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문서의 복습부터! -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했습니다. 이후, 청일전쟁을 일으키는 일본! 그러면서,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하는데요. 이른바 "김홍집 내각"을 세웁니다. 한편 김홍집 이라는 사람은, 내각마다 꼬박꼬박 등장하고, 한 번도 빠지지 않아요! 여하튼, 군국기무처를 중심으로 해서, 갑오 1차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또한 동학도 탄압했고요. 그러고보니, 1894년에 있었던 일을 살펴 보는데, 벌써 문서 5개째군요. 하하.
그런데, 놀랍고 흥미롭게도, 청일전쟁에서 우세를 잡은 쪽은 일본이었습니다! 뭐, 일본이 강한 것도 있었지만, 사실상 영국에 의해서 계속 시달렸던 "청나라가 그만큼 약한 상태"라고 봐야겠지요. 외세의 강력한 압박 아래, 예전의 화려한 강국이 아닌 종이호랑이 청나라가 되고 말았으니까요. 여하튼, 일본은 이제 동학도 진압하고, 전쟁에서까지 승기를 잡게 되자, 군국기무처를 없애버립니다. 곧 이어서 2차 개혁이 단행됩니다.
군국기무처가 있을 때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당시에는 이미 청-일전쟁이 치열하게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조선 내각을 완전히 건드려 장악하기에는 일본 자기네들도 바쁘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언급한대로 이제 청일전쟁의 승기가 일본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본격적인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슬슬, 조선도 손을 대볼까 하는 겁니다.
그리하여, 김홍집 내각은 박영효(중요인물!)와 연립내각을 구성 후, 갑오 2차 개혁을 단행합니다. 군국기무처를 통해서 단행된 1차 개혁에서는, 나름대로 자주적 성격도 있고, 사회 발전에 이바지 하는 좋은 방안들이 몇 가지 실현되고 있었습니다. (신분제 폐지나 조혼금지, 과부재가허용 등)
자, 이제부터 잘 봅시다! 갑오 2차 개혁부터는 - 일본측 대리인이자, 급진개화파 출신인 "박영효"를 세워놓고, 내정에 아주 깊숙하게 개입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일본이 직접 손을 대어, 조선 개혁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무슨 내용들이 있었을까요?
정치 면에서는, 의정부 8아문 체제를 또 다시 바꿉니다. 하나씩 천천히 봐요~ ① 왕의 명칭을 주상전하에서 대군주폐하로 바꿨어요! ② 의정부를 내각으로 교체합니다. 의정부라는 옛이름 대신에, 내각이라는 보다 근대적인 표현을 쓰자는 것이지요. ③ 끝으로, 8아문을 7부로 바꿉니다. 요약하면, 의정부 8아문 → 내각 7부로 바꾸었다는 사실! 또한, 왕실호위기구인 시위대를 만들었습니다. 중앙조직은 이렇게 바뀌었고요.
지방 조직은 8도를 23부로 바꿉니다. 지방권력도 손을 보겠다는 의지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제까지 지방을 다스리던, 지방관은 사법권, 행정권을 둘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방 행정 처리 외에도 마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태 해결을 위해서 지방관이 직접 재판을 하고, 판단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네, 분명히 막강한 권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혁을 통해 지방관의 재판권을 없애버렸습니다. 갑오 2차개혁 에서는, 지방관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재판소를 설치 합니다. 다르게 말해, 사법권과 행정권이 분리되었다고도 표현합니다. 사회면에서의 개혁은, 교육입국조서의 반포가 있습니다. 학교 시스템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향을 받아, 한성사범학교, 외국어 학교, 한성중학교(1900년)가 후에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고난이도 문제 해결을 위해 (!) 갑오1차개혁과 갑오2차개혁을 나눠서 이해하는 방법을 알아봅시다. 요즘 문제출제의 트렌드다 보니까, 갑오1차와 갑오2차의 선긋기를 잘 파악해 봐야겠지요.
