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영화 헬프 (The Help,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10. 22. 17:05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감동적인 영화 헬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남겨볼까 합니다. 저는 이 영화가 질문처럼 들렸습니다. "스키터 양처럼 세상과 맞서며 살아갈 수 있을까?", "매일 매일, 안 된다는 현실 앞에서 됐거든요! 나는 해볼꺼에요! 라고 결단할 수 있을까?" 영화 헬프의 빛나는 인물들은, 저마다 용기를 내어서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 비결에 대해서 저는 언제나 강한 의문이 듭니다. 왜 그들은 일반적인 사고방식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할 수 있었을까?

 

 특별한 이들을 연구한 칙센트미하이의 표현을 가져와본다면, "또래들에게 기이하게 비치는 관심사에 강렬하게 호기심을 보이거나 집중한 까닭에 어린 시절 주변부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오히려 매우 창의적인 사람들이 되었다" 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스키터 양은 확실히 어린 시절 남자아이들에게 인기 없는 못생긴(!) 소녀였고, 자신을 극진히 키워왔던 가정부 콘스탄틴과 각별한 사이로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콘스탄틴은 소녀에게 특별한 삶을 살 수 있을꺼라고 응원했습니다. 콘스탄틴의 명대사로 시작해 볼까요.

 

 

 "스키터양, 우리는 매일 제대로 결정을 해야만 해요. 나에게 험담하는 바보 같은 녀석들의 말을 들을래요? 그렇게 살아갈 필요는 없잖아요.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정하고, (그렇게 살아간다면) 분명히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을꺼에요." 대략 이런 느낌이었는데요. 저는 이 대목에서 갑자기 눈물이 나왔습니다. 결정을 회피하는 삶 대신에, 자신이 주도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얼마든지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어쩌면 스키터는 또래 백인 아가씨 집단에 있어서 외곬수로 비춰질 수 있을 겁니다. 남자친구는 없지, 인종차별에 반대하지, 전혀 누군가 시키는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행동하는 것, 멋진 삶을 살아가는 첫 단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자, 그래서 발랄한 스키터양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흑인 가정부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웁니다. 이 계획이 성공하고, 인터뷰가 출판되기까지, 단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작부터 삐걱거렸고,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을 만나기도 하지만, 스키터는 계속해서 해결 방법을 찾아서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현실의 목소리를 담아내려고 노력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경청"과는 약간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보통 경청이 상대방이 말할 때까지 기다리고, 주의 깊게 듣는 것이라면, 스키터는 상대방의 요구를 다 맞춰주려고 무진장 애씁니다. 예컨대, 만남의 비밀을 위해서, 몇 정거장 일찍 내려서, 힘들게 몰래몰래 인터뷰를 이어가는 모습인데도, 스키터는 조금도 피곤해 하지 않습니다. 이같은 내면의 강인함이, 정말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물론, 엠마 스톤이 충분히 예쁘게 생겼습니다만... 하하)

 

