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로렌스는 이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주면서, 아카데미 최연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성숙한 느낌과 정신줄을 살짝 놓은 느낌이 절묘해서, 나이가 제법 있을 것이라 추측했는데 프로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만 22세라니요! 여하튼, 이 영화는 이른바 "멘붕 러브" 이야기 입니다. 등장 인물 중에 제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남자주인공네 부터 살펴보자면, 팻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이제까지 몇 달간이나 병원에 있다가 나왔고, 팻의 아버지는 스포츠 중독에 도박에 빠져 있고, 형 역시도 동생에게 막말을 퍼붓고, 싸움질을 해대는 엄청난 난장판 집안입니다. 성격이 괴악한 주인공 팻이, 진실을 말하는 방법은, 한마디로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어서, 좋은 분위기 깨는데 전문이고,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왜 팻의 아내가 접근금지를 신청했는지 우리 모두가 느낄 수 있을만큼 거의 인간관계 붕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자, 다음은 티파니. 티파니 하면, 소녀시... (전혀 쓸모없는 개그 죄송합니다)
영화의 여주인공 티파니의 인생은 지극히 우울하고, 답을 찾지 못하는 방황의 연속입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남편의 사고사로 일찍 막을 내렸고, 빈 마음을 달래보고자, 남자를 문어발식으로 만나보지만, 허전한 마음이 달래지지 않습니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다 줘도 돌아오는 것은 비참한 감정 뿐. 급기야 더 이상 문어발 연애따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녀가 안쓰러울 정도 입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이쯤오면 이 로맨스가 결코 낭만적이거나, 아름다운 장면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이웃의 이야기라고 쓴다면, 조금 과장된 것일까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30대 중반인 제가 주변을 돌아보면, 결혼을 한 친구들은 집에 들어가는 것을 힘들어 하고, 연애를 하는 친구들은 애인 만나는 것이 낭만적이기 보다는 피곤할 때가 있노라고 털어놓을 지경입니다. 솔로만세 리뷰어인 저는, 그래서 이 영화를 좀 유쾌하게 볼 수 있었지요. 시작부터 팻과 티파니의 식사 만남은 거의 코미디처럼 펼쳐지는데, 아 정말 웃깁니다.
애인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팻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무려 우유와 시리얼을 시키고 (인터넷 유머로 쓰기 좋은 말이 떠오릅니다. 팻, 그대는 진정한 용자이십니다), 이래저래 말이 통하지 않아서 답답했던 티파니는 테이블 위를 쓸어버리면서 통쾌하게 자리를 박차고 나옵니다. 이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시대의 반영이기도 한다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니, 감정에 대한 공감이니, 이런 것 없고 자기부터 생각하기 바쁜,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도 있으려나요?
두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다시 만난 계기도, 반쯤은 협박입니다. 티파니가 팻과 함께 댄스 경연 대회를 나가고 싶어하는데 (사실 티파니 입장에서는 아무라도 크게 상관없지 않았겠어요, 팻 같은 남자가 뭐가 예쁘다고!), 게다가 팻 입장에서는 이런 춤 이야기는 자신에게 있을 수 없는 크레이지한 도전이지요. 당연히 거절. 다만, 접근금지 당한 그리운 아내에게 편지를 전해줄 수 있다는 티파니의 설득 (협박!) 에, 두 사람은 창고에서 춤 연습을 시작합니다.
빈 창고에서, 한가지 목표를 정해놓고, 두 사람이서 함께 공동작업 (영화에서는 댄스 연습) 을 한다는 것, 아... 이거 정말 눈맞지 않게 조심해야 겠지요? 몸치라고 박박 우기던 팻은, 놀랍게도 이렇게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생활의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댄스 연습 시간이 즐거움으로 바뀐 것이지요. 이것을 액션 트리거 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명확한 목표를 걸어놓고, 반복해서 매일 하다보면, 그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에이 말도 안 돼~ 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아주 사소한 일, 예를 들어 매일 몸무게를 재고, 어딘가에 기록하는 행위를 반복하다보면, 그 행위 자체가 즐거울 수 있습니다. 이 트리거 방식은 저도 평소에 꽤 자주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오늘은 반드시 이것을 할꺼야 라는 그 자기 암시 자체로도, 동기부여가 된다는 신기한 행동원리지요.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설명일 뿐이고, 단순히 티파니가 예뻐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요 (웃음)
매일 댄스 연습을 하면서, 닿을 듯 말듯, 그 긴장감을 표현하는 방법도 매력적입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모 순정만화책에는 이런 대사가 있지요. "사귈지 말지 그 바로 직전이 어쩐지 재밌단 말야" 여하튼, 영화는 이상한 집구석에서 살아가는, 감정조절도 잘 하지 못하는, 이런 사람에게도 사랑하는 순간은 얼마든지 있다 라고 절묘하게 스치듯 표현합니다. 사실 그렇지요. 우리는 누구나, "그 사람이 근사해보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걸 자꾸 놓치고, 사소하게 넘기다보면, 사랑이 저 멀리 떠나가는 것이고요. 하하.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이 댄스 대회에 나가서, 아마추어만의 매력적인 댄스 삼매경를 보여주는 장면은 그야말로 원더풀 합니다. 더욱이, 이것이 좋은 장면 후, 뻔한 해피 엔딩으로 전개되지도 않아서, 더욱 재밌습니다. 데이빗 O 러셀 감독이,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해서, 자신이 영화 각본을 썼는데 무려 5년 동안 20번씩이나 고쳐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작 촬영이 약 한 달 정도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영화 저예산으로 빨리 만들었지만, 그 내공은 긴 세월이 묻어나는, 이색적인 스토리라인이 돋보입니다.
팻은 아버지의 조언을 듣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 보다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서 열심히 달려갑니다. 그렇게나 "나는 너와 다르다"고 선긋기를 고집하던 팻이지만, 마지막 고백은 묘하게 감동을 줍니다. 너를 통해서 나를 본다는 달콤한 로맨스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만, 무엇보다도, 밥맛 없는 인생, 실패한 인생, 난 왜 이러나 인생에게도, 얼마든지 좋은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따뜻함이 느껴져서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리뷰를 마치며, 우리가 재기의 용기를 가지고 살았으면 합니다. 다시 한 번 해보는 그 용기 말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우습게도, 한 번 부서지고 깨지면, 그 후 점점 더 쉽게 깨지는 경향이 있다고 느낍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작은 성공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영화의 장면을 떠올려 본다면, 작은 춤 동작 하나를 해내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10점 만점에) 5점이나 받았다고 의미를 두는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의 일상 속을 작은 용기와 소박한 성공으로 축하해 나갈 때, 우리는 재기할 힘을 얻을 수 있는게 아닐까 싶네요. 독특한 로맨스와 한창 떠오르는 예쁜 배우를 보고 싶다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추천합니다 :) 실은 저도 친구가 권해줘서 보게 되었는데, 기대만큼의 유쾌한 시간이었네요. 오늘은 여기서 끝.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