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노라 없는 5일 (Five Days Without Nora, 2008)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29. 11:58

 별로 알려진 영화는 아니지만, 노라 없는 5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영화 노라 없는 5일은, 죽음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사전 정보가 없었던 저는 처음에 노라가 집을 나가서 5일 동안 사라졌고, 마침내 사랑을 깨닫게 되는구나 식의 스토리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뭐, 단순한 제가 늘 그렇지요. 하하. 영화 첫 부분은 상당히 정성스러운 장면들과 함께 문을 엽니다. 누군가가 정갈하게 테이블을 차리고, 그릇을 놓고, 수저를 놓고, 노라의 전남편 "호세의 집"에는 고기를 배달시키고... 만찬을 준비하는 분위기가 느껴지지요.

 

 주인공 호세는 20년 전에 이혼한 노라의 집을 찾아갑니다. 노라의 집이 참 가까이에 있거든요. (최소 10인분은 넘을듯한) 배달 온 고기가 워낙에 많아서, 자신의 집 작은 냉장고에는 놓을 곳이 없었습니다. 평소 배달 음식을 즐겨 먹는 듯한 호세는 뭐 또 이런 고기 파티를 하는지 다소 의아해 했을 겁니다. 고기를 들고, 찾아간 노라의 집. 그런데 어쩐지 집은 비어있는 듯 했고, 호세는 그녀의 냉장고 안에 차곡차곡 남은 고기들을 담아둡니다. 인기척을 느낄 수 없는 빈집이었기에, 호세는 이제 "노라의 집"을 나옵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영화는 빠르게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무엇인가를 직감한 호세가 다급하게 노라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면서, 안타까운 진실을 마주보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노라는 지금 조용히 잠자리에 누워있습니다. 창백한 얼굴과 단정한 자세로 영원한 잠에 빠진 것입니다. 이미 젊은 시절부터 여러번 자살시도를 해왔던 노라는, 노년을 맞이해, 만찬을 준비해놓고, 약을 먹고 세상을 떠납니다. 바라보고 있는 호세의 담담한 표정이 더욱 인상적이지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한 때 부부였고, 사랑했던 사이였던, 호세와 노라. 젊은 시절에 달콤했던 두 사람은, 노년이 되어서 이렇게 메마른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무덤덤하게 호세는 주변인들에게 연락을 취합니다. 아들 내외에게도 어서 오라고 전하고, 장례를 준비합니다. 물론 노라 역시도 죽기 직전에 이곳저곳 연락을 취해 놓아서, 사람들은 하나둘 모여듭니다. 영화는 뜻밖의 긴장감이 흐르게 되는데, 장례 준비가 생각처럼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무신론자인 호세와 달리, 아들 내외는 유대교 집안이고, 그러다보니 빠르게 장례가 거행되지 못합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소소한 일상들이 차분하게, 때로는 격정적이게 펼쳐집니다.

 

 오늘은 스토리라인 대신에, 각 장면을 중심으로, 몇 가지 주제들 위주로 써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유대교에서는 자살한 사람을 묘지에 안장할 수 없다는 "룰"이 있기 때문에, 노라는 묘자리를 쉽게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시신을 단장하고, 목걸이를 거는 등의 행위까지도 금지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시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묻어주지도 않을 거면서, 규정 하나 까다롭군요. 깐깐한 법칙들이 사람 잡는다는 게 이런 이야기 일 겁니다. 호세는 생각할수록 분통 터집니다. 전처의 안장도 이렇게 어렵다니, 방법을 계속 고민하던 호세는 자신이 죽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그 묘자리를 양보하면서까지, 전처의 마지막을 배려해 줍니다. 양보하고 희생하는 무신론자와 타협없고 희생없는 유대교인의 대비되는 모습은 상당히 통렬합니다. 종교의 중심은 "룰이나 기득권"이 아니라 "사람" 그리고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 종교가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또 다른 인상적인 장면은, 호세가 사랑했던 노라의 과거사 입니다. 한 장의 사진이 발견되면서 호세는 묻어두었던 분노가 일어나고, 죽은 전처가 어쩐지 다시금 짜증스럽게 느껴집니다. 다른 남자와 다정하게 찍혀 있는 사진. 분명히 이 젊은 시절은 이혼 하기 전이었는데, 이 여자 노라는 대체 누구를 만나고 있었단 말인가요. 알고보니 사진 속 남자는 "알고 지내는 의사 양반"이었습니다. 호세가 생각해 본다면, 노라는 잘 나가는 의사를 만나서 외도를 했던 것 처럼 느껴졌고, 자신의 이혼도 충분히 정당화 될 수 있었던 셈입니다. 호세는 더 많은 진실을 캐고 싶어서, 비밀스러운 노라의 보관함을 어떻게든 열어보려고 틈틈히 노력합니다. 쩝, 생각만큼 잘 열리지는 않네요.

 

 죽은 노라는 "그 의사 양반"의 입을 통해서, 진심을 말해줍니다. 의사는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노라는 나에게 한 번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네" 진실은 이런 거였습니다. 의사는 예쁜 노라를 좇아다녔고, 같이 만나기도 했었지만, 노라의 마음은 한결같이 호세를 사랑했던 것이었지요. 그럼 호세는 대체 왜 이혼했을까요? 그것도 후반부에 밝혀집니다. 자살시도중독에 우울증에 시달리던 노라의 모습을 호세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호세는 그래서 이혼을 결심하고 그녀를 떠났습니다. 더욱 슬픈 것은 남겨진 노라는 끝까지 호세를 사랑했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이혼한 이후로 호세에게 좀처럼 사랑받지 못했지만,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는 노라의 모습이 가슴 찡합니다.

 

 과연 진실을 알게 된 호세는 무슨 마음이었을까요. 미안함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더 잘해주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을지도 모릅니다. 젊은 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거칠게 싸우고 갈라섰던 것을 되돌아보면서, 호세는 고집스럽고 독단적인 자신의 모습을 탓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다 지나간 세월이고, 노라는 죽었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었지만, 저는 문득 이런 느낌도 들었습니다. "나의 마지막 길"을 배려하고 마중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랐던 노라는, 죽으면서 자신의 못다한 사랑을 이룬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호세 역시도 그녀가 잘 차려놓은 식탁을 바라보면서, 떠나간 노라에 대한 애증의 마음을 씻고, "그녀는 내가 태어나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깨닫고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살면서 누군가를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계산된 사랑이나, 편익과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사랑 받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그 때 당신이 있어서 내 삶은 참 행복할 수 있었어요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직 노년이 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진심이 묻어나는 사랑을 진하게 느껴볼 수 있었던 인상적인 영화 노라 없는 5일이었습니다.

 

 인간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랑 받고 싶어하는 존재임을 조용히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지요. 나이가 들어가도, 여전히 인간에 대한 가능성과 희망을 사랑하면서,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면서, 그렇게 하루를 행복하게 보낸다면 더 바랄 것도 없이 좋겠구나 싶었습니다.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