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아두었던 보고 싶은 영화는, 시간이 흘러 결국 품에 안겨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기대만큼, 힘겨웠던 영화였고, 영어제목처럼 숨쉬기 힘든 갑갑함이 머리 끝까지 차오르는 영화 입니다. 네, 어디까지나 칭찬하는 의미에서 입니다. X같은 현실 앞에서, 주먹을 휘두르면서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 하는 말마다 욕설을 덧붙여주시는 남자의 이야기 입니다. 폼나는 이야기도 아니고, 얻어터지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맑은 이야기도 아닌데, 도대체 이 영화 똥파리가 좋은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봅니다.
사람은 성장 배경이 있어서, 조용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어서? 글쎄요, 이해는 할 수 있다지만, 폭력이 쉽게 용서되는 행위는 아닙니다. 주인공 상훈 곁에는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아무도 없어서? 그래도 상훈은 주변에 챙겨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름 여자 친구도 생기고 말이에요. 저는 두 가지 이유에서 상훈이 좋았습니다. 첫째로,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눠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며, 둘째로,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의 마음이 없는 사람이 요즘은 참 많기 때문에, 뻔뻔하고 위선적인 사람들 보다는, 솔직하고 거침없는 상훈이 더 살갑게 느껴집니다.
상훈은 별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공부와는 담을 쌓은지 오래이고, 그나마 용역 깡패 세계에서는 실력자로 자기밥벌이는 하고 있습니다. 상훈은 언제나 대화 보다는 욕이 먼저이고, 마음에 안 들면 주먹부터 날립니다. 아군이고 뭐고 없습니다. X같은 세상에서, 상훈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가만 있는 행인에게도 시비걸 수 있는, 불행으로 범벅이 된 인생이라 하겠습니다. 나쁜 아버지를 두었고, 엄마와 여동생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상훈은, 좀 차갑게 말하자면 "살아가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행복한 일상? 배부른 소리하고 자빠졌네. 라고 상훈은 냉소적으로 쏘아붙일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그런 상훈도 조카인 형인에게는 참 잘해주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소통하는 방법이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만, 어쨌든 상훈은 조카가 잘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혼한 누나는 먹고 사느라 바빠서 아이를 돌보기가 힘들기 때문에, 외톨이로 지내는 조카에게, 유일하게 애정과 관심을 쏟는 인물이 깡패 상훈이라는 점은 상당히 진지한 통찰을 줍니다. 누가 아이를 돌볼 수 있을까요? 아이는 갈 곳이 없어서, 놀 수가 없어서, 삼촌 다리를 붙들고 가지말라고 매달리는 장면은 가슴이 시리도록 아픕니다.
그러고보면 참 아이 때부터 놀기가 어렵습니다. 돈이 많은 집이라면 아이들이 학원 다니느라 바쁘고, 돈이 없는 집이라면 혼자 덩그러니 남아 놀 수가 없고, 우리 사회는 어쩌면 아이와 노는 것을 사치로 느낄만큼, 빠르고 바쁘게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답이야 정해져 있지요. 아이와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서 뼈빠지게 일하고 있지만, 정작 그동안 아이는 쓸쓸한 현실에 물들어 간다는 모순이 참 아프게 다가옵니다. 외톨이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상훈은 잘 알고 있었을테고, 그래서 조카 형인을 혼자 두지 못했을 겁니다. 유치원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에게 냅다 격투기 기술을 선보이는 상훈, 복면까지 써가면서 기쁜 하루를 만들어 보고 싶었던 그 마음은 이 시대의 "천사 삼촌"이 따로 없습니다.
