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오블리비언 (Oblivion, 2013) 리뷰

시북(허지수) 2013. 4. 13. 17:03

 제작년도에 2013이 들어가는 첫 리뷰가 되겠네요. 두 명배우의 이름값 만으로도 꼭 보고 싶었는데, 지인을 설득해서 아침부터 즐거운 영화관 나들이를 하고 왔습니다. 이래저래 행복한 주말이군요. 오블리비언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나뉠 것 같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당장 저와 지인 두 사람만 해도 의견이 달랐고, 뒷자리에서 보던 두 외국인 친구는 나가면서도 서로의 의견을 말하느라 정신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열린 구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주 쉬운 스토리 구조를 밀어붙이면서도, 자유롭게 생각할 공간을 남겨두었다는 점입니다. 리뷰를 재밌게 써봐야 할텐데 말이에요.

 

 어떤 분들은 반종교적인 영화라고 접근하는 분들도 계시던데, 저는 영화에 대해서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게 원칙적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영화에서 인간의 경이로운 의지에 감탄했기에, 오히려 이토록 인간이 놀랍다는게 어쩌면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이야말로 신의 최고 걸작이 아닐까 싶을 만큼 놀라웠습니다. 길들여지지 않는 인간, 세뇌되지 않는 인간, 의문을 품는 인간, 왜 라고 생각하는 인간, 정말 멋집니다. 책을 들고, 상상하는 순간, 압도적 권력 앞에서도, 그것과 맞서는 것이 바로 "인간의지" 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너무 판타지 같으며, 비현실적인데다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전개들이 짬뽕처럼 들어가 있다고 아쉬워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SF영화는 원래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므로, 저는 지나치게 정밀하거나 현실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본도 의도적으로 쉽게 유추할 수 있도록 다듬었다고 느껴졌는데, 친절한 톰 아저씨 만큼이나, 친절한 전개력 덕분에 보기 편했습니다. (그러므로 촘촘한 전개나, 과격한 액션을 기대하던 분들이라면 실망할 가능성도 약간 있겠습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감독이 조교수 경험도 있고, 미명문대 기계공학 디자인과, 건축대학원 석사까지 마친 탓에, 그 감각적인 디자인 센스가 화면 한가득 마음껏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 저는 정말 좋았습니다. 엄청난 대규모 전투장면은 없더라도, 미래적 기계들이 멋지게 날아다니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에서 영감을 얻었던 부분에 대해서 거침없이 칭찬 퍼레이드를 펼쳐보겠습니다. 저는 친절한 톰 아저씨를 좋아하지만, 어쨌든 홍보 알바생은 아닙니다 (웃음) 저는 이 영화의 절대악을 이른바 "빅브라더"로 지칭하겠습니다. 뭐 뻔한 리뷰가 되겠네요. 읽기 쉬운 글이 좋지 않겠어요. 보기 편한 영화에다가 피곤한 글을 쓴다면 조금 미안한 기분일테니... 전적으로 제식대로의 감상이니, 여러분도 각자의 느낌을 소중히 여기기를 부디 당부드립니다.

 

 어떤 권력집단이 정보를 통제하면서,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해서, 인간을 부품처럼 다루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라도 분노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화를 거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사회화를 통해서, 착한 인간이 되도록 교육하고, 대들어서는 안 된다고 길들여 나간다면 어떨까요? 의문을 품지 말고, 주어진 것들을 최대한 외우고, 익히라고 강조하면 어떨까요? 그렇습니다. 규정은 "신성시"되고, 규정을 위반하는 것은 "죄악시"된다면 어떨까요? 복종에 익숙해진다면, 그 권력집단은 만족스럽게, 그리고 안정되게, 자신의 배를 불려갈 것이며, 부품이 된 인간은 최대한 이용당하다가, 불필요하게 되면 다음 번호로 교체될 것입니다. 대기자는 많으니까요.

