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게오르게 하지, 동유럽의 마라도나.

시북(허지수) 2008. 3. 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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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eorghe Hagi


 90년대를 대표하는 축구선수 중 한 명이자, 루마니아 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루마니아의 별 게오르게 하지. 오늘은 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프로필

 이름 : Gheorghe Hagi
 생년월일 : 1965년 2월 5일
 신장/체중 : 172cm / 68kg
 포지션 : MF, 왼발
 국적 : 루마니아
 국가대표 : 125경기 35득점

 발칸의 마라도나로 불리던 에이스 하지의 이야기

 게오르게 하지는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던 선수였다. 18살 때부터 국가대표에 선출되는 등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1984년 유럽선수권(유로)에 19살의 나이로 출장하는데, 당시 같은 10대였던 드라간 스토이코비치(유고슬라비아/現세르비아), 엔조 시포(벨기에) 등과 함께 젊은 스타 후보로서 큰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는 1987년 루마니아의 명문팀인 강호 "FC 슈테우아 부쿠레슈티"로 이적하게 된다. 이런 팀도 있었어? 하는 분이 많겠지만, 사실 이 슈테우아 부쿠레슈티는 챔피언스리그 85-86시즌에 결승에서 FC바르셀로나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명문팀이다. (동유럽권에서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제패를 했으며, 루마니아 리그우승만도 무려 23회를 달리고 있는 팀이다.)

 하지가 뛰게 된 슈테우아 부쿠레슈티는 88-89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승승장구 한다. 결과는 AC밀란에게 아쉽게 패하면서 준우승에 그치지만, 게오르게 하지는 이제 유럽에서도 조금씩 이름을 날리는 선수가 되어간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게오르게 하지가 이끌던 루마니아 국가대표팀은 20년만에 예선통과를 이루어내며 본선에 진출한다. 루마니아는 16강까지 오르는 선전을 펼치게 되었고, 이제 하지는 많은 명문팀이 눈독을 들이는 선수가 된다. 그리고 스페인의 명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되는데...

 모든 게 승승장구 잘 풀리는 경우는 잘 없기 마련이다. 하지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적인 명문팀에 왔지만, 달라진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이탈리아의 브레시아 팀으로 다시 또 이적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1994년이 되었는데, 바로 1994년 미국월드컵의 이야기이다.

 등번호 10번을 달았던 이 캡틴 하지는 루마니아의 공격을 이끌면서, 대활약한다. 조별리그에서 우승후보라고 평가받던 발데라마 등이 있는 콜롬비아를 3-1로 완파. 이 때 나온 하지의 멋진 30m롱슛도 유명하다. 조별리그 1위로 16강에 진출한 루마니아는 강호 아르헨티나를 만난다. 루마니아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하지를 중심으로 한 전광석화 같은 카운터(역습) 공격으로 우승후보 아르헨티나를 3-2 로 누르면서 침몰시켜 버린다. 이 때의 활약으로 게오르게 하지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가 된다. 소극적인 경기가 많았다고 평가받는 이 94년 월드컵대회에서 하지의 루마니아 대표팀은 한층 열기와 속도가 살아있는 팀으로 평가받으면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8강에서 승부차기 끝에 스웨덴에게 석패한다. 하지는 대회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했다.)

 94년 월드컵이 끝나고 다시 한 번 명문팀인 FC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되는 하지. 요한 크루이프 감독이 이끌던 당시 바르셀로나의 드림팀(스토이치코프,호마리우등)의 멤버가 되었지만, 워낙 드림팀이었기 때문일까? 출장기회가 많지 않았다. 결국 1996년 터키의 갈라타사라이로 이적하게 된다. 여기서 한 번 더 빛을 발하는데...

 1996년 당시까지만 해도 터키 축구는 유럽의 중간 정도로 밖에 평가받지 못했다. 월드컵 출장도 많은 강호팀들로 인해서 제대로 출장하지 못했고, 클럽축구도 마찬가지였다. 챔피언스리그 본선 출장은 커녕, 예선 조차도 제대로 뚫지 못하는 유럽의 아웃사이더였다. 갈라타사라이의 구단 관계자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명문 바르샤에서 벤치신세를 지고 있는 게오르게 하지에게 강력하게 이적을 요청했던 것이다.

 30대가 된 게오르게 하지는, 갈라타사라이의 주장 완장을 찬다. 그리고 축구선수로서의 마음가짐, 프로로서의 마음가짐을 팀 동료들에게 몸으로 가르친다. 그리고 2000년 갈라타사라이는 결승에서 아스널을 침몰시키면서 UEFA컵 우승을 따내었다. 팀의, 그리고 터키의 국제적인 첫 타이틀이었다. 이로 인해 터키 축구계에 대한 평가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었으며, 세계에 터키 축구의 위력을 알린 계기가 되었다.

 게오르게 하지는 루마니아 국가대표의 중심선수로도 꾸준히 활약하며, 17년동안 3번의 월드컵 본선 출장을 이끄는 등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지금도 그의 국가대표 통산 35골 기록은 루마니아 국가대표 최다골 기록으로 남아있다.

 플레이스타일을 살펴보자면, 플레이메이커로서 중원에 군림하며 왼발을 사용한 뛰어난 패스와 드리블을 보여주면서 멋진 장면들을 많이 만들어 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득점도 많이 만들어 내는 스타일이었다. 한 마디로 전형적인 팀의 에이스 10번을 상징하는 플레이스타일이었다. 한편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인 면이 있어서 카드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전형적인 테크니션이고, 왼발의 달인이었다. 넓은 시야와 전술안도 갖추고 있는 사령탑이기도 했다.

 게오르게 하지, 그는 루마니아에서는 축구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랑받는 축구영웅이자, 터키에서도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글을 마치며 그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서 준비해 보았다. 그가 동유럽의 마라도나라는 찬사를 받는 것도, 그리고 자국에서 축구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실력으로 루마니아의 중심으로 멋지게 활약하며 팀을 8강까지 이끌었으며, 터키의 갈라타사라이를 우승으로 이끌며, 많은 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