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인 영화 킬 빌, 그 두 번째 이야기에 관한 리뷰입니다. 사실 1편과 2편은 이어지는 내용이지만, 분위기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줍니다. 1편이 일본을 무대로 한바탕 잔혹극을 펼쳐나가는 행위라면, 2편은 소수정예를 상대로 한 걸음씩 선명하게 복수해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만화 같은 액션 영화이므로, 처음부터 리뷰의 중심주제를 "할 수 있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기"로 정해놓고,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킬빌2 의 매력적인 세계속으로 들어가봅시다.
킬빌2의 시작은 "설명하기"에서 출발합니다. 주인공 브라이드의 결혼 장면을 섬세하게 살펴보면서, 악당 빌의 감정을 어느 정도 소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혼과 함께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브라이드와, 이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던 빌의 잔혹함이 잘 대비되고 있습니다. 빌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 번 암살자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그 어떤 모습으로 꾸미고 있다한들, "정체성은 암살자"라고 못박아 버립니다. 노오란 호박에 아무리 줄을 긋고, 색칠하고, 예쁘게 포장한다고 해도, 그 속까지 새빨간 수박처럼 변할 수는 없다고, 빌은 단호한 태도를 보여준 셈이지요. 과연 브라이드의 소박한 일상은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설명이 끝나자마자, 영화는 기대했던 대로, 군더더기 없이 펼쳐집니다. 곧바로 나쁜 놈을 "킬"하기 위해서 일직선 돌격입니다. 게다가 킬빌2는 잔챙이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 하나의 싸움이, 대 보스전과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상당히 충격적으로 전개되는데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시원한 액션을 기대했던 관객의 뒷통수를 치는 전개인데, 전투의 문을 열어젖히자 마자, 브라이드가 고꾸라지며 처참하게 망가집니다. 오 마이 갓! 게다가 바로 멋지게 재기할 것으로 기대해 보지만, 이건 뭐 말그대로 "현실은 시궁창"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작부터 일이 꼬이면서, 브라이드는 절망의 무덤 속으로 묻혀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서, 무대는 중국으로 옮겨져서, 과거 그녀의 혹독한 수련시절이 아주 재밌게 그려집니다.
저는 이런 전개 방법이 무척이나 놀라웠으면서도, 참 좋았습니다. 처음부터 그녀가 "최강의 킬러"가 아니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브라이드는 혹독하고 피나는 수련을 통해서, 더욱 강력해진 "여전사"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노익장을 자랑하는 중국 사범이 사람이라면 "인간 다운 태도로, 밥을 먹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대목은 살짝 감동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어라? 킬 빌이 이런 영화였나... 하하. 즉 브라이드는 고된 중국 유학(?)을 통해서,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완전히 무장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나의 몸이나, 내 상태가 아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대상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라며 극기의 자세로 현실을 바라보기를 권합니다.
그래서 무덤을 박살내는 "그녀의 지독한 패기"가 이 영화의 빛나는 명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 그러나 거기서부터 얼마든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 라고, 정말이지 멋진 투지를 근사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캄캄할 때,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아무도 구원해주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만약 평소부터 치열한 태도로 실력을 쌓아왔던 사람이라면, 그 순간을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사고방식의 힘이지요.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연습하는 삶" 이며, "도전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인생을 힘있게 살아왔다면, 힘든 순간에서도 할 수 있는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킬 빌이 멋진 이유는, 브라이드가 어떤 변명이나 불평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상력을 보태면, 이런 측면에서 - 브라이드와 라이벌 엘의 대결은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엘은 불평쟁이 입니다. 수련을 하면서도, 스승에게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다가 눈을 잃었고, 엘이 싸우는 방식 역시 상대방의 뒤통수치기를 전문으로 합니다. 즉 누군가가 이루어놓은 것을 빼앗거나, 교묘히 약점을 이용하는게 특기라 할 수 있지요. 놀랍게도 (조금 잔인하긴 한데) 엘은 드라마틱한 방법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이 장면이 상징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즐겨쓰는 비유적 표현 있잖아요. "탐욕에 눈멀다!" 이것처럼 짧고 명확한 표현이 어디 있을까요. 제 아무리 실력 좋고, 잘난 사람도, 탐욕에 눈멀어서 앞뒤를 분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브라이드가 겸허한 태도로 배움에 충실했다면, 엘은 자만심에 차 있어서 성장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기회를 날려버리는 이유가, 어쩌면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만과 허영에 물들어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이제 끝으로, 한 때의 연인 빌과의 진검승부가 남아 있네요. 빌은 결국 쓰러지게 됩니다만, 그 까닭을 고찰해 볼까 합니다. 빌이 가지지 못한 것을, 브라이드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엇이었나요? 필살기! 물론, 그랬지요. 그렇다면 왜 브라이드에게 그 기술이 전수되었을까요? 그건 그녀가 "적격자"였기 때문입니다. 위험한 기술을, 함부로 남발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알았기에, 스승은 그녀를 택했습니다. 전편에서 브라이드에게 오랜 봉인을 깨고, 검을 만들어 준 것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녀는 올바르게 해낼 수 있는 사람, 적격자 였습니다.
그녀가 주인공이어서 였을까요? 음... 혹시 최고의 명검과 최강의 무공기술은,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게 상상해 본다면, 권력은 남용되지 않을 때, 가치로울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절대강자의 자리에서는, 절대선이 될 수 있고, 절대악이 될 수도 있겠지요. 절대선을 추구한다면 존경을 낳을테고, 절대악으로 나아간다면 공포를 낳습니다. 절대선은 힘을 타인을 위해서 사용할 때며, 절대악은 힘을 나만을 위해서 사용할 때 입니다. 영화의 멋진 엔딩장면을 보면서, 저는 이 모든 것이 딸과의 행복을 위해서 사용된 "절대파워"로 승화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브라이드는 드디어 맞이한 "평화로운 일상"에 무한한 기쁨을 표현하며, 눈물 짓고, 미소 짓습니다. 앞으로는, 누군가가 시비걸기 전까지, 그녀는 명검과 무공을 감췄을 것이라 상상해 봅니다.
이 모든 발칙한 상상력을 마무리 하자면, 우리가 힘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사람을 움직이는 권력이라고 한다면, 당장 떠오르는 것은 "머니파워"가 되겠지요. 이것을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사용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이것을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이들도 있겠고요.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여기는 존재들은 대체로,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온갖 "머니쇼"를 펼쳐나갑니다. 그러나 행복한 일상이라는 녀석은, 그런 것과는 전혀 무관하게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그 하루가 무엇보다도 특별하게 좋은 것임을, 영화는 다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킬빌1 을 통해서, 저는 대충사는 일상과의 결별을 강조했었는데, 이번 킬빌2 리뷰를 통해서는, 행복한 일상을 위해서 실력을 갖추어 제대로 싸워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좋은 것을 누리지 못하게, 태클 걸고, 막아서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면, 우리가 당당히 이겨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2013. 05.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