 

 억누르고 싶을 때, 지배층이 잘하는 특징이 있는데, 철학을 비롯해 생각하는 학문들은 없애버리고, 기술을 교육하는 기관을 장려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발전된 기술을 통해서 우리에게 봉사하게끔 만들면서도,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는 "oblivion(망각)" 시키는 것입니다.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고, 문제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이들은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기 어렵습니다. 근본적으로 조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잭 하퍼는 말합니다. 나는 이 곳에서 살고 싶은데... 하지만 권력은 말할 것입니다. "더 좋은 곳이 있으니, 시키는대로 하자."

 

 그렇게 잭은 노예처럼 살아가다가, 마침내 "저항세력"을 만나서 눈을 뜹니다. 이름부터 폼나는 "말콤 비치"의 등장입니다. 그는 적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라고 말합니다. 직접 현실을 똑바로 보라고 말합니다. 방사능 구역이 무섭겠지만, 그 정보가 진짜인지 두 발로 걸어들어가 보라고 말합니다. 바꿔 말해, "착하게 살지 말고, 순종하며 바보처럼 살지 말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느껴보고, 적극적으로 함께 바꿔보자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지구인들의 반격, 혁명의 시작입니다. 소수가 엄청난 탐욕으로 쓸어가는 것에 대하여, 피폐한 다수는 이렇게 온몸으로 말하는듯 보입니다. "제발 좀 꺼져줄래! 이 XXX야!"

 

 인간은 그렇게나 멋지고 강합니다. 기억이 사라져도, 흔적은 남아있어서, 몸이 기억할 때도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면, 그가 기억을 잃어버려 기억상실이 되어도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수많은 세포 덕분에 완전한 삭제가 안 되는 겁니다. 바탕을 깔고 본다면, 인간을 그정도 수준까지 만들어 낼 수 있었다면, 기억 역시도 완전한 통제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영화에서 보여주듯이 잭 하퍼가 중요한 순간마다 내뱉는 대사들은, 그가 평소에 해왔던 말들이 튀어나옵니다. 다시 말해, 저마다의 인간은 그토록 특별하고 반짝이는 별처럼 아름다운 셈입니다.

 

 신을 만나러 출발하는 잭 하퍼는, 고대 로마의 영웅으로 탄생합니다. 어차피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나는 누군가에게 더 좋은 세상을 만나게 해주고, 장렬히 전사하겠다고 포효하는 모습은 얼마나 멋진지 모릅니다. 인간을 세뇌하는 모든 것들이여, 인간을 조종하는 모든 것들이여, 인간을 부품처럼 여기는 모든 것들이여, 엿 먹어라!!! 입니다. (아 영화 대사를 빌려왔습니다. 하하. 저는 부드러운 사람입니다!)

 

 사실 너무 쉽게 쓴 리뷰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처럼 현명한 시대에 정보조작이 얼마나 되며, 인간이 세뇌될리가 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약한 모습도 있어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고 합니다. 내가 이토록 힘들게 살아도, 나는 대단한 자유인 이라고 착각하기도 쉽다는 이야기 입니다. 실제로는 통제 속에서, 꼬박 꼬박 누군가의 배를 채워주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아무 의심도 없이, 망각된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것" 이 아닐까요. 작가 로베르트 무질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진리의 목소리는 의심 섞인 낮은 톤이다". 확고한 목소리로 강력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콤 비치의 목소리가 너무 좋았습니다. 의심 섞인 낮은 톤으로, 인간을 이끌면서, 진실을 향해 다가가고, 또 다가가고, 끝없이 도전하기 때문입니다.

 

 선을 넘어가보는 것이 우리를 바꿀 것입니다. 왜 라고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우리를 생각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 영화는 무려 50번째가 되어서야 진실을 되찾는 모험이 시작되었다고 보여줍니다. 그 쯤에 와서야 그는 책을 집어 들고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똑같은 일상만 50일 넘게 계속된다면, 우리는 TV 대신에 책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불행한 삶은, 우리가 행동할 때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콤 비치! 그 긴 세월의 투쟁에 찬사를 보냅니다. / 2013. 04.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