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이앙법의 일반화 및 근대화의 가능성 2편

시북(허지수) 2013. 8. 21. 18:49

 지난 문서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2편! 이앙법이 널리 보급되면서 어떤 영향이 있었을까요? 이제 다섯 사람이 하던 일을, 단 한 사람만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광작이 가능해 졌습니다. 한자로 보니 조금 어감이 친숙하지 않은데, 풀어 쓰면, "넓은 토지를 경작 가능" 입니다. 왜냐하면, 노동력이 절감되다보니, 한결 여유가 생기잖아요. 그러니 남는 노동력을 인근의 토지까지 쏟아부으며, 훨씬 넓은 지역을 커버하면서 농사를 짓게 됩니다. (※사실 이건 놀라운 변화로 생각할 수 있는데요. 현대의 다른 예를 살펴보면 장하준 교수님은 현대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이 세탁기의 보급이라고 언급합니다. 세탁기는 당시 여성의 노동력을 대폭 절감해 주었고, 덕분에 여성이 오랜 가사 노동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세탁기는 그동안 사회 진출을 가로막던 "벽" 하나를 붕괴시켰던 거지요.)

 

 한편 밭을 논으로 바꾸는 경향이 증가하는데, 이것은 쌀의 상품화 를 의미합니다. 쌀을 생산해서 내다파는게 더 돈이 된다고 깨달은 거지요. 그 돈으로 다른 것으로 교환하고 여유를 누리기도 합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모든 농민이 갑자기 부유해진 건 아니고요, 부의 집중은 아무래도 소수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지요. 그리고, 쌀뿐 아니라 어차피 이제 이모작이 가능해졌으므로, 보리농사도 더욱 선호됩니다.

 

 자, 여기서부터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농민층의 분화 발생" 입니다. 농민이 이제 나뉘어져 간다는 건데, 자세히 봅시다. 앞서 다섯 사람이 할 일을, 이제 한 사람만 있어도 가능하다 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한 사람이 넓은 토지를 경작하다보니, 이런 사람들은 자연히 경영형 부농이 되어갑니다. 요즘말로 농사 비즈니스를 통해 부를 축적해 나갑니다. 그렇다면 문제점은 뭘까요? 우리는 나머지 네 명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광작이 등장하면서, (부농이 되지 못하고) 소작 지을 땅조차 없어진 농민들이 계속해서 보입니다. 이들은 끝내 토지에서 떨어져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고대로부터 농민들은 삶이 토지에 속박되어 있었다면, 드디어 조선 후기부터는 이 개념이 부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럼, 이렇게 떨어져 나온 농민들은 대체 뭘 먹고 살아야 할까요? 토지가 없어도 먹고는 살아야 하잖아요. 방법은 별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나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먹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임노동자가 많이 등장한다" 라고 표현합니다.

 

 다시 정리해볼께요. 이앙법이 일반화 되자, 생산력도 오르고, 노동력이 절감됩니다. 그래서 광작이라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하고요. 이 결과 농민층이 분화되어버립니다. 일부 농민은 부를 누렸고, 그렇지 못한 농민은 이제 농사를 짓기 어려워졌으므로, 임노동자가 되어갑니다. 임노동자는 이제 농사가 아닌 새로운 직업적 가능성이 열린 거지만, 사실상 괴로운 고생을 감당한다고 봐야겠지요.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요. 하하. 여기까지 살펴보면, 생산력 대폭 증가라는 경제적인 변화가 발생함으로서, 사회적인 변화 (농민층의 분화 등) 가 장난 아니다 라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지난 문서에서 대동법의 시행으로, 공인이 등장하고,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바로 이 공인이, 토산품 및 각종 필요한 물품을 대량으로 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당연히 물건을 많이 만들어야 하잖아요. 이 때, 임노동자의 증가와 맞물려 돌아가면서, 서서히 탈농업국가로 변해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쯤오면, 오랜 기간 성립해왔던 농민이 곧 백성이라는 개념이 이제 통하지 않는거지요. 이제는 다양한 일을 하는 백성 이라고 써야겠고요.

 

 생각해보면, 농업국가에서는 대다수의 사람, 80% 이상의 사람들이 모두 토지에 속박되어 있으므로, 물건을 대량으로 생산하는게 곤란합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로 오면, 임노동자들이 자꾸 늘어나자, 이들을 대거 끌어모으고, 공인들이 요구하는 대량의 물품들을 "생산"해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사회는 정말 변화하는구나 라는 느낌이 들어, 자꾸만 감탄이 나옵니다. 이제 정말 현대의 모습에 가까이 오고 있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요. 하하.

