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일급 살인 (Murder In The First, 1995) 리뷰

시북(허지수) 2013. 8. 9. 19:13

 영화 제목만 봐서는 무슨 범죄 영화 같지만, 그 내용은 법정 드라마와 국가를 향한 싸움, 그리고 비슷한 또래의 두 남자가 보여주는 진한 우정까지 담겨 있는 "좋은 명화" 일급 살인. 요즘 같이 "갑의 횡포"가 만연한 시기에 이 작품을 보게 되면, 굳이 두꺼운 책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지 않더라도, "정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 영화는 한 개인의 무기력함과, 또 한 개인의 숭고함을 함께 표현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한 번쯤은 꼭 봐두면 좋은, 90년대 클래식 명작 입니다.

 

 그럼 배경부터 파악해 봅시다. 1930년대 미국, 알카트라즈 감옥에, 한 남자가 갇히게 됩니다. 헨리 영이라는 남자가 갇힌 직접적인 이유는 "5달러를 훔쳤기 때문" 입니다. 부모는 없고, 여동생은 먹여 살려야 했고, 굶주린 젊은 시절, 헨리 영이 선택한 행위는, 사실은 사회적 범죄이기도 합니다. 더 또렷하게 표현되듯이, 그 전에 헨리 영이 정작 일하고 싶어도,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사회는 처음부터, 그가 돈을 훔칠 때까지, 기회를 별로 주지 않았습니다. 대조적으로, 영화에서 하버드를 졸업한 엘리트이자, 변호사로 등장하는 스탬필은 비슷한 시절 형의 지갑에서 5달러를 꺼내썼음에도, 단지 주의를 받는 것만으로 끝났고요.

 

 같은 5달러를 몰래 썼지만, 누군가는 감옥으로, 누군가는 치기어린 행동으로 용서받는다는 점이, 세계가 공평하지 않음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누구나 비슷하지만, 결국 변호사와 범죄자로 갈리는 것은 환경의 영향일 가능성도 높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더 큰 비극은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헨리 영은, 악명 높은 알카트라즈 감옥에서, 감히 집단 탈출을 시도하다가, 끔찍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영화는 사실상 이 장면부터 시작하고 있고요.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 무려 3년 2개월 동안 갇혀서, 거의 정신 이상으로 몰락하는 헨리 영. 결국 그는 이후 정신줄을 놓아버리며, 동료 죄수를 공격해서 죽여버리는, 일급살인행위를 하게 됩니다. 5달러를 훔쳤던 한 인간은 이제, 누가봐도 명백한 중죄인이자, "사형"만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찾아온 국선 변호사 스탬필이 등장하기 전까지, 저 역시도 헨리 영의 무거운 살인이 쉽게 정당화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참고로, 이 작품은 실화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에 스탬필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게, 굉장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젊고 영리한 변호사이면서, 정의를 실현하고, 기득권에 곧바로 맞서는 대단한 열정의 소유자 입니다. 단, 스포츠에는 관심이 거의 없고요. 그래서 피고인 헨리 영과, 변호사 스탬필의 첫 만남은 정말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대화 역시 하나도 통하지 않았고요. 간신히 입을 여는 헨리 영은, 난데없이 야구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고, 스탬필은 혹시 "헨리 영"이 미쳐버린게 어떤 시스템 때문이 아닌가 집요하게 파고들어 나갑니다.

 

 견고한 "벽"에 맞서며, 존경받는 "알카트라즈" 에 맞서며, 스탬필은 진행되는 모든게 진실이 아닌, 어떤 이미지에 의해서 "가공"되고 있음을 간파합니다. 그리고 저 지하 깊은 곳에 있던 진실이란, 오물 냄새 가득한 역겨운 것이었지요. 독방을 직접 마주한 스탬필은 누구라도 미쳐버릴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스탬필은 기어이 진실을 끄집어 내고, 거대한 세계와 맞서 싸웁니다. "이걸 보시오, 여기 32명의 죄수가 정신병원으로 실려나갔소, 그 중에 28명은 정신적으로 멀쩡한 사람들이었단 말이오, 알카트라즈가 살인범을 만든 것이오, 그러므로 헨리 영은 일급 살인이 성립되지 않으며..." 그리고, 정말 전율스러운 대사로 연결됩니다, "고발 당해야 하는 것은 알카트라즈 처럼, 인간을 미치광이로 만들어 버리는 시스템 그 자체란 말입니다"

