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블랙북 (Black Book, 2006) 리뷰

시북(허지수) 2013. 2. 25. 13:54

 현실이 답답하고, 숨막히게 느껴질 때, 그러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결정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자기파괴적인 선택으로는 알콜 등 술에 취해서 걱정을 잠시나마 잊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스포츠나 게임, TV스타 등에 과몰입해서 자신을 잊고 다른 경험에 취해서 살아갈 수도 있겠지요. 좀 남는 선택으로는 워커홀릭이 되어서, 열심히 돈을 모으는 사람도 있습니다. 블랙북의 주인공 레이첼은 지금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현실 앞에 서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눈앞에서 잃었습니다. 그녀 자신도 전쟁의 무자비함 앞에서, 죽기 직전에 간신히 홀로 도망쳐 나왔는데, 이런 상황에서 살아나왔다고 해서, 삶이 행복해질리는 전혀 없습니다. 그녀는 지금 모든 것을 잃었고, 삶의 희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으며, 피의 복수를 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치에게 학살당한 우리 가족의 눈물을 닦고, 자신이 바로 설 수 있는 것은 그 복수가 끝날 때가 되겠지요.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일이라도 열심히 하는 편이 낫겠지요. 나는 지금 뭐라도 하는게 나아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기회가 왔군요,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이렇게 영화는 한 여자의 스파이 이야기를 실화로 다루고 있습니다.

 

 

 우선 본격 영화에 앞서서 폴 버호벤 감독을 살펴보자면, 로보캅과 원초적 본능으로 대히트를 기록한 네덜란드 출신의 유명감독이며, 한편으로는 한때 최악의 감독상으로 꼽히는 라즈베리상도 거머쥔 인물입니다 (...) 로보캅의 특징이 뭔가요, 기계이면서도 사람 아니겠어요. 그리고 폴 버호벤 감독의 특징으로 이처럼 이중적 인간상을 표현하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가령 블랙북은 나치스를 절대적 악인의 모임으로 그리지 않았으며, 그 반대편의 레지스탕스도 선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꼭 주의 하세요

 

 그래서 이 영화 블랙북의 큰 매력은 바로 치명적인 현실감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인간 자체가 복잡하듯이, 그들이 모인 조직이야말로 한 덩어리로 선, 악 으로 단정지을 수 없음을 말하기도 합니다. 바꿔말해 레지스탕스가 타락하면 나치스가 될 수 있기도 합니다. 최근 즐겨쓰는 비유로 쓰자면, 선한 공동체를 추구하는 종교단체가 부패에 물들어가면서 썩어가면, 그 곳이 자기들만의 이상한 사교클럽 처럼 변질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자정능력을 잃어버리면, 집단은 한 인간을 참 쉽게 짓밟고, 그 삶을 쥐어짜버리는 것입니다.

 

 자, 레이첼의 본격 스파이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금발로 염색한, 붉은 립스틱의, 아찔한 미모를 자랑하는 그녀는, 나치의 잘생긴 독일장교 문츠를 만나게 됩니다. 문츠 대위야 말로, 참 선하게 그려지고 있어서, 이 영화는 이른바 표준적인 이분법 가치관을 무너뜨립니다. 군인인 문츠 역시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나치에 가담하고 있지만, 정작 사람이 죽는 것을 싫어하고, 온건한 주장을 펼치며, 영화 중반에는 아예, 어차피 독일은 패할 것이라고, 아주 현실적인 분석까지 할 줄 아는 "진짜 군인"입니다.

 

 블랙북과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영화 색계에서도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일본군들이 저렇게 술먹고 떠들어 대지만, 실제로는 전쟁에서 패할 것임을 알고 있고, 두려움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묘사가 나오지요. 마찬가지로 문츠 대위도, 전쟁의 최전선에서 (네덜란드에서 가까운 해협하나만 건너면 영국이니까요) 독일이 이제 안 될 것이라는 현실을 보았습니다. 아마 할 수만 있다면, 문츠는 이 나치의 세계를 떠나서, 자유로운 다른 삶을 욕망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레이첼과 문츠의 만남이 계속되고, 두 사람은 잠자리를 함께 하는 친밀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공통분모를 통해서 둘은 묘하게 연결됩니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었고, 희망을 잃었으며, 하루하루를 "다만 버티며" 보내는 것이 그러합니다. 레이첼은 "원수 나치"의 장교인 문츠와 사랑에 빠집니다. 저는 처음에 이 이야기가 말이 안 되지 않나? 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기까지 영화를 보고나면, 오히려 사랑에 안 빠지는게 이상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는 저절로 유대감을 가지는 것이 인간일테니까요.