 

 이제 지대에 대해서 살펴볼께요. 조선 전기의 지대는, 타조법(=병작반수법)으로 작동되었고 주로 1/2세의 개념이었습니다. 농사 다 짓고 타작할 때, 그 결과물을 반으로 딱 나누는 거지요. 반은 지주에게, 반은 소작농에게 말이에요. 다른 말로 타조법은 정률제, 비율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는 도조법이 등장합니다. 이건 미리 계약할 때부터, 이 토지에서 얼마만큼 (가령 60가마) 을 지주에게 주겠다 라고 확정해 버립니다. 소작농 입장에서는 지주에게 미리 계약된 만큼만 내고, 나머지는 내가 가져가겠다고 일종의 "딜"을 하는거지요. 이건 꽤 의미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농사 짓는 사람들이 어느정도 자신감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굳이 타작한 후, 반반씩 나누지 말고, 처음부터 양을 확정해놓고, 내가 혹여 실력이 좋아 추가로 많이 생산하게 되면, 그 부분은 내가 가져가겠다는 거에요. (뭐, 만약이지만, 그 해 농사가 완전 망해버려서 겨우 70가마가 나왔다면, 지주에게 미리 약속한대로 60가마 줘버리면 아주 씁쓸하겠지만요. 그래서 도조법에 쓰는 "도"라는 한자는 도박에 쓰는 그 도(賭)자 입니다. 위험성도 있다는 거지요.)

 

 여하튼 도조법을 두고 "정액제"라고 합니다. 약속된 정액만 납부하면 된다는 거고요. 아, 그리고 도조법이 등장했다는거지, 모두가 타조법에서 도조법으로 바뀐건 아니고요. 그렇다면, 도조법이 낳은 사회적 변화는 무엇인지도 한 번 살펴봅시다.

 

 먼저 타조법 하에서는 양반과 소작농의 관계가 신분제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결과물을 반씩 가져가다보니, 파이가 커지면 커질수록 양반에게 유리하잖아요. 그러니까, 계속해서 소작농을 압박하는거죠. 이보게, 생산량이 그게 뭐냐, 일 해, 움직여 등등... 말이야 간단하지, 할당량 압박, 생산량 압박을 받는 상황은 정말 유쾌하지 못합니다.

 

 앗? 그렇다면 도조법에서는요? 여기에선 양반은 미리 정액으로 받기로 결정되어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양반과 소작농이 이제 신분 보다는 "계약에 의한 관계"가 됩니다. 따라서 당연히 지주 입장에서는, 소작농에게는 따로 할 말이 없고, 계약된 양만 받으면 끝이었지요. 그리고 사실은 지금도 마찬가지지요. 예컨대 회사에 들어가서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회사와 나와의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요? 네.. 뭐라고요? 갑을관계? 쿨럭. -_-;;;

 

 아니아니, 원칙적으로는, 약속된 일을 하고 정해진 임금을 받는 계약관계인 거지요. 다시 말해 현대사회는, 속박된 신분관계가 아니고 계약관계이므로, 원한다면 언제든지 사표던지고 나올 자유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뭐 그 자유를 행사한다는게 말처럼 쉬운건 아니지만 -_-; 그리고 요즘은 사실 좀 갑을적 신분관계 같기도 한데... (에라 넘어가고;;;) 뭐, 어쨌든 오늘날의 노동력 제공은, 합의적 계약관계지, 차별적 신분관계는 아니라는 거지요.

 

 즉 조선 후기에 근대적인 요소의 상당수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임노동자의 증가라든지, 계약관계로 맺어진다든지, 이같은 요소 말이에요. 그러므로, 과거 일제 식민사관이 말하는 것처럼 "정체된 조선 역사 - 그래서 일본이 근대화를 시켰다"가 아니라는 겁니다. 조선은 확실히 변해 가는 사회였습니다.

 

 이러다보니 조선 후기에는 "소작 쟁의"가 많이 나타납니다. 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적정선을 투쟁하는 거에요. 올해 양반측에서는 70가마 라고 조금 무리하게 계약하려고 하면, 소작농은 너무 심하다며 계약의 협상을 하는 거죠. "그건 좀 오버시네요, 61가마로 합시다?" 그러다가 합의선을 이끌어 내는겁니다. 우리는 쟁의를 다소 부정적인 눈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어느 정도 힘의 균형적인 측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정말 신분관계, 갑을관계로 종속되어 있다면, 쟁의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쟁의는 계약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볼 수 있습니다. 확실히 도조법은 (반을 떼가는 타조법에 비해) 소작농에게 더 힘있는 방식임을 생각해 볼 수 있겠고요. 또한 이 역시 저절로 얻어진게 아니라, 농민들의 저항이 있었음을 생각해보면 좋고요.

