끝으로, 정치적 발언도 많이 했는데요. 네 이 부분은 가독성 갱신을 시키면서, 싹둑 다 없애지요. 뭐... 그렇습니다 :) 요즘 저는 정치에 큰 기대를 거는 것보다는 개개인이 보다 올바르게 사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정리하면, 공식 경기 통산으로 588경기 307득점을 기록하였습니다. 글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피파 공식 유튜브에서 마라도나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마라도나! 그의 이름은 영원히 축구계의 레전드 스타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손흥민 군도 (마라도나가 잠시 눈감고 저리 가는) 너무 너무 눈부시고 멋진 플레이로 온 국민에게 큰 기쁨을 줘서 고맙고 사랑해요!

 

 2008. 02. 22. 초안작성

 2019. 12. 08. 가독성 갱신 및 동영상 업데이트

 

 동영상은 FIFATV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바쁘신 분들은 2분 30초부터 드리블 질주를 감상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IIci4TEqAF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