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놀라운 영화 트루먼 쇼 입니다. 15년 전의 내용이라고 믿기지 않으며, 지금 현실을 놓고 봐도 더욱 굉장합니다. 젊은이들 이라면, 방송에 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 트루먼 쇼를 보라고 강추하고 싶습니다. 기본적인 내용은 트루먼 이라는 남자가 24시간 삶이 생방송 되고 있으며, 이것이 벌써 10,909일이나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전 세계의 시청자들도 워낙 많고, 트루먼의 중요한 이야기들은 많은 시청자들이 모두 알고 있을만큼, 트루먼은 시청자들과 함께 살아온지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들은 트루먼이 어떻게 태어났고, 무엇을 무서워하며, 어떻게 사랑에 빠졌고, 결혼 생활이 어떤지까지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트루먼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길었던 그의 방송계 일류스타의 삶은, 30년이나 되어서, 트루먼이 "뭔가 이상하다" 라는 의문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우선 왜 하필 30년쯤 되어서 의문을 나타냈을까? 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아니면 그동안 살아온 삶의 불만이 누적되고 서서히 폭발해서? 저는 이것을 트루먼이 "성인"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이란, 어느날 스무살이 되고, 성인식을 하고, 그렇게 한다고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삶에 대한 책임을 자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진정한 성인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혹자는 내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걸 살짝 다르게 말하자면, 적어도 트루먼에게는 매일 비슷한 삶과 달콤하지 않은 결혼 생활, 아무리 의지가 있다한들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그는 성인이 되어갑니다. 두 가지 질문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왜 이런걸까?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없을까?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그렇게 본다면, 영화 트루먼 쇼는, 인생의 다른 길을 향해서 끝없이 도전해 보는 인간의 열렬한 투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정해준 삶, "이렇게 가는게 좋은거야" 라는 방향에 대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건 당신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근거와 현실을 바탕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고 행동하는 게 "진짜 사람" 아니겠습니까. 트루먼 쇼가 묘사하듯이 이처럼 사람이 예측불가능하게 행동할 때, 최고 시청률이 나오고, 최고의 순간이 나온다는 게 재밌고도 기묘한 통찰입니다.
물론 약속을 잘 지키고,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입니다. 그런데 정해진 길만 걷고, 뻔한 삶을 반복하다가, 어느날 죽음 앞에 선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나아가 남들을 기쁘게 하고, 희망과 즐거움을 주는 스타를 자처하면서도, 정작 본인의 삶이 불행하고, 절망적이라면, 이건 심각한 모순이 아닐까요? 트루먼은 이제 "브레이커"가 되기로 했습니다. 최고의 생방송 인기프로그램을 벗어나는 도전이 시작됩니다.
한편 영화가 놀라운 것은 각종 간접광고 때문이기도 합니다. 현대 드라마 제작에 관해서 이상호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드라마를 처음 기획할 때부터 시놉시스 들고 대기업을 찾아가서 돈을 당겨 와야 해요" 드라마와 영화를 만드는 것은 자본이기 때문에, 끝없이 자본에 우호적인 내용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현실보다도 당연히 빠릅니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쓰기 전부터, 이미 드라마에서는 잘 나가는 역할의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다들 쓰고 있습니다. 주연들이 입고 있는 옷이나 장신구는, 벌써 일주일 안에 품절되어 버립니다.
드라마의 캐릭터들이 존재 자체로 "움직이는 광고"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광고를 위해서 느닷없이 특정한 장면들이 강조되기도 합니다. 그 이유가 처절합니다. 스폰서로부터 돈을 당겨 오지 않으면, 프로그램이 제작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시청률이 중요한 것도, 사람들이 안 보면, 광고 판매 효과가 떨어지고, 스폰서를 구하기 어렵고, 극단적인 경우 도중에 단축되거나 조기폐지 되기도 합니다. 아마 영화에서 조금 우스꽝스럽게 나오는 커피만 해도, 영화 속 세계에서는 아마 엄청난 판매를 자랑하고 있었을 겁니다. "나도 먹어봐야지, 나도 경험해봐야지." 같은 유혹들은 영향력이 대단합니다.
자 다시 트루먼으로 돌아와, 한 세계를 벗어나는 두려움은 엄청나게 큽니다. PD가 말한대로, 어쩌면 트루먼은 지금의 생방송 되는, 부족할 것 없는 모습에 만족하기 때문에, 지금껏 벗어나지 않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영화 에서는 트루먼이 다른 세상으로 돌진하는 강력한 동기로 "사랑"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진짜 사랑하던 사람을 놔두고, 이 이상한 아내와 살고 있는게 과연 맞는지, 트루먼은 계속해서 회의하고 고민합니다. 가족이 모여 같이 사진을 보는 장면이 참 인상적입니다. 아내와 어머니는 억지로 웃는 것처럼 보이고, 트루먼은 사진을 보면서도 추억을 즐거워 하지도 않고, 웃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짜로 행복했던 기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트루먼에게 진짜로 행복했던 기억은 뭔가요? 첫눈에 반했던 그녀와 짧게 보냈던 시간을 그는 잊지 못합니다. 적어도 트루먼에게는 양념 묻은 가짜 사진보다는,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진짜 추억이 더 소중했던 것입니다. 그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 각종 잡지 사진을 찢어내서, 기억을 더듬어 가며 조금씩 조금씩 끼워 맞춰보는 모습은 영화 초중반의 하이라이트 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아니 왜 사람들은 죄책감도 없이, 저렇게 다들 사생활을 지켜보는데 동참하는가? 누가 와서 말려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진정한 경고는 여기에 있습니다. TV를 10,000일 넘게 보고 있으면, 거기에 세뇌되어 갈 수 있습니다. 습관적, 중독적으로 보는 TV시청은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대신에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더 재밌고, 더 자극적이고, 더 화끈한 채널은 어디 없나...? 1초에 하나씩, 0.5초에 하나씩, 채널이 돌아갑니다. 그래서 잔혹하게 말하자면, 시간때우기식 TV시청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소름 돋을 만큼, 극소수의 사람만이 트루먼의 삶을 진심으로 걱정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재밌거나 감동적이면 그만인 것입니다. 아휴... 쓰면서도 무섭습니다 :)
끝으로 트루먼의 용기에 대해서도 감탄과 애정어린 눈물을 표합니다. 아마 더욱 시간이 흐르면, 자본은 해와 달, 날씨까지도 관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쉽게 말해 환경을 조작해 사람을 유도하는데 능숙합니다. (예컨대, 기술이 발달하면 날씨와 상관없이 스포츠 경기를 열 수 있고, 장소와 상관없이 스포츠 경기를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저녁에 방송했던 드라마를 혹시 놓쳤더라도,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낮에 찾아보면 됩니다. 방송 시간은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이런 특성이 있어서, 생방송과 리얼리티가 연결될 가능성은 여전히 높아보입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트루먼처럼 자본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정직하게 표현할 것 입니다. 제게 있어 이 영화는 두 가지를 크게 상기시킵니다. 첫째, 앞으로의 세상은 높은 사람들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안주하고 편안한 삶을 거부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과거부터 미래까지 영원히 있을 것이며, 오늘도 그런 사람들은 싸우고 있을 것이다! 매우 감동적이고, 영감으로 가득찬 영화, 지금까지 명작 트루먼 쇼 이야기 였습니다. 미지의 세로운 세상을 향해서, 그 문을 열어젖히는 용기가 있기를, 항상 응원합니다. / 2013. 04.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