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젤 워싱턴이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영화 플라이트는, 시작부터 재밌는 대사가 나옵니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이) 비디오게임 같지 않은가? 라고 부기장에게 농담을 건네는 장면입니다. 이 대사는 80년대, 90년대에는 결코 나올 수 없는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2010년대쯤 와서는 비디오게임이, 현실과 근접한 수준까지 성장했고, GTA같은 작품하나 만드는데 엄청난 돈이 투자되기도 합니다. 자동차 게임을 신나게 하고 있으면, 놀랄 만큼 상쾌하고, 축구 게임을 보고 있으면, 실제 축구 경기를 보는 듯한 깨끗한 화면과 동작들에 종종 놀랍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아슬아슬해진 셈입니다.
주인공 휘태커 기장의 삶이 지금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지금 그는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환상 속에 살고 있는 듯 합니다. 그에게 잘 하는 것이 있다면 세 가지 정도가 어울립니다. 발군의 비행기 조종실력, 꿈쩍하지 않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대범함, 매일 매일 가까이 해서 거의 스스로를 삼켜버린 알콜! 다시 말해, 현실에서의 그는 기장 말고는 잘하는게 전혀 없고, 술의 세계 속에 취해서 나머지 시간들을 휘청거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인생입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거친 악천우 장면이 등장합니다. 마치 그의 내면을 나타내주는 날씨지요. 지금까지 휘태커의 마음이란, 흐리고 우울한 정도가 아니라,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우산 없이, 맞아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그의 인생이 과연 변화될 수 있을까요? 사람은 언제 어떤 이유로 변화될 수 있을까요? 영화 플라이트에서 그 답을 향해 힘껏 날아가 보도록 합시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영화 초반부를 수놓는 비행장면은 긴장감이 팽팽하게 흐릅니다. 휘태커의 냉정한 판단력과 흐트러지지 않는 태도는 강렬합니다. 그는 오직 실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건져냅니다. 전문가들도 극찬한 그의 탁월한 결단과 비행실력은, 휘태커를 단숨에 영웅으로 격상시켜 주었습니다. 그가 없었으면 모두가 죽었을 것이라는, 그 상황은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문제는 오히려 다른 지점에서 터지고 말았습니다.
몇 사람은 불행하게도 목숨을 잃었지만, 어쨌든 그가 사람들을 구한 조종실력에도 불구하고, 음주비행을 했다는 것이 조사를 통해서 유력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되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이 때부터 영화는 현실적인 분위기와 선택의 문제로 팽팽하게 또 다른 긴장감을 전개해 나갑니다. 휘태커는 선택해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감옥에서 평생 썩을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실력자들을 동원해서 진실을 적당히 덮어두고 다시 영웅적 기장으로 화려하게 살아갈 것인가" 결코 가벼운 질문은 아닙니다.
휘태커는 청문회를 앞두고서, 매일 머리가 아팠을 것입니다. 진실을 털어놓자니 바보짓이 분명해 보입니다. 온갖 창피와 망신을 당할 것이며, 그의 인생은 그 날로서 사회적으로 완전히 끝날 것입니다. 그럼, 반대로, 그렇다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인생으로 평생 살아가고자 하니, 그것도 또 사실상 괴로운 일입니다. 휘태커는 복잡한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어서, 매일 또 술에 빠져듭니다.
중독자가 어떤 행위를 멈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휘태커는 술을 모두 버렸다가, 또 다시 술을 샀다가, 술 앞에서 열린 뚜껑을 돌려 막았다가, 또 다시 그 술을 움켜쥐고 마시고... 계속해서 양쪽의 길을 방황합니다. 술은 그가 사랑하던 모든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아내가 떠났고, 아들이 외면했고, 니콜이라는 예쁜 아가씨도 알콜홀릭인 그의 곁을 결국 떠납니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술은 유령처럼 그를 따라다닙니다. 청문회 직전까지도 휘태커는 술의 마수를 피하지 못합니다.
이런 엉망인 사람이, 청문회 자리에서 진실을 고백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모두의 예상대로 휘태커는 침착하고 태연하게 거짓을 이야기 합니다. 10분, 아니 5분만 더 참으면, 이 모든 상황은 승리로 끝날 것입니다. 다시 폼나는 기장 유니폼을 입고, 세계최고의 비행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저는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에서 심경의 변화가 나타나는 장면을 굉장히 좋아하고 유심히 살펴보는 편입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사람의 사고방식이 한 번 자리 잡으면, 거의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습관을 조금만이라도 움직이는 일은, 실제로는 많은 훈련과 연습이 동반되는 어쩌면 괴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휘태커가 계속해서 술을 가까이 하는 모습들이 더 와닿았고, 구제불능의 모습에서 애틋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결심만으로 행동이 쉽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오만함이고 착각일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람에게는 훨씬 강력한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그것은 무엇일까요.
적나라하게 쓰자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이기적인 사람이라도, 대부분 자식들에게는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고, 연인에게는 무엇인가를 주고 싶어합니다. 맹자식으로 말한다면, 꼬마아이가 도로 한 가운데로 걸어들어가면 어떻게든 다가가 말릴 것입니다. 그리고 휘태커에게는 정말 사랑하는, 그래서 두번째 아내가 되었으면 하는 연인이 있었지요. 그는 뻔뻔한 거짓말은 할 수 있었지만, 사랑했던 그녀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고 위선적으로 살아간다면, 평생 술과 마약에 취해서 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마침내 진실을 말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근본적으로 사람은 선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세계관을 깔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진실을 말했기에, 그는 감옥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다시는 비행할 수 없었고, 대체 무엇을 얻었나요. 그의 고백을 들어봅시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유가 되었다." 그 얼마나 근사하고 아름다운 말입니까. 정직함이 주는 힘은, 다른 모든 것들을 압도합니다. 진실을 덮고 가리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들이 몇 겹씩 동원되는 경우가 많지만, 정직한 고백이 주는 맑은 울림을 절대로 능가할 수 없습니다. 제아무리 숨겨봐야, 진실은 언젠가 힘차게 이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진실 앞에 섰을 때, 휘태커는 자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마무리가 더 매력적이고 상쾌합니다. 달콤한 빵을 줄테니, 여기 조용히 있는거야, 라며 우리는 길들여지는 유혹에 무방비로 노출될 때가 있습니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점점 눈멀어갈수록, 비슷한 유혹들은 계속해서 다가와 우리를 괴롭힙니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길들여지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실과 자유를 향해서 스스로 감옥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인간. 이것이 영화 속 판타지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처절한 시골유배지까지 목숨을 걸고 따라간 공작부인들의 실화 전설이 전해내려 옵니다. 다시 던지는 질문,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누군가를 희생시켜 즐겁게 잘 사는 삶입니까?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삶입니까?
이제 마무리를 해야 겠습니다. 플라이트를 보고 싶었던 까닭은 "인생을 변화시키는 용기"라는 굵은 글자가 강렬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이 말의 느낌을 살짝 바꿔 쓸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작은 용기를 낼 때, 우리는 자유의 길로 비상할 것이다." 용기 있는 자유인. 그런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 모두가 뛰어난 인생의 비행사가 아닐까요. 용기는 노예로 굴종해 사는 삶을 벗어버리게 해줄 것이며, 용기는 인생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어 줄 더 근사한 삶과 사랑을 줄 것이며, 그리하여 용기는 우리를 자유롭게 살아가게 해줄 것입니다. 용기가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