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영화 피아니스트 (The Pianist, 2002) 리뷰

시북(허지수) 2013. 4. 29. 14:57

 꼭 보고 싶었던 영화 피아니스트 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관련 영화로는, 인생은 아름다워, 쉰들러 리스트와 함께 손꼽히는 전설의 명작이지요. 전쟁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슴 뭉클함을 넘어서,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극찬하게 됩니다. 절대로, 절대로 울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하고, 영화를 보았지만, 가슴을 저미는 전율과 따뜻함에, 감정을 제대로 주체할 수 없습니다. 영화 포스터의 장면대로 입니다.

 

 건물이 폐허가 되고, 모든 것이 붕괴되고 불타버리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완전한 절망 가운데, 홀로 버려져 있다고 하더라도, "한 인간"이 살아서 끈질기게 서 있다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란, 여전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순간에도, 절망과 무기력함에 무릎꿇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순간에도, 따뜻한 마음과 친절한 정신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권력과 돈에 미친 사람들이, 설령 광기를 저지를지 모르나, 사람들의 온전한 마음이 연결되어 나간다면, 삶을 얼마든지 가치롭게 만들어 갈 수 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화 피아니스트는 폴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 스필만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스필만의 책은 공산주의 검열 때문에, 1998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세상에 제대로 빛을 보게 되었는데, 이게 뛰어난 걸작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1939년 전쟁의 포화 속에서, 폴란드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유대인들은 강제로 게토에 수용되며, 기약없는 어두운 날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꾸만 어디론가 이동되는데, 이른바 "돌아오지 않는 열차"를 타게 됩니다. 유대계 였던 스필만의 가족들도 예외가 아니었고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스필만은 그 눈부신 재능으로 인해서, 간신히 죽음 직전의 순간에서 빠져나오게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스필만이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의 선의"에 의해서 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필만을 세심하게 도와주는지 모릅니다. 유대인을 함부로 돕다가는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스필만을 살려보기 위해서, 할 수 있는데까지 그를 돌봐주고 도와줍니다. 지하 비밀 통로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스필만의 신세는 절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더욱이 이 영화가 강렬한 것은, 먹는 행위의 고결함에 대해서, 적나라할 만큼 철저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한 끼, 한 끼, 그 식사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한 시간들인지 피아니스트를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스필만은 진짜로 "먹고" 살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먹을 게 전혀 없다보니, 싹이 난 감자를 먹고, 병에 시달리고, 또 병원 구석에서 깨끗한 감자 2개를 발견하자,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은,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전혀 인간을 위대한 존재로 과장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약하고, 굶주림에 시달려야 하고,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게다가 어떤 부류의 인간들은, 스필만의 이름을 악용하면서, 도와주겠다고 해놓고, 간단히 뒤통수를 때려버립니다. 전세계에나 있는 이런 사람들을 "배신의 아이콘"으로 부를 수 있는데, 돕겠다고 말만 하고, 나몰라라 하고 무책임하게 도망가버리는 모습은, 보면 볼수록 끔찍하고 화가 납니다.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스필만이 살아갈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어쩌면 "기적"이었는지도 모르지요. 다행히 배신자들의 위선은 결국 들통나기 마련이고, 스필만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끝까지 몰래 몰래, 그에게 후원함으로서 스필만은 목숨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피아니스트 스필만 만큼이나, 사람들의 선의가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 것인지를 집중조명해 줍니다.

 

 영화에서는 스필만이 지독하리만큼, 강한 정신으로 삶을 향해서 걸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절뚝거리는 다리와 초췌해진 몰골임에도, 그는 음식통조림을 필사적으로 사수해 나갑니다. 그 내면의 동기가 저는 무척 감동적이었는데, 아무래도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나를 도와주고 있는데, 내가 여기서 절망하고 좌절해서야 안 되잖아. 게토 사람들이 총을 들고, 끝까지 저항해 나가는 모습을 선명히 바라보면서, 스필만 역시 극도로 곤란한 환경에서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정신"을 유지해 나갔다고 생각되어 졌습니다.

 

 나치 독일의 장교를 만나는 후반의 명장면은 눈물 없이는 보기 어렵습니다. 스필만은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정신력은 전혀 오염되지 않았습니다, 혼신의 힘으로 연주하는 선율은 적국 장교의 마음을 사로 잡습니다. 호센펠트 대위는 누구보다 친절한 태도로 스필만에게 모든 것을 다해서 챙겨줍니다. 가장 맛있는 것을 선물해 줍니다. 추위를 걱정하며, 자신의 최고급 옷까지도 던져주고 갑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국적이나, 소속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 라고 생각합니다. 이기심과 욕망으로 가득차 나만 잘살자 라는 생각만이 전부인 인간이라면, 그가 무슨 일을 하든, 그가 무슨 나라 사람이든, "인간으로서 실격"이 아닐까요? 반면에, 타인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고, 입장을 배려할 수 있으며, 그 사람을 열렬히 응원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이야 말로 "세상의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게 한 가지 쯤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재능이 있다면 가장 좋겠지요. 그러나 설령 나에게 눈부신 재능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좋은 사람을 응원하고, 살릴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공부를 하고, 연습과 훈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더욱 노력하고, 나에게 맞는 소질 있는 분야가 있다면 더 치열하게 부딪혀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삶을 열심히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주변 사람들을 돕고,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저는 비교적 피아니스트를 뒤늦게 보았는데) 거의 스필만과 비슷한 나이 때인, 지금 30대 중반 무렵에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이 축복처럼 감사했습니다. 건강을 유지한 채 많이 살아간다면, 아마 반세기를 더 살 수 있겠지요. 저는 더 이상 귀찮은 삶, 한가한 삶을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영화 피아니스트가 제게 건네준 가장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삶에 대한 긍정적 예의, 재능에 대한 진정성, 타인을 돌아보는 모습의 위대함. 우리가 인간성을 잃지 말고, 올바른 인생을 추구해 나간다면, 좋은 날을 만들어 갈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절대로 주저앉지 말고, 힘냅시다. / 2013. 04.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