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지루하거나, 어려울 수 있는 경제파트 입니다만, 편안한 마음으로 보시면 됩니다. 의외로 재밌을 수 있어요. 하하. 부담 느끼지 않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가볍게 출발하자는 취지에서, 이른바 "최태성 선생님식 서늘 유머" 날리고 출발합니다. 조선의 전기와 후기를 나누는 기점은 바로 "양란" 입니다. 네, 왜란과 호란이지요. 그래서 최샘은 마트에 가서 양란(계란)코너 지날 때마다, 이 쌓여있는 양란(?)들은 왜란과 호란이라며 애꿎게 계란보고 전쟁을 상상하는 직업병을 앓고(!) 계십니다. 아아.. 직업병, 마음이 아프지만, 어쨌든, 유머는 이쯤하고, 양란을 거치면서 조선에 큰 변화가 불어닥쳤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임시기구였던 "비변사의 대폭 기능강화"가 있겠지요. 그렇다면, 경제면에서도 변화가 있었겠지요? 네 맞습니다. 이번 문서는 그 점을 집중적으로 탐구해 봅시다.
조선 시대 조세의 변화를 복습해보면, 15세기에는 세종에 의해, 과전법에서 공법 으로 바뀌는데요. 구체적으로 전분6등법(비옥도), 연분9등법(풍년흉년-그해날씨)이 도입됩니다. (공법에 관해 자세한 건 지난 문서 - 수조방식고찰을 참고하세요) 실제로 이제 1결당 세금을 거두는 양도, 예전에 비해 조금 줄어들었고, 보다 합리적인 모습이 되었지요.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공법은 관행적으로 최저세율이 적용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즉 1결당 4두 정도만 걷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양란 이후 - 인조 때, "영정법"이 딱 등장합니다. 이제 무조건 1결당 4두씩 내라는 겁니다. 사실상의 세금인하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굳이 날씨로 나누지 않고, 고정적으로만 세금을 적게 받겠다는 건데, 지배층이 웬일이래? 꽤 의외지요? 사실상 지배층의 양보로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양란을 겪으면서 기득권의 무능과 이중성(가식)이 다 폭로되었잖아요. 이러다보니 체제가 붕괴될 수도 있고, 조선 지배층이 위기의식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이럴 때는, 뭐니뭐니해도 "국면전환 필살기"가 필요합니다. 우리 괜찮은 사람들이야 이걸 떠들고, 증명해야 할 때 입니다.
양란을 겪으며,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구조가 느슨해지자, 이걸 다시 꽉 조이기 위해서 "예학"을 아주 강조합니다. 예송논쟁으로 정권까지 바뀌어가며 예의를 엄청나게 강조하는거 지난 정치파트에서 보았잖아요. 또한, 예학이라는 이데올로기만 가지고는 힘들테니, 경제면도 어느 정도 양보를 한 셈입니다. 봐라, 이제 세금도 어느 정도 내려주겠어 라는 겁니다. 당장 의문이 들 수 있겠지요. 어? 그러면 당장 세금이 상당히 줄어들텐데 어떻하나요?
가령 오늘날 세금덩어리인 기름값만 해도 정부가 거의 줄이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여기 막대한 세수가 걸려 있으니, 이걸 줄이면 다른 곳에서 세금을 충당해야 하는데, 그만큼 많은 세금을 어디서 구하겠어요? 그러다보니 어지간해서는 끝까지 버티며 기름값은 높은 선으로 유지됩니다. 그러므로 더욱 궁금합니다. 과연 어째서 조선은 영정법을 실시하며 세율을 줄일 수 있었을까요?
1결당 세금량이 줄어든 것은, 사실상 예전 시대에 비해서, 생산력이 그만큼 발달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농업기술이 계속 발달했고, 토지면적이 늘어났고, 자연스레 수확량도 많아집니다. 그러다보니 보다 세율을 낮추고서도, 어느정도 충분한 국가운영이 가능했음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여담으로, 이걸 조금 과감히 현대에 적용한다면, 우리나라도 통일되고, 인구가 1억이 넘어가고,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계속 많아지면, 세율을 다소 내릴 여지가 있겠지요. 그런데 반대로 인구는 조금씩 줄고, 급속히 고령화 사회가 되면, 앞으로 높은 세율 부담이 계속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 더 재밌(?)습니다. 공납의 개혁이니까요. 이번 문서의 주인공은 짠~ 조선 광해군입니다. 특산물을 바치는 공납의 경우, 조선 초기에는 중앙에서 군현을 거쳐 각 집집마다 할당해서 토산품을 내야 하는 시스템이었는데요, 아무래도 특산품 구하기가 어렵고, 불편해지자, 누군가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이 사람 - 방납업자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게 점점 "방납의 폐단" 현상, 방납업자왈, 우리가 대신 특산물 내줄테니 몇배로 막 부르는 게 값. 헉!? 이라는 형태로 변질되어 가고요.
