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파이는 신기한 영화 입니다. 제목을 쉽게 이해하자면, 그냥 파이 라는 사람의 인생을 보여주는 이야기 인데, 묘한 느낌이 가득합니다. 표지그림 처럼, 그냥 호랑이와 배타고 바다를 표류하는 이야기, 즉 모험 영화로 압축하기에는 어쩐지 아쉽습니다. 너무 잘 만들었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목이 많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제 인생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인, 쇼생크 탈출과 살짝 오버랩 되기도 했습니다.
제작 이야기부터 살펴보면, 아름다운 바다의 장관을 연출하는데는 돈이 적지 않게 들었겠지요. 제작비만 1억2천 달러에 달합니다. 흥행 성적은 더욱 좋지요. 약 5억 달러에 달하는 수입을 벌어들이며, 그야말로 세계를 사로 잡았습니다. 이안 감독은 색계 등의 다양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모험이야기도 특유의 아름답고 섬세한 느낌으로 풀어내는 것을 보니 확실히 "거장"의 호칭이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어서 이야기 속으로 떠나봅니다.
유명한 원작소설인 "파이 이야기"를 토대로 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내용 자체가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고, 2시간의 플레이타임이 꽉 차 있다는 것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희망의 소중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위안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최근 업무가 많다보니 스트레스로 머리가 아플 지경이라, 기운이 도통 없었는데,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고 난 후, 마치 피로 회복제를 먹은 듯한 이상한 활력이 재생하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파이의 삶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천천히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잘사는 인도소년 파이는 어릴 적부터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았던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지요. 이 참에 자신의 이름을 개명하고자 결심하고, 이름을 파이라고 정하는데, 확실히 대단한 집념의 소유자거나, 비범한 두뇌의 인물인 것 같습니다. 그 긴 원주율을 다 외우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저도 3.1415... 까지는 아는데 (웃음) 여하튼 인도에서 아름다운 아가씨와 만나기도 하고, 나름대로 즐겁게 지내오다가,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가족의 사정으로 멀리 캐나다로 이주해야할 입장에 처해지지요. 캐나다로 향하는 큰 배와 함께 영화는 급격한 전개가 펼쳐집니다.
급전개로 쓰자면, 쾅! 폭풍 앞에서 거대한 배는 침몰했고, 파이는 작은 구명선에 몸을 싣고, 간신히 바다 한 가운데 떠 있게 됩니다. 이제 주변에 살아남은 인간은 없고, 겨우 뱅갈 호랑이 한 마리만이 그와 함께 표류를 해나갑니다. 그렇다고 시시한(?) 우정이야기는 전혀 아닙니다. 호랑이는 여전히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고, 이들은 끝까지 긴장감 속에서 하루 하루 지내면서, 죽음과 싸우며, 버텨나갑니다.
극한의 환경이 이어집니다. 먹을 건 없고, 물은 떨어져 가고, 파이는 혹독한 두려움 속에서 변화를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빗물을 받고, 물고기를 잡아 죽이고, 배에 있는 호랑이를 조금씩 길들여 보고자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오직 생존하기 위해서 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한가지 의문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니 배고프면, 호랑이를 어떻게든 잡아먹으면 되는거 아닌가요? 뭐 생고기를 먹는게 유쾌하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만...
영화는 꽤 절묘한 묘사를 보여주는데, 주인공 파이는 장기간의 혹독한 표류가 이어지면서, 놀라운 고백을 늘어놓습니다. 내가 지금까지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저 "리처드 파커" 라는 이름을 가진 호랑이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옆에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에, 지칠 때마다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혼자 지내는 사람이 더 쉽게 병들고, 더 일찍 죽는 것도 같은 이유 아니겠어요. 자신이 직접 화분이라도 돌보는 사람이 좀 더 행복하며, 그저 누군가의 도움만 바라면서 사는 사람의 마음이 더 쉽게 병든다는 것과 같은 말이지요. 여기서 "함께" 라는 개념을 잠깐 생각해 본다면, 적당한 긴장감은 삶에서 활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측면에서는 호랑이를 죽여서, 자신이 살아간다는 것이, 잔인한 행위라는 측면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언제 폭풍이 이 모든 것을 또 쓸어갈지도 모르는데, 지금 순간을 만족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을 팔아치우는 행위에 대한 경고로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 대목은, 어떤 섬이야기를 떠오르게 합니다. 그 섬에는 아주 비옥한 토지로 인해, 그 흙이 매우 비싸게 팔려나갔는데, 사람들은 이것에 열광하면서 그 흙들을 파내고 담고 팔고, 또 파내고 담고 팔고... 외부로 소중한 것을 팔아치워 돈과 바꾸며, 즐거운 시간을 누리며 기뻐했습니다. 마침내 누군가 물었지요. 그 흙 다 팔아치우면, 우리는 어디서 살지?
