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언스토퍼블 (Unstoppable, 2010)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13. 04:10

 탑건 등으로 유명한 토니 스콧 감독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 영화 언스토퍼블 입니다. 토니 스콧이, 작년 2012년 생을 마감했을 때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다 주었지요. 여하튼 영화는 1억 달러 제작비를 자랑하는 블록버스터 영화이고, 흥행성적도 1.6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충분히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작하기 까지 과정이 만만하지 않았지요. 영화산업이 원래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서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감독의 역량이나 인기 등이 상당히 영향을 많이 끼칩니다. 토니 스콧이, 덴젤 워싱턴과 함께 작업한 영화 펠헴123 이 흥행부진에 빠지자, 그 불똥이 언스토퍼블까지 덮쳐서, 이 영화는 사실상 도중에 중단될 뻔 하기도 합니다. 20세기 폭스사는 언스토퍼블에 대해, 제작비를 절감하라고 압박했고, 출연자들의 몸값도 깍으려고 합니다. 뚜껑열린 덴젤 워싱턴은 안하겠다고 이탈해 버리고...

 

 간신히 협의에 성공해서 영화는 2009년 가을이 접어들 무렵부터, 펜실베니아 주에서 촬영이 시작되어, 2010년 완성되었지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내용이야 어느정도 예측될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확실히 액션 영화의 거장답게, 빠른 속도감과 뜸들이지 않는 명쾌한 전개로 98분의 시간이 훅 가는 즐거운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오락 액션 영화를 생각했던 저는, 개인적으로 기대 이상의 멋진 영감도 얻었습니다. 주인공 프랭크가 보여주는 통렬한 명장면들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 합니다. 효율성은 물론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항상 옳은 것인가? 오직 비용절감을 위해서, 달려가는 조직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문제의식 입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비용절감은 최근 아주 급격하게 진행되어온 일입니다. 지하철 역을 가봐도 분명하지요. 자동 충전과 자동 판매가 일상화 되어 있고, 비용이 낮거나, 별로 들지 않는 공익요원이나 자원봉사자들이 가끔 불법으로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들을 잡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평소 사람이 맡아서 할 일들은 하나 둘, 그리고 셋 넷 다섯 여섯 계속해서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니까요. 이것이 효율적이니까요.

 

 온라인 세계도 마찬가지라서, 아마존이나 옥션 등의 일부 대형업체 몇몇이 운영권을 독점하면서 판매수수료를 얻는 이른바 "판을 만들어 놓는 승자들"이 꾸준하고 지속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튼튼하고 효율적인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홈쇼핑이나 대형마켓에서 한 번 대박 터지는 것이, 전국적인 유통망을 거쳐서 힘들게 몇개씩 파는 것에 비한다면 월등하게 효율적이니까요. 케이블TV 앞번호 목록에 홈쇼핑 채널들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렇게 가혹한 세계를 놓고 본다면, 지금 프랭크가 해고통보를 이미 받고서,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젊은 피 윌(얘는 게다가 낙하산!)과 함께 같이 일을 해나가는 모습이 상당히 슬프게 들려옵니다. 퇴물 취급 받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요. 프랭크는 거의 30년 가까이 기차를 움직여왔지만, 조직에게 있어서 그는 이제 낡아서 교체되는 부품에 불과합니다. 반전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프랭크의 오랜 노하우는 결코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업계에서 수십년간 일하다보면, 정말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세밀한 것까지 프랭크는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직감적으로 알아낼 수 있습니다. 저의 부족한 경험을 살짝 빌려 예를 두가지 정도만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소매업계에 오래 일하다 보면, 물건을 싣고 온 차에서 물건 박스가 몇 개 정도 내려지는 것만 봐도 그 매장의 매출을 대략적으로 추정할 수 있게 됩니다. 악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기타줄 6개를 차례대로 튕겨보면, 지금 무슨 음이 얼마정도 틀어져있는지 바로 알 수 있게 됩니다. 매일 매일 하는 일들은 인간을 그렇게 단련시키는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매일 책을 보는 사람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매일 돈을 세는 사람은 날카로운 계산력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테고, 매일 고민하는 사람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영역까지도 알아낼 희망을 품고 있는 셈입니다. 매일 같은 것을 한다는 것, 그 행동이 어쩌면 그 사람을 말해주고, 규정해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자, 그럼 프랭크는 누구입니까? 그는 최고수준의 철도 근무경험을 자랑하는 일류 기관사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폭주하고 있는 기차를 멈출 수 있다고 확신하며, 위험한 임무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 가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바로 스스로를 위해서 입니다. 나는 결코 기계 부품 따위가 아니라고, 그는 정말 멋지게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인간, 이런 근사한 모습들은 볼 때마다, 언제나 한가득 가슴설레입니다. 조직의 꼭대기쯤에 위치한 부사장이 탁상 위에서 실패할 계획들을 세우고, 돈계산과 자리계산으로 열을 올리고 있을 때, 현장 한가운데 위치한 프랭크는 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높은 일을 직감적으로 떠올린 후, 열심히 달려갑니다.

