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로마 위드 러브 (Rome with Love, 2012) 리뷰

시북(허지수) 2013. 4. 25. 19:31

 아름다운 로마의 풍경과 훌륭한 음악들, 뛰어난 배우들의 멋진 연기와 다채로운 인생들까지. 로마 위드 러브는 "인생에 대한 반가운 속삭임" 같은 영화입니다. 감수성 풍만한 영화이고, 알 수 없는 인생을 유머스럽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저는 직감적으로 영화가 끝나고 생각했습니다. 여자분들이 더 좋아할테고, 나이가 들수록 좋아할만한 영화겠군! 일편단심 따뜻한 사랑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몇 배나 더 아슬아슬하고 묘한 동화 같은 이야기라 할 수 있으니까요. 이 독특한 느낌을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굳이 결론부터 정의하자면, 어차피 후회 없는 인생이 불가능하다면, 하고 싶은 것을 미루지 말고, 즐겁게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다양하고 개성 강한 인물들 중에, 누구에게 초점을 맞추는가에 따라서, 영화는 다양한 느낌을 선사할텐데요. 저는 특히 레오폴드가 정말 유쾌했다고 생각합니다. 자고 나니 갑자기 스타가 되었다는 인생.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았던 삶을 누릴 수 있을 때, 거기에 어떻게 적응해 나가는지 흥미롭게 그려지고 있으니까요. 이제 본격적인 영화 속으로 떠나보겠습니다.

 

 

 레오폴드부터 살펴볼까요. 유명해지면, 정말 사소한 것까지도 기사화 되고, 관심거리가 됩니다. 어떤 스타일로 입을 것인가부터, 올이 나간 아내의 스타킹까지, 무엇이든 문화가 된다는 점은, 일종의 사회 풍자라 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유명인사의 삶이 피곤해질 수 있음을 재밌게 보여줍니다. 더욱 예리한 것은, 그런 유명세 역시도 거품처럼 꺼지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성공적인 순간도 "지나가는 한 때" 인지 모른다는 점은, 나이 드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독특한 시선으로, 유명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도, 그 당시를 피곤해 하는 이중적 심리까지 보여줍니다. 사람은 참 욕심쟁이가 아닐까요. 영원히 유명해 지기를 바라고, 항상 편안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에이, 그런 삶은 없습니다. 하하.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사실상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잭과 모니카의 달콤한 불장난은, 두근두근하면서도 보는 내내 이상한 기분을 들게 합니다. 매력적인 여자 앞에서 정신줄을 놓는 잭과, 친구의 남자에게 능숙하게 작업을 거는 모니카를 보면, 어쩌면 참 비슷한 사람끼리 만났구나 싶기도 합니다. 중년의 건축가 잭은 이 모습을 마치 중계방송처럼 해설해주는데, 한마디로 "남자들아, 정신 좀 차려라" 입니다. 더욱 재밌는 것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몸은 이미 입술박치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 그래요. 언제나 머리 보다는 몸이 먼저 튀어나가기 마련입니다 :)

 

 네, 그러므로 이건 잭의 여친인 "샐리"의 실수 입니다! 남자를 믿다니! 남친에게 예쁜 친구 모니카를 데리고 로마 구경을 시켜주라고 권하다니! 내 남자가 설마라는 과도한 자신감이 낳은 "참사"를 관객은 재밌게 혹은 씁쓸하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미인에게 넋을 잃게 되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가 아닐까요. 젊음과 아름다움은 이 시대 최강의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남자인 잭만 그런게 아닙니다! 영화배우에 마음을 빼앗기며 갈등하는 여인도 있고, 모두가 저마다 욕망을 갖고 있고, 거기에 약한 셈이지요. 훈남 미켈란젤로의 장의사 아버지는 중년임에도 노래를 한 번 불러보겠다며, 과감하게 무대에 오르기도 합니다.

 

 감독이기도 한, 제리(우디 앨런)의 말이 맞습니다. 은퇴하고 싶지 않다고!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해보다가 죽겠어! 재능이 있음에도 그걸 시도조차 안한다면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환경? 그래, 그 잘난 환경이 문제라고? 그렇다면 어떻게든 되는 환경을 만들어 보라고! 그래서, 영화의 제리는 특급 샤워 박스를 동원해서, 장의사 오페라 가수의 꿈을 열렬히 응원합니다. 등장할 때마다, 코믹해 보이는 장면들이지만, 커다란 통찰을 주기도 합니다. 인생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아무렴 뭐 어때? 라는 시선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좀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적어도 장의사 아버지에게는 "평생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 위해서, 좋은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 "한 번 해보겠다"는 그 용기와 열정이 참 멋지게 보였습니다. 이건 질문이기도 합니다. 평생 작은 샤워실 인생으로 만족할 것인가? 더 넓은 무대를 향해 용기를 내어볼 것인가?

 

 또한 이 작품은 인생에서 정답은 없으며,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음을 그저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가슴에 품은 욕망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젊은 여배우 모니카는 걸려온 전화 한 통에 한없이 기뻐하며, 당장 미국과 일본으로 갈 생각에 들떠 있습니다. 그에게 인생이란, "영화배우로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노년의 제리에게 인생이란, "은퇴없이 계속 시도해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 입니다. 이 질문은 고스란히 관객의 몫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인생이란 무엇인가?

 

 뭐, 우중충하고, 달달하지 못하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산만하고 우물쭈물하다고 해서 스스로를 비난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고, 저런 사람이 있으니까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알 수 없는 인생에서 좌절하지 않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 한 때 유행하던 표현을 쓰자면, "인생? 절대 좌절금지야!"

 

 아, 그리고 소소하게 놀랐던 점은, 로마의 풍경이 참 깨끗하고, 사람들이 길을 묻고 꼭 "그라찌에"라고 감사를 표하는 지점입니다. 작은 차이지만, 타인에 대해서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문화가 참 좋아보였습니다. 또한, 2인승의 귀여운 경차들도 많이 보이더라고요. 즐겁고 유쾌하게 사는구나 싶은 유럽적 분위기는 낭만을 불러일으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소박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인생의 희망사항이 있다고 한다면, 과연 우리는 그 한 사람의 희망을 얼마만큼이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요? 무엇인가에 반쯤 눈멀어서, 혹은 그려놓은 판타지에 젖어, 상대방의 진심을 잘 모르고 있는건 아닐까요? 우리는 더 많이 물어보고, 더 많이 듣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상대방이 내 뜻대로 움직이기만을 바라지 말고,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그것을 함께 이루어주는 관계로 발전해 나간다면, 좋은 인간관계가 될 것입니다. 불운도 어쩌면 행운과 함께 찾아온다고 속삭이는 감성 코미디 영화, 로마 위드 러브 였습니다. / 2013. 04.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