친일파 권력 박영효가 계속 압박을 넣자, 결국 고종이 종묘에 나가서, 독립서고문과 홍범14조를 반포 하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고종 임금이 조선 선대들의 사당에 가서, 나라의 큰 변화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청나라로부터 독립해요 (=독립서고문)", 앞으로 "홍범(큰법) 14조" 대로 살꺼에요! 이렇게 딱~ 반포합니다. (*예전에도 언급했듯이 독립된다는 것은, 힘이 없을 때에는, 오히려 타국에 의해서 심한 간섭을 받을 수 있는 위험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청나라로부터 떨어져 나온, 독립된 조선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었던 일본이 한참을 공들이던 계획이지요.)
또한 홍범 14조 안에는, 갑오 1차, 2차 개혁의 내용들이 함께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래도록 갑오1차개혁과 2차개혁의 내용을 굳이 분리해서 문제로 내지는 않았습니다. 네, 몇 년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 모두가 고득점을 맞으면 곤란했기에, 변별력 문제처럼 고난이도 문항이 생기고, 많이 어려워져야, 만점자를 줄일 수 있으니, 결국 여기까지 손대기 시작한 셈입니다.
여기까지가 출제된 배경이고, 어떻게 문제가 나올 수 있는가 하니, 키워드로 볼께요. 몇 번 반복이지만, 1894년을 확실히 잡아봅시다! 군국기무처가 중심인가? 개국기년이 나오는가? 8아문 체제인가? (=1차입니다) / 박영효 내각인가? 지방을 8도 23부로 나누었는가? 내각 7부인가? (=2차입니다!) 로 구분하는 정도가 무난하겠지요. 예컨대, 신분제 폐지는 갑오 1차와 2차에 모두 해당되고 있고요.
1894년 동학농민운동 이야기로 시작해서, 이제 갑오 2차개혁 (94년말~95년초) 까지를 파악해 봤네요. 그럼, 이제부터, 반전에 주의하시고! 하하, 1895년의 시작, 여기서부터 엄청난 전개가 펼쳐집니다. ...심장이 약하신 분들은, 미리 심호흡을 한 번 하시고... 아, 이건 아니군요. 웃자고 하는 소리였습니다. 죄송합니다. 하하.
1895년이 되면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를 거두고, 전쟁이 끝나버립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지요. 전쟁이 끝나면 언제나 조약을 체결하는데요. 이 때 등장하는 것이, 시모노세키 조약입니다. (발음 잘못하면 욕이 되니까 주의합시다!) 이 조약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일본이 요동반도(랴오둥 반도)를 할양 받습니다. 오늘날, 북한에서 더 올라가, 북서쪽에 있는 반도모양의 커다란 땅인데요. 만주의 서쪽지역으로 보면 되겠네요. 그 땅이 이제 일본 땅이 된 것입니다. 이게 믿어지는가요?
일본 입장에서는 - 드디어 일본이 중국 대륙에 일장기를 꼽게 되는 역사적 순간이었지요. 자기네들의 엄청난 꿈이 실현된 것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 때만 해도, 도요토미가 "명나라를 치겠다 길을 내달라"며 헛소리를 하고, 조선을 공격해 왔는데, 그로부터 대략 300년이 조금 더 흘러, 지금 일장기가 중국 대륙에 딱하고 꼽힙니다. 요동 반도를 먹어버린 일본은 지금 흥분해서 난리가 났습니다. 이제 섬나라가 아니라, 드디어 대륙의 땅을 갖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이게 무슨 장르소설도 아닌, 다 역사의 장면인데, 폭풍 반전이 등장합니다. 일본이 요동땅을 딱 가져가고, "동아시아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정세로 흘러가니까, 강대국들이 볼 때, 정말 아니꼬왔습니다. 한 마디로 "일본 쟤 뭐니? 만주는 내 구역이거든!" 여러 나라들이 슈퍼 태클을 걸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삼국 간섭이 등장합니다. 러시아, 프랑스, 독일, 강대국 세 나라가 요동 간섭을 시작합니다. "야, 애들은 가라~" 이러면서 강하게 밀어붙이니까, 일본이 바로 꼬리를 내리며, "헐... 네 갈께요..." 하면서 철수하고, 물러갑니다. 참, 상황판단도 빠르셔라... 아직까지는 실력부족이라고 현실판단을 내려버린 겁니다. 그래서, 일본이 대륙을 차지하는 꿈은 잠깐 실현되었을 뿐, 바로 땅 돌려주고 물러납니다.
