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과속스캔들 (Speed Scandal, 2008)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28. 10:20

 배우 박보영의 연기가 정말 훌륭했던 과속스캔들 입니다. 물론 극중 주인공은 차태현과 왕석현군도 있지만, 영화는 박보영의 감정에 대해서 상당히 세밀하게 묘사해 나가면서,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 같은 꽤 무거운 주제도 감동적이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들 가족은 어쩌다보니 아이를 일찍 갖게 되어서, 지금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 되었지만,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이지, 그 자체로서는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과연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라는 관점으로 리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인기가 크게 없는 연예인 남현수는 그래도 라디오에서 한 자리를 맡으면서, 상당히 안정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엄청난 수입이 되어주는 TV광고까지 찍게 되면서, 포스터대로 잘나가는 서른여섯을 즐깁니다. 철저한 사생활관리는 물론이고, 근사한 저택에서 남부럽지 않은 낭만적인 싱글라이프를 보냅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황정남씨가 찾아오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지요.

 

 

 인정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인데, 검사까지 다 해보니 실제로 딸이라고 합니다. 10대 시절 순간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집안 내력인지, 현수의 딸 황정남마저 이미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 30대에 할아버지 소리를 들어야 할 판국이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뭐 여기까지야 유쾌한 스토리라 할 수 있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주변의 시선입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만약 이 사실이 폭로되기라도 한다면, 연예계에서 그의 생명은 끝날 수도 있습니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연예인이, 쌓아올린 게 훼손되면 심한 경우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때도 있습니다. 찍어놓은 광고와 계약금까지 뱉어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현수는 제발 자신의 딸과 손자가, 나름 잘 나가는 "내 앞길을 방해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여기까지가 현수의 입장이라면, 황정남도 할 말은 있습니다. 미혼모라도 하고 싶은 일은 얼마든지 있다며, 무대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고 싶어합니다. 자신이 힘들게 잡은 기회를 꼭 도전해 보고 싶어하지요.

 

 꽤 두 사람은 신경전이 치열합니다. 피는 못 속인다고(?)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꿋꿋하게 밀어붙이는 모습이 재치 있습니다. 황정남은 그래도 아버지의 발목은 잡고 싶지 않았는지, 황제인이라는 가명을 써가면서 라디오 노래 경연에서 놀라운 실력을 선보입니다. 저는 과속스캔들의 숨은 재미가 음악감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짝 설렘을 주는 음악들이 상당히 가슴에 남습니다. 더욱이 이 "과속삼대"는 저마다 음악적 재능까지 갖추고 있어서 더욱 웃깁니다.

 

 가령 꼬마 기동이는 신들린 피아노실력을 선보이며, 사람들에게 감탄을 불러일으킵니다. 예쁜 여자만 보면 정신 못차리는 것도 어쩜 그리 누구를 닮았는지 모릅니다. 하하. 정남이는 노래 실력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화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아이돌이 따로 없습니다. 정작 연예인 현수가 음반 내다가 묻혀버린 인기없는 가수 라는게 흥미롭네요. 그렇기에 현수가 딸과 손자의 멋진 음악적 재능들을 보면서 감동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꼬리가 길면 결국 밟힌다고, 현수의 사생활은 조금씩 드러나게 됩니다. 정체모를 어리고 젊은 여자가 집을 자꾸 드나드니까, 주변에서 의심을 사기 시작합니다. 스캔들 한 번 크게 터져서, 밥줄이 끊길 위기에 처하자, 현수는 독한 선택을 합니다. "너네들 다 나가, 내 눈 앞에서 꺼져버려"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었기에, 현수는 자신의 명예와 돈을 선택한 것입니다. 당장 도움이 되지 못하는 딸과 손자를 외면하는 그의 선택은, 시간이 흘러 당연히 후회로 돌아옵니다. 사람이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는 겁니다 :)

 

 존재를 증명하는 황정남 최강의 명대사를 들어봅시다. "왜 내가 없어야 하는데. 여기있잖아! 내가 여기있는데 왜 내가 없어야 하냐고!!" 가족에게 까지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야 하냐고 강하게 묻고 있는 정남은,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돈이 그렇게 중요해요? 잘 나가는게 그렇게 중요해요? 그게 아니면, 내가 중요해요? 언제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조금 피곤하고 힘들더라도, 사람을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이 후회가 덜 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현수의 문제는 과속한게 아니라, 찾아온 식구를 내친게 진짜 문제인 것입니다.

 

 돈이 없다면, 돈은 벌면 됩니다. 직장을 잃었다면, 힘들겠지만 다시 또 찾아보면 됩니다. 그런데 사랑이 없다면, 대체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정남은 태어난 이후로, 계속해서 사랑을 찾으면서 살아왔을 겁니다. 남자를 만나보기도 했지만, 풍족한 사랑을 받을 수 없었고, 오래도록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보고 싶어했습니다.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꿈"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세상에 몇 안 되는 그 이름. 아버지. 하지만, 정남에게 아버지란, 여전히 애증의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뒤늦게 계속해서 방송을 통해서 현수는 사과해 보지만, 한 번 틀어진 마음은 좀처럼 쉽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드디어 현수는 진실 앞에 섭니다. 사람들의 관심 보다, 내 딸과 내 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현수는 용기 내어서 진실 앞에 섭니다. 더욱 재밌는 것은, 수군거리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또 다른 가십거리를 좇아서 이동한다는 것이지요. 아, 인기 없는 연예인의 슬픔이여! 하하. 그리하여 마치 동화처럼 세 사람은 행복하게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 입니다. 같이 놀이동산도 가고, 콘서트도 다니면서, 즐거운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겠지요.

 

 마치면서 이것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 바쁘게 살아가는게 중요할까요. 아니면 지금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챙기면서 즐겁게 살아가는게 중요할까요. 위선적인 피곤한 삶 보다는, 소박하고 행복한 삶이 훨씬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지만, 지금부터 재밌게 살아가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요.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