그러므로 순간적인 즐거움과 안일함에 결코 눈멀지 않고, 파이는 계속해서 공존을 생각하며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합니다. 도중에 희망도 스쳐지나갑니다. 큰 배가 저 멀리서 지나가는데, 모든 것을 동원하며 구조신호를 보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끝내 그들은 발견되지 못했습니다. 더 큰 허무감과 절망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덮쳐옵니다. 완전히 자포자기 하면서, 신이 어디 있느냐고 따져 묻는 모습에서는, 우리네 피곤한 삶을 보는 듯 했습니다. 신은 어차피 우리를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인도한다는 유명한 문구도, 그 순간에서는 별로 위로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하튼, 그럼에도, 인생은 또 끈질기게 살아있습니다. 희망을 놓더라도, 삶은 또 이어지고, 그러면서도 또 놀라운 광경도 만나게 되고, 신비로운 경험도 하게 되고, 이럴 때 보면 참 인생은 얄궂다 라는 말이 적절합니다. 참 이상하다 라고 써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좋은 일만 가득하지도 않고, 나쁜 일만 가득하지도 않은 우리의 삶이란... 뭐, 제가 하찮은 수준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이고 인상적인 섬이야기도 해보고 싶네요.
영화의 백미 중 하나인, "환상의 섬"은 놀라운 통찰을 주었습니다. 아름답고, 좋아보이고, 낙원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뒤집어서 그곳이 통째로 지옥일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것을 "안주함"과 연결해서 생각해서 좀 심하게 써보면 이렇습니다. 행복을 위해서 아름다운 배우자를 만나서, 경제적인 안정까지 얻고, 마침내 부족할 것이 없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침마다 고생하고, 저녁까지 고생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면, 그가 최후에 가지게 되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삶의 죽음 아니겠어요.
그러므로, 지금 행복하게 지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딘가에 행복의 섬이 있을꺼야 라는 희망고문이야말로,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환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가혹하게 쓰자면, 이 섬은 혹시 달콤한 온라인세계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여기에 매달려봐야 도피처는 될지언정, 행복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네이버 지식인에서 특정 분야에서 TOP100 정도까지 꽤 긴 시간 활약한 적이 있었는데, TOP10 인 분의 자기소개를 보면서 접었습니다. "아무리 이렇게 자기만족적인 경험을 하더라도, 밥 한끼 제대로 안 나옵니다."
즉 오늘날 우리는 자기만족적인 경험에 너무 매몰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거기에 안주하는 순간, 그 공간이 어쩌면 우리의 한 번 뿐인 인생의 귀중한 시간들을 통째로 잡아먹을 수도 있습니다. 유명 온라인게임 LOL, 서든어택 10시간 밤새워 하면 그 시간은 즐거울지 몰라도, 이것만 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우리 모두 잘 알잖아요 (웃음) - (※게임 좋아하는 제가, 게임을 비판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다니 조금 민망하긴 합니다 -_-;;;)
마지막으로 영화는 놀라운 고백과 함께 멋진 마무리가 되어줍니다. 직접 보세요! 제 경우 심한 누설은 본문에 쓰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 해석은 자유이며, 듣는 이의 몫이라는 전제 하에, 저 역시 사람 이야기 보다는 동물 이야기를 고르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현실 보다는 꿈을 고르겠습니다. 개인적 경험이 작용하고 있지요. 저는 영화 비포 선셋이라는 인상적인 로맨스를 보면서, 비루하고 힘든 현실 속에서도 얼마든지 낭만적인 하루를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국 무서운 것은 가난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영혼 자체가 가난해져서 노예근성을 가지고 살아갈 때, 진짜 비참해 지는 것 아니겠어요. 스스로 난 아무것도 못해 라는 절망감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먼저 쓰레기통에 쳐박아야할 이야기 입니다.
음, 표현이 조금 거칠었네요. 쿨럭. 저는 서론에서 쇼생크 탈출과의 오버랩을 잠깐 언급했는데, 결국 현실을 이겨내 나가고, 정신적인 무기력의 감옥을 탈출해 가며,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상상력과 희망의 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풀리는 일과 꼬이는 일 중에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후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좋은 말과 욕설 중에 더 쓰기 쉬운 말도 후자일 것입니다. "잘 할 수 있을꺼야" 라는 격려보다는, "이래서 안 돼"라는 현실적인 부정을 더 많이 당하면서 우리는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해피 엔딩의 가능성을 매일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루를 엉망진창으로 보내면서 자포자기 할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속에서도 계속해서 고기 한마리라도 잡아보기 위해서 노력해 볼지는, 결국 자신의 몫입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고, 살아가는 중요한 용기를 훔쳐볼 수 있었다면, 이안 감독에 대한 너무 극찬인가요. 시궁창 현실을 만나는 날이 오더라도, 반드시 어떻게든 이겨내기를, 그래서 계속해서 삶의 항해를 이어가기를, 저는 오늘 온 목소리를 다해 응원하고 싶습니다. 힘내시길!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