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초한지 : 영웅의 부활 (The Last Supper,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4. 1. 10:37

 오늘은 좀 더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쓰는 편이 좋겠습니다. 흑흑, 포스터에 속았습니다. 200억의 제작비가 들어간 액션 블록버스터 라는 말은 반쯤은 "거짓말"에 가깝습니다. 절대로 자웅을 겨루며 피튀기게 싸우는 "액션"영화가 아닙니다. 영화 초한지 영웅의 부활은 상당히 이색적인 전쟁 영화입니다. 각 개인의 선택과 의문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는 듯 보였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논리대로 기록된다는 일반적 인식을 재확인 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빠르고 감각적인 내용을 너무 기대하다간, 실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하.

 

 다시 말하지만, 박력 넘치고 스피디한 전개가 아닙니다. 굉장히 무겁고 차분한 느낌을 영화 내내 이어갑니다. 이걸 버티지 못하면, 중간에 지루하다고 뛰쳐나갈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세 남자 (유방, 항우, 한신) 를 중심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주로 역사의 승자인 한나라 유방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으며, 유방 휘하에 있던 뛰어난 인물들의 처참한 마지막을 냉정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저는 단지 영화에서 느낀 인상적인 대목을 위주로 오늘 리뷰를 써볼까 합니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상대적으로 젊은 항우와 한신이 참 얼굴이 잘 생겼다는 것이... (농담입니다) 가장 먼저 읽을 수 있는 것은 유방의 슬픔과 두려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입니다. 이상하리만큼 이번 초한지 영웅의 부활에서는 웃는 모습이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당대 천하의 주인이 되었던 유방 마저도 철저하게 고독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황제라는 절대적 자리는, 절대적 고독을 준다는 것이 꽤 살벌하게 그려집니다. 영화에서 유방은 계속해서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피살될지도 모른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먼저 꿈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꿈은 현실적 경험의 연장선인 경우가 많습니다. 유방은 스스로 몇 번이나 죽을 위기와 수차례 연패를 경험하면서도, 끝내 황제가 되었습니다. 스스로가 말한대로, 한나라를 세운 것은, 유방의 혼자 힘이 아니라, 한신, 장량, 소하 같은 뛰어난 인물들과 함께 지혜를 모으고, 힘을 모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황제가 되어서 이제 엄청난 삶을 누리기 보다는, 불안에 비틀거리는 모습이 기묘한 느낌이었습니다. 죽을 날이 가까운 유방은 과거를 회상합니다.

 

 그 예전에 영웅들이 함께 모여서 뜻을 향해서 달려가는 그 모습이야 말로, 웃음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고 영화는 묘사합니다. 거의 유일한 맑은 장면입니다. 그 때에는 단 하나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진을 멸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장엄한 꿈과 패기가 넘쳤습니다.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심지어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지혜롭게 대처해 나갈 묘수를 찾아낼 만큼, 재기 넘치고, 활력이 넘쳤습니다. 하지만 정작 목표를 이루고 난 뒤에, 이들의 삶은 어쩐지 갈 길을 잃어버린 듯 휘청합니다. 인간의 욕망이란 정말 이런듯 합니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미친듯이 몰두하고 전력을 쏟다가도, 막상 해내고 난 후에는, 몰려오는 허망감에 몸을 가누기 힘들어 합니다. 만족하면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순간은, 어쩌면 완성이 아니라, "진행중 일 때" 오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즉 행복은 좋아하는 일, 꿈꾸는 일을 현재진행중 일 때, 곁에 있는 게 아닐까? 라는 메시지랄까요.

 

 자, 그럼 이제 잔혹한 정치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봅시다. 항우는 죽기 직전 이런 시를 지었다고 역사서 "사기"에 나와 있습니다. "오추마가 달리지 않으니, 이를 어찌 할 것인가. 우희야, 우희야,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 매력적인 그녀 우희가 (대사도 거의 없었건만) 자결하는 장면도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8년동안 70번 싸워서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던 항우는, 그 자만심으로 인해서, 몰락해 나가는 것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항우의 방심과 넓은 아량이 독이 될 수 있음을 묘사하고 있어서, 영화는 보는 내내 더욱 막막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 -_-;

 

