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기억하고 있는 여배우 마츠 다카코는 밝고 명랑했습니다. 일본 드라마 히어로에서 기무라 타쿠야와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재치 있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그게 벌써 한참 전이니, 확실히 사람의 느낌은 변하는가 봅니다. 영화 고백처럼, 상당히 냉정하며, 무서운 역할을 잘 할 수 있었을까 싶었는데, 아 정말 싱크로율이 엄청났습니다. 마지막 장면까지도 마츠 다카코의 표정 연기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영화 고백에 대해서 제가 언급하자면, 이 작품은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로 "철저한 복수극의 완결판"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질문을 던진다는 측면에서도 괜찮은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청소년 보호법이라는 방패로 인해서, 10대들의 범죄를 가볍게 면죄해 주는것이 올바른 행위인가?" 라고 정면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일부 막나가는 10대들이 보여주고 있는 잔혹한 행동에 대해서, 이 영화는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보여주마. 그리고 그 악역을 자처하면서 등장하는 선생님이, 주인공 모리구치 유코 (마츠 다카코 분) 입니다. 직접적으로 손대지 않고서, 철저하게 인간 심리를 이용해서, 복수극을 펼치는 느낌이 정말로 굉장했습니다. 공포나 스릴러물 좋아한다면, 이 영화 감히 추천합니다.
유코 선생님은 가장 소중했던 사랑하는 딸을 잃었습니다. 경찰에 의해서 사고사로 판명되었지만, 그것은 경찰 이야기이고, 진실을 집요하게 좇아간 유코는 마침내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가벼운 장난"으로 딸이 목숨을 잃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코는 차갑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 순간 범인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라고 진심으로 생각했음을 솔직하게 표현합니다. 이 영화는 이처럼 돌직구가 오고 갑니다. 유코의 선택은 현대판 독이 든 사과 입니다. HIV(에이즈)의 피가 들어 있는 딸기우유를 통해서 범인을 몰락시키는 것이 유코의 잔혹한 방법이었습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작전은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겼던 범인B군은, HIV우유를 마신 후 서서히 미쳐갑니다. 학교에도 당연히 나오지 않았으며, 청결 강박증에 시달리며 괴로워 합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B군, 그러니까 나오키군의 엄마가 보여주는 행동입니다. 엄마는 우리 나오키가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나쁜 아이를 만나서, 실수를 저질렀다며, 극렬하게 아이를 감싸고, 유코 선생을 맹비난합니다. 누군가의 목숨이 사라졌는데도, 그 책임이 있는데도, 단 한 마디의 사과를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유코의 잔혹한 행위 보다도, 나오키 엄마의 더 철벽같은 뻔뻔함이 무섭게 다가옵니다. 내 아이는 항상 옳다는 사고방식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 영화는 철저하게 보여줍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분명하게 혼내지 않는다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지 못하고, 그렇게 서서히,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의 경계가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유코는 더욱 차갑게 응대합니다. 나오키네 집에 동료 선생님을 매주 보냄으로서, 나오키가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보게 한 것입니다. 특히 반 친구들이 암호 형식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담아서 저주 담긴 응원을 선물하는 장면은 압권입니다. 나오키 엄마는 뒤늦게 의미를 깨닫고, 절규합니다. 마침내 자신의 어리석은 사랑이 자식을 살인자로 키웠음을 인정하고, 천국행 유서를 쓰지요. 하지만 전혀 엄마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정신줄 놓은 나오키는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으니까요. 나오키는 누군가의 소중한 생명을 빼앗은 대가로,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을, 제 손으로 잃었습니다.
씁쓸하면서도 당황스러운 것은, 나오키도, 그의 엄마도, 병원에 가서 현실을 마주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죽음까지 가면서도, "진심 어린 사과부터 할 생각"을, "현실을 제대로 볼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영화 고백이 주는 "진정한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반부터는 그야말로 조금도 눈을 떼지 못하고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잘못했다고 열번, 백번 빌어도 모자랄 판에, 남탓부터 하면서 변명하는 모습은, 인간의 치졸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남을 죽인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없으니까요. 웃으면서 남을 죽인 대가를 나오키는 지금 처절하게 돌려받았습니다.
자 이제 범인A군, 슈야를 살펴볼까 합니다. 그 전에 앞서, 잠깐 영리함에 대해서 고찰해 봅니다. 오래도록 내려오는 속담 중에는 영리함과 순수함이 같이 가기 어렵다는 것이 자주 이야기 됩니다. 순수할수록 바보 같기 쉬우며, 반대로 영리할수록 교활 하기 쉽습니다. 마음이 맑으면서도 영리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 영화 속의 유코의 전 남편처럼 매우 존경받는 인물일 테고요. 그렇게 볼 때, 슈야는 영리하면서 교활한 인간상의 극한지점에 서 있습니다. 슈야는 중학생의 레벨을 일찍부터 넘어섰고, (성적도 전교 최상위권이며) 남을 깔보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것을 인생목표로 살아가는 지독한 쾌락주의자의 전형입니다.
