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8. 21. 23:56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흐름을 전개하는 방식과 가혹하게 드러나는 진실, 이 두 가지가 제법 독특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계속해서 생각을 하게끔 유도하며, 의도적으로 여백을 남겨둠으로서, 관객이 진실을 향해서 조금씩 다가가는 느낌이 매우 근사합니다. 특히 주목해 보고 싶은 대목은, 아이를 키우는 행동,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을 수도 있음을, 현실적이면서도 착잡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 아이가 정말 착하고 귀엽고 천사같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잘 알려진 유머처럼, "아이구, 우리 애는 잠자는 모습이 정말 예뻐..." 라고 말하는게 때로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울고, 또 우는 아이 앞에서 당황하고 힘들어지는게 우리네 어른의 모습이니까요.

 

 또한 이 작품에서 주연을 맡은 틸다 스윈튼의 "무표정한 고통연기"를 보는 것도 또 하나의 매력입니다. 내가 낳은 아이가 어째서 이런 걸까? 라는 질문, 그리고 끝내 가혹한 현실을 만나고 그걸 받아들이는 태도. 분명 한 사람의 인생이 짊어지기에는 너무 육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럼에도 여전히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꽤나 강한 여운을 줍니다. 엄마는 인내하고, 또 참으며, 케빈에 대하여 비난하지 않았다지만, 우리는 과연 케빈에 대해서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저는 이번 리뷰의 출발을 우선 "타인"으로 한 번 잡아보고자 합니다. 가족이라는 단어는, "내 마음대로 움직여 준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으니까요.

 

 

 감옥에서 가장 괴로운 공간은, 인간이 없는 곳, 불빛이 없는 곳, 깜깜한 독방에 홀로 남겨진 채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은 미쳐버리지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사르트르라는 사람은 "지옥, 그것은 타자이다" 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즉 상대방이 존재함으로서, 우리는 지옥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한 셈입니다. 왜냐하면, 타자는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의 바람대로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고 표현해도, 상대방은 나를 사실상 혐오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지요. 예쁜 동화보다는 훨씬 차갑고, 달콤한 판타지보다는 훨씬 씁쓸합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이제는 상당히 현실에 익숙해져버린 우리네 어른은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반응에 일일이 신경쓸 필요는 없다" 라는 괜찮은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가까운 사람들의 반응만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는 통찰이지요. 에바도 처음에 그러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함으로써 참 즐거웠고,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웃음 넘치는 나날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비극적인 상황은 여기서부터 입니다. 이 행복이 오래가지 못했다는 겁니다. 아들 케빈이 태어났으니까요.

 

 케빈은 어릴 때부터, 엄마 에바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단순한 공 주고받기 놀이에서부터, 산수 공부까지 케빈은 끝까지 반항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삐딱하게 커나갑니다. 그리고 그 분노의 절정은 케빈의 여동생이 태어났을 때 입니다. 관심이 점점 여동생으로 향하자, 케빈은 그 상황을 참을 수 없어합니다. 개인적으로, 이쯤에서 저는 케빈을 조금 이해해보려고 합니다. 케빈이 원하던 것은 결국 "관심과 주목받음" 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제 소년으로 자라난 케빈은, 스스로 표현하듯이, 재미없고 지루한 인생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고 냉소적으로 말합니다. 이것은 그가 의도적으로 "일탈적 삶"을 선택하고, 즐기고 있음을 알게 해줍니다.

 

 남의 컴퓨터 따위 고장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 그 가치관이야말로, 결국 발전하면, 남의 삶 따위 망가지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 으로 이어지기에 딱 좋잖아요. 그렇게 볼 때, 케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남의 고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문제의식 조차 없다는게 더욱 안타깝습니다. 어떤 면에서 케빈은 마치 "어린 악의 화신" 처럼 그려지고 있습니다.

