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나잇 & 데이 (Knight & Day, 2010) 리뷰

시북(허지수) 2013. 8. 17. 21:34

 영화 나잇 앤 데이는 상당히 이색적인 장르의 영화 입니다. 겉으로는 총탄이 몸을 스쳐지나가고, 화려한 액션 영화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전개되는 형태는 거의 "로맨틱 코미디" 에 가깝다고 해야할까요.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첩보 액션 + 로맨틱 코미디 라는 "장르의 콜라보레이션"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진지하게 액션 영화로 보고 있자니, 정말 말도 안 되는 무적의 주인공에 당황하게 되고, 로맨틱한 영화로 보기에는 제작비가 1억달러가 넘는, 그야말로 돈이 팍팍 들어간 장면들 앞에서,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한 발짝 떨어져서, "즐기는 여유"를 가지는게 중요하다 싶습니다. 경쾌하게 즐기는 시원발랄한 영화랄까요. 다른 말로 즐겁게 킬링 타임 하기!

 

 우리에게 친절한 톰아저씨로 잘 알려져 있는, 인기배우 톰 크루즈의 아주 배려 넘치는 친절함이 영화에서 듬뿍 발휘되고 있어서 굉장합니다. "힘드시죠? 그럼 잠시 이 약물을 드셔 보세요!" 정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인 듯 합니다. 하하. 한편, 히로인 카메론 디아즈의 재치 있는 모습도 즐거움을 더해주는데요. 평범한 여인에서 출발해, 점점 대담한 인생을 살아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어쩐지 흐뭇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첫 전개는 조직(정보기관)에게 쫓기고 있는, 특급 요원 "밀러"가 곤경에 처하는 장면입니다. 죽음이 왔다갔다하는 살벌한 순간에서조차, 능숙하게 상황을 해결하면서, 끝까지 여유를 잃지 않는 엄청난 패기에 "고전적인 무적의 주인공"으로 느껴졌는데요. 매력적인 여인 "준"양을 보호하기 위해, 이윽코 밀러는 설득력 넘치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나와 함께 가면 요만큼이나 살 수 있지만,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요거밖에 못 살아요. 결국 둘은 영화 내내 거의 붙어다녀야만 했지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사실 진짜 일반인에 불과한, 그녀 "준"양의 입장에서는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비현실적인 일들이 황당하고, 어지러울 정도 입니다. 어제까지 평범한 여인으로 지내다가, 오늘 갑자기 특급 요원의 파트너 처럼 행동해야 하니까요. 그녀는 총을 쥐어 보거나, 호신술을 배워 보거나, 어느덧 요원의 기술을 나도 모르게(!) 익히게 됩니다. 나중에는 정말 흡사 요원처럼 굉장히 대담해 지는 대목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환경이 어떻든 간에, "지금 당장 행동하겠다" 라는 점이,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선물해 준 멋진 영감이었습니다.

 

 음, 이번 리뷰는 한 마디의 영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가려 합니다. 나잇 & 데이에는 "언젠가" 라는 말이 담고 있는 허망함을 꼬집어주는 대목이 나옵니다. 우리 역시도 이 "언젠가" 라는 말을 즐겨 쓰곤 하는데요.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과는 이런 말을 하잖아요. "우리 언제 한 번 봐야지", "그래, 언제 밥이라도 하자." 그리고, 그 언제는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극중의 주인공들도 언젠가 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남아메리카 최남단까지 달려가서 여유를 즐기는 낭만적인 삶, 그런 꿈들을 간직하고 있지요. 언젠가 한 번 해봐야지 하면서 말이에요.

 

 그리고, 영화는 단칼에 잘라 말합니다. 언젠가? 그건 사실 "Never" 에 아주 가까운 위험한 말이에요. 즉, 절대로 오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언젠가" 라는 말을 집어치워야 합니다.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그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걸 가장 제대로 실현하는 사람들이 밀러와 준의 콤비입니다. 마치 이들은 "다음은 없다" 라고 생각하면서 움직입니다.

