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 퍼스트클래스는 설명이 필요없을만큼, 정말 잘 만든 액션 영화입니다. 특히 매력넘치는 세계관이 일품인데, 누가 정의이며, 무엇이 올바름인지 생각해 보기에도 너무 좋습니다. 3부작 영화의 1편격으로 알려져 있는데, 언젠가 나올 후속작도 참 기대가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레이븐 역의 제니퍼 로렌스가 너무 예쁘기도 하고요. 네, 그렇습니다. 이번 리뷰는 이렇듯 사심이 담겨 있습니다 :) 인상적인 인물들 위주로, 차분하게 그들의 생각과 선택을 살펴보면 재밌겠지요.
우선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주연 에릭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영화는 에릭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부터 생생하게 시작됩니다. 영화의 단골 악당인 나치는, 이번에도 인간을 도구로 취급하는 만행을 보여주는데, 비정한 태도로, 에릭의 마음을 파괴해 버립니다.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죄(!)로, 그는 어린 나이에 불행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슬픈 일이지요.
어린 시절의 레이븐도 매력적으로 그려집니다. 찰스와 레이븐은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나는데, 괴물같은 레이븐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는 찰스를 보면서 저는 시작부터 커다란 감동을 얻습니다. 어느 철학자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현실은 가벼움이며, 가능성이야말로 무거움이다. 찰스는 인간의 수 많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서 문을 열어놓은 영민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어떤 모습도 가능하다는 그의 무게감이 영화 내내 압권이지요. 찰스는 선의 화신이며, 인간이 보여주는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도, 선의 길을 추구하는 위대한 영혼이기도 합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이런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게 이상할 테지요. 성인이 된 찰스와 레이븐의 모습은 살갑고 다정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해하고 아껴주는 찰스에게,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레이븐양! 그러나, 찰스는 우리는 연인이 될 수 없으며, 나는 너를 지켜주는 입장이라며, 에둘러 마음을 거절합니다. 뭐, 여기까지는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지만, 문제는 이 다음입니다. (파란 피부를 가진 레이븐이 말하기를) 그럼 나는 누구를 만나서 사랑을 할 수 있는지 절망적으로 차갑게 쏘아붙입니다. 말하자면 레이븐은 드러나면 곤란한 사회의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지속적으로 레이븐의 정체성 갈등을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레이븐이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은 그야말로 슬프게 들리는데, 남들과 다른 비범한 자신의 모습이 싫어서, "평범"을 꿈꿉니다. 게다가 평범해질 수 없다는 것이 더욱 비극이지요. 그런 감정의 선을 따라 영화를 보다가, 마침내 레이븐이 특이한 능력을 가진 (자신과 비슷한) 동료들을 만나자, 누구보다 환호하는게 참 인상적입니다. 나와 같은 사람이 세상에도 있구나,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사람은 위로 받고,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이런 느낌이지요. "어? 너도 그거 좋아해? 나도 엄청 좋아하는데! 신난다!" 마음이 통한다는 것은 기쁨이자, 기적이기도 합니다.
한편 차가운 남자 에릭은 지금 복수의 열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그 힘을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서 한결같이 사용하는 그는 "분노의 화신"이라 할 수 있겠네요. 에릭이야말로 영화에서 가장 매력넘치는 인물 중 하나인데, 그는 능력을 갖고 있는 동지들을 사랑하면서, 자신들(능력자들)을 미워하는 인간들에게 혐오감을 드러냅니다. 이 모습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에릭이 가장 인간적인 남자로 다가오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찰스는 조금 지나치게 선한 사람이고요.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에게 친절하며,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차갑게 대하기 마련이니까요. 따라서, 에릭은 이런 본능적 감정에 충실한 듯 보입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잘해주라고? 그건 위선일 뿐이야! 라고 강하게 말하는 듯 보입니다.
자, 이제 문제의 그 찰스를 생각해 봐야겠네요. 영민하고, 리더십까지 갖추고 있으며, 자기 의사표현이 확실하며,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인간 찰스. 찰스의 명대사는 가슴을 깊게 파고들어 옵니다. "분노와 평온을 조화시켜야 진짜 힘을 발휘할 수 있는거야" 정말 절묘한 대사였습니다. 찰스는, 분노로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릴까봐 염려했습니다. 한편으로 지나치게 평온만을 강조해서 길들여지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그는 힘을 사용할 줄 알았으며, 또한 그 힘은 반드시 제어가능 하다고 믿었습니다. 여기서 힘을 재능으로 바꿔쓴다면, 우리는 즐거운 통찰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분노로 휩싸이면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영화는 숨막히게 잘 묘사했습니다. 바꿔말해, 자신의 재능만을 지나치게 믿고 폭주하기 시작하면, 스스로의 자아를 감당하지 못하고, 심각한 패닉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노에 빠지면 주변의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듯이, 지나치게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다보면, 주변이 보이지 않아서 더욱 황폐한 인간이 될 수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뛰어난 재능을 통제하지 못할 때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영화에서 배우는 즐거운 통찰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 자기성찰, 반성, 돌아봄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럼 평온한 상태로 다니는게 제일 좋지 않나요? 라고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찰스의 의견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상황이 잘못되어 있음을 알았다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만히 있지 말고, 준비하고, 노력하고, 재능을 닦아서, 필요할 때 사용하라고 찰스는 열렬하게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마음껏 발휘함으로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아무 자극을 받지 않는 평온한 마음만 지속된다면, 저는 그것 나름대로도 비극적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미건조한 느낌보다는 차라리, 좀 더 상처받더라도, 더 뜨겁게 사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아름다운 날개가 있지만,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평온 속에 영원히 감추고 있다면, 그 조용한 인생이 슬픔일 수도 있다는 것, 영화에서 얻은 세밀한 영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레이븐의 선택에 대해서 저는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고) 응원을 보내고자 합니다. 근본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길은 타인에 의해서 평가받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쁜 외모를 버리고, 파란 피부로 살아가는 레이븐을 아쉬워 할 수 있겠지만, 그녀는 마침내 자신을 받아들였다는 측면에서 한 단계 성장한 것입니다. "자신의 이상한 모습까지도 충분히 인정하고,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이 때부터 우리는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는게 아닐까요.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서, 이른바 매그네토를 따라서 자신의 길을 선택하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하는 그녀의 당당한 모습이야말로 영화에서 참 눈부신 장면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찰스가 너무 안타깝고 불쌍하긴 했습니다만 :)
현재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영위하기. 니체가 추구했던 그 현실중심의 사고를,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는 사랑스럽고 예쁜 레이븐! 그렇습니다. 그녀를 보기 위해서라도, 이 영화는 추천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고백하자면, 저는 찰스처럼 선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남들을 배려하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때로는 피곤한 일임을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게다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에릭과 레이븐을 보면서 동경심도 들었음을 고백합니다. 찰스의 진심과 선의를 이해해 주던 것이, 오히려 친구 에릭이라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어쩌면 가는 길이 달라도, 서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독특한 시선. 이 지점을 오래도록 생각해 보고픈 감동적인 영화 엑스맨 퍼스트클래스 였습니다.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