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참으로 사랑하는 영화 테이큰 입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숨막히는 스릴감이 압권이었고, 어지간한 차광고보다 훨씬 멋진 아우디의 질주 장면이 환상적이었던 영화로 기억합니다. 두 번째 보았을 때는, 아버지의 슬픔이 느껴집니다. 숨어서 관찰하는 미행이 특기라는 브라이언 (리암 니스 분) 이 정작 딸이 자라면서 중요한 순간마다, 어디 있는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는 부인의 블랙 유머는, 들을 수록 가슴이 아픕니다. 조국을 위해서 헌신했지만 가족의 행복한 생활은 책임질 수 없었던 특수요원 브라이언. 거의 어쩔 수 없이, 반강제로 워커홀릭으로 지내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많은 아버지들의 슬픔과 공감이 묻어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렇게 지나치게 생각하면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좋은 영화입니다. 한가할 때 보고 있으면, 잠깐 다른 세계로 떠났다가, 돌아오는 기분이 들만큼, 중반부터 이어지는 빠른 전개감도 탁월합니다. 96시간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뭐니뭐니해도 역시 심플하고 가장 빠른 선택이 최고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우물쭈물하면 영원히 딸을 잃을 수 있는 그 시간 앞에서, 브라이언이 철저하리만큼 강렬하게 목숨을 걸고 추격하는 장면들은 시원하면서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딸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는 오직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저는 또 생각할 주제를 찾아서 리뷰를 쓰고 있으므로, 영화 속으로 출발해 봅니다.
벌써 몇 번이고 보았던, 테이큰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다름 아닌 "현장의 무게감"에 대해서 언급하는 장면인데, 저는 그 장면이 절대로 잊혀지지 않아서 너무 선명합니다. 심지어 이것이야 말로 인생의 답이다 라고 오랜기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 장면은 바꿔 말하자면 "총알의 무게감" 입니다. 확실히 권총에 총알이 들어가 있으면 그 무게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권총을 평소 사용하지 않다보면, 그 무게 차이라는 감각은 서서히 잊혀져 갑니다. 그렇게 안주해서 많은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그 무게감을 구분할 수 없게 됩니다. "현장감을 잃어버리는 순간, 사람은 부패하기 시작한다" 라고 저는 표현하고 싶습니다. 지금부터 저만의 해석으로 이 영화를 파고들어가 봅니다. 조금 껄끄러운 부분이 있다면 제 부족함이므로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테이큰의 미덕 중 하나는 쓸데없는 장면, 불필요한 장면이 없다는 것입니다. 브라이언이 알바니아어 통역을 위해서, 청년을 잠시 고용하는 부분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시급이 얼마인가 물어보고 바로 10시간치를 계산해주고, 필요한 단서를 찾기 위해서 설명은 집어치우고 오직 집중적으로 듣기만을 원하며,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는 가차 없이 청년에게 사전 하나 달랑 받고 차에서 내리라고 합니다. 이 장면과 완전히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치안 부국장이 되어 있는 출세한 그의 동료입니다.
치안 부국장은 물론 맡은 임무인 치안을 잘 수행하면 되는데, 출세한 그는 쓸데없는 일들, 불필요한 일들을 합니다. 뒷돈을 받아 챙기며, 부하의 잘못을 알면서도 묵인해주고, 가족을 위한다면서 이 모든 잘못을 합리화 해나갑니다. 그는 가족의 행복은 얻었지만, 현장의 무게감, 총알의 무게감은 잊어버린 채 살고 있습니다. 부조리함이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가족의 행복을 생각하는 만큼, 동료의 딸이 지금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음을 생각했더라면, 부국장의 아내가 괜시리 총알을 스쳐맞을 일도 없었겠지요.