 

 밀러는 아주 위급하게 쫓기는 상황임에도, 몸을 숨기자마자 해변에서 생선을 굽는 여유를 즐길 줄 압니다. 준 또한 소중하게 모셔두던 클래식 카를, 과감하게 밟으면서 더 나은 상황을 위해 움직입니다. 언젠가 그 날이 오면 동생에게 선물할까 싶었던 귀중한 클래식 자동차 였지만, "그 언젠가 역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준은 잘 알게 되었으니까요. 에이, 차라리 그냥 밟아, 한 번 붙어보자 이녀석들아!!!

 

 그렇다면, 왜 "언젠가"라는 말은 현실이 좀처럼 되지 않는걸까요? 뭐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의지가 담겨있지 않아서" 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언젠가" 같은 말 대신에, "지금 하는 중" 이라고 표현되지 않겠어요. 그렇게 본다면, 언젠가 라는 말 대신에, 지금 당장 의지를 가지고 해볼테야, 라는 훨씬 적극적인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영화에서와 달리, 적극적으로 산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조금 더 피곤해 질 수 있으며, 조금 더 재정 출혈이 생길 수 있습니다. 때로는 상대방의 거절로 인해, 마음에 괜한 상처를 입을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용기 있게 산다는 건, 의외로 좋은 면이 많습니다. 일단 한 번, 진지하게 열심을 내본다면 우리는 놀랄 만큼 멀리 나아갈 수 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나라를 위해서 모든 걸 버리고 헌신했던 요원 밀러 였지만, 마지막에 그에게 돌아온 것은 "안전한 곳"에서 처리되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잖아요. 또한 여동생을 위해서 가장 소중한 차를 선물하기 위해서 멀리까지 부품공수를 하던 준이였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쇼미더 머니"라는 여동생의 현실적 제안이었잖아요. 이처럼 전혀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면, 우리는 좀 더 적극적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 그렇다면, 오늘 꿈꾸던 삶을 한 번 시도해 볼래. 왜 못해? 한 번 해보면 되지!!!

 

 나잇 & 데이는 그렇게, "언젠가"를 아예 지워버리고, "어떤 상황이라도 지금 한 번 해보면 되지" 라고 생각을 바꾼 당돌한 여인 준의 발랄함과 함께 시원스레 마무리 됩니다. 저는 근래에 인간관계에서, "헤어질 용기를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기" 라는 점을 종종 생각합니다. 우리는 친하고, 어차피 운명적인 느낌이라, 어떻게든 잘 되겠지 라는 막연한 환상에 기대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생각하는 건데요. 이렇게 막연함을 지워버리면, 관계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분명히 할 말을 하게 되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억지로 무엇인가에 맞춰서 살기에는 우리의 짧은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현실이니까 어쩔 수 없어, 지금은 그런 한가한 바람 이야기를 할 때가 아냐, 라면서 여전히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고, 해오던 것들에 속박되어서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럴 때, 나잇 & 데이의 재치 넘치는 대사가 흥미로운 통찰을 주었던 셈이네요. "언젠가는 없어!", "지금 해보는 거지!", 그 단순함의 아름다움!

 

 리얼리티를 살린 현실감 혹은 팽팽한 긴장감이 흘러 넘치는 영화에 비한다면, 확실히 나잇 & 데이는 가볍고 즐겁기만 합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우리가 현실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던 일들을 생각해보는 여유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실적인 계산 앞에 주눅들어서, 시도조차 하지 않을 바에야, 터무니 없을 만큼 바보처럼 보여도, 우공이산 처럼 그냥 밀어붙이는 저돌적인 태도가 더 정직한 삶의 방향이 아닌가 싶네요. 오늘 두서 없던 영화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치겠습니다. 하하.

 

 철학자 이진경 선생님은 - 유목민에 관하여, 단지 쓴 땅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이주민과는 다르다고 표현합니다. 오히려 유목민은 불모의 땅이 된 곳에 달라 붙어 거기서 살아가는 법을 창안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합니다. 즉 떠나는 자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새로운 것을 창안하고 창조하는 사람.

 

 언젠가 환상적인 삶을 살꺼고 지긋지긋한 여기를 떠나버릴꺼야 라고 착각하고 있다면, 진정 우리는 이 곳을 완전히 새롭게 지금 바꿔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매일매일 외면하고 있는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오래도록 들었습니다. / 2013. 08.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