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이 많은 영화 딥 임팩트 이야기 입니다. 제작비도 7천 5백만 달러에 달하는 SF영화이고, 후반부의 폭발 장면은 이게 정말 90년대 영화 맞나 라는 생각이 들만큼 나름 고퀄리티 입니다. 미미 레더가 여류 감독이지만, 전체적 배경을 설명하자면 조금 깁니다. 우선 장점부터 소개하자면, 이 영화는 재난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굉장히 비중이 큽니다. 절대적 위기의 순간에 냉혹한 현실 대신, 담대한 희망을 선택하는 인간을 찬사하고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1930년대에 발표한 원작소설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50년대에도 한 번 영화가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판권을 70년대 중반에 영화사에서 리메이크를 하고자 사들였다가 쉽게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므로 1차 무산. 그러다가 90년대 중반부터 이 내용을 각색하고, 합치고, 다듬고,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를 내정해서, 거대한 영화 프로젝트가 재개됩니다. 그런데 유명감독 스필버그는 시기적으로 쥬라기 공원 등 여러 대작의 출시 준비로 너무 바빴지요, 그래서 스필버그가 지휘봉을 누군가에게 넘겨주게 되는데, 이 큰 책임을 맡은 인물이 바로 미미 레더 감독입니다. 이리하여, 마침내 1998년 이 딥 임팩트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지요.
오랜 기간 공들여 준비한 만큼, 저마다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들을, 잘 살려냈다는 게 우선 눈에 띕니다. 꼬마 주인공들인 리오와 사라는 그들만의 따뜻함과 설레임을 보여주고 있고, 영화 딥 임팩트의 거의 주인공인 여성 앵커 제니 러너도 끝까지 인간적이면서도 매력적입니다. 잘 알려진 배우 모건 프리먼이 연기하는 대통령 역할도 위엄과 차분함이 동시에 느껴져서 흡사 진짜 대통령 같은 포스가 살아있습니다. 명배우 로버트 듀발이 맡은 피쉬 대위 역할도 노장의 저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등 참 근사합니다. 이래저래 주인공 포스가 나는 인물들이 많음에도, 영화내용이 산으로 가지 않았다는게 일단 큰 다행입니다 :)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딥 임팩트는 일종의 가능성에 관한 영화입니다. 실제로 얼마 전에 우리는 러시아에 혜성이 떨어져서 많은 피해를 입혔다는 사건을 보았습니다. 떨어지는 혜성은 아름다우면서도 무섭습니다. 그 미(美)에는 자비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그 떨어지는 혜성 크기가 도시만큼 거대했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상상력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그 정도의 크기가 떨어진다면 세계는 멸망하겠지요. 그 순간을 영화는 꽤나 섬세한 필치로 그리고 있습니다.
일단 혜성이 떨어지기 전에도, 우선적으로 세계가 혼돈의 아수라장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심 앞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선택 앞에 섭니다. 차분히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마지막까지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살기 위해서 끝까지 방법을 찾아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맙게도 영화는 이 모든 장면들을 보여줍니다. 거대한 쓰나미가 우리 앞을 덮쳐서, 죽음을 피할 수 없을 때 조차, 누군가는 도망치다가 죽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순간을 보내다가 죽고, 누군가는 헬기를 탐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리를 타인에게 양보하기 까지 합니다. 사람들의 선한 마음이 계속해서 그려지기 때문에, 보다가 자꾸 울컥하게 됩니다. 저는 묘한 힐링의 느낌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영화는 중반부터 우주와 지구의 상황을, 이중으로 중계하기 시작합니다. 떨어지는 혜성을 막아보고자, 핵탄두를 싣고 우주선을 쏘아올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우주선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한가지를 알려줍니다. 일들이 항상 계획대로 잘 되지는 않으며, 변수가 많으면 많을 수록, 우리의 예측은 빗나가기 마련임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우주선에 모든 희망을 싣고, 심지어 메시아 라고 이름까지 붙였지만, 그 메시아는 중도에 연락이 두절되면서 죽고 말았습니다.
충돌을 몇 시간 앞두고, 지구의 모든 기술력을 동원해서, 타이탄 미사일까지 발사해보지만, 날아오는 초거대 혜성을 막기란 거의 당연히 역부족입니다. 도시크기의 혜성이 날아온다면, 이걸 막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역설적으로 알게 됩니다. 아니 좀 더 냉정하게 말하면, 당장 일본에서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는 것조차 우리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렇게 자연재해로 죽는 사람보다, (마찬가지로 예측하기 어려운) 병이나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훨씬 많겠지만요.
말하자면 딥 임팩트는, 갑자기 일어나는 절망적 순간 앞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가? 에 관한 영화라고 써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고로 두 눈을 잃고, 이제 목숨까지도 버리기 직전의 비행사가 남은 아들에게 끝까지 상냥한 태도를 잃지 않는 자세는, 혜성이 충돌하는 장면 이상으로 강렬한, 이 영화의 진정한 명장면입니다. 따뜻함을 전하기 위해서, 자신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잊고, 어떠한 불평이나 원망도 하지 않으며, 그 순간에 최선의 상냥함을 보여주는 장면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지나치게 선한 사람들 위주로 영화를 그린 것이 맞습니다. 인간의 추한 모습은 영화 속에서 TV중계화면으로만 살짝씩 비춰질 뿐, 미미 레더 감독은 설령 인간에게 이런 나쁜 모습이 있더라도, 나는 이 영화를 선한 모습에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추겠다고 작심한 듯 보입니다. 그래서 살아남았으므로 적당히 안심하는 인간들은 거의 의도적으로 제외시키고, 끝까지 인류와 타인과 재건을 위해서 마음을 쏟아붓는 사람들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힐링의 느낌을 받았나 봅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아무리 험하더라도, 아직 살아갈만 하구나 싶기 때문입니다.
리뷰를 마치며 두 가지를 생각하면 좋겠네요. 결국 인간의 기술력이 높을 수록, 그만큼 위험성도 높아지며, 우리가 자연재해를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시대의 기술들은, 지금 자동 운전 기술을 치열하게 개발하는 등 편리함을 위해서 돌진 중이지만, 이 기술이 만약 사람을 해치는 오작동을 일으킨다면, 그 뛰어난 기술들이 오히려 윤리적 딜레마 앞에 서야 합니다. 또한, 대체 에너지 연구에는 이제 막대한 돈들이 오고 갑니다. 우리는 이제 원자력 같은 고위험 기술로는 자연 앞에, 오류 앞에 승산이 없음을 이제서야 깨닫기 시작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소중함을 느끼기에도 좋은 영화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면, 지긋지긋하거나 식상하거나 때로는 피곤하게 느껴질 때도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진짜 행복한 순간들은 그 속 어딘가에 있는게 아닐까요. 영화에서는 엄청난 행복이, 바닷가에서 함께 했던 시간들로 묘사됩니다. 잊을 수 없는 완벽한 행복이라고 표현되었지요. 이처럼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기억들을 만들어 가고자 노력하는게 매우 중요합니다. 정도 들고, 밉기도 하고, 애증의 관계지만, 훗날 영원히 그 사람을 볼 수 없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분명 슬픈 감정이 세차게 밀려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있을 때, 가까운 사람들과 소중한 사람들에게 잘해야 한다는 것은 한 번, 두 번, 아니 한 열 번쯤은 강조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