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영화 향수 (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 2006) 리뷰

시북(허지수) 2013. 2. 28. 13:32

 오늘은 조금 독특한 리뷰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써보지요. 약 20년 전의 아주 오래된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꼬마였던 저는 즐거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데, 로맨싱사가2 라는 비디오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5명이 한 팀을 이루어, 모험을 떠나는 게임이었는데, 어떤 장면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갑작스럽게 적이 "페로몬"이라는 공격을 했고, 화면을 뒤덮은 노란 파도가 살짝 지나갔고, 아군이 모두 정신줄 놓고 팀킬에 빠져서, 그 모험이 망해버리는 재밌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이렇게 표현하지만, 그 당시 어린 마음에 저는 그 "페로몬" 공격이 끔찍할만큼 너무 싫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사기다, 냄새에 정신줄 놓고 미쳐버리다니 라면서, 몇 번이나 울화통 터졌던 그 시절. 그리고 영화 향수는 잊고 있던, 잠들었던, 이 오래된 기억을 꺼내게 만들었습니다. 치명적인 향기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유혹 앞에 흔들리기 쉬운 존재이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끝없이 움직이는 존재이기도 하니까요.

 

 

 우선 영화 제작 과정의 험난함을 살펴보면 좋겠지요. 원작소설의 판권을 사기 위해서, 독일 영화계의 거장 아이힝거는 1천만 유로를 지불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말이 좋아 1천만 유로지, 100억이 훌쩍 넘습니다. 그토록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했지요. 당연히 각본도 매우 섬세하게 짜여집니다. 20번 이상의 단계를 거쳐서 영화 각본이 완성되었고, 소설의 분위기를 살려내고, 인물들의 개성을 부각하기 위해서 3명의 극작가가 동원됩니다.

 

 제작비만 5천만 유로를 쏟아부었는데, 독일 영화 중에서 가장 비싸게 만든 영화 중 하나일 것입니다. 여러 곳에서 자금을 끌어와야 했지요. (다행히 훗날 1억3천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기록하였습니다) 주연배우 발견에도 1년을 공들였고, 마침내 벤 위쇼가 발탁됩니다. "순진한 천사와 살인자의 양면성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는 벤 위쇼에 대한, 아이힝거의 눈은 정확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벤 위쇼는 살인자임에도, 살벌하기 보다는 순진하게 그려지고 있어서, 때때로 더 섬뜩하기도 합니다. 영화는 스페인에서 대부분 찍었고, 더러운 거리의 느낌을 주기 위해서 몇 톤에 달하는 고기를 고의로 바닥에 뿌리기도 했습니다. 그 정성스러운 제작 과정 덕분에, 향수는 매우 감각적이고도, 반짝이는 영상미를 선물합니다. 이제 영화로 들어가 봅시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냄새를 통해서 세계를 이해하는 그는, 물의 냄새, 열매의 냄새, 심지어 사람의 냄새까지도 정확하게 파악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 그에게 재능을 살릴 기회는 찾아오지 않고, 가혹한 노동 속에서 입에 겨우 풀칠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르누이는 자신을 단숨에 사로 잡는 향기에 강렬하게 끌리게 됩니다. 신기하게도, 그것은 인간이 가진 특유의 향기 였지요. 그 때부터, 그의 인생은 이 향기를 좇아서 끝없이 움직입니다.

 

 그 아름다운 향기를 영원히 간직할 수만 있다면... 그 이룰 수 없는 욕망에 대해서, 저는 무슨 말을 써야 할까요. 난감하네요. 영화에서는 향수 제작에 관하여 12개의 소스를 조합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숫자와 욕망이라는 다소 이상한 조합으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갑니다. 향수 제작자 발디니는 그르누이에게 전설을 말해 줍니다. 13번째 소스가 있다면 완벽한 향수, 천국을 맛볼 수 있는 향수를 제작할 수 있다 라는 전설. 닿을 수 없는 욕망에 그르누이는 눈을 반짝이며 열광합니다.