 

 이름 없는 작은 살인사건에서 출발했지만, 어느덧 언론이 주목하게 되었고, 스탬필은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 나갑니다. "한 개인의 정의로움이 어떻게 사회를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라고 종종 회의감에 젖어있던 저는 뒤통수를 얻어맞은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 20대 젊은 변호사는 명백해 보이는 살인 행위를, 철저하게 변호하며, 인간을 광인으로 만든 시스템에 "유죄"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흥미로운 것은 "헨리 영"의 태도입니다. 그는 비슷한 또래인 스탬필 변호사에게 돌직구를 몇 차례 날립니다. 가령, 야구를 볼 수 있는데도, 대활약중인 전설적 타자 디마지오의 타율에 무관심하다니 정말 인생 재미없게 산다며 재치 있는 비난을 가합니다! 또한 3년 2개월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독방에 갇혀서 생각만 해야했기 때문에, 이제는 생각하는 행위 자체가 싫다고 적나라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더욱이, 그 끔찍한 알카트라즈에 비한다면, 변호사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은 파라다이스나 다름 없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정말 먹먹합니다. 헨리 영은 피고 신분이라 손과 발이 묶여있고, 자유가 없는 상태인데도, 천국 같다니... 기존의 사고체계를 뒤흔드는 굉장한 장면들입니다.

 

 마치 현대인에게 말을 건네는 느낌이랄까요. 당신들은 자유도 있고, 보고 싶은 것을 볼 수도 있고, 가보고 싶은 곳도 갈 수 있는, 행복한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도, 전혀 행복하게 살려고는 하지 않는다고, "무감각", "무기력"에 빠져버린 사람들에게 제대로 한 방 날려주는 기분이었습니다. 어쨌든 영화는 스탬필 변호사의 대활약에 힘입어서 마침내, "살의 없는 살인"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헨리 영은 극형을 피하고, 어느 정도 감형된 죄값을 치르면 되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집니다. 헨리 영은 알카트라즈에서 몇 년을 더 보낼 바에는, 차라리 유죄 판결을 받고 죽는게 낫다면서, 눈물로 항변합니다. 그리고, 생각만해도 끔찍하고 두려움이 몰려온다고 고백합니다. 제발 이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더 바랄게 없다고 빌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왕 (알카트라즈로 끌려가) 죽게 될 바에, 당당히 죽음 앞에 서겠다며, 결단을 하게 됩니다. 이 깨달음이말로, 평생동안 음미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행동도 내가 선택하는 것이고, 또한 반응 역시도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알카트라즈가 다시 한 번, 헨리 영을 가혹하게 쥐어짜더라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으리라고 말하는 태도는, 제아무리 가혹한 환경이 펼쳐지더라도, 자신이 반응을 선택할 수 있음을 묘사합니다. 저는 이것이 거의 인간의 신성함으로까지 느껴졌는데, 이를테면 과거 나치 시대의 포로수용소처럼 "지옥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신념적 반응"을 선택하며, 자신의 먹을 것을 누군가에게 나눠줍니다. 너희들이 우리를 인간 이하로 대접한다고 할지라도, 후안무치한 야만을 보여주더라도, "명심하라, 우리는 사람으로서, 사랍답게 살아갈 것이다" 라는 거지요.

