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하여, 시간에 대하여, 타인에 대하여, 저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다만 좋은 전달자 라도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며, 또한 행복하다고 여겨왔습니다. 이 리뷰의 첫 이야기는 237p의 전태일 편에 관하여, 이 표현을 가슴에 담아보고자 합니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한 자는 부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가장 청순하고 때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묻고 부유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사회의 현실입니까? 빈부의 법칙입니까?"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것이 1970년 11월 13일인데, 우리는 그로부터 40년이나 더 지났습니다.
저는 아직도 86.5% 라는 숫자를 기억합니다. 2013년 가을에, 프랜차이즈 업체 946곳을 조사한 결과였습니다. 노동관계법 위반율 86.5% 였습니다. 유명한 커피전문점업체, 유명한 편의점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근로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친절하고 따뜻한 사회라는 말 보다는, 냉소적이고 이기적인 사회라는 말이 더 맞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타인의 입장에 서보려는 노력은 일찌감치 접어두고, "나의 생존"만이 관심사가 되어가는 사회에서, 전태일의 이름이 참 멀게만 느껴져서 문득 슬펐습니다. 정말로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응답하라 1970?
저자 : EBS 지식채널 e / 출판사 : 북하우스
출간 : 2007년 12월 17일 / 가격 : 12,800원 / 페이지 : 384쪽
한편 얼마 전에는, 김두식 교수님의 이 트윗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신입생 사발식 같은 걸 하는 대학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큰소리를 지르며 학번과 자기 이름을 소개하도록 하는 '전통'도 여전하단다. 대자보를 붙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비민주적인 '전통'을 없애는 노력부터 함께했으면 좋겠다" 이런 사회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에 대하여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법을 통하여 약자가 충분히 보호 받으며, 법 바깥에서 일어나는 강제와 복종적 질서가 사라지는 자유로운 사회. 어떻게 하면 그 꿈에 다가갈 수 있는걸까요.
책 맨 앞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삶의 본질을 확인하고 싶었고, 그로부터 다시 삶을 배우고 싶었다. 또한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았다." 삶의 본질에 대해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 인생을 오로지 내 뜻대로 살아보는 것. 곱씹어 볼수록, 외부의 꿈이 아니라, 내부의 꿈을 바라보는 삶을 의미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정작,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무슨 평가를 받았나요. "실패자", "삶을 소비하는 인간", "빈둥거리는 인간"...
그러나 그는 마침내 월든 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삶에는 다양한 선택이 있다는 것, 사회가 요구하는 답안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 그것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 우리는 기뻐하고, 전율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를 통해 영감을 받으며, 전태일의 삶을 통해 인생을 돌아보게 되며, 변호인 같은 영화를 보며 울컥하기도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은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것. 흰색과 검은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색깔로 가득 뒤덮여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됩니다.
여기까지 써놓고, 대략 2-3주 동안 저는 신나게 내 뜻대로 놀아보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좋은 블로그라는 스테레오타입(고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착한 사람 컴플렉스도 집어치우고 살아보았습니다. 1년 넘게 묵혀두었던 각종 게임기에 모처럼 전원도 넣어보았고, 그러다보니, 새삼스럽게 어떤 인생을 살아도 행복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충분히 쉬고, 마음껏 놀고 난 후, 지식e 2편 리뷰를 쓰다만 것이 생각났고, 이번엔 찰스 아이브스의 대목에 딱 꽂혔습니다.
"사람들은 익숙한 소리를 아름다운 소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음악발전의 걸림돌이다." 소리 대신에 다른 단어를 대입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익숙한 것이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그 편안한 생각이야말로, 인간 발전을 가로 막는 벽이라는 느낌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김난도 선생님은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극찬한 바 있는데, 그 최고의 경지를 가로막는 것은 "익숙함"이라는 생각이 들자, 내가 왜 발전하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해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익숙한 것만을 반복하며, 같은 곳을 맴도는 것만 하고 있으니, 더 근사한 지점까지 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삶에 대해서는 단지 "다양한 삶의 모습이 가능하다" 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에 대해서는 "익숙하지 않은 시간은 때로 놀라운 발전을 만든다" 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타인에 대해서는 김동률의 노래 감사에서 표현을 빌려오고자 합니다. "부족한 내 마음이 누구에게 힘이 될줄은 그것만으로 그대에게 난 감사해요" 부족한 사람도 타인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잘 간직하려 합니다.
현대사회는 "자신이 스스로를 착취하는 곳"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병철 선생님의 얇은 책에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착취가 무엇일까요. 가혹하게 시켜놓고, 초라하게 대우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그 정도로만 보살피고 있다면, 슬프고 비극적입니다. 최근 몇 주간 거의 매일 가치관의 충돌을 겪었습니다. 느슨한 삶이어야 할까, 밀어붙이는 삶이어야 할까, 여기까지만 가야 할까, 더 넘어서까지 가야 할까, 결론은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 는 평범하고 소박한 수준으로 내리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59p의 표현처럼 "때론 학습이 가장 큰 착각의 요소다" 가 정말 통찰력 있는 견해가 아닐까요. 동물실험으로 증명된 "학습된 무기력" 처럼, 지난 날의 경험들로 인해서, 성장에 걸림돌이 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안다는 착각, 잠든 거인을 깨워야 한다는 괴롭힘에서 벗어나서, 그저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오늘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노력하는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생각의 정리가 뒤엉켜서 잘 되지 않을 때, 지식이 독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학습되지 않은 상상력, 그 무모함, 그 익숙하지 않음을, 좀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다. 나이가 먹어가고, 성장하지 못했음을 자책하며 괴로워 하지만, 이제는 그래도 약간은 괜찮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루지 못해도 뭐 어때, 시도해봐, 끝내봐." 저는 조앤 롤링의 이 한 마디를 2014년의 다짐으로 삼아보려고요. "나는 내게 가장 중요한 작업을 마치는 데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 2014. 0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