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아티스트 (The Artist,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2. 22. 20:50

 무성영화에 흑백영화라니, 조금 걱정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혹시 보다가 자면 어떻게 하나 라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런 섣부른 생각들은 깡그리 날아갑니다. 놀라울 만큼, 이야기가 잘 파악되고, 앞으로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마디로 즐겁습니다. 마구잡이(?)로, 초고속으로, 쓰다보니, 어느새 영화이야기가 50편 조금 넘었는데, 첫 리뷰도 흑백영화인 쉰들러 리스트 였지요. 다양한 표현 방법 중에서, 제약이 있는 방법도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는 점, 저는 이 점을 정말 좋아합니다.

 

 영화는 192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한참 시대흐름이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순간이었지요. 이 시절은, 이제 소리가 없는 무성영화의 시대는 끝나고, 생생하게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성영화의 새시대가 오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큰 흐름을 거부하고, 무성영화를 끝까지 고집하던, 저력의 인기배우 조지는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여기서 과연 그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그 시절 모습들 속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요? 명작 영화 속으로 출발합니다.

 

 

 우선 영화의 출발점이 되는, 조지가 잘나가던 시절을 살펴봅시다. 무성영화가 주류이던 시절 조지는 잘나가던 스타로서 명성과 인기를 한몸에 누립니다. 집도 좋고, 운전기사에, 각종 수집품들까지 있는, 그야말로 최고수준의 호화로운 생활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가 지나가면 열성팬들이 환호하는 행복한 시절이지요. 그 때 우연히 만난 페피라는 여성을, 조지는 영화판에 설 수 있게끔 도와주는데, 그러면서 영화의 이야기는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어갑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풋내기 배우 페피에게, 조지는 아주 중요한 조언을 해줍니다. 살아남으려면 "개성"이 중요하다고, 힘있게 강조하며, 아예 직접 개성을 만들어 주는 조지, 아, 정말 근사한 남자입니다. 이 개성이라는 말은 정말 중요한데, 사이트가 살아남기 위해서도, 블로그가 유지되기 위해서도, 또 게임이 히트치기 위해서도 등등 저마다의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개성이 없는 곳은 기억되기 어려우며, 금방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저도 블로그에서 나름의 개성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한가지 있다면, 국내의 다른 리뷰나 글들을 거의 참고하지 않는 편입니다. (뭐, 평균 별점 정도는 살펴봅니다;;;) 대신 해외에 올라와 있는 글들은 필요할 때는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편입니다. 그 까닭은 별건 아니고 제가 한국사람이라서 그렇습니다.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은, 보는 프레임(시야)가 비슷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에,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은 생활 양식이 다르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도 독특한 의견을 내놓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큰 영감을 받지요.

 

 또한, 개성 있고, 특색 있는 글들은 정말 좋아합니다. 가령, 저는 김두식 교수님의 칼럼은 거의 빼놓지 않고 찾아봅니다. (책도 거의 몽땅 읽었습니다!) 그런 특유의 색감이 묻어 있는 글이 되고 싶은 것이 저의 목표이기도 하고, 하하, 여하튼 개성은 중요합니다.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참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화의 여주인공 페피는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서, 마음껏 발휘하고, 곧이어 특별한 매력의 인기스타가 되어갑니다.

 

 반면 조지의 인생은 수년만에 매우 비참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무성영화를 고집하던 그는 폼나게 영화사를 나와서, 스스로 각본을 쓰고, 영화를 제작하게 되는데, 이 뜨거운 열정의 시도는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무성영화를 사람들이 원하지 않았으니까요. 유명한 대사가 인상적입니다. "이 바닥에서는 대중의 선택이 옳은거지."

 

 대중의 선택을 받고자 노력하기 보다는, 자신이 추구하던 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추진하던, 그 바보같은 조지의 추락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저는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예술가의 저력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하여간 대중이 좋아하는 영화 보다는, 위대한 영화를 만들어 보겠노라고 소리치던 모습에서 저는 표현하기 힘든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길게 쓰자면 이런 느낌이지요. "적당히 쉬운 길이라고 그런건, 유성영화는 사람들이 새로워서 좋아하는거라고, 무성영화로도 얼마든지 위대한 작품은 만들 수 있다고, 두고보란 말이야."

 

 자, 이제 조지는 실패했고, 돈은 다 날아갔고, 운전기사 마저 내보내고, 저는 그가 곧 죽을 것임을 염려했습니다. 만약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가 다시 재기할지 매우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반전과 세심한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조지는 생계는 유지해야 하므로, 가진 것을 몽땅 내다 팔고, 경매하고, 그렇게 간신히 삶을 버텨갑니다. 그리고 그 잘난 유성영화를 보러가지요. 자신이 발탁했던 페피가 한참 열연하고 있는 그 유성영화 말이에요. 마침내 조지는 뼈아픈 사실을 인정합니다. 유성영화가 정말 즐거웠던 신세계 였기 때문입니다.

 

 삶의 의미를 완전히 잃고, 실의에 빠지고, 심지어 조지가 강아지만도 못한 인지도가 되었다는 것이 정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인기라는 것은 일종의 거품과도 같습니다. 최전선의 인기가 있더라도, 거의 5년 정도만 조용히 지내면, 대중은 그를 잊어버립니다. 거의 완전히요. 왜냐하면 그 자리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새로운 얼굴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영국에서도 유명한 젊은 배우가 있었는데, 약 10년 후에, 그가 어딘가에서 죽어 있는 상태로 발견되고 나서야,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인기라는 것이 이토록 허망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언제나 잘 나가고 있을 때, 자신을 더욱 소중하게 다듬어 가야 합니다, 추락하는 것은 한순간이고, 잊혀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조지는 사람들의 악성 소문 속에서, 결국 완전히 번아웃 상태가 됩니다.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이 완전히 사라지고,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절망감 속에서, 그는 조용히 권총을 향해서 움직입니다. 그리고, 이 때, 제가 너무나 좋아서, 거의 손에 땀을 쥐고 보았던 장면이 나옵니다. 페피가 차를 몰고, 질주하면서, 조지를 구하러 가는 장면이지요. 페피는 이런 연예계의 실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래서 조지가 사라졌을 때, 그가 죽음을 향해서 갈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이 장면은 상징적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새롭게 대스타가 된 최고의 인물이, 과거에 나에게 꿈을 안겨다 주었던 거장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끌어주는 순간, 우리의 인생은 보다 아름다울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게 페피는 조지를 구원해주고, 마침내 두 사람은 완전히 역전된 위치에서 공동 무대를 섭니다. 현역 최고의 스타와, 과거 최고의 스타와의 협연. 그 경쾌한 발걸음은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하며, 깊은 감동을 안겨줍니다.

 

 인생이 이런 모습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힘든 상황에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훗날 또 내가 잘 되는 상황이 오게 되면, 누군가를 돌보고, 그 사람에게 기회를 열어주고, 살아갈 수 있게 용기를 준다면, 그런 인생이야말로 진짜 폼나는 것 아닐까요. 페피의 아름다운 질주장면에 기립박수를 보내며, 오늘 리뷰를 마칩니다. / 2013. 02. 좋은 영화 보여주는 CGV에게 고마운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