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제로 다크 서티 (Zero Dark Thirty, 2012)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24. 22:19

 저는 이 영화를 중립적으로 바라볼 역량이 되지 못합니다. 예컨대, 돈은 그 자체로는 아무리 가치 중립적이라도, 갖고 싶은 욕망을 피하기 어렵고, "돈의 맛"이라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니, 얼마나 매력적이란 말입니까. 다른 말로, 미국에서 만든 영화가, 반미 영화가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저 역시 아무래도 다소 미국적 시선으로 영화를 보게 됨을 미리 언급해 놓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친미나, 친일은 당연히 아닙니다. 저는 오래도록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슬로건을 블로그에 걸어두었고, 동호회 장으로 활동할 때는, 2002년 6월 월드컵 만큼이나, 2002년 6월 효순, 미선양 사고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군이 사과는 했다지만, 당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굳이 정의하자면, 조직이 개인을 짓밟는 행동을 잘 참지 못하는 자유를 좋아하는 사람 정도겠지요. 간단히 정리해, 미국은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국가라는 점을, 직시하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일 뿐이지요. 이정도로 서론으로 양해를 구해놓고, 본격적으로 영화를 살펴봅니다.

 

 

 오늘날 미국은 패권국가 입니다. 장난 아니게 강합니다. 세계가 사용하는 기축통화의 힘이 있기 때문에, 달러를 계속해서 찍어낼 수 있고, 빈 라덴을 잡기 위해서 10년 동안 사용한 돈이 430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걸 숫자로 나열해 보면 조금 실감이 납니다. 430,000,000,000,000원 이라는 돈을 자국의 위상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국가 입니다. 미국 국민 입장에서는 절대적 보호를 받는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할 것이고, 다른 나라에서 볼 때는, 건드렸다가는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동맹이나 최소한 협력관계 정도 되고 싶어합니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볼 때, 갑인 미국에 대하여, 지나친 저자세가 문제가 아닐까 싶을 정도 입니다. 저 거대한 중국도 미국 앞에서는 오래도록 낮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실력을 키워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오른쪽으로 많이 가 있는 보수주의자 혹은 친미 사대주의자 들은 성조기를 흔들며, 영원한 동맹을 찬양하며, 젊은 세대들의 의식을 걱정하지만 (예 : 젊은이들은 적을 미국으로 본다는 식의 시선) 정작 당황스러운 것은, 그 사대주의자들이 지나치게 저자세를 견지하며, 미국을 위해서 몸바쳐 일하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 눈에는 그 모습들이 어쩌면 꼴사나워 보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세대관이 다른 것이지요.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전쟁 때, 우리를 도와준 미국이 동맹국으로 비춰지고, 젊은 사람들에게는 그 도움도 미국 자국의 이익이 들어가 있는 계산된 행동으로 보이기 때문에, 미국의 오만한 태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분명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 정도라면, 중동은 더욱 심하지 않을까요?

 

 중동의 여러 국가들에게 있어, 미국의 오만함은, 증오 정도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란 같은 나라는 친미를 유지하다가 7-80년대 넘어오면서, 친미 집권세력을 완전히 갈아엎어서, 반미국가의 대표적 주자가 되었을 정도입니다. 뭐, 이것도 다 어떤 의미에서 누구 편에 붙을 것인가라고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니며, 저는 무엇보다 국민이 보호받고 잘 사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70년대 친미국가 이란을 보자면, 권력들이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 국민들이 나날이 궁핍해지자, 반미가 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국민들은 두 눈으로 당신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배경을 놓고 본다면, 테러리즘을 받아들인 알카에다 지도자 빈 라덴 눈에는, 미국은 "절대적인 적"으로 보이지 않았을까요. 미국의 사치를 싫어하고, 고리대금과 유대인들을 경멸한 빈 라덴 눈에 미국은 탐욕의 나라로 보였겠지요. 그래서 결국 9.11 같은 끔찍한 사태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보수적인 시각에서 그들을 "미친 인간들이 비행기를 냅다 들이 받아서, 미국 본토를 공격했다" 라고 본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입니다. 그들은 미국과 싸우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혁명적 이념을 가진 무서운 사람들에 가깝습니다.

 

 이제야 영화 이야기로 들어오는데, 그래서 제로 다크 서티를 보면, 서구에 테러를 터트리고 있는 집단이, 실제로는 엄청나게 영리하고 계획적으로 일을 진행해 나간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대포폰을 사용하고, 자신의 위치를 숨기며, 많은 정보를 뿌려서,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등, 매우 독하게 일들을 처리해 나갑니다. 몇몇 사람들이 계속해서 미국에게 잡히고, 정보를 내뱉는데도, 몸통까지는 좀처럼 도달하지 못하는게, 정말 놀랄만큼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빈 라덴이 오랜기간 숨어서 지낼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 처음에 저는 (같은 문명권인) 이슬람 권에서 서로 잘 덮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순진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미국 CIA만큼이나 그들 역시 대단히 영리하게 일처리를 해나간다는데 있어 매우 놀랐습니다.

