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조선 경제 생활의 이모저모

시북(허지수) 2013. 5. 20. 23:58

 조선 전기 경제 파트의 마지막 문서이네요. 초심을 잃지 말고, 가볍고 경쾌한 정리로 출발합니다. 논농사는 주로 직파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 그냥 간단합니다. 직접 땅파고, 볍씨를 뿌리는 농사법이지요. 단점은 벼와 잡초를 구분하기 어려워서 수확량이 약간 줄어들 수 있습니다. 당시에도 이앙법이라고 해서, 난이도 높은 농사가 있긴 있었습니다. 고려 말기부터 이어진 혁신적인 농사 기술인데, 일부 남부 지방에서 시행되었지만, 별로 장려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앙법은 수확량도 많고, 잡초 뽑는 고생도 덜하지만, 5~6월에 옮겨심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가뭄이 들어버리면 한 해 농사를 완전히 망쳐버리기 때문에, 상대적 안정도가 떨어집니다. 약간 도박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국가에서는 차마 이앙법을 장려하지 못했지요.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직파법이 일반적이다 라는 겁니다. (※이앙법이 확산되려면 충분한 물 확보가 중요한데, 이게 가능해 지려면, 조선 후기가 되어야 이앙법 전국 확산이 됩니다.)

 

 덧붙여 농사와 관련된 농서가 있었습니다. 세종 때, 농민들에게 직접 물어봐서 책으로 만들어 놓은 농사직설이 있고요, 또한 금양잡록 같은 농서도 만들어져 보급되었습니다. 이래저래 (상업과 달리) 농업은 장려되어야 했지요. 밭농사는 2년3작의 윤작법이 일반화 되었고요, 시비법(비료) 발달으로 휴경지가 소멸 되었습니다. 이제 매해 농사가 가능해졌지요. 또한 목화재배도 일반화 됩니다. 지대의 경우는 타조법(병작반수제)으로 운영됩니다. 수확하는 가을 시기에 (타작할 때), 지대를 최종결정하는데, 대략 1/2 세 정도라고 합니다. 예컨대 소작농이 농사를 지으면, 반은 지주가 가져가는 거지요. 생각해보면 좀 많긴 합니다. 대농장의 지주는 저절로 부자가 되었겠지요 :) (※가벼운 농담인데, 지주를 부러워 하면 지는 겁니다! 성공해서 지주가 되어야지 생각한다면 이상한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구조를 개편해서 일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대우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지 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제 의견입니다. 하하.)

 

 상업은 상당히 무시당하고, 크게 중시되지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한 번쯤 자세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징이 있으니까, 문제로도 종종 등장하고요. 우선, 도시에서는 시전상인들이 활약합니다. 즉 허가를 받고 장사를 하게끔 해주는거지요. 조선 전기에는 더욱 그러한대, 몇 번 살펴봤듯이 기본적으로 중농억상이기 때문에, 국가는 상업을 괜히 장려하지 않습니다. 대다수 백성들에게는 그냥 농사를 짓고 살도록 권했고, 소수에게만 혜택을 주며 상행위를 가능하게 해준거지요. 물론, 시전상인은 국가에 충분한 세금을 꼬박꼬박 내야했습니다.

 

 이 대목이 종종 강조되는데, 시전상인은 금난전권의 권리가 있어서, 시장에서 아무나 물건파는 것(=난전)을 막아버리는 권한을 줬습니다. 요즘 말로는 시전상인은 "독점 판매권"이라는 거지요. 가령 농사를 지어 바구니에 과일을 담아 (무허가로) 그냥 팔러 들어왔다가는 종로 시장에서 좇겨나기 십상입니다. 이런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장사로 커다란 권력을 얻는다는 게 힘들었겠고요. 따라서, 출세하려면 일단 과거부터... 입니다!

 

 한편 서울 종로에 있는 잘 나가는 가게들을 육의전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인기 품목들은 모시, 종이, 무명, 어물 등이라고 합니다. 시전상인이 도를 넘지 않도록 (안그래도 독점인데 지나친 폭리를 탐하면 곤란하잖아요), 상행위를 감독하는 경시서라는 관청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방에서는 15세기 후반부터 장시(정기적 시장)가 출현합니다. 다시 말해, 경제적 관념이 널리 퍼지기 시작합니다. 지방에는 관에서 허가를 받은 보부상도 있었고요. 음, 넓게 본다면 국가가 상행위를 통제하고,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었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리학적 경제관의 영향 이기도 합니다.

 

 화폐의 경우 만들기는 하는데, 역시 상업 환경을 중요하게 미는 사회가 아니므로, 화폐가 통용되거나 발전하지는 못합니다. 조선 전기에는 저화(지폐), 조선통보(동전)가 만들어졌는데, 유통은 실패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곡식이나 옷감이 오늘날의 "돈" 기능을 했고요. 무역의 경우도 공무역을 중심으로 해서 거래되었고, 수공업은 관영수공업 위주로 운영됩니다.