 결코 경쾌하고 짜릿한 영화가 아니라니까요. 하하. 그렇게 볼 때, 항우와 달리 한고조 유방과 그의 부인 여태후가 보여주는 잔혹함과, 한신을 팽하는 모습은 굉장히 슬픕니다. 놀라웠던 것은 그래도 한나라 고조 황제인데, 중국 영화임에도 별로 그를 띄워주지 않습니다. 초반에는 막되먹은 난봉꾼 처럼 몰아붙이더니, 후반에는 무능하고 약한 황제라고 차갑게 묘사합니다. 보통 역사적으로는 자기밖에 몰랐던 항우와 다르게, 인재를 사랑해서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 유방이지만, 영화에서는 "운 좋았던 사람", "고독한 황제" 임을 조금 심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나마,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들 입니다. 건국 영웅 소하가 조작을 그만하고, 사실대로 이치에 맞게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지만, 이것은 그대로 묵살되면서, 기록은 승자에 의해서 덧씌워지게 됩니다. 이런 전통은 고대 역사에 거의 공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보통은 건국 영웅들은 아주 후한 평가를 받으며, 거기에 맞서 있는 세력들은 마치 죽어도 당연한 것처럼 악당 비슷하게 기록되는게 일반적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후반부에 한신에게 초점을 맞추며, 명장 한신이 그토록 반역스러운 인물이 아닐 수 있다고 강하게 변호하고 있습니다. 개국공신을 싹쓸이하는 전략에 "희생"되었음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영광은 함께 누릴 수 없다는 말까지 생각나면서, 초한지는 보고 나오면 왠지 마음 한켠이 씁쓸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극중에서는 제일 처신을 잘한 인물로 장량이 손꼽히지만, 장량이 아무리 눈물로 호소해도, 숙청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더욱 막막해집니다. 지금은 21세기, 저는 머리를 좀 굴려서라도 영감과 희망을 찾아내면서 마치고자 합니다. 과연 이 파워게임을 통해서 무엇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첫째, 모두에게는 올바른 목표가 필요하다 라는 사실입니다. 조직이 목표를 잃어버린 다는 것은, 동력기관 엔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목표가 명확하고 선명할 수록, 힘을 모으기가 쉽고, 추구해나가기가 쉽습니다. 이것은 개인도 마찬가지라서, 만약 어떤 계획이 있다면, 그것을 수시로 점검하고, 되돌아보는 연습을 함으로서, 선명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영화 속 장면들처럼 엉망이 되고, 잔혹하고 차가운 현실만 맛보게 될 뿐입니다.

 

 둘째, 생각, 특히 걱정과 두려움을 미리 가불하는 행위를 그만둬야 합니다. 우리는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미리 걱정부터 가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나 라면서 미래를 계속해서 불안해 합니다. 여태후의 대사는 대략 이러했습니다. "한신은 지금은 충성해도, 언젠가 돌아설 수 있어. 옛날 그가 항우 곁을 떠났던 것처럼." 이런 사고방식은 미래대비 측면에서는 좋지만, 자칫 잘못하다간 현실을 갉아먹을 수 있습니다. 연애를 예로 들면 이렇습니다. "그는 지금 나를 사랑한다지만, 언젠가 날 떠날 수 있겠지. 남자들이 다 그랬으니까. 다 똑같지 뭐." 만약, 이런 정도라면, 당연히 정신 차려야 합니다. 미래를 두려워 하면서, 현실을 내팽개치면, 그런 삶이 행복할 리가 없잖아요. 지나친 걱정은 별로 현실적인 도움도 해결책도 되지 못할 수 있음을 숙고해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욕심을 내려놓는게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반드시 경험하는 것 중에 하나는 "속상함" 이며, "섭섭함" 입니다. 내가 그토록 열심히 신경을 써가면서 해봤지만, 돌아오는 것이 거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고맙다는 소리 대신에 무관심이나 욕을 먹을지도 모릅니다. 가끔은 급하다고 해서 애써 도와줬지만, 낼름 잠수타버리는 사람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속상하고, 섭섭할지라도, 미련없이 후회스러운 선택과 과거를 정리하는 것도 지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반성은 하되, 과거에 지나치게 발목잡힐 필요는 없습니다. 다르게 말해, 과거의 성공도 충분히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갈 때, 겸허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항우나 유방보다 오히려, 공신들, 한신, 장량, 소하 같은 사람들이 저마다 선택하는 모습들이 마음에 남습니다.

 

 사람들이 체 게바라 같은 혁명가를 좋아하는 까닭은 그가 쿠바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핵심 멤버 였음에도,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10년도 채 안되어서, 볼리비아로 출발하며 그야말로 목숨 걸고, 또 다른 투쟁을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일국의 개국영웅처럼 화려하고 폼나지 않겠지만, 말보다 행동이 먼저 나가는 모습이 되기도 어렵겠지만, 적어도 주어진 삶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성공에 안주하면, 그 순간은 즐겁지만, 그 이후부터는 행복하기 어렵다는 것. 길을 걷고 있을 때가 행복하며, 산을 오르고 있을 때가 기쁘다는 것입니다. 정상에 도착했다면, 마음껏 상쾌함을 만끽하고, 다시 내려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런 겸허함이 있다면, 내려오는 길도 좀 더 즐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뜻하지 않게 피곤한 장문리뷰가 되었군요 :) 오늘은 여기에서 이만 줄입니다. / 2013. 04.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