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동학농민운동 2부 - 백산봉기, 전주성을 점령하라!

시북(허지수) 2013. 11. 4. 20:26

 지난 문서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그리하여, 본격적인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됩니다. 더욱 커진 제2차봉기 - 백산봉기가 일어납니다. 직접적 원인은 정부에서 내려온 안핵사 이용태 라는 인간이, 고부 봉기 주모자들을 역적죄인으로 내몰았기 때문입니다. 참, 조병갑이나 이용태 같은 학정의 대표주자들을 잘 파악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종종 시험에 단골 악당으로 등장해요. 나쁜 인간의 말로는, 죽어서도 욕을 무진장 얻어먹기 마련입니다. (덧붙여, 사람은 잘 변하지 않아서 이용태는 훗날 친일파로 변신하면서, 딱 자기 수준대로 살아갑니다. 친일파 명단에도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는 이용태!)

 

 이제부터 전개가 꽤 장엄해집니다. 백산봉기는 훨씬 본격적 입니다. 전주성을 점령하자!!! 동학교도 + 농민들이 대거 합세하였고, 전주성을 향해 진격해 나갑니다. 황토현 전투, 황룡촌 전투에서 관군을 상대해 승리를 거두었고요. 생각해보면, 조금 독특한 일이기도 합니다. 관군들이 그만큼 허약했다는 겁니다. 규율도 없이 농민들이 대나무창으로 싸우는데도, 농민군을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관군은 초라했습니다. 하물며 당시 막강한 제국주의 열강과 싸워서 이긴다는 건 정말로 어려운 상황이겠지요. 하여튼, 농민군은 놀랍게도 전주성까지 점령해 버립니다. 조선이 건국된 이래, 처음 겪게 되는 엄청난 사건이었지요.

 

 전라도 지역은 풍부한 곡창지대로서, 조선의 목줄(식량선)과도 같은데, 그 핵심인 전주성이 넘어갔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주 이씨 왕족 가문의 지역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해, 건국 이래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비상상황인 셈입니다. 덧붙여, 동학농민운동을 "동학농민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야말로 혁명적인 사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얼마나 허약한 정부였으며, 이 얼마나 허약한 군사력이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주성이 점령되는 초비상사태를 맞아서, 정부가 한다는 대책은 무엇이었을까요? 외세 업고 정권 유지하는게 이제는 뭐 습관화 되었던건지, 뻔하게도~ 또 청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렇게나 내정 간섭당하면서도, 급하니까 일단 부르고 보는겁니다. 무슨 청나라 노예도 아니고... 어휴.

 

 정부 입장에서는 기층 민중에 의해 혁명으로 나라가 넘어가는 것 보다야, 힘있는 외세를 끌어들이고, 정권을 유지해 나가는 것만을 생각할 뿐입니다. 기득권이라는게 이정도로 처절하게 작동되는 것입니다. 죽어도 기층 민중에게는 못준다, 나라가 망할지언정, 우리는 절대로 양보하지 못한다 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많은 역사샘들이 이 대목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사실 이 때, 얼마든지 민중들과 손을 잡고,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면서, 새로운 세상을 그려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조금만 더 전향적인 태도가 있었더라면, 외세 대신에 양보 하고 협력할 대상으로 생각했더라면...) 그러나, 현실은, 농민군의 요구를 무시하며, 외세와 손잡는 독한 결정을 내렸고, 비참하고 슬픈 결과를 낳게 됩니다.

 

 조선 정부가 도움을 요청하며 청나라를 부르자, 또한 청나라는 과거에 맺었던 텐진조약에 의해 일본에 통보를 합니다. 그래서 동학농민운동을 제압한다는 명분 하에 일본도 함께 들어오지요. 이 때의 일본은 10년 전, 갑신정변 때 청에게 당하던 일본과는 각오가 다릅니다. 10년 전, 조선정치에 개입하다가 청나라에 의해서 쫓겨나는 굴욕을 당했으니, 이제 청나라까지 한 번 엎어보겠다는 복수심을 불태웁니다. 1894년, 상륙부터 달리하면서 일본이 들어옵니다. 청나라가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한다고 비교적 가까운 아산쪽으로 들어온다면, 일본은 아예 대놓고 인천으로 들어오면서 노골적인 행동를 보여줍니다. 농민운동 진압은 명분이고, 실제 태도에선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고 봐야겠지요.