 

 영화의 엔딩에서 밝혀지듯이, 결국 알카트라즈는 수십년후, 폐쇄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스탬필은, 벗 헨리 영을 기억하며, 이제는 야구팬이 되었습니다. 음, 작가 정혜윤샘의 표현을 빌려와, "불안감이란 게 결국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 라면, 헨리 영의 마음을 흔들던 불안감, 몸을 떨게 만들던 불안감은, 마침내 "권력 앞에서도 바로서는 용기"라는 위대한 통찰을 얻게 했습니다. 권력이 시키면, 너는 복종해야 하는 반응을 요구받더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그걸 거부할 수 있음을 "삶"으로 말했던 것입니다.

 

 무거운 영화이고, 굳이 하나의 단어를 골라야 한다면, "담담함"이 떠오릅니다. X같은 상황에 개의치 않는 반응. 그래서 권력에 NO 라고 태연하게 말할 줄 아는 용기. 그 점이 참 좋았습니다. 영화 중반, 정의감으로 무장해 뛰어다니는 스탬필 변호사에게 - 머리 좋다는 사람이 한다는 말이 "너의 그런 행동은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고, 분열을 조장할 뿐이야" 라고 한 수 가르침을 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 말을 저는 최근에 자주 보았던 것 같은데... 라는 착시 현상이 들었습니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 잘못되었다" 라고 말했을 뿐인데, 분열론자로 낙인찍히며, 멋모르는 철부지라고 쏘아붙이는 행위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참으로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부도덕과 기득권만 유지시키면 만사 OK 라고 합리화 하는 태도야 말로, 제2, 제3의 미친 사람들을 양산해 낼 뿐이지요.

 

 저는 인간이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을 미치광이로 내모는 사회 시스템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늘 생각합니다. 기회를 주지 않은 채, 햇빛을 주지 않은 채, 3년씩이나 "쓰레기" 취급을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결국 살인자가 될 수 있다고 표현하는 대목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습니다.

 

 공정한 기회가 박탈당한 채, 무한 경쟁으로 내몰리는 사회에서는, 마음이 병들기 쉽습니다. 실제 자살을 생각하고 시도하는 사람 중에는 무직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요. 결국 만성적으로 일정한 실업상태를 유지시키며, (취업을 원하는 사람이 널려 있으므로) 임금을 떨어뜨려놓고, 승자에게만 박수쳐준다면, 우리는 시한폭탄을 키우고 있는 셈입니다. 미치기 직전까지 내몰리며, 괜찮은 직장을 위해 오늘도 노력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이제는 도저히 못하겠다며, 못견디겠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생을 달리하는 사람이 유죄인지, 아니면 승자독식의 구조를 당연시 여기고, 다수를 쥐어짜는 구조가 "유죄"인지 생각해 볼만 합니다. 어쩌면, 지금의 사회 현상을 비틀어서 묘사하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되었고요.

 

 소수일지라도, 올바른 목소리로 발언할 줄 알고, 지독한 현실 앞에서도, 담담하게 "반응을 선택하며" 사회와 맞짱뜨기 시작한다면, 그 정의로움이 정말로 사회, 나아가 세계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굉장한 용기와 희망을 선물 받았습니다. 우리가 없애버려야할 "알카트라즈"는 지금도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이야기가 나가지 않도록 언론을 통제하고, 역겨운 진실은 끝까지 가리며, 약자에게 한없이 가혹한 사회! 시민 배심원단이 알카트라즈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마침내 목소리를 높였듯, 오늘 우리가 막돼먹은 구조를 조사하고,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면, 세계는 끝내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헨리 영이 막판에 보여준, 그 위대한 용기의 절반만큼이라도 있기를, 저는 마음 깊이 소망합니다.

 

 누군가 싸우지 않는다면, 가혹한 기득권은 절대 스스로 변하지 않을테니까요. 그곳의 사람들을 내 식구처럼 감싸안고 있다며 가짜 진실만 떠들고 있을테니까요. 진실을 꿰뚫어보는 영민함이야말로, 꿋꿋하게 길을 가는 소박함이야말로, 인간 위에서 인간을 내려다 보는 오만함을 박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2013. 08.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