 게다가, 생각했던 것을 질문도 해보고, 정말 적극적입니다. 저는 흑인 가정부들이 진심을 꺼내서 내어놓기까지, 그 과정의 이면에는 스키터양의 열렬한 노력이 듬뿍 들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점차 진심을 얻게 되자, 스키터는 "단 한 번도 타인에게 털어놓지 않았던 깊은 진실" 까지도 듣게 됩니다. 에이블린의 아이가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나, 또는 미니가 열받아서 X케이크를 만들어 복수한 내용까지, 몽땅 말이에요. 저는 평소 내향적이기도 해서, 이야기 듣는 것을 상당히 즐겨하는 편인데, 좀 더 적극적인 경청이 되어야 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편 인상적이고 놀라웠던 것은, 일어났던 일을 기록으로 남겨놓음으로서, 삶이 달라지고,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가정부 에이블린의 변화는 경이롭습니다. 그녀는 일을 하면서 겪었던 황당한 사건들을 하나씩 기록함으로서, 더 이상 이렇게 비인간적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직시하게 됩니다. 도둑으로 오해받게 되자, 그냥 쿨하게 가정부 일을 집어치우게 됩니다. 억지로 꾹꾹 참으면서, 부당하게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힘, 그 핵심에는 "표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 인간관계에서도 적용되는 게 아닐까요. 우리는 관계에서 NO라고 말할 수 있을 때, 훨씬 더 자유롭고 대등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에이블린은 사회 순응적인 삶에서 떠나, 나 지향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커다란 눈동자가 인상적인 또 다른 가정부 미니 양의 삶도 변화를 맞이합니다. 그녀는 용기를 내었고, 폭력적인 가정에서 벗어나기를 선택합니다. 단지 화장실을 같이 썼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던, 미니는 이제 예전보다 훨씬 아름다운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정을 내려야할 순간에, 있는 힘껏 용기를 내어보는 것, 이 대목이 커다란 울림을 주었습니다. 영화는 악역 힐리 외에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더 매력적인 삶을 만나는 변화를 맞이하는데요. 그 비결은, 다름 아닌, "결정하고, 용기내는 것, 다시 말해 선택하는 것" 이었습니다. 이대로 계속 맞으며 살 것인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다른 삶에 도전해 볼 것인가?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은, 에이블린이 아이에게 그토록 자주 강조하던 가치관, "넌 친절하고, 넌 똑똑하고, 넌 소중한 사람이야" 에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소중한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형편없는 환경 앞에서 NO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별 것 아닌 존재로 여긴다면, 형편없는 환경 앞에서 내가 뭐 어쩔 수 없지 라고 포기하고 맙니다. 과연 우리는 이래도 되는걸까요? 성장해야 하지 않을까요?

 

 영화 헬프를, 과감히 확대하여 접근한다면, 비슷한 종류의 차별은 얼마든지 역사에서 반복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인종을 뛰어넘고 사회적 계층을 뛰어넘는 뭉클한 우정 역시도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저는 힘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비정규직 혹은 아르바이트에 대하여, 저는 아는 분의 이 한 마디가 폐부를 찔렀습니다. "나 1년 동안 그렇게 열심히 일해왔는데, 모은 돈이 참 없더라고..." 유사하게도, 이 말이 영화의 한 장면과 겹쳐보였습니다. 열심히 가정부로 활동하던 율 매 라는 흑인 여성은 75달러가 모아지지 않아서,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에 내몰립니다. 공교롭게도, 자녀의 대학등록금이었습니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다면, 이와 같은 일은 현재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힘겨운 현실에 대하여, 경험했던 바를 표현해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다른 눈이 아니라, 바로 스스로의 눈으로 말이에요.

 

 또한, 사회적 계층을 넘나들면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정당에 투표를 한다며 실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로 접근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어요. 스키터양처럼, 충분히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입장에서도,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들어보려고 하는 행동, 이런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결국 영화 후반부에서 미니가 셀리아네 대저택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게 되었듯이, 사실은 부자와 빈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그림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굳이 이분법으로 나누어서 서로를 영원한 적대관계로 파악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공존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게 훨씬 나아보였습니다. 저는 영화 헬프에서처럼, 가진 자가 보여주는 친절한 배려가 아주 근사하게 보였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부자가 된다면, 셀리아네 부부같은 품격이 있다면, 그야말로 존경받는 상류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본다면, 가장 저질스러운 것은, (예컨대 힐리처럼) 내가 우월적 지위에 있다는 이유로, 타인을 경멸하는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것은 단지 부의 영역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이나 외모 같이 흔히 비교되는 대상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나누어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음에도, "나만 편하면 돼" 라고 사고하는 것이야 말로, 아주 황폐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힐리는 심지어 제 아이의 귀저기 가는 것조차 귀찮아 합니다. 불편한 일은 쳐다보지도 않으려는 것입니다.

 

 리뷰를 마치며, 용기를 낸다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가정에서 "내가 무엇을 진짜로 한 번 해보겠다" 라고 말을 했다가,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들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상사의 부탁을 냉정히 거절했다가 "싸늘한 시선"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닌 것에 대해서는, 단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진짜로 좇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직접 해봐야 합니다. 그것이 삶을 좀 더 나은, 좀 더 아름다운, 좀 더 경이로운 단계로 나아가게 해줄 것입니다. 편안하게 현실의 노예로 길들여 있을 것인지, 불편하더라도 괴롭더라도 한 발 더 앞으로 갈 것인지, 매일 질문을 던져본다면 좋겠습니다. 인생은 특별하고, 소중하므로, 분명 선택할 수 있을테니까요. / 2013. 10.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