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아메리칸 뷰티 (American Beauty, 1999) 리뷰

시북(허지수) 2013. 5. 24. 23:59

 영화 제목이 상당히 의도적인데, 실제 내용은 역설적으로, 미국 중산층의 붕괴를 유쾌하면서도 무겁게 다루고 있는 걸작 명화 입니다. 1999년 작품 중에서는 매트릭스 등과 함께, 많은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지요. 스타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샘 멘데스의 연출력을 높이 절찬하면서, 기어이 그를 영화 감독으로 데뷔시켰는데, 첫 작품부터 그야말로 "대박 만루 홈런"을 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어떤 내용을 담았기에 아카데미는 이 영화에 작품상을 주었던 걸까요?

 

 보는 이의 현재 상황에 따라서, 다양하게 인상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데, 장르를 정의하기 어렵다로 출발하고 싶습니다. 드라마이긴 한데, 마냥 재밌고 경쾌한 에피소드는 아닙니다. 진지할 부분에서는, 나름대로 깊은 고민이 들어가 있고, 각 사람의 욕망을 거침없이 표현하면서도, 끝내 이루어지지 못할 수 있다는 현실적 묘사까지 풍부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같이 이상한 사람들만 등장하고 있기도 한데, 바로 그 점에서 저는 강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사실 알고보면, 겉으로 혹은 속으로 자신이 잘났다며 착각하고 있을 뿐, 우리 모두 완벽한 사람이 아닌거지요. 스멀스멀 올라오는 어두운 욕망을, 거의 돌직구 스타일로 그리면서도, 밝음을 읽지 않았다는게 이 영화가 선사하는 보기 드문 강렬함 입니다.

 

 

 이번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리뷰는 약간 색다르게, 인물 중심의 접근 방식으로 고찰해 볼까 합니다. 우선 짤린 가장 레스터의 고충을 이해해 봅시다. 그는 회사를 위해서 10년 넘게 헌신했지만,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서 그 날카로움을 정면으로 감수하기로 합니다. 더욱이 회사 간부는 돈을 함부로 써대면서, 왜 밑에 있는 사람들이 책임을 뒤덮어 써야 하는지 패기 넘치고 통렬하게 쏘아붙입니다. 그리고, 영화 도중에 거대한 깨달음(?)을 얻어서, 마치 기존의 가치관을 초월한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레스터는 그렇게 볼 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빨갛게 물든 자동차를 질러버리고, 집안에서 무선장난감을 조종하면서 시간을 허비합니다. 식사 자리에서는 날 더 이상 무시하지 말라며, 접시를 집어던지기도 합니다. 이 씁쓸한 욕망을 뒤집어 보면, 왕처럼 대우 받고 싶었지만, 사실상 10년 넘게, 20년 가까이, 레스터는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꾹꾹 참으면서 기계처럼 살아왔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단지 성공한 중산층으로, 또한 잘 나가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수 많은 책임을 짊어지고서, 열심히 달려온 거지요. 그 결과가 해고에다가 집안에서의 무시라니, 레스터는 황당하고 억울합니다. 그래서 대놓고 삐뚤어져 갑니다. 틴에이지 딸의 친구에게 관심을 보이는 모습은 우스꽝스럽지만, 상당히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사람이 보이는가? 사회가 버리고, 가정이 멸시하는 이 남자가 보이는가? 망상과 착각 속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매일 노력하는 이 사람을 욕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 저는 갑자기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디에서도 삶의 행복을 찾지 못했던 레스터가, 마치 다시 새로운 삶을 얻은 듯이 움직이는 모습에 당황스러웠는데, 그 변화의 결정적 계기를 생각해보면, 굳이 딸내미의 친구가 전부라고 할 수는 없어보였습니다.

 

 딸의 친구 안젤라와 상관없는 행동들 - 가령 직장을 나오면서 막말을 시원하게 한다거나, 책임이 적다며 패스트푸드 가게 점원으로 일한다거나, 무선장난감으로 시간을 보낸다거나, 값비싼 마약에 손댄다거나... 이 모든 것을 생각해보면, 레스터는 그냥 주어진 삶을 다시 한 번 살아보고 싶었던게 아닐까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좀 더 솔직하게 말이에요. 그랬기 때문에, 레스터는 안젤라와의 훈훈한 분위기가 실현되는 장면에서 아주 근사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안젤라양, 너도 더 솔직하게 살아보렴, 너의 있는 그대로의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서 살아보렴, 대신에 적당한 거짓말로 포장하는 행동은 이제 그만두렴..."

 

 그래서 레스터가 거대한 깨달음을 통해서 얻었던 결론, 지금 내 인생은 충분히 행복하다, 왜 그걸 몰랐을까... 라고 독백하는 장면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의 삶이 실제로는 한낱 볼품없는 비닐봉지처럼 이리저리 휘날리고 있다고 한들, 얼마든지 지금부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삶을 긍정적으로 응원하는 시각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한편 가장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미 해병대 대령을 보고 있으면, 사람의 가치관이 역시 쉽사리 바뀌지 않음을 쓰라리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가족에게 위압적인 느낌을 주고, 이웃의 친절까지도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끝내 잔혹한 행동까지 저지르게 되는 그의 모습은 "불통의 대표주자"를 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아내의 마음도, 아들의 마음도 잘 알지 못했으며,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이웃에 대해서도 자신이 그어놓은 선으로 곧바로 판단해 버리며, 잔혹극의 주인공이 되버립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흐르고 있는 편이지만, 특히 대령이 보여주는 모습은 구제불능으로 비춰집니다. 나의 규율만이 옳다고 무장한다면, 이것이 폭력으로 변질되기 쉬움을 단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요.

 

 귀여우면서도 독한 연기를 보여주는 레스터의 딸, 제인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인은 아빠도, 엄마도, 대놓고 미워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제대로된 따뜻한 관심"이 필요했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위험한 가출을 결심하면서도, 부모님이 걱정할 것이라는 표현은 이중적인 내면을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바꿔 말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단 두가지가 아닐까요. 부모가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과 아이에게 행위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메리칸 뷰티에서는, 겉으로는 가족이지만, 내면으로는 아빠, 엄마, 딸, 세 사람이 서로 뭐하나 "접점"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게 너무 잘 그려지고 있어서 놀라웠습니다.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하더라도, 우리는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좀 더 용기 있는 선택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특히 자기가 바라던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 상상해보고, 이것을 구체적으로 이루어 나가는 소박한 일상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어쩌면 아이들이 내맘같지 않을지도 모르고, 반대로 부모님이 전혀 존경스럽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굳이 누구탓이니, 핑계와 변명부터 대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내 삶이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순간의 선택에 더욱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멍하게 있으면 극중의 레스터처럼, 10년이라는 세월도 무의미하게 흘러갈 수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리뷰는 "인생은 여전히 아름답다~" 라고 찬사하며, 이쯤에서 마칩니다. / 2013. 05.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