이 장면을 몇 번이고 본 이후로는, 저는 "행복"에 대해서 다시 정의하게 되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행복이란 대략 이런 그림입니다. 괜찮은 집에서, 차가 있고, 사회적 평가가 따라오는 직장이 있고, 가족 모두가 건강하며, 출퇴근을 제때 할 수 있는 것. 그런데 치안 부국장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행복 대신에 묘한 불쾌감이 들었습니다. 그에게 결정적으로 무엇인가가 빠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두 가지가 빠져 있네요. "현장감과 공감능력"
따라서 행복이란, 내가 행복한 순간을 누릴 수 있다면, 적어도 가까운 사람부터라도 같이 행복해 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위기에 처해있을 때,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조금이라도 모색해 봐야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맡은 일을 소홀히 하고, 반칙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하면, 그는 아무리 많은 사치를 누릴 수 있게 되어도, 그 잘못의 대가는 반드시 치를 날이 온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을 밀고 오면, 행복이란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내가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하는 동시에, 다른 가족의 행복에도 관심을 가질 때" 우리는 건강한 행복감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 언뜻 비슷해 보여도, 그 모습은 완전히 달라 보입니다. 한 쪽은 반칙을 통해서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나머지 한 쪽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실력 측면에서도 접근해 볼 수 있습니다. 현장감을 몸에 익히고 있는 브라이언은 중요한 순간마다 실력발휘를 제대로 해내면서, 마지막까지 오차 없는 정확한 사격실력을 선보입니다. 운전은 이렇게도 할 수 있다고 보여줍니다. 반면에 현장감을 잃어버린 부국장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서,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일을 시키는 "전화 연락" 말고는 할 수 있는게 별로 없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성공적인 인생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성공할 수도, 또는 잘 안 될수도 있겠지만, 현장감은 반드시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때는 내가 이 정도는 되는 사람이었어 라는 자만심에 쓸데없이 물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순간에서도 방법을 찾아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은 더 이상 없다, 이제는 안 된다며, 쉽게 주저 앉기 보다는,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찾아서, 계속해서 움직여 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영화는 96시간 동안 해결하지 못하면, 영원히 딸을 잃는다며, 무섭고 현실적으로 묘사되지만,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결코 영원할 수 없으며, 주어진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동안 치열하게 살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꿈을 잃고 말 것입니다. 현장감을 잃어버린 꿈이란, 발사되지 않는 총처럼, 부질 없는 꿈이 되고 말테니까요.
맞습니다. 테이큰은 철저한 권선징악 영화입니다. 나쁜 놈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말을 듣기는 해도, 동정 따위는 없습니다. 브라이언은 철저하게 딸을 구하기 위해서 거침없이 돌진합니다. 그 앞길을 가로 막는 것에 대해서 잠깐의 빈틈도 주지 않습니다. 이것을 꿈으로 치환해서 생각한다면, 우리가 가진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할 때,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면서 달려나갈 때, 우리는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자꾸만 주변에다가 한 눈을 팔다 보면, 우리의 시간은 어느 순간 끝나버리고 말 것입니다.
딸까지 오직 일직선으로 달리는 영화. 어쩌면 저는 그 강함을 너무나 좋아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강하게 밀어붙이는 원동력이 "사랑"이기 때문에, 이 시원한 영화가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과 마주하기 위해서 모든 위험을 감수하면서 달려가는 모습은 제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습니다.
글을 마치며 고백하자면 저는 치안 부국장 처럼, 적당히 현실에 안주하면서 쉬엄쉬엄 살아가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한 폭의 여유가 모토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뒷돈 따위는 받지 않습니다! 하하.) 그렇지만 한편으로 저는 브라이언처럼 사는 모습을 끝없이 동경했기 때문입니다. 미친듯이 질주하는 브라이언은 첫 통화에서 이런 대사를 합니다. "딸을 놓아주면 너희는 무사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를 죽여버릴테다."
저는 가끔 상상 속에서 이 장면이, 다른 대사로 변주되어 들립니다. "쓸데 없는 것을 버리면 꿈은 무사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너의 꿈과 너의 인생도 머지 않아 죽음에 이를 것이다." 좋은 영화의 특징은 쓸데 없는 장면을 과감히 덜어낸다는 점에 있습니다. 우리가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쓸데 없는 욕심들은 과감히 덜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만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인생이란, 어리석기 보다는, 어쩌면 가장 멋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