 

 오래된 전쟁 영화 패트리어트의 한 대사가 생각납니다. "자꾸 이런 독한 짓을 하다보면 쾌감을 느낀단 말이지..." 그리고 이러한 패턴이 영화 내내 점점 진하게 표현되고 있어서, 우리의 가슴을 괴롭게 만듭니다. (비교적 건전한 장르가 많은 닌텐도 64의) 게임을 하면서 조차 "죽어, 죽어"를 계속 외치는 케빈인데, 결국 이 말은 영화 후반부 또래 아이들을 향해 잔혹행위를 할 때의 그 장면과 아주 유사합니다. 결국 자신이 세계를 조작해내는 주인공이며, 너희들은 죽어도 괜찮은 존재 혹은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파악했던 게 아닐까 합니다. 지극히 자기만을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쾌락주의자의 끝판왕이랄까요.

 

 정작 가슴을 저미게 하는 것은, 엄마 에바가 보여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세" 입니다. 거의 미치광이 아들의 죄값을 마치 자신이 일정부분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동네 사람들의 험한 비난에도 그녀는 이사를 가지 않고, 그저 계속 일을 하면서 삶을 이어갑니다. 크리스마스 파티에도 전혀 웃지 않은 채, 그녀는 지나간 일들을 곱씹어 보기도 합니다. 그 날의 끔찍한 현실은, 아마 평생을 살아도 지워지지 않을테지요. 마침내, 영화의 마지막 에바는 아들 케빈에게 묻습니다. 대체 왜 그랬던거니?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이것이야말로 반전이자, 처음으로 케빈의 진심이 묻어 있는 대목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물론 곧 영화는 엔딩롤이 올라오지만요 :) 케빈이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진심을 내어보였을 때, 에바는 그저 케빈을 껴안습니다. 전과자, 살인자,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일들을 저질렀는지, 그것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영리하고 반사회적인 그야말로 싸이코패스에 가까운 아들이지만, 그 진심 어린 한 마디에서 에바는 "현실의 희망"을 발견했던게 아닐까 합니다. 아들이 태어나고 거의 20년 가까이 지옥같은 현실을 계속 마주해야 했지만, 이제는 "다른 현실"이 가능하겠다는 희망을 보았던 게 아닐까요.

 

 저는 어쩐지 에바가, 아들 케빈을 "존재 자체로 사랑하기 위해서" 노력해 왔음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케빈을 이해해 보려고 질문을 던지는 태도는, 대단한 무게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영화는 거의 중반까지도 케빈이 삐딱해진 이유를, "엄마를 닮았기 때문" 이라고 변명해 왔었지만, 사실 저는 더 냉정하게 접근해 케빈이 "악"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선의를 "악의"로 되갚아버리는 케빈은 주어진 삶을 "다 안다고 착각하며 우스꽝스럽게 여겼던" 것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선과 악을 놓고, 어느 쪽이 강하냐고 묻는다면, 역시 악이 월등히 강해보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들은 온갖 반칙과 무법에, 게다가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타자를 망가뜨리고 자기만의 쾌감을 얻기도 합니다. 생각만 해도 어지러울 정도 입니다. 그러나 세계는 여전히 선한 사람들이 가진 힘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휠체어를 타고 조용히 다가와, 에바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네는 남자도 있고요. 결코 나쁜 인간, 파렴치한 인간들이 이기는 사회가 전부는 아닙니다.

 

 저는 그런 "악마"에게까지도 대화를 건네고, 그를 품에 안고 있는, 인간을 존재 자체로 사랑할 수 있는 에바의 품성에 오히려 더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 단단해서 흔들리지 않고, 너무 부드러워서 넉넉한, 그 굉장한 마음가짐. 또한 모든 것을 다 잃고서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생의 희망에 대해서도 재차 생각하게 되었고요. 삶이 그토록 가혹하게 다가왔지만, 에바는 꿋꿋하게 앞으로도 살아갈 겁니다. 타인이 무슨 험담을 하든지 말이에요.

 

 이제 마무리. 사랑하는 친구가 어느 날, 전혀 달라져서 자신을 존재 자체로 거부할 때, 우리가 가지게 되는 감정은 뭘까요. 당혹감 혹은 슬픔 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 때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요. 저는 좀 더 에바를 닮아보고 싶습니다. 최대한 타인에게 말을 건네고,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건, 세상 무엇보다도 강인한게 아닌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빛이 될 수 있는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인상적이고 강렬한 작품, 에바와 케빈의 주옥같은 연기가 빛나는 작품, 지금까지 영화 케빈에 대하여 였습니다. / 2013. 08.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