 

 정부에서도 아차! 싶습니다. 누가봐도, 이런 걸 원했던 게 아니잖아요... 좀 도와달라고 했지, 조선을 잡아먹으라고 한 건 아니었잖아요. 사태가 엄청나게 심각하게 꼬이기 시작합니다. 정부는 뒤늦게 농민군과 전주화약 (이제야 화해를!!!) 을 체결합니다. 농민군들은 집강소라는 개혁기구를 만들구요. 정부는 교정청이라는 개혁기구를 만듭니다. 집강소에서는 폐정개혁안을 내놓습니다. 기층민중들의 항의를 담아, 무명잡세를 폐지합니다. 드디어 토지균분(균등한 분배)을 들고 나옵니다. (*근대사에서 토지균분이 등장하는 시점이 두 번 있는데, 동학농민운동과 후에 활빈당, 두 번 뿐이에요!)

 

 그러므로 농민들이 원하는 것은 훨씬 더 적극적이었으며, 토지를 갖는 것, 토지 독점을 깨부수는걸 원했습니다. 덧붙여, 과부의 재가를 허용하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기층 백성의 이야기는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 입니다. 전혀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끝으로 신분제 폐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외세가 큰 문제였단 말이지요. 일본이 조선에 상륙해서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하면, 이들은 경복궁을 점령해 버립니다. 본색을 이제 드러내고 있네요. 고종을 사로 잡고, 아예 청나라 비키라며 전쟁을 원하고 있었던 겁니다. (*결국 전쟁에 들어가는데, 1894년에 청일 전쟁을 일으킵니다.) 일본은 한양을 점거하며, 교정청도 없애버리고, 군국기무처를 세웁니다. 일본이 자신들 입맛대로 정치 및 개혁을 장악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 개XX 들아!!! 분노한 농민들 20만명이 거세게 들고 일어납니다. 사실 이제까지의 동학농민운동이 주로 지배층들에 대한 저항, 반봉건의 성격이 강했다면, 일본의 비열한 행동을 계기로 인해, 반외세(반일)를 드러내며, 대규모 농민봉기를 일으킵니다. 전봉준이 이끄는 남접과 손병희가 이끄는 북접이 힘을 합해서, 공주로 향합니다. 공주 우금치 전투가 일어납니다. 이번 상대는 관군뿐만 아니라, 주로 일본군이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공주 우금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여기에서 밀리게 되면, 돌이키기 곤란한 위치였습니다. 다시 말해, 농민군이 이기면 그대로 서울까지 밀고 갈 수 있었으며, 관군+일본군이 이기면 전라도 지역의 봉기를 완전진압해 버릴 수 있는 갈림길에 우금치가 있었던 셈입니다.

 

 만약 농민이 이겼다면, 반봉건, 반외세에 극적으로 성공하며, 새로운 조선의 가능성이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여기서 패배한다면, 위로부터의 개혁에 이어, 아래부터의 개혁까지 외세에 의해서 차단되며, 계속해서 휘둘리는 조선으로 추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결정적 싸움에서......

 

 저는 생각할 수록, 속이 상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기록에 의하면 농민군은 수만명이 전투를 준비하고 있고, 일본군은 평소 잘 훈련되어, 늘 그래왔듯이 총으로 무장하고 대열을 맞춰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농민군은 가슴에다가 부적을 달았습니다. 이걸 달면 총알이 비껴간다고 믿었고요. 그런 필사의 각오를 하고, 우금치로 내달립니다. 그리고, 맞은 편에서는 기관총의 총알이 비오듯 날아오고요. 우금치에서 학살에 가깝게 농민군 시체의 산이 쌓여갔고, 농민군은 참혹하게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반봉건, 반외세, 혁명의 꿈은 피바다가 되었고,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반봉건, 반외세의 꿈... 앞으로 조선은 어떻게 되는걸까요. 1894년은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 이야기도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3부에서 만나요!

 

 오늘의 영감 - 경험이란 참으로 위대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비록 실패하고 좌절되었다는 평가를 받지만, 농민군이 이렇게 외세에 맞서서 들고 일어났기 때문에, 이후 반일운동의 흐름으로도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민주화를 이루어 낸 것 역시, 서슬퍼런 권력에 맞서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조들은 그렇게 부조리한 세상 앞에서, 절망 앞에서 용기를 낼 줄 알았습니다.

 

 살 만한 새로운 세상, 좀 더 나은 세상 이라는 꿈을 가슴에 안고, 순박하게, 그렇게 열의를 가지고 맞서며, 쓰러져 가던 사람들. 그러므로, 역사는 "실패 또한 선명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서 성숙해지며, 다시 한 번 싸워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동학농민운동은 상처투성이, 피투성이의 쓰라린 역사입니다. 저는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삶이 정말 힘이 들 때라도, 용기를 내고 살아가는 것. 삶이 정말 지치고 절망스러울 때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에, 역사란 정말 좋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 리뷰어 시북.

 

 아 참! 이 영상을 한 편 봐두시면 크게 도움이 될 거에요 ^^ ebs 5분 사탐 ▶ http://youtu.be/RabIT3RoC-8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