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맨 프럼 어스 (The Man From Earth, 2007) 리뷰

시북(허지수) 2013. 2. 24. 09:48

 지인 J님의 강력추천으로 보게 된 놀라운 영화를 한 편 소개할까 합니다. 맨 프럼 어스 라는 SF 영화인데, 그야말로 상상력 + 기묘함이 합쳐진 독특한 전개가 신선합니다. 저는 9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영화를 보고난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면서, 할 말을 잃어버렸는데, 지금까지도 무슨 내용으로 리뷰를 채워야 하나 막막해 하고 있습니다. 일단 손이 가는대로 써보긴 할테지만, 솔직히 별로 자신은 없습니다 (웃음)

 

 기본적인 전개는 이렇습니다. 교수직을 마다하고, 돌연 직장을 떠나게 되는 송별회 자리에, 많은 이들이 모였습니다. 아쉽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이별에 이들 (주로 해박한 교수들) 은 마음 아파합니다. 대체 왜 좋은 직장을 놔두고 떠나가는건지 상식적인 호기심에서 이야기는 가볍게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놀랍게도 거실에서 모두가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만으로, 거의 첫 장면에서부터 끝까지 이어갑니다. 대화만으로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것이 놀라움을 주지요. 하기야 그러고보면, 제가 좋아하는 그 지인 J님은 늘 상상력을 자주 강조하긴 했네요 :)

 

 

 이야기는 직장을 그만둔 존 올드맨 교수의 폭탄급 발언에서부터, 빠른 몰입감을 보여줍니다. 그의 주장은 파격적이거든요. 무려 1만4천년을 살아왔고, 자신은 선사시대부터 존재해왔고, 늙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동료들은 처음에 당연히 존 교수가 이제 흥미로운 SF소설을 집필하는가 싶었는데, 그의 진지한 태도와 성실한 답변에 감탄하면서, 점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몇 가지 화두를 제안하는 듯 합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정직하게 본격적으로 들어가자면, 미리 밝혀두는게 좋을 것 같은데, 저는 종교가 기독교이다 보니, 이 영화가 더욱 흥미롭고 재밌었는데, 개인적으로 그렇게 불쾌한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 같은 책도 얼마든지 나와 있고, 예수가 이 시대에 와 있다면, 담배 하나 물면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할 것 같다는 느낌도 갖고 있는 편이니까요. 영화의 각본은 물론 상상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지만, 한 번쯤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지요. 종교가 어디서부터 문제가 있는가 같은 질문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맨 프럼 어스는 상상력에 관한 거대한 생각입니다. 1만4천년을 살아오면서, 많은 것들을 겪어 왔고, 또한 그 인물이 역사의 중심선을 따라서 움직여 왔다면, 어떤 느낌의 인물일까? 라는 거침없는 상상에서 출발합니다. 우선 특별한 인간은 아니고, 단지 경험을 많이 축적해왔다는 점을 주목하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박사학위가 10개 정도는 된다는 존이지만, 실제로는 각 학문의 최신 연구 결과는 자신이 집중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다고 고백하는 대목에서는 감탄이 나옵니다. 바꿔말하자면,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는다면, 최고 수준을 유지할 수 없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지요. 1만년을 넘게 살아온 인간의 이 고백이야말로 참 멋집니다.

 

 저는 어쩐지 이것을 음악 연주와 연결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잘 알려져 있지만, 음악의 거장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연습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일종의 평생의 습관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은 알고 있는 셈이지요. 1달간 손을 놓고, 1년간 손을 놓으면, 설령 관객들은 모를 수 있지만, 자신은 그 실력이 조금 틀어져 있는 것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이 말은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목적에 자신의 온 힘과 정신을 다해 몰두하는 사람만이 진정 탁월한 사람이다. 이런 까닭에 탁월해지는 데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요구된다"

 

