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갱신은 조지 웨아 편입니다. 하하, 그 때는 그가 정말로 대통령이 될 줄 몰랐는데, 사람 일은 알 수가 없군요. 가독성을 수정한 버전입니다. 이야기 출발해 봅시다. 조지 웨아, 라이베리아의 대스타이자 AC밀란에서 맹활약을 보여주었던 선수. 아프리카선수로는 처음으로 발롱도르, FIFA최우수선수상을 받은 조지 웨아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프로필
이름 : 풀네임 George Manneh Oppong Ousman Weah (조지 웨아 혹은 조지 웨어 라고도 불리네요)
생년월일 : 1966년 10월 1일
신장/체중 : 185cm / 82kg
포지션 : FW (FW 이지만 MF, DF, GK 까지 모두 경험이 있다)
국적 : 라이베리아
국가대표 : 65시합 10득점
수상기록 : 1995년 발롱도르 (유럽최우수선수상), 1995년 FIFA최우수선수상
라이베리아의 괴인, 조지 웨아의 이야기
신체가 탄탄하게 좋은데다가, 골 결정력도 뛰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골키퍼를 포함해서 모든 포지션이 가능한 올라운드 플레이어기도 합니다. AC밀란 시절에 인상적인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1996-97시즌 개막전에서는 밀란팀의 골에리어에서 시작해 약 80미터를 단독 드리블로 돌파하며 골을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놀라운 골로 인해서 그 다음날 현지신문에는 이렇게 제목이 붙었다고 합니다. "산시로에 UFO출현" 조지 웨아에 관한 유명한 일화입니다.
조지 웨아는 14형제 중에 3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에 의해서 길러졌다고 하는데요. 그의 어린 시절 꿈은 텔레폰 오퍼레이터 (=전화교환원) 였습니다. 여하튼 조지 웨아는 15살 때, 3부리그 소속의 현지 축구 클럽과 계약합니다. 입단 당시 포지션은 골키퍼였고요. 골키퍼로 축구생활을 시작했지만, 얼마 안 있어 조지 웨아는 득점을 올리는 일에 큰 흥미를 보입니다. 그리고 공격수로서의 잠재력도 상당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FW로 포지션을 전향하는 조지 웨아! 30경기에 출장해서 31골을 넣는 발군의 활약을 펼치며 팀을 2부리그 승격으로 이끌었어요. 10대 시절부터 아프리카에서 잘 나가는 선수가 된 조지 웨아.
재능을 알아보고 1부리그 팀에서 오퍼가 오게 되었고, 조지 웨아는 1부리그 팀에서 활약하다가 20살이 되던 해에 라이베리아 최고의 팀인 명문 인빈시블 일레븐(Invincible Eleven)팀에 이적하게 되었습니다다. 또한 멋지게도 명문팀에서도 활약은 이어집니다. 캡틴으로 활약하며 득점왕까지 오르는 조지 웨아. 이 활약은 드디어 라이베리아 밖까지 알려지게 되었고, 이듬해 1987년, 카메룬의 야운데팀으로 이적합니다. 카메룬에서도 역시 18시합 15득점에 훌륭한 성적을 올렸고, 드디어 조지 웨아는 1988년 유럽으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부른 것은 프랑스의 AS모나코였습니다.
프랑스 리그에서 조지 웨아의 재능은 활짝 피기 시작합니다. AS모나코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으며, 팀의 프랑스컵 우승도 이끌었습니다. 1992년 파리생제르맹 으로 이적해서도 변함없는 활약을 보여주며 PSG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1995년 프랑스컵도 우승으로 이끕니다. 자, 우승제조기 인가요! 클럽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던 조지 웨아. 이제 빅리그의 강호들이 웨아를 영입하려고 시도합니다.
이윽코... 조지 웨아는 마르코 반 바스텐의 후임으로 AC밀란으로 입성합니다. 많은 골을 기록하면서 밀란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칩니다. 독특한 리듬의 드리블, 체격이 좋아 공중전에도 강하며, 찬스를 살리는 데도 뛰어나, 한 마디로 발군의 경이적 신체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일 것같은 플레이도 해내버리는 모습이 어찌나 인상적이었는지, 후에 라이베리아의 괴인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습니다.
맹활약에 힘입어 그는 결국 1995년 아프리카 선수로는 최초로 발롱도르(유럽최우수선수상)를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됩니다. 연이어 FIFA최우수선수상에도 선정되었고요. 게다가 1995년 3번째 아프리카 최우수선수상까지 받았으니... 그 해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유명한 타이틀을 모두 휩쓰는 놀라운 역사를 낳습니다. 1995년의 이러한 기록들은 조지 웨아의 한 해 였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지도 모릅니다.
AC밀란의 두 차례 우승을 이끄는 등 맹활약을 보여주었으며, 1996년에는 FIFA 페어플레이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AC밀란의 레전드인 반 바스텐의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강렬한 포스가 존재했었지만, 또 다른 레전드가 된 조지 웨아가 새롭게 밀란의 기둥으로 우뚝 서면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다. 이적 후 3년 연속 AC밀란의 최다득점자가 되었고요.
세월이 흐르면, 30대가 지나면서 무릎 부상 등으로 고생을 하게 됩니다. 이후에는 첼시, 마르세이유 등의 팀에서 활약을 하다가 2003년 현역에서 은퇴합니다. 지금도 아프리카 최고의 선수를 꼽을 때면, 로저 밀라와 함께 늘 이름을 올리는 선수가 바로 조지 웨아 선수입니다. 그는 이미 라이베리아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아니 라이베리아의 영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전으로 상처투성이인 조국 라이베리아를 위해서 조지 웨아 기금을 설립하기도 했으며, 라이베리아를 돕는 일에 항상 힘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조지 웨아는 지난 2005년에는 대통령 후보에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철의 여인 엘렌 존슨 설리프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였습니다.(1차 투표에서 승리했으나, 2차 결선투표에서 패배)
2008년 부터는 일본 3부리그(사회인리그)에 참가하는 바리엔테 코리야마팀의 총감독을 맡았다고 합니다. 좋은 축구 감독이 될 것이라 저는 생각해 보면서, 그의 여러가지 도전에 박수를 보냅니다. 조지 웨아가 라이베리아 대표팀에서 뛰면서, 아프리카에서도 변방이었던 라이베리아 축구는 어느새 아프리카에서 인정받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을 정도이니, 그가 앞으로 훌륭한 명감독으로 활약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담으로, 조지 웨아는 라이베리아 국가대표팀의 FIFA회비를 비롯해 비행기 티켓, 감독과 코치 수당 등을 자비를 털어내 운영하기까지 했던 인물입니다. 그가 있었기에 라이베리아 대표팀은 이만큼이나 성장할 수 있었지요. 저는 어쩔 수 없이 조지 웨아의 열렬한 팬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도, 그리고 지금도... 음, 제목을 별명대로 라이베리아의 괴인으로 처음에 썼으나, 끝내 라이베리아의 영웅으로 바꾸고 말았습니다.
마치며 - 축구팬이라면, 조지 웨아에 대해서 앞으로 기억해 주시길 감히 바라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2017년 대선 선거에서 이겨서 요즘 라이베리아에서 대통령으로 활약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와, 축구영웅에서 대통령까지, 인생은 참 알 수 없어서, 그러므로 멋진 게 아닐까 합니다.
초안작성 2008. 02. 19.
가독성갱신 및 영상 업데이트 2019. 12.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