문제는 이처럼 방납업자와 지방 수령들이 결탁해 버리는 겁니다. 대가를 점점 많이 요구하는 거지요. 방납의 폐단이 발생하면서, 문제가 심각해지자, 이걸 고쳐보자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요. 개혁가 조광조라든지, 후에 유성룡, 이이 같은 경우는 "수미법"이라는 제안까지 적극적으로 들고나오기도 합니다. 이렇게 복잡하게 특산물 내지 말고, 그냥 쌀로 내자는 겁니다. 방납으로 농민이 고생하고 있는데, 상당히 현실적인 개혁 방안이었지요. (이이는 십만양병설 등을 주장하기도 했고요) 아, 그런데 세금체제의 개편은 쉽지 않아요. 비상상태가 아니면, 잘 바뀌지 않습니다. 저항이 엄청나기 때문이지요. 좋은 건의가 있어도, 기득권이 막아서면, 좀처럼 채택되지 않습니다. 불발로 끝난 수미법 개혁안도 그랬고요.
그렇기 때문에! 양란을 통해서 지배층이 위기에 몰리자! 드디어 그 유명한, 시험계의 스타 "대동법"이 시행됩니다. 별표 몇개가 꼭 표시 되어 있고, 동그라미 한 몇 겹은 들어가있는 "대동법" 이제 살펴봅시다. 의외로 간단합니다. 토산품? 그렇게 힘들게 구해서 내지 말고, 이제부터 1결당 12두를 공납으로 납부하라! 입니다. 쌀 대신에 옷감이나 화폐로도 납부할 수 있었고, 당시 화폐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납부OK 였습니다. 그리고, 이게 사실은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광해군은 중립외교도 그랬지만, 이 대동법 시행 역시 정말 대단합니다 :)
자세히 들어가 봅시다. 공납의 부과기준은 원래 집집마다 토산품을 내는 거잖아요. 그런데 대동법이 실시되면서, 이제 토지를 기준으로 1결당 세금을 거둔다는 겁니다!!! 그럼 토지가 없는 저같은(?) 사람들은요? 공납을 면하는 겁니다. 토지가 적으면, 아주 조금만 세금 내면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1결 - 약 3천평, 학교 운동장 크기만한 땅들을 여럿 갖고 있는 "양반 지주"들 입장에서는 지금 엄청난 생돈이 매년 나가게 생겼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과거 농민들은 토산물 바치랴, 그러다가 이후 방납업자에게 시달리랴, 공납 때문에 무지 고생하다가... 이제 갑자기 파격적으로 "면세"라니요. 와우! 한편, 갑자기 토지소유자들에게 "세금폭탄?" 을 내라니요. 이러다보니, 지배층들은 엄청난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부자가 좀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제도를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이 당시는 그런 "공공" 개념이 약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신분제 사회였으니까요. 즉, 높은 신분이니까, 고생은 낮은 사람들이 하는게 맞다는 사고방식은 정말 구시대적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런 사고방식이 용인되었던 게 신분제 사회입니다.
여하튼 신분제 사회에서 지배층이 더 많은 부담을 짊어지라고 하니까, 어마어마한 저항 이 쏟아집니다. 대동법은 경기도에서 출발해서 전국으로 확산되어 나가며 최종적으로 황해도까지 완전 실시하게 되었는데요. 얼마만큼의 세월이 걸렸을까요? LTE급 속도를 완전 반대로 생각하면 됩니다. 느림~ 느림~ 미치도록 느림~ 10개월? 10년? 아니었습니다. 대동법의 완전 실시까지 무려 100년이나 걸렸습니다. 조세저항은 이처럼 장난이 아닙니다.