 

 그런데 문츠는 현실감각이 뛰어난 현명한 장교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레이첼이 스파이라는 것을 간파하게 됩니다. 총을 꺼내들고, 레이첼에게 겨누지만, 그는 결국 그녀를 쏘지 못합니다. 레이첼은 속삭이며 말합니다. "키스해주면 말해줄께요" 사실 두 사람 모두 죽음을 두려워 했을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두 사람이 두려워 했던 것은 이 덧없고 허망한 삶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두려워 했겠지요. 총성 대신 키스와 함께 두 사람의 밤은 깊어갑니다. 글로는 표현하기 힘든, 영화의 장면으로도 표현하기 힘든, 이 느낌을 굳이 어쭙잖게 쓰자면, 사람은 애정으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다만 확인할 뿐입니다.

 

 결국 시간이 더 흘러, 나치 독일은 항복 합니다. 문츠와 레이첼은 여기가 자신들이 있을 곳이 아님을 일찍부터 확인하고, 드디어 군부대를 탈출하는데, 풀밭에 작은 텐트 하나 세워놓고, 놀라우리만큼 낭만적이고 행복한 저녁시간을 보냅니다. 처음으로 레이첼의 입에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영원히 이 순간이 지속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인생의 보물" 일테니까요.

 

 이제부터 후반부가 진하게 펼쳐져 나가는데, 참으로 비극적이라 써내려가기도 착잡합니다. 문츠 부터 살펴보자면, 그는 그녀와 정직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했습니다. 평생 도망쳐 다니기보다는, 책임질 일은 책임지고 마무리를 확실하게 지어서, "올바른 행복" 속에서 살기를 원했지요. 레이첼의 온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나치만큼이나 나쁜 (돈벌고자 사람의 목숨을 팔아치운) 일당을 추적해 나가다가, 문츠는 네덜란드 해방시민들에게 붙잡히고 맙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일반 시민의 눈에 나치 장교가 절대로 좋아보일리가 없습니다. 죽어도 싼 적국(독일)의 장교는, 결국 군사 재판까지 받게 되고, 독일군법에 따라 (나치에 충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 됩니다.

 

 최악의 비극이지요. 나치의 광기는 자신의 추종자를 전쟁도구로 써먹고, 거기에 굴복하지 않은 자신의 반대자까지 처단합니다. 권력이 제정신을 잃게 되면, 정말이지 수많은 사람이 불행해 집니다. 권력자야말로 누구보다 큰 책임을 안고 있습니다. 그들이 해야할 바를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그 나라 국민 모두가 불행해질테니까요. 그래서 많은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기억하고, 반성하려고 노력합니다. 자신들에게도 나치는 일부 사람들만 즐거운 전쟁놀이였고,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도구로 희생되었던 참극이었기 때문이겠지요.

 

 레이첼의 대우 역시 처참합니다. 나치 장교에게 몸을 팔았다는 이유로 똥물을 뒤집어 쓰면서 험한 꼴을 당합니다. 위기에서 꽤 근사하게 그녀를 구해주는 레지스탕스 대원. 그러나 알고보니, 이 똑똑한 의사야말로 자신의 삶을 금칠하기 위해서, 동료를 팔고, 사람을 팔면서, 나치에 협력했던 "개XX" 였던 것입니다.

 

 똑똑함도 소용없고, 잘생겨도 소용없고, 레지스탕스 핵심이라도 소용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되어있지 못하다면, 그래서, 좋은 공동체에 이런 쓰레기 한 명이 들어오게 되는 순간, 그 공동체는 지옥이 되어버립니다. 물론 레지스탕스 쪽에서도 잘못이 있다면 있지요. 이런 미친 인간을 간파하지 못했고, 그들에게 모두가 희생되어 버렸고, 이제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 해방 영웅에게 손을 흔들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편의 블랙코미디란 말입니까. 저는 영화에서 레이첼이 죽으면서 끝나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눈이 시릴 만큼 감각적이라, 마음이 찢어지듯 아프면서도 영혼이 맑아지는 다중적 느낌을 줍니다. 진실이 이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똥물을 뒤집어 쓰고, 절망 속에 완전히 쓰러질 뻔 했지만, 끝내는 진실이 이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감히 평하자면, 블랙북은 폴 버호벤 감독 최고의 역작 중 하나라고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할지라도, 진실이 이길 것이라고 희망합니다. 조직이 개인을 아무리 짓밟고 깔아뭉갤지라도, "이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끝내 이길 것이라고 희망합니다. 박노해 시인의 말처럼, "사람만이 희망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감추어 돈으로 관을 뒤덮은 인생은 침몰할 것이며, 진실을 위해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에, 희망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전쟁은 반복되어도, 희망을 향한 인간의 투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저는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무명블로거가 되면 좋겠네요. 오늘 길었던 리뷰는 여기에서 마칩니다.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