더욱 슬픈 것은, 그의 막장스타일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과거의 버려진 경험을 통해서, 형성된 삐뚤어짐이라는 것이 영화 속에서 밝혀집니다. 당연히 슈야의 행동들이 정당화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슈야의 행동동기를 어느 정도 파악할 근거를 갖게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 점은 유코 선생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왜냐하면 영리한 슈야는 HIV우유 가지고서는 조종할 수 없었던 비범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슈야를 쾌락주의자로 정의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자신의 웹사이트를 만들고, 관심에 열을 올리며, 마치 세상의 주인공처럼 살고 싶어하는 것이 오늘날 쾌락주의자의 큰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당장에 저만해도 수백개의 블로그 글들 중에서 이 부분은 좀 더 멋지게 써볼까 하는 유혹이 종종 찾아옵니다 -_-; 그런 욕심을 자제하지 못하면, 결국 조작과 위장을 낳기 마련이고요. 저는 그래서 인터넷세계는 장점이 많은만큼 허상도 상당히 많이 있는 영역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편입니다. 바꿔말해, 겉이 멀쩡한 사람도 사이버 악플러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영리하고 계산 빠른, 슈야는 결국에는 약점에 의해서 조종당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랑스럽게 존재를 인정 받고 싶어"하는 그의 심리 깊숙한 곳에서는,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미숙함이 발견됩니다. 홀로서지 못하고, 끝없이 의존하고 있는 모습이랄까요. 슈야는 자신이 아무에게도 사랑 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착각하면서 영화는 막바지로 치닫습니다. (극중에서 여친격인 미즈키까지도 멸시해 버리는 슈야의 교활함은 정말 흉측한 무서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이 주목할 것이라는 욕망에 눈이 멀어서, 정말로 미친 짓을 감행하지요. 이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용하는 유코 선생의 놀라운 복수극은 그렇게 마무리 됩니다. 이제 슈야 역시도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던 단 한 가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자신의 그 머리와 자신의 그 손으로 말이에요. 범인 A와 B 모두 "이에는 이"라는 복수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자주 인간에 대한 생각들이 왔다 갔다 합니다. 어떨 때 보면, 순수하고 맑은 인간의 모습에 한없이 감동하다가도, 어떨 때 보면, 위선적이고 교활한 인간의 썩어버린 모습에 한없이 분노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선한 아이들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길 거의 포기한듯한 나쁜 아이들이 있다면, 한편으로는 어른들을 부끄럽게까지 만드는 아이들의 올바른 모습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가혹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나이를 불문하고 대가를 치루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술을 먹었다고, 정신이 이상했다고, 나이가 어렸다고, 자꾸 봐주는 행태를 만들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장난으로 누군가의 목숨을 잃게 하고, 누군가를 괴롭히고, 누군가를 비웃는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분명하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 유코처럼 독한 방법을 쓰긴 어렵겠지만, 여튼 저는 유코 선생을 도저히 쉽게 비난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있단 말이에요. 범인은 그토록 잘 살고 있는데 말이에요. 이런 세상이라면 누구라도 죽은 딸을 생각해서라도,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동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죄의식 조차도 없는 범인 앞에, 유코는 초강수를 연발하며, 봐주지 않는 복수극을 마무리 합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대한 해석은 의견이 다양합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세계, 지옥 같은 현실에서 철저하게 반성하면서 살아보라는 미소와, 잔인한 복수를 끝마친 끝에 이제 완전히 버려진 아이를 보고 있는 슬픔이 세밀하게 겹쳐 있는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가 좀 어렵네요. 유코는 복수를 하면서도, 자신도 마음 한 켠에 일종의 부담감이 있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뿐입니다. 존경하는 전남편이 그토록 말렸던 것이 복수였건만, 유코는 부조리함을 그냥 놔두고 싶지 않았겠지요. 그렇게 볼 때, 극중의 슈야처럼 제도를 자기입맛대로 악용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현대사회에서 가장 질나쁜 인간"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영화 고백을 관통하고 있는 시선 "무책임하고 자기중심적인 세대"에 관한 강렬한 접근방법은, 좀처럼 뇌리에서 사라지지가 않습니다. 본디 자유라는 개념은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을 감당하는 범위에서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무책임한 자유와 나부터 라는 이기심이 만나면, 얼마나 공간이 지옥으로 변해가는지 영화는 아주 잘 보여주었습니다. 어쩌면 서로에게 손가락질부터 하기 바쁜, 현대 사회를 통렬하게 묘사하고 있는 작품일지도 모르겠고요. 인간은 반성하는 사고를 잃어버릴 때, 악마가 되어간다, 이것이 제가 느낀 감상평이네요.
마무리 하면서,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가? 결국 가정교육과 가정파탄이 문제가 아닌가?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고 있는 경쟁이 가득한 정글 같은 사회가 문제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경쟁사회의 끝판왕이 오게 된다면, 아마 영화 고백의 모습처럼 등장해서, 가장 약한 자를 끝없이 밀어서 넘어뜨리고, 강한 자는 지위와 위치를 이용해서 무죄판결을 받지 않겠어요. 그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어떤 모습들과 잠시 겹쳐 보여서, 저는 더욱 무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