조금 깊이 이해해보면, 지금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세금 정책"이 움직이잖아요. 이런 것들을 자세히 파악해보면, 기득권 세력에게는 "세금 정책"이야말로 아주 중요한, 이들이 거의 자동적 시선 고정을 하고 있다랄까요. 자, 예를 들어, 어떤 정권에 따라 세금부담이 많이 달라진다는걸 알게 되었잖아요. 그러면 기득권 세력은 거의 "절대로 개혁"세력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아주 적극적으로 보수적인 정당에 투표를 하게 되는 겁니다. 왜 우리가 세금을 더 내고 복지를 하려는건데 라는 사고방식, 즉 자신의 이익 (기득권) 이 걸려 있으니까, 오히려 더욱 열심히 움직이는거지요.
그렇기에! 한편에서는 개혁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정작 투표안하고 어딘가 놀러간다? 이건 정말 정말 곤란합니다. 이런 나라에서는 가난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계속 힘들 수 밖에 없는겁니다. 참여를 안했기 때문에, 기득권의 적극적 개혁 저항(!)의지를 당해내지 못합니다. 조선 후기 대동법은 "100년"이나 걸렸다는 거 기억해두세요! 당장 이권이 걸려 있어서, 개혁을 절대로 싫어하는 세력들은 과연 조선 시대에만 있는걸까요? 한 번쯤, 고민할만 하겠지요. (참, 역사에서는 기득권의 반격이라는 게 있는데 - 나중에 시간이 흘러 대동법은 소작농이 대신내! 라고 지주가 막 떠넘기는 폐단도 발생합니다...ㅠㅠ)
한편 광해군은 왜 오래도록 폭군으로 지칭되었던 걸까요? 물론 명분을 거스르는 실리외교 추구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번에 살펴보았던 세금제도, 이 파격적 대동법의 시행으로 인해서, 광해군은 기득권세력의 쓰나미급 미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는 점 을 생각해 보고 싶네요. 그렇기 때문에, 지배층들은 태클걸만한 명분을 제대로 꼬투리 잡아서, 곧장 탄ㅎ...이 아니고, 그러니까 실각 시켜버리는 거지요. 조선 시대 선비들이 돈가지고 이야기 하고, 세금 때문에 다투기에는 영 모양새가 안 나잖아요, 그러니까 정치적 이슈를 끌고 와서 광해군을 딱 몰아내고, 그리고 후대에 폭군으로 딱~! 생각해보면, 이런 경향은 계속 나타난다고 생각하는데요, 개혁가를 탄핵시키는 지배층들의 역습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나중에 보면, "군역을 개혁" 할 때도, 흥선대원군이 "양반들도 이제 역의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라고 했다가, 또 탄핵 크리티컬을 당합니다. 역사가 이런 모습이 있습니다. 신기하지요. 그 때도 세금가지고는 직접적으로 태클걸지 않습니다. 적절한 정치적 명분을 하나 끌고와서 맹렬히 공격해서, 내쫓아 버리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적 이슈 그 이면(다른 면)에, 어쩌면 경제적 이권이 맞물려 들어있는게 아닐까. 바로 이 점을 꼭 생각해 본다면 좋겠네요.
이제 잠깐, 이해를 위해서, 지폐의 필요성 이야기도 생각해 봅시다. 지폐는 왜 필요한걸까요? 왜 우리는 지폐를 확보하려는 걸까요? "이거 지를려고요!!!", 네 아주 좋은 답입니다. 맞습니다. 지폐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를 누릴 수 있습니다. 즉 지폐가 있으면 "좀 더 편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령 먼 곳까지 이동해야 하는 경우, 아무것도 없이 간다면 힘들잖아요. 이 때 화폐를 통해 이동수단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즉, 본질적으로 지폐의 확보와 유통은,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자급자족 시스템에서는 당연히 화폐 발달이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화폐 경제가 발달하려면, 누군가의 노동력을 사는 행위가 활성화 되어야 합니다. 여담으로 물건의 가격, 그러니까 볼펜의 값, 책의 값 등은 그 사람의 노동력이 들어가 있는 비용입니다. 우리는 그걸 얻기 위해서, 화폐를 지불하고, 물건을 사게 되는거고요.