 

 12는 완전체의 느낌이 납니다. 시간단위도 그렇고, 일년도 열두달이고, 일부 나라에서는 구구단 대신에 12단까지를 외우는 나라도 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애먹었던 것 중에 하나가, 연필 1다스는 왜 12개인가? 라는 이 계산법이 짜증났던 적도 있습니다 (웃음) 그런데 12라는 수가 좋은 느낌이 나는 것은, 나누기 쉬운 숫자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먹을 게 12개 정도 들어 있으면, 두 사람이 있어도, 세 사람이 있어도, 네 사람이 있어도, 모두 만족스럽게 나눌 수 있습니다. 일종의 지혜랄까요. 그렇게 본다면 13이 저주 받은 까닭도 당연합니다. 13개 들고오면, 공평하게 절대 나눠가질 수 없으니까요.

 

 이런 의미를 놓고 봤을 때, 이른바 금지된 영역, 독단적 영역을 탐하는 그르누이는, 스스로 13번째 소스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질서의 세계를 거부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향수를 만들고 싶어합니다. 적어도 그는 창조자라는 측면에서, 대단한 것은 사실입니다. 살인자라는 측면에서야 당연히 용서받을 수 없는 인간쓰레기 겠지요 :) 수 없는 청초한 소녀들의 목숨을 대가로 해서, 그르누이는 "신의 향수"를 가지게 됩니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인상적인데, 그는 있을 수 없는 향기를 가지는 천상의 인간이 되었지만, 이것이 그를 전혀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 아주 놀랍고도 충격적인 반전입니다. 숭배 받는 인간이 되는 그 순간에 그르누이는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이 살며시 흐릅니다.

 

 이 눈물의 의미를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환호하고 기뻐하며, 또 열광하며 찬사를 보낸다고 해도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사랑할 수도 없고, 사랑받을 수도 없는 인간인데, 이 완벽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행복이란 저 높은 지점 끝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작고 소박한 순간에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것이, 왕처럼 높이 되는 기쁨보다 훨씬 크다는 놀라운 증명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야 그렇게 높게 올라가본 경험이 거의 없지만, 뛰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빌려오자면, 예컨대, 축구계 전설 차범근은 자신의 소속팀이 감격의 우승을 차지했을 때 보다,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밥 먹고 이야기 나누던 그 일상이 더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르누이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요? 감격적인 천상의 향수를 가지고 있을 때 보다, 그에게는 자신을 사로잡았던 그 사람과 함께 지내면서 사랑을 속삭이던 그 일상이 그가 원하는 진정한 행복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슬프게도 그에게는 이것이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지요. 또한, 그르누이는 태어나 단 한 번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에게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그에게 냄새가 없다는 영화 속 표현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수 없음을 의미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어쩐지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보고나면 슬픈 감정이 묻어납니다. 천부적 재능과 완벽한 결과물도, 사랑을 나누는 행복한 인생에 비한다면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는 그렇게 세계에서 사라져 갑니다. 사랑 없는 인생은, 절대 되어서 안 된다고, 조용히 스스로에게 말을 건넵니다. 부족한 재능과 모자란 결과물이라도 상관 없겠지요. 사랑만 있다면, 그것이 더 인생에서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중요한 것은 "애정"이다 가 아닐까요?

 

 언제나 손가는대로 써보는 리뷰를 마치면서, 영원함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영원함도 역시 인간의 영역이 아니겠지요. 심지어 천상의 향수조차도, 영원하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텅 비게 됩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영원함을 욕망합니다. 영원한 사랑. 역사에 새겨지는 명성. 변함 없는 무엇인가 (가령 금과 보석 등) 에 대해서는 높은 가치를 주며 숭배합니다.

 

 글쎄요, 저는 영원한 한 사람, 가령 숫자 13 처럼 유니크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나눠주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그르누이는 한 번도 향수를 다른 사람에게 뿌려준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비극의 출발 아니겠어요? 결국 숫자 12 처럼, 쉽게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 때 우리는 더욱 행복해 지는 장면들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진 것을 나누는 행위는 그래서 아주 특별하며, 반대로 조금도 나누지 못하고 모든 것을 가지는 행위는 달콤하면서도 위험합니다. 그 정상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만족감 대신에 허무감 이라는 것이 놀라울 만큼, 잘 표현된 영화 향수. 조금 자극적이긴 해도, 한 번쯤 차분하게 보기에 좋은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