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오덕 투혼을 불태우면서, 즐거운 리뷰를 하나 남겨볼까 합니다. 케이블TV에서 극장판 에바를 해주다니 상당히 놀랐네요. 개인적으로 서는 극장에서 보았고, Q는 아직 보지 않은 상태에서, 잠정보류 중이던 파를 최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신극장판 중에서도 파는 한국, 일본 양쪽 모두 높은 평가를 얻고 있는 굉장한 애니메이션이지요. 참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순서는 서 - 파 - Q - 최종화 의 4부작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서론을 보태자면, 70-80년대 태어난 이들이 그러하듯이, TV판 에반게리온은 소년시절의 즐거움으로 추억되곤 합니다. 복제된 테이프를 통해서 원판을 돌려보던 그 추억. 슈퍼로봇대전에 이제 에바까지 나온다는 이유로 열광하던 그 추억.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에반게리온은 재밌고, 자극(?)적이고, 많은 영감을 선물해 줍니다. 주인공 신지는 "겁나게" 성장했고, 캐릭터들의 개성도 그 선명한 화면만큼이나 또렷해진 기분이 듭니다. 절묘한 음악과 박력 넘치는 전개까지, 에반게리온 파는, 에바의 진화를 알려주는 뛰어난 청량제 입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덕후스타일로 쓸 역량은 이제 되지 못합니다. 그저 파에서 느껴볼 수 있는 감각적인 통찰들을, 정직하게 써내려가는 것이 좋겠다 싶습니다. 오래전 TV판부터 그랬지만, 에반게리온은 그렇게 강력한 영웅이 아닙니다. 오히려 탑승자와의 "싱크로율(조화)"을 강조하고 있으며, 독특하게 생긴 적들: 이른바 사도 들이 정말 화려하면서도 강인한 느낌을 주지요. 세계를 멸망시킬 기세로 들이닥치는, 최강의 사도들 앞에서 나약한 에바와 인간은 어떻게 대응해 갈 것인가? 라는 테마로 본론을 시작합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저는 전통적으로 "빨간 슈트 아스카"를 좋아했었습니다. 그 이유를 지금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아스카는 남의 말을 거의 듣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하며, 홀로 남겨진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서, 신지와 레이, 겐도 사령관까지 이들은 한 식구라는 측면이 강합니다. 게다가 어쩐지 비정상적이고 우중충한 것에 비해, 아스카는 굉장히 밝고 활기찬 모습이었습니다. 어차피 삶이 건조하고, 밤이 외롭다면, 밝은 시간 때라도, 즐겁게 살아가는 아스카 같은 삶을 저는 어린 시절에 동경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신극장판 파에서 보여주는 신지, 레이, 아스카의 모습은 상당히 많이 달라졌습니다. 다들 한층 원숙해졌다라고 할까요. 아스카 팬으로서, 그 안타까운 전개는 마음 아프지만, 타인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 모습을 더욱 선명한 태도로 그리고 있어서 나름대로 기뻤습니다. 과거 TV판에서 보여주는 도촬적인 절망적 심리극 대신에, 신극장판에서는 아스카가 미사토를 통해서 잠깐이나마 웃음을 취할 수 있었다는 대목이 참 좋았습니다. 에반게리온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모두가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이번 신극장판에서는 더욱 정중하게 그리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구작에서 거의 인형처럼 그려지는, 레이의 성장도 놀라웠습니다. 레이는 자신의 의사를 더욱 분명하게 표시하며, 만찬을 원하며, 소통과 관계의 즐거움을 나누기를 시도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대신할 것이 있으며", "틀에 갇혀서 살아가야 하는 물고기" 라고 고백하지만, 레이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꿈꾸는지 확실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어두침침한 (사실상 남편이기도 하고, 아빠이기도 한) 이카리 사령관이 그 식사제안을 받아들인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새로운 에반게리온의 코드는 "화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인공이자 무기력한 도피의 아이콘이었던 (!) 신지군은 완전히 달라져 있습니다. 귀를 막는 단절 대신에, 직접 요리를 하면서, 레이에게 선물하는 모습은 커다란 울림을 줍니다. 아무도 다가가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외면할 것인가, 그에게 손을 내밀어 볼 것인가. 이카리 신지는 이제 그 선봉장을 자처하기 시작합니다. 마지막까지 신지는 단 한 사람이라도 구해내기 위해서,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저력을 발휘합니다. 과거 에반게리온 형식의 애니메이션을 두고서, 주인공은 곧 세계 전체이다 식의 설정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배경을 놓고 본다면, 이제 세계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남자, 신지가 결단한 최종 선택은, 한 사람이라도 살려보는 것 입니다.
도망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요? 현실이 괴롭고, 마주보기 힘들고, 부조리한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들 무엇이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요? 신지는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명확하게 규정합니다. "나는 초호기 파일럿"이다, 그리고 마치 신지를 기다려왔던 에바 초호기도, 화답하며 포효합니다. 중요한 순간에 더미와 인공지능으로 조작될 수 없었던 에반게리온은, 그 자체로 생물적 성격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살아있는 존재, 생물적 존재라면, 소통을 통해서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일방적 강요는 서로의 거부를 낳을 뿐이지요. 초호기는 기다리는 것을 택했고, 신지는 괴로움을 겪어도 재도전하는 용기를 택합니다.
결론적으로 신극장판 에반게리온은 환경의 중요성과 의지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무슨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인가? 신지의 용감한 대답은 이제 주저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두 번 다시, 후회를 남기는 선택은 하지 않겠노라고 행동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면, 지금 이 순간과 그 누군가는 다시는 주어지지 않는 것들이니까요.
마음의 벽을 세우고, 이기심과 자기만족감으로 마음이 물들어 갈 때, 언제라도 에반게리온 파를 한 번 본다면, 멋진 울림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에 부도덕함이 가득하고, 이른바 어른의 사정 때문에, 아이들이 눈물 흘릴지라도, 누군가는 그렇다 한들, 나는 "내 자신의 일을 해서 사람을 일으키고 구하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의 에바와 폭주하는 붉은 눈이 광기로 다가왔었다면, 머지 않아 중년을 맞이해야 할 나이에 에반게리온의 붉은 눈은, 어떤 현실 에서도, 자신이 꿈꾸던 것을 밀어붙이는 "결코 절멸하지 않는 인간 의지"로 느껴졌습니다. 우리도 그런 눈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감각적인 욕망이 있기를 응원해 봅니다. 인간은 그토록 약할지라도, 그 존재의 가능성 만큼은 절대로 약하지 않다고 저는 믿습니다. / 2013. 05.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