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Catch Me If You Can, 2002)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7. 23:00

 인정하기 싫을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저마다 재능이 다르고, 가끔 누군가는 탁월하기까지 합니다. 똑똑한 데다가 감미로운 음악까지 들려줄 수 있다면, 저절로 호감이 갈지도 모릅니다. 가벼운 느낌으로 쓰자면, 저처럼 "해도 해도 안 되는" 사람들은 부러움 반, 놀라움 반으로 이른바 천재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주인공 프랭크는 비상한 두뇌와 연기력을 발휘하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위기를 압도하는 자신감을 무기로 해서, 프랭크는 수표 위조를 비롯해서, 각종 사기 행각을 벌입니다. 범죄 영화 치고, 이토록 깊은 여운을 주고, 실화이면서, 영감을 주는 영화도 드물 것입니다. 스필버그는 확실히 대단하네요.

 

 처음부터 프랭크가 위조 수표 전문가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위장하고서 깜쪽같이 사람들을 속일 수 있게 되자, 프랭크는 더 커다란 시도를 하나 둘 하게 되었지요. 그는 자신의 실제 모습을 숨기고서, 다양한 직업을 거치면서, 전국, 나아가 유럽까지도 누빕니다. 확실히 스케일이 크긴 크네요 :) 어떤 방향으로 재능을 사용할 것인가? 물론 이런 관점도 교훈적이고 좋겠지만, 오늘 저는 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춰보고 싶습니다. 과연 인간에게 행복한 순간이란 언제인가. 라는 추상적인 느낌을 파고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행복한 순간이라면, 단연 부모님이 정답게 거실에서 춤추는 장면이겠지요.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유명한 이야기는 정확한 것 같습니다. 주말만 되면 산악회를 구성해, 산으로 다녔던 아버지 모습을 자주 봐와서인지, 저는 한가로울 때, 산을 걷고 있다보면, 소박한 행복함마저 느낍니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에 잠길 때만큼이나, 어딘가를 천천히 걸으면서 어렴풋이 스쳐지나가는 생각들도, 굉장히 그 느낌이 좋습니다. 너무 어렵게 쓸 필요도 없겠지요, 한마디로 부모가 행복하면, 아이들이 행복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부모가 책을 습관적으로 보고 있다면, 책 좀 보라는 잔소리가 없더라도, 아이들은 책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영화에서도 프랭크는 아버지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데, 아버지가 전해준 뉴욕 양키스의 승리 비결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유니폼 때문에 상대팀은 벌써 기가 죽기 때문에 양키스가 이긴다는 논리는, 별 거 아닌 듯 해도, 이 영화의 핵심적인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좋은 것을 걸치고 있으면, 사람들은 확실히 대우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두 눈 때문에 그렇겠지요. 눈은 판단력을 흐트리기도 하고, 중요한 것을 착각하기도 합니다. 눈에 보기 좋은 것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종종 주의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21년차 FBI요원도 눈 때문에 실수하는데, 눈은 정말 소중히 잘 사용해야 되겠지요 :)

 

 예를 들어,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의사라는 직업을 살펴보면, 정말 의외로 직업 만족도가 굉장히 낮은 직업이라고 합니다. 아픈 사람들을 매일 만나야 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영화에서도 프랭크는 의사를 해보려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서 구토하지 않습니까. 겉으로 보이는게 결코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아, 물론, 프랭크처럼 깔끔한 외모유지는 중요합니다 :)

 

 프랭크가 행복하지 않았던 원인은 우선, 그가 가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가짜의 삶은 마음 한켠에 불안감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아직 철부지 소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프랭크에게 이 불안의 신호등은 자주 적색으로 깜빡입니다. 영화의 압권은, 마침내 프랭크가 약혼녀를 만나고, 또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서, 진심을 담아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나는 의사도 아니에요, 나는 변호사도 아니에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단지 그녀를 사랑하는 젊은이 입니다.

 

 그리고 정확하게도, 장인어른될 사람은 그 이야기를 믿지 않습니다. 아주 겸손한 표현이자, 로맨틱한 낭만주의자로 프랭크를 극찬하며 예뻐합니다.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것만 믿고,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는, 사람의 치명적 약점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지 못할 때 조차 가끔 있습니다. 자신감으로 가득차서 자신을 너무 과신한다거나, 혹은 반대로 자신을 바보취급하며 너무 자학한다거나,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자주 질문하는게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렇게 봤을 때, 프랭크는 나쁜 도둑놈이긴 해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확실히 천재라서 그런지, 비범합니다.

 

 프랭크가 끝까지 추구했던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삶"이었지요. 저도 이 가치를 아주 높은 우선순위에 두고 있습니다. 어쨌든 영화에서 참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그 프랭크의 바람이, 하나 둘 물거품이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위조로 얻었지만, 어쨌든,)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도, 좋은 직업으로 위장할 수 있어도,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삶이 선물해주는, 그 따뜻하며 소박하고 아름다운 일상의 행복을 결국 얻지 못했습니다. 영화가 진행되어 나갈수록, 프랭크의 삶이 슬프게 느껴집니다. 재능, 돈, 직업,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사랑하는 이와 함께할 수 없다면, 그 성공은 잠깐 빛났다가 톡 터져버리는 비눗방울 처럼 허망한 것이 되고 맙니다. 연락할 곳이 없어서, 크리스마스에 베테랑 FBI요원 칼 핸러티에게 연락해서, 잡을 테면 잡아보라며, 메리 크리스마스를 전하는 그의 삶을 보고 있으면, 하염없는 슬픔이 몰려옵니다.

 

 그렇다면, 그는 가짜여서 불행했던 것이 아닐테지요. 결론적으로, 그의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불행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FBI요원 칼은 어떨까요.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지만, 역시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아내와 이혼한지 10년은 더 넘었고, 떨어져도 잘만 지내는 딸내미는 노는게 중요하지, 워커홀릭 썰렁개그 날리는 검은옷 아저씨를 친근하게 가까이 하려 하지 않습니다. 칼 역시도, 프랭크 만큼 슬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칼은 알았을 것입니다. "저 녀석, 나와 같은 외톨이 자식이군."

 

 영화 후반부가 그래서 너무나 먹먹한 여운을 줍니다. (위조범이지만) 보살펴 주라고, 잘 대해 주라고, 칼은 놀라울 만큼, 프랭크에게 애정을 보내고, 신뢰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햇살같은 따뜻함이 그의 차가운 마음을 녹이고, 그의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사막에서 외투를 벗는 동화처럼, 그에게 있어 세찬 바람과 거친 힘은 결코 마음을 열게 만드는 키가 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 하나, 자신의 껍데기를 벗어던질 수 있는 비결은, 부드러운 따뜻함에서 나옵니다. 마침내 프랭크는 회심해서, FBI와 협조하는 세계적인 화폐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저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기적이란, 재능과 따뜻함이 만날 때 일어나는 것이다." 서론에서 꺼냈던 화두, 인간에게 행복한 순간이란, 이러한 만남의 인연이 닿는 매순간이 아닐까요. 나아가, 타고난 재능은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이고, 따뜻함은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기에, 사람을 소중하게,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야말로 기적같은 인연의 출발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