한편 상훈의 밥벌이는 오늘도 전쟁 입니다. 망설임 없이 주먹부터 나가고, 무섭고 잔인할 수록, 일의 성공률이 높아집니다. 할 줄 아는 건 주먹질 뿐이고, 이 생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상훈은 다르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못합니다. 심지어 일을 그만두는 상황에서도 상훈은 "앞으로 어떻게 할꺼냐고? 이제 몰라. XXXX." 라고 말합니다. 사채업자 친구가 고기집을 차릴 현실적 계획을 세워놓은 것에 비한다면, 상훈의 머리는 폼으로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계산적이지 않는 상훈이, 저는 참 좋았기에 그를 위한 변명을 준비했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슴이 비어있는 사람이라면, 머리 좋은건 필요 없다." 이 말을 뒤집어서 저는 상훈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머리는 폼으로 있는 것처럼 답없는 사람일지라도, 따뜻한 가슴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가능성이다. 라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옷은 좀 추잡해 보이지만, 아이의 옷은 "유행하는 플스"를 입히고 싶어할 만큼, 상훈의 진심은 애틋합니다. 여자 친구와의 데이트 물주를 자처할 만큼, 그는 가진 것이 있으면 꼭 누군가에게 나눠주고 싶어 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접근하며 누나식으로 말할 수도 있겠지요. "제발 이러지 말고, 네 인생부터 챙겨. 옷도 사 입고, 행복하게 좀 살아봐" 그럼에도 상훈은 이것을 거부합니다. 영화에서 상훈은 통장 만들기를 참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오고, 게다가 돈다발을 방에 던져버리는 장면도 나오는데요. 저는 이 모습이 어쩐지 "돈과 욕심에 대한 혐오"로 느껴졌습니다. 바꿔 말해, 어린 시절 상훈의 부모가 싸웠던 결정적 이유가 돈과 욕심 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가정파탄의 원인제공을 했던 돈을, 그리고 아버지를, 상훈이 좋아하기는 힘들었을테고요. 달콤한 사탕 하나와 수표를 바꾸는 장면은 상징적으로 느껴집니다. 가정이 산산조각 나버린 그에게, 종이쪼가리는 초라한 가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 이제 사랑스러운 당돌한 그녀 "연희"를 생각해 봅니다. 이 집안도 참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는 베트남 파병에 갔다가 거의 불구가 되었고, 어머니는 돌아가신지 오래입니다. 월세가 밀리기 시작한 작은 집에서, 빛나는 훈장을 뒤로 한채, 지금 현실은 "당장 방빼" 직전 입니다. 남동생은 욕심으로 눈이 멀어 괴물이 되어가고, 이런 상황에서 미치지 않고, 끝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살아가고 있는 "연희"야 말로, 진짜 영웅 같은 인생입니다. 집에 가는 것이, 마치 지옥문을 여는 것처럼 느껴질 때, 행복이라는 말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에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가정이 중요합니다 라는 공익적 메시지 보다는, 영화 똥파리 같은 잔혹극을 보는 것이, 가정의 평화가 얼마나 인간에게 중요한지를 철저하게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 연희와 상훈이 만나서 통곡의 눈물을 쏟는 장면은, 이들의 삶의 무게가 얼마나 가혹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태어나면서 선택할 수 없는, 가족을 잘못 만나서, 불행을 온몸으로 견뎌내면서 살아온 삶이란, 그 자체로 상처투성이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욱 영화 똥파리가 놀라운 점은, 모두가 좋아하는 싱그러운(?) 해피 엔딩으로 전개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마치 뿌린대로 거두는 듯, 상훈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부메랑처럼 맞으면서 쓰러집니다. 남은 사람들은 새출발을 시작하겠고, 연희와 상훈 누나가 잡고 있는 두 손이 희망이 될 수 있겠지만, 상훈의 인생은 행복함을 맛보지 못하고, 끝나버린 것 같아서, 자꾸만 슬프게 느껴지던 영화 였습니다. 연희의 남동생은 깡패 생활에 물들어서 또 다시 불행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들어 가겠지요. 행동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전적으로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라고까지 생각되었습니다.
내가 연희였다면? 저는 연희처럼 억세고 강인한 의지로 살아가지 못했을 거 같습니다. 여하튼, 연희에게도 마침내 좋은 사람이 곁에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커다란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끝으로, 상훈의 행동이 변한 동기에 대해서 생각해보며 마칠까 합니다. 상훈은 마침내 알게 되었을 겁니다. 잘못된 일을 하면서 행복한 인생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 그리고 남을 두들겨 패면서 사랑 받는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사실을 늦게나마 알게 되었을 겁니다. 사랑은 내가 요구할 때 받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고 나눠줄 때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제가 생각해 본, 상훈 인생의 가장 눈부신 순간은, 조카가 기뻐서 그에게 손을 자연스럽게 흔드는 장면이었습니다.
이제 결론.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조심하기. 좋은 부모가 되기. 고마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잘못된 일을 하면서 폼잡거나 착각하지 말기. 비록 영화는 처참하지만, 보고 나면 이렇듯 다양한 여운을 안겨주는 멋진 영화 똥파리 이야기 였습니다. 리뷰를 마치고 나니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를 좀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나눠주는 사람, 반성하는 사람은 제 이상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하. / 2013. 04.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