그리고, 이 치욕을 당연히 또 기억하고, 앙갚을 계획을 하겠지요. 보세요. 1884년 갑신정변 때, 조선 정치를 뒤에서 암암리에 밀다가, 결국 청나라에게 냅다 쫓겨나잖아요. 그런데, 10년만에 칼을 단단히 갈고 돌아와서, 청일전쟁을 벌였고, 1895년 청나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둡니다. 이번에는 중국대륙(요동)에 일장기를 꼽았다가, 러시아를 내세운 삼국간섭 태클에 걸리며 토해내야 했습니다. 일본은 역시 이 굴욕을 잊지 않는다며, 약 10년이 더 지나자, 1904년 러일 전쟁이 일어납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그래서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훗날, 대국 러시아와 싸워서 승리를 거두는 일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니고, 우습게 볼 나라가 아니에요.
하여간, 이 삼국간섭의 국제적 상황을, 정세판단이 빠른 명성황후가 쭈~욱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청일전쟁까지 이기며, 동아시아의 강자라고 판단되었는데, 1895년 당시 보니까 러시아와는 아예 상대도 안 되는 것 같거든요. "일본이 바로 깨갱하네? 와우, 러시아~ 좋네!"
그럼 결론은 간단하잖아! 우리가 러시아 중심으로 가면 되겠네! 그러면서 명성황후가, 일본을 등에 지고 있던 박영효를 역적으로 몰아내버립니다. 이리하여, 3차 김홍집 내각이 들어섰습니다. 3차 김홍집 내각부터는 친일 대신에, 친러적 성향으로 완전히 돌아섭니다. 여기까지 전개되었고, 이후 이야기는 다음 문서에서 계속해서 살펴볼까 합니다.
일본은 지금 다급해졌습니다. 비록 지금은 강대국들과 맞짱 떠볼 힘이 없는 일본이라지만, 친일 신하 박영효도 내쫓기고, 조선에서까지 철수하게 된다면 곤란하다고 판단합니다. 1876년 불평등 강화도 조약 이후 수탈을 위해 오래도록 공을 들여왔던 조선인데, 민씨 정권은 급히 친러로 돌아서고 있잖아요. 그래서, 일본의 무지막지한 조선 테러 계획이 시행되는데, 아, 다음 문서에서 이어집니다. 1895년 근대사의 비극이라 불릴만한, 치욕적 장면이 일어납니다. 을미사변 이야기 계속됩니다. 아 조선이여... ㅠ.ㅠ...
오늘의 영감 - 여러 번 고쳐 써 보았습니다. 역량 부족으로 인해, 쉽게 한 눈에 정리가 잘 안 되더라고요. 고백하자면, 하던 대로 편하게 써보자! 라고 하는데도, 제풀에 지쳐서 잘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 문구를 발견했습니다. 소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파블로 피카소의 말입니다.
"성공은 위험하다. 성공한 사람은 자기 모방을 시작한다. 그리고 자기 모방은 다른 사람들을 모방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그로 인해 자기 고갈의 결과가 발생한다. (The Strategist 중에서)"
저는 볼링을 몇 번 쳐본 적이 있습니다. 양 쪽 홈에 빠지지 않게, 집중해서 볼을 굴리는게 초심자들에게 참 중요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간혹, 그렇게 중앙을 향해 볼이 굴러가다가, 모든 핀이 쓰러지는 스트라이크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와우!" 그리고, 그 다음 차례가 오면, "아까, 대충 이 느낌이었지!" 하면서 똑같이 따라하려다가 오른쪽 홈으로 빠지는 굴욕을 경험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의 성공 경험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마크 트웨인의 한 마디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자기 확신을 조심합시다. 자기 성공을 경계합시다. 지난 번에는 잘 되었는데, 그래서 자기 고갈에 빠진다는 게 언뜻 와닿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지난 번처럼 대충 하지 뭐"라는 안일함에 젖어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을 더 신나고 감격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지난 번의 즐거움을 잊고, 지금 현재 정말 힘내야 하는게 아닐까 싶네요.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