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파파로티 (2012)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17. 10:17

 한석규의 능숙함과 이제훈의 폭발력이 제대로 만났다고 생각됩니다. 영화 파파로티는 즐거움과 감동이 함께 들어 있는 멋진 한국영화 였습니다. 심야 시간에, 거의 비어 있는 커다란 관에서 보았는데, 박력 넘치는 경연장면은 압도적이었습니다. 생각을 던져볼 수 있는 장면도 많이 있어서, 리뷰 쓰기에도 참 편하겠네요 :) 잘생긴 이제훈을 좋아한다면, 이 작품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체크포인트 영화가 되겠습니다.

 

 제게는 성악을 정말 좋아하는 절친 한 명이 있습니다. 발성이 중요하다느니, 복식호흡은 마음도 잡아준다느니, 음악적 열정이 그칠줄 모르는 친구 녀석은, 서른이 넘어서도 기어이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나가보고 (물론 본선 문턱은 가보지 못한채 노홍철만 보고 왔다는데, 그래도 저는 아직까지 꿈을 응원해 주고 있습니다) 어쨌든 음악에 빠져들면, 도저히 없으면 살 수 없을 듯한 커피 같은 느낌도 듭니다. 하하. 물론, 저도 음악듣기는 참 좋아해서, 각종 배경음악을 깔아둘 때가 많습니다.

 

 

 우선 재능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는게 좋겠네요. 목소리가 좋은 사람에게 저는 강한 호감을 느낍니다. 배우 이선균, 성우 시영준 같은 중저음의 톤은 그 자체로 매력적입니다. 목소리는 타고나는 영역이라,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영화 표현처럼 하이C 까지 힘차게 표현되는 목소리는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의미 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단 장호 (이제훈 분) 는 훌륭한 목소리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누군가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닿을 수 없는 영역을, 그는 원한다면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안타까운 것은 재능이 있음에도, 장호에게는 결정적인 두 가지가 부족한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벽들은 계속해서 드러납니다. 오늘은 이 두 가지 벽에 대해서 한 번 파고들고 싶습니다. 첫 번째 벽은 환경의 문제 입니다. 외부적으로 장호는 너무 힘든 환경에 처해있습니다. 거의 고아처럼 살아가야 했고, 학교에서도 왕따 문제아에,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은 조직 세계에까지 몸담고 있습니다. 공부와 생계,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낸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장호 역시 마찬가지라서, 성악을 배워보고 싶으면서도, 우선은 자신에게 책임지어진 조직의 일들을 충실하게 해냅니다.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그는 성악을 포기할 것입니다. 성공 가능성의 희박한 일을 향해서, 자신의 기반을 접고 들어가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사회적인 자책골 행위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그가 여러 번 예고를 그만두고서, 조직 생활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 성악이 좋긴 하다지만, 그는 자신의 재능에 대한 자신감은 있다 해도, 절대적 확신은 부족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상진샘을 만나면서, 장호의 인생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장호의 재능에 대해서, 상진샘은 메가톤급 발언을 합니다. "네 목소리에 나는 전재산을 걸 수 있어" 인간이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아니겠습니까. 이탈리아 무대까지 갔다왔던 상진의 눈에, 악동 제자는 음악천재,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다이아몬드 원석 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눈물겨운 상진의 제자사랑이 시작됩니다.

 

 "저런 샘이 있었으면 나도 정말 좋았겠다" 라는 마음이 저절로 들만큼, 상진의 모습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집에 초대해서 만찬을 제공하고, 조직에 직접 찾아가서 장호를 놓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며, 마지막까지도 제자의 미래를 위해주는, 진정한 "선생"이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는 초라해도, 그 마음은 정말 원더풀한 멋진 샘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사람의 행동입니다. 저는 이쯤에서, 어린 시절 추억 한 가지가 떠오릅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데, 건물 앞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서, 먼 곳의 쓰레기통까지 기어이 들고 가서 버리고 오는 "은사님의 뒷모습"이 선명합니다. 남들이 보지도 않는데 왜 그렇게 고생을 자처하는지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이랬습니다. "지도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남들이 보거나, 보지 않거나, 먼저 솔선수범을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 때 저는 상당히 충격을 받아서, 그 뒤로는 작은 쓰레기라도 가방에 넣을지언정, 길에다가 감히 버리지 못합니다. 당연히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지만, 당연히 지도적인 자리에 있지도 않지만, 생활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 때부터 지금까지도 가슴 한켠에 담아두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불편을 자처하는 사람도 있구나." 제 마음을 사로잡은 영감 중 하나 입니다.

 

 상진샘은 불편함을 스스로 선택합니다. 콩쿨이 열리면, 어떻게든 따라가고, 피곤에 쩔어있는 제자의 등교를 위해서 차를 몰고 가고, 심지어 메이드 인 이태리 라는 턱시도까지 선물해 줍니다. 이 모든 장면이 그림 처럼 아름답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지만, 기끼어 불편을 감수하며, 장호가 성공하길 원하는, 스승의 모습은 커다란 은혜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훗날 장호가 상진샘을 향해서 정중히 큰 절을 올리는 마지막 대목에서는 눈물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나의 인생을 바꿔준 스승의 은혜는, 그토록 멋진 일이며, 상진 역시, 누군가가 마침내 빛을 발하게 되자, 그 감동과 보람에, 세상을 다 가진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자, 이제 두 번째 벽을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내부적인 마음가짐의 문제입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근원적인 두려움.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세상에는 좋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거기에 가서도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은 피할 수 없는 벽입니다. 이것을 이겨낼 힘을 준 것도 역시 상진샘이었습니다. 넌 타고난 별이라고 쉼없이 격려하고, 돈받고 노래 불러야 한다고 한없이 응원하며, 매일 등을 토닥여주는 든든한 사람. 사람의 심장은 뜨거운 격려 속에서, 마침내 뛰기 시작했고, 그는 길었던 갈등을 끝내고, 자신의 재능을 단단히 믿게 되었습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이라고 깨닫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그에게 음악이란, 운명이었지요.

 

 조직 앞에서도 장호는 죽으면 죽을 지언정, 성악을 포기할 수 없다고 정직하게 요구합니다. 음악을 위해서 목숨까지 내놓은 사람을 이제 막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슨 일을 만나든지, 이겨낼 마음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파파로티를 보면, 격려의 중요성을 몇 번이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재능의 꽃은 따스한 햇살과 충분한 수분이 있을 때, 제대로 피어나는 셈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자신만의 스타일"이라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누구를 따라 부른다는, 흉내내기로서는, 최고가 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남들과 다른 지점을 찾기 위해서 끝없이 노력하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지게 될 때, 그 사람의 매력은 더욱 맑게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매력적인 성우 강수진 만큼이나, 성우 시영준 특유의 굵은 목소리가 멋지게 들리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자신만의 지점을 제대로 갖춘다는 것은, 인간이라면 한 번쯤 닿아 보고 싶은, 가장 멋진 목표 중 하나겠지요.

 

 파파로티는 신데렐라 스토리, 인생역전 스토리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어떻게 제대로 서게 되느냐"에 대한 이야기 일수도 있습니다. 나홀로 정상에 서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관계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과 응원을 받아서 서 있고, 많은 사례와 방법들을 헤집고 다니면서 마침내 자신의 길을 찾게 되고, 그 재능을 긴 시간 끝까지 밀어붙일 때, 인생의 주인공처럼 살 수 있다고, 강하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남자에게는 실례겠지만, 하하,)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는 이제훈의 마지막 모습이 참 예뻐보였습니다.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