이제 이야기로 돌아와, 대동법이 시행되었는데요. 그러면 앞으로 특산품은 누가 구해옵니까? 국가에 쌀만 계속 오고 있고, 옷감이 쌓이고 하는데... 그래서, 특산품들을 이제 누군가 직접 구입해 와야 합니다. 그래서 화폐기능이 있는 쌀로, 정부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들을 엄청 사기 시작합니다. 관영 상인이라 볼 수 있는 "공인"이 등장 합니다. 이들은 전국 각지의 시장으로 휙휙 가서, 엄청난 돈을 가지고, 어마어마한 규모로 물건을 사들이기 시작합니다. 이러다보니 대동법 시행은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는 계기가 되어줍니다. 이렇게 정부의 "공인"들이 원하는, 각종 물건을 대주기 위해서, 열심히 민간에서 수공업품도 많이 만들게 되고요. 세금제도가 바꿔놓은게 많네요. 하하. 아, 덧붙여 대동법 시행 때, 잉류지역이라고 있습니다. 평안, 함경, 제주도 지역에 한해서는 세금을 굳이 한양으로 보내지 않았고, 대신에 (국경지역) 사신접대비, 군사비, 자치비 정도로 그 지역에서 썼습니다.
엄청 내용이 길어졌네요. 대동법으로 할 말이 많아가지고... -_-;;; 생각보다 조금 세게 정리한 것 같기도 하고, 하하. 어쨌든,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내자는 것 - 이것이 근대적인 마인드"고, 광해군이 대동법을 시행했고, 완전 실시까지는 무려 100년이 걸렸다는 것. 또한, 대동법의 각종 의미까지 한 번 천천히 생각해 보면 좋겠네요. (*아래부터는 개인적 잡문입니다; 과감한 패스도 좋습니다 ^-^)
오늘의 영감 - 김남주 시인의 시 한 소절 소개합니다. 강신주 선생님이 언급해서 알게 되었는데, 꼭 오늘 문서와도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는 듯 해서요.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중략)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이어지는 강신주 선생님의 격문 "주인의 명령이 없을 때 그들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동물적인 쾌락과 향락, 그리고 누군가에게 군림하려는 권력욕뿐이다. 이미 머리는 권력자에게 넘겨주었으니 남은 것은 알량한 몸뚱이와 동물적 욕망일 수밖에"
부패한 기득권을 이렇게 잘 묘사하다니,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탐욕에 찌든 기득권은 "공공"을 위한 생각보다는, 나에게 "이익"을 주는 대상을 위해서 끝없이 욕망합니다. 혹여 불리한 상황에 처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갈아엎어버리고, 오늘도 "나만 맛있는 삶"만을 노골적으로 욕망합니다.
저는 가끔 삶이 힘든게 "내가 못난 탓이지" 라면서 자책하는 친구들을 봅니다. 결코 그런게 아니에요. 오늘날 잘난 사람만을 숭배하고, 힘의 균형이 승자 한쪽으로 쏠려 있어서 그렇지, 실제로 사람은 항상 "존재 자체로 중요"하며, 실패 조차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자책 대신에, 삶에 대해서 용기를 가지는 것,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힘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앞으로도 자본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유혹을 건넬 것입니다. "그냥 봉급 주는 사람 밑에서 침묵하면서 적당히 살아, 세상이 썩었다면서 속으로 욕만 실컷 해대, 그리고 직접 참여하거나 그러지 마" 영화 도가니를 보면서 저는, 아픈 현실을 바라보는 "고통"이 필요하다고 여러번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우리는 이 현실에 대해서 아픔을 느끼고, 슬픔을 느끼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 어쩌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이상한 현실을 깨닫고, 이 현실에 대해서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작은 소리를 보낼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조금씩 치유되어 가며, 잿빛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는 "생각은 의무다" 라고 말했나 봅니다. 생각하지 않고 살면, "나만 바보같아 보이는 거울" 앞에 서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생각하고, 질문을 잊지 맙시다. 왜? 다른 나는? 다른 길은? 다른 방법은? 다른 세상은?
세상은 우리에게 제멋대로의 평가를 내리고 낙인찍겠지만, 결코 그게 나의 전부는 아닙니다. 어떤 순간에도 다시 일어서서, 더 나은 세계를 추구하는 인간. 그런 모습이면 좋겠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아름다운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 전반적으로 내용이 무거운 듯 해서, 함께 덧붙여 놓았습니다 ^-^);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