 역설적으로 존 올드맨은, 긴 인생을 살아왔지만 특정분야에 진정 탁월한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까닭은 그가 모든 것을 걸고서, 올인을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이 저는 섬뜩했습니다. 아무리 길게 인생을 누린다고 해도, 자신이 끝없이 좋아하는 것을 못 찾을 수도 있구나 라는 것. 바꿔 말해, 죽기 직전까지도 무엇을 해야할지 모른 채로 살아갈 수도 있구나 라는 점 앞에서 갑자기 말문이 막힐 정도였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살짝의 변명을 보태자면, 성경책은 사람들의 결정에 의해서 66권이 최종적으로 지정되었고, 초창기에는 몇 절의 내용이 더 추가된 대목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존의 주장은 설득력이 좋습니다. 종교를 가지고 서로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했다는 것은 세계사를 조금만 살펴봐도 선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존이 종교에 대해서 믿음을 가졌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고백하는 점도 이해되기 쉽습니다. 환멸을 느끼는 게 당연할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의 현실에 대입해보면, 오늘날 종교가 왜 그토록 미움을 받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습니다. 종교가 서로 내부에서 권력싸움을 하고 있고, (중세시대 면죄부를 팔았듯이) 필요에 의해 헌금을 강요하고, 대중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아편 노릇을 할 때, 종교는 그 본연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돌을 맞게 되는거지요 :) 그렇다면, 종교가 가진 미덕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어떤 순간에서도 믿음이라는 것을 가진 사람은, 쉽게 좌절하지 않고, 높아지는 것을 경계하고, 삶을 감사하게 누리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긍정적인 표현을 즐겨하던 수녀님들은 그렇지 않는 수녀님들보다 오래 산다는 통계결과가 이를 증명하지요. 말하자면, 기쁘게 인생을 사는 사람은, 더 오래 산다는 게 삶의 비밀 중 하나겠지요.

 

 영화는 제게 속삭이는 듯 했습니다. 긴 세월을 살아서, 수많은 경험을 누리는 것이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구나 라고 속삭입니다. 그리고 잠시 뒤 한 가지 통찰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거지? 바로 경험을 선택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특별함을 섬세하게 만끽해 보는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더 쉽게 쓰자면, 좀 용기 있게 살아, 안 그러면 평생을 가도 산다는 거 그대로 이어지다가 끝나버려. 라고 강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오래된 욕망이자 꿈입니다. 오늘날은 젊음이 추앙받는 시대이다 보니 더욱 늙음에 대해서 슬퍼합니다. 영화에서 잘 보여주고 있듯이, 우리 인생은 길어야 100년 남짓이고, 아무리 공부해도, 한 인간이 배울 수 있는 지식과 느낄 수 있는 경험의 양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적나라한 사실 앞에서 무기력하게 살 수도 있고, 이 끔찍한 현실 앞에서 끝까지 배우고 느끼며 마지막까지 노력하다가 살 수도 있는 셈이지요.

 

 맨 프럼 어스는 영감을 주는 영화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영원한 삶이 낭만적이지 않고, 어쩌면 비극일 수도 있음을 조심스럽게 알려줍니다. 늙지 않고 건강하게만 살아간다면... 꿈같이 좋아보이는 이 가설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끔찍할 수 있습니다. 이유는 저는 "사랑 결핍" 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만 영원히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도 무의미해지고, 만남도 무의미해지고, 영화 속 대사처럼 세계 밖에서 사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고, 기쁨을 주는 것은, 관계에서의 기쁨이 아닐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고, 함께 늙어가면서, 커가는 아이들을 보고, 서로 상처받은 일상을 조금씩 다독여 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며, 즐거움이 아닐까요.

 

 영화를 보고 나서, 리뷰를 쓰고 나서, 반성을 했습니다. 저는 하루가 48시간이길 바랐습니다. 시간이 좀 많았으면 하는 말을 한 때 자주 쓴 적도 있었습니다. 일도 하고, 놀 수도 있고, 모든 것이 넉넉하길 바랐습니다. 맨 프럼 어스를 보고 나서는 이제 이런 망상은 집어치우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시간이 많아서 마음껏 놀면서 지내는 것이 아닐테지요. 지금 주어진 시간을 집중해서 의미 있는 일에 쏟아붓지 않는다면, 매일 똑같은 일상만 반복되면서 제자리 걸음만 할 수 밖에 없음을 영화는 매우 흥미롭게 보여주었습니다. 1분 1초, 하루를 사랑해 나가면서, 즐거운 경험을 해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소중함을 안겨다 줄 것입니다.

 

 영화에서 존은 끝까지 반 고흐의 그림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1만년 넘게 살아온 그가 선택한 특별함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인간끼리의 교감, 관계에서의 기쁨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그는 집안의 가구나 심지어 희귀 돌멩이, 귀한 술을 다 버릴지라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던 그 순간만은 의미 있게 여겼던 것이지요. 그 의미 있는 순간들을 살아가면서 많이 만들어 가는, 우리의 짧지만 아름다운 인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