 

 CIA가 프로 중의 프로라면, 지금 빈 라덴이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도 프로 중의 프로의 엄격한 방식으로 통제되고, 진행되어 나가는 셈입니다. 미리 전화 도청 위험과 공중 감시 위험을 대비해놓고, 일을 처리하다니요. 그런데 한편으로 지나친 조심성은 역으로 추적에 걸리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아무래도 그들이 "집단에서도 낯선 공간"에서 살기 때문에, 아주 긴 시간의 분석 끝에, 결국 위치가 드러나고 말았던 셈입니다. 여주인공 마야의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을 압축한 한 마디는 압권입니다. "거기 숨어 있는 자가, 100% 라고 생각한다." 오바마의 비밀 서명으로 프로젝트는 통과되었고, 실제 시간으로도, 1시간도 되지 않아서 빈 라덴은 사살 됩니다. 그 1시간을 위한, 430조와 10년간의 노력. 그리고, 프로젝트가 끝나고 멍하게 앉아, 눈물을 흘리는 마야의 모습은 만감이 교차하게 만듭니다.

 

 하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쳤던 인생. 방탄유리가 아니었다면 죽을 뻔 했고, 지국장과 험하게 싸우기도 했고, 고위급과 위트 있는 설전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좋은 동료의 죽음과 떠남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무고하게 죽은 3천명의 사람들을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는 매일 치열하게 살아왔고, 마침내 그 긴 세월이 끝났을 때의 감정. 그것이 결코 환호나 절대적 기쁨이 아니라는 것을, 캐스린 비글로우 감독은 아주 선명하게 묘사합니다. 그렇게 영화는 먹먹한 가운데서 마무리 됩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복잡합니다.

 

 개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마야 만큼 애국심 있고, 조직에 충성한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CIA 간부의 말처럼, 그녀는 이 일에 천성적인 재능까지 갖춘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왜 일의 마무리를 감독은 환한 미소 대신에 조용한 눈물로 장식한 것일까요. 세상을 바꾸고, 움직일만큼, 뛰어난 2030 여성 한 명의 섬세한 감정선까지 모두 이해하기는 저로서는 상당히 벅찬 일입니다.

 

 어쩌면 이 일은 누구에게나, 처음부터 "만족스럽지 못한 일" 일수도 있겠지요. 즉, 선한 동기에서의 일이라도, 결국 고문이 동원되고, 사살이 동원되는 일은, 그것을 명령하고 행하는 사람의 마음 역시도 찍어 누른다고 생각합니다. 왕따 사건의 통계를 본다면,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인 경우가 자살확률이 훨씬 높아집니다. 인간의 감정선이란 그런 게 아닐까요. 괴로운 일을 한다는 것은 개인에게 결코 좋은 경험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꿔 말해, 그녀에게는 적성에 맞는다고 해도, 단 한 번도 유쾌한 일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그녀는 마침내 임무를 완수했지만, 이미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이해해 본다면 조금 나을까요. 그러므로, 그녀는 충분히 많은 휴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유쾌하지 않은 일을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헌신하는 열정은 충분히 박수받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계속되는 테러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면 누군가는 막으러 가야 하지 않겠어요.)

 

 이제 상상을 한가득 담아 마무리를 합니다. 서로 죽일 일이 없고, 종교 없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 존 레논의 이매진 노래에서 상상해 볼 수 있는 이상적인 세계지요.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유토피아. 존 레논은 베트남전 참전을 반대한다며 훈장까지 반납한 예술가였습니다. 서로 죽이지 않고, 서로 잡아먹지 않고, 화목하게 산다는 것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매우 멀게만 느껴집니다. 자꾸만 냉정해져서, 힘없이 어떻게 평화가 가능할까 라는 생각부터 들고, 무기력한 사람들 앞에서, 세계와 맞짱 뜨는 마야 같은 비범함이 눈부시게 보이기도 합니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에서, 저는 오늘도 답을 내리지 못하고, 방황 중입니다. 세계는 여전히 먼저 너부터 총을 내려놓으라고, 총을 든 채로, 다른 사람을 협박하는 모습만 계속해서 보게 됩니다. 결국 제가 진보의 길에 서 있다면, 서로 연결되어서 또 다른 세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그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정글만 가능한게 아니라, 평화도 가능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무거운 가능성을 마야 처럼, 계속해서 찾아가는 인생이길 저는 조용히 바랄 뿐입니다.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