 

 영화에서 정말 놀라웠던 명장면은, 위급한 순간에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을거 같았던 프랭크가, 정작 전문가의 조언은 깊이 있게 새겨듣고 참고하는 장면입니다. 스스로 결정하면서도, 일리 있는 남의 의견에 대해서 깊게 경청하는 장면은 아주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비현실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안된다고 판단하면서도,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도 완전한 확신 대신에, 고민하고, 선택의 여지를 남겨둔다는 것이 참 강렬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저는 "경험의 힘"에 대해서 또 감탄하게 됩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사람의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그 후에 내리는 직감적 결정은 대부분 옳을 때가 많다. 가능성을 계산하는 뇌보다 본능적인 몸은 더욱 빠르기 때문이다." 실제 사례인데, 소방대장이 건물이 곧 무너질꺼라는 강한 직감을 느끼고, 대원들을 대피시키자 마자, 곧바로 건물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경험이 가져다 주는 직감의 놀라운 힘이지요. 평소 상황과는 묘하게 다른 "뭔가 이상한 점"을 몸으로 먼저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모든 상황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없기에, 다른 사람의 중요한 의견들은 반드시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 지난 몇 번의 리뷰들에서, 저는 타인의 부정적 의견에 동요할 필요가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는데, 상황에 대한 가능성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참고한다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맹목적인 자기 확신으로 일을 망치기 보다는, 냉정하게 자신에 대해서도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기본적으로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지나친 과신은 스스로를 판타지의 감옥에 가둘 수 있으므로 경계해야 합니다. 쉽게 정리하면, "자신감을 가지고 스스로를 믿어라, 동시에 자신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판단하면서, 한걸음식 확실하게 전진하라."가 되겠지요.

 

 이 어려운 말을, 프랭크는 너무 매력적으로 보여줍니다. 심지어 영화 마지막 대목에서 함부로 돌진하지 않고, 멈춘다는 점에 감동까지 느꼈습니다. 그는 어떠한 순간에도,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참 멋있었지요. 다행히도 열차는 윌의 패기와 근성으로 작업은 성공적으로 끝나며, 행복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어쩌면 액션영화에 걸맞지 않는 리뷰라고 생각합니다만, 자신만의 당당한 길을 간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기에, 오늘 리뷰도 평소처럼 생각할 주제 몇 가지를 들여다보는, 저만의 형식으로 솔직하게 써봤습니다. (정밀한 영화 묘사나 평가 없이) 이렇게 막쓰면 비교적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으니 이또한 좋고요 :) 오늘의 결론. 할 수 있는데까지 해본다는 것. 여기에 충실한 인생이라면, 미련없고, 긍지있는, 즐거운 인생이라고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두서없는 리뷰는 이쯤에서 스톱! 할 수 있는데까지 꼭, 정말 꼭 해본다면 좋겠습니다.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