 

 조선의 달라진 경제 풍경들, 다음 문서에서 계속 됩니다~

 

 오늘의 여담으로는 짧게 가려 했는데, 쓰다보니 길어져서;;; 이런... 그러므로, 아래부터는 그냥 패스하셔도 좋습니다. 말그대로 여담! - 흥부전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품을 파는데, 술집에 가서 일하고, 초상집에 가서 일하고, 부잣집 그릇 닦고, 굿할 때 떡 만들고, 하여간 뭐든 합니다. 막판에는 매맞는 일까지 하고 ㅠㅠ... 그리고 이런 말이 나오지요. "그리해봐도 굶기를 밥 먹듯 하여" 사실은 이 모습이 임노동자의 생활이기도 합니다. 몰락한 농민, 내쫓긴 농민은 슬프네요.

 

 (그냥 재미삼아) 수학적 환산을 해보면, 조선 후기 당시 1년 품삯은 약 300전인데, 이돈이면 쌀을 대략 150~200두를 산다고 가정해 볼께요. 즉, 1년동안 임노동자로 열심히 일하면, 대략 쌀 270kg 정도, 요즘 돈으로 810만원... 1년 연봉 치고는 좀 초라하지요. 요즘으로 친다면, 아! 88만원 인생이기도 합니다. 더 재밌는(?) 대목은, 만약 조선 후기에 1년 품삯을 두배정도로 준다면, 즉 월급 150만원짜리 일자리다 라고 구인을 내면, 하루만에 수백명도 거뜬히 모집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렇게 본다면, 조선 후기나 요즘이나, 정말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임노동자의 힘든 삶! 그래도 먹고 살만한 일자리에는 우르르 몰리는 삶!

 

 우리는 왜 흥부가 "대신 매 맞는 일"까지 하면서 끼니를 해결해야만 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오늘날 역시도 누군가는 돈이 너무 없어서, 정신이 무너지고 끝내 삶이 무너져, 결국 무슨 일이라도 해가며, 끼니를 해결해야만 하는 세상이 되고 있음을 함께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여기서 아프기라도 하면 끝장이다 라고 두려워하는 모습은 조선 후기가 아닌, 오늘날의 풍경이라고도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흥부전은 우리의 고전소설이지만, 어쩌면 열악한 일자리를 전전해야만 하는, 힘없는 사람들의 한 측면을 오늘날까지도 꼬집는게 아닐까 싶고요.

 

 임노동자의 고달픈 삶, 백성들의 궁핍한 하루, 생산력은 발달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열매가 골고루 가지는 않았음을 확인하게 되었네요. 실력 좋은 농민은 소작 쟁의도 펼치고, 부농으로 진입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수가 그렇게 갈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제가 살아갈 실력을 갖추자 라는 꼰대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고요 :) "니 삶이 그런 건, 니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라는 차가운 논리는 자칫 위험할 수 있다 라는 이야기 입니다. 흥부는 심성도 멋지고, 열심히 일도 했지만, 어휴 그래도 정말 힘들잖아요. 마찬가지로 살아가다보면, 가끔씩 우리가 노력했음에도 결과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어쩌겠어요. 항상 맑음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놀부를 응원하지 않습니다.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정말 힘껏 응원하며, 좀 더 나은 세상을 열망하는 사람들을 응원합니다. 부패한 기득권이 못되고 뻔뻔하게 사는 모습을 목격할지라도, 우리까지 거기에 편승해서 치사하고 비겁하게 살 필요는 없습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고발할 것이며, 여전히 누군가는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향해 고민하고 행동할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이 말이 생각납니다. "사회적 약자는 문신을 하거나 성깔 있는 눈빛을 만듭니다. "위악"의 연출입니다. 나쁜 놈처럼 보여서 만만하게 보이지 않도록 위장합니다. 그럼 사회적 강자는? 극적 대조를 보이며 위선을 무기로 삼습니다." 저는 오늘날 악역을 자처하며, 나쁜 놈처럼 보이고, 배신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오히려 사회적 약자일 수 있으며, 반면 선을 코스프레 하며 마치 국가와 조직을 위해 몸바쳐 충성하는 것처럼 껍데기를 쓴 사람이 위선적인 강자일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힘든 순간에서도,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하나의 결과에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기를, 계속해서 의지를 가지고 노력해 나간다면, 결국 바뀌어 가는 날이 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체되어 있는 역사? 글쎄요, 유행가이기도 한데, 역사는 흐른다 아니겠어요. 더 나은 세상은 늘 그렇듯이 올바른 사람들이 깨어 있을 때 예외없이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진실을 담담히 말하는 그 희망, 저는 이것이 너무너무 좋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