 

 경제 생활은 조금 처참한 느낌은 줍니다만, 사실 내용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핵심은 너무 간단하니까요. 예로부터 양반은 잘 먹고 잘 살았으며, 농민은 못 먹고 못 살았다는 겁니다. (우울;;;) 경제적인 배경이 있었겠지요? 양반의 기반은 조선 초기에 과전(수조권)이 있었고요, 녹봉(월급)도 받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점점 사유지를 늘려가면서 부를 쌓아나갑니다. 인적자산으로는 재산으로 다루었던 노비가 있어서 일상생활을 도왔고요, 또한 외거노비들은 바깥에서 일을 해서, 일정한 신공(=돈)을 양반에게 바치기도 했습니다. 또한 고리대를 활용해서, 농민을 뜯어먹기도 합니다.

 

 양반의 생활에 대해 딱딱한 서술보다는, 좀 편안하게 접근해보면, "국가에서 주는 양반 혜택은 초기보다는 약간 줄었지만 농장도 이제 커지고, 일은 안 해도 수확량의 반은 그냥 내꺼고, 노비가 집안일과 궂은일은 다 처리할테고, 외거노비에게는 돈벌이 시켜서 신공 받아먹으면 되고, 여윳돈은 그렇게 짭짤하다던 고리대 사업도 해보며, 날로 생활이 풍요로워지니, 친구여 건배나 하자~ 친구여 너도 샀니 최신식 포르쉐 91X (아 죄송. 개그 코드입니다)... "

 

 반면 농민은 사는게 힘이 듭니다. 자연재해는 정말이지 피하고 싶은 친구이고, 고리대의 덫에 한 번 빠지면 큰일납니다. 뭐, 요즘도 대출 광고 많잖아요. 케이블TV, 신문, 또 사기문자나, 카톡까지... 옛날에도 고리대 대출업자들이 많았습니다. 바꿔 말해, 옛날 대출 담당은 재산을 가진 지배층, 양반이었는데, 이들에게 고리대는 돈놀이의 수단이었지요. 그러나 농민에게는 고리대로 망하는 경우도 상당했습니다. 또한 지난 문서에서 자세하게 살펴봤듯이 각종 수취제제가 문란해지면서, 경제적으로 가혹한 환경으로 내몰리는 농민입니다. 대농장은 확산되어 가고, 자영농은 가지고 있는 토지까지 잃어가고, 도저히 못살겠다는 농민 최후의 선택이 있으니... 아예 생업을 포기하고 도망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있다보니, 세금이 필요한 국가의 입장에서는 도망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했지요. 그래서 호패법을 실시 합니다. 쉽게 말해 주민등록증 같은 거지요. 즉 각 사람의 현황을 통제할 수 있는 도구로서 활용됩니다. 또한 오가작통제라고 해서, 다섯 가구를 하나의 통으로 묶어서 서로를 감시 하게 합니다. 만약 한 집이 짐싸고 도망가버리면, 나머지 네 가구에게 연대책임을 묻게 합니다. 이렇게 내몰리다보니, 열악한 이들은 사실상 도망치는 것까지도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한편 사림의 경우 향약을 통해서, 상부상조나 환난상휼 등으로 기층민중을 어떻게든 묶어보려고 노력합니다. 대략 여기까지가 조선 전기의 경제 파트 마지막 입니다. 그럼 다음 문서에서는 조선 전기 사회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아래부터는 여담!)

 

 오늘의 영감 - 문득 국가에 의한 감시에서 벗어나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조선 후기로 가서 오가작통제가 더욱 변질되면 한 가구에서 천주교도가 발생하면, 다섯 가구를 몽땅 처벌했다고 합니다. 이걸 간단히 바꿔서 생각하면,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하고, 꼬투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있다면 참 비극적인 모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누군가가 "비판적인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로, 관련자까지 모두 색출해서 없애버리는 수법은 오늘날에도 여전한 게 아닌가? 라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저는 5월을 참 좋아합니다. 사심(?)으로는 제 생일이 들어가 있고, 공휴일과 기념일이 많으며, 또한 민주주의의 기상을 꽃피웠던 5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봄 중에서도 "따뜻한 5월의 봄"이라는 어감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별로 따뜻하게 느껴지지 못합니다. 일본은 아베의 자칭 강한 일본이라는, 정신줄 놓은 광기의 극우 드라이브를 질주하고, 한국의 일부 극우사이트도 개념과 정신줄을 놓아버린 비하와 멸시의 이야기들을 난무하고 있습니다. 나만 잘 살면 그만이고, 악랄한 행위도 합리화 정당화 시키면 그만이고,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경제적 이익과 잘나가고 싶은 명예"에 눈먼 이 라고 부릅니다.

 

 음, 최근 본 분노의 질주라는 영화의 한 대목이 계속 생각납니다. "여기서 도망치면 어쩌면 자유롭게 살 수 있겠지, 그러나 저런 막장 나쁜 인간들이 잘 사는 걸 이대로 놔두고서, 과연 우리가 자유를 얻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권력에 기생하면서 남을 능욕하고 잘 살아가는 나쁜 인간들이 처벌받는 시스템을 이룰 때까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감시하고 쥐어짜는 시스템을 바꿔 나갈 때까지, 제대로 된 자유를 향한 싸움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