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나폴레옹이라 불리던 레이몽 코파

시북(허지수) 2008. 4. 1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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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ymond Kopa


 프랑스 축구 1세대 선수 중에는 훌륭한 선수가 상당합니다. 오늘은 프랑스 첫 발롱도르 수상자인 명선수 레이몽 코파의 이야기 입니다. 나폴레옹이라 불리던 그의 활약상을 살펴보러 출발.

 프로필

 이름 : Raymond Kopa
 생년월일 : 1931년 10월 13일
 신장/체중 : 169cm / 68kg
 포지션 : FW / MF
 국적 : 프랑스
 국가대표 : 45시합 18득점
 수상 : 1958년 발롱도르 수상 (=유럽최우수선수상)

 그라운드의 나폴레옹, 레이몽 코파 이야기

 레이몽코파는 1949년에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51년에는 스타드 랭스 팀에서 활약하게 됩니다. 지금은 2부리그에 속한 팀이지만, 스타드 랭스는 50~60년대만해도 프랑스의 강호팀이었습니다. 1949년부터 1962년까지 약 13년 동안 리그 우승만 6차례나 차지했던 강팀이었습니다. 레이몽 코파는 이 스타드 랭스팀의 주력선수였습니다.

 자 여기서 그럼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서, 챔피언스리그 (당시 챔피언스컵) 초대대회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당시 결승전에서 맞붙었던 팀이 바로 이 스타드 랭스팀과 전설의 강호 레알마드리드 팀이었습니다. 그 때만해도 클럽팀은 요즘처럼 외국인 선수가 있었던 다국적팀이 아니었습니다. 레알마드리드는 아르헨티나에서 건너온 디스테파노 등의 일부 외국인 선수가 있었지만 이들도 스페인 국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스타드 랭스팀의 경우는 전원이 프랑스 국적이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이 두 팀은 물러설 수 없는 진검승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양국가를 대표하는 간판 클럽팀의 명승부였습니다. 먼저 기세를 올린 팀은 바로 스타드 랭스. 전반 10분만에 2골이나 넣으며 2-0 으로 앞서갑니다. 만약 이 경기에서 스타드 랭스가 이겼다면 챔스리그 초대 챔피언의 명예와 함께 계속 명문팀으로 남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곧이어 레알마드리드의 거센 폭풍같은 대반격이 시작됩니다. 금빛화살이라 불리는 디스테파노의 추격골이 그로부터 5분도 안 되어 터졌고, 레알마드리드는 전반전에 또 한 골의 추가골을 넣는데 성공합니다. 2-2. 전반전을 마칠 때까지도 이 경기는 팽팽함 그 자체였습니다.

 후반전 스타드 랭스가 골을 먼저 넣어서 다시 3-2 로 앞서갑니다. 레알마드리드가 패배할 것인가? 하지만, 이 경기를 포함해 이후 챔피언스리그 5연패를 자랑하는 레알마드리드의 저력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후반에 두 골을 넣으면서 역전. 경기결과는 3-4 스타드 랭스의 역전패였습니다. 명승부였습니다. 아깝게 패배했지만, 이 프랑스의 팀은 정말 선전했습니다. 그리고 인상적인 맹활약을 보여주었던 20대 중반의 청년 레이몽 코파는 단번에 레알마드리드 수뇌부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신기하기도 하지만, 이듬해.

 레이몽 코파는 그 레알 마드리드 팀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안 그래도 잘 가던 강한 팀인데, 나폴레옹이라고 불리는 명미드필더 레이몽 코파까지 왔으니 이제는 여간해서 당해낼 팀이 없었습니다. 이듬해 1957년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맨유를 통합스코어 5-3 으로 물리치고, 결승에서 피오렌티나를 만났습니다. 레알의 홈경기장, 전해지는 기록에 의하면 당시 이 경기에 입장했던 관중은 무려 12만4천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디스테파노, 레이몽코파 등의 명선수가 많았던 레알 마드리드는 2-0 으로 피오렌티나를 제압. 2년 연속 유럽 최정상의 팀으로 우뚝 섭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황금시대였습니다. 1958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연장접전 끝에 AC밀란을 3-2로 누르고 3연패. 정말 강했습니다. 9번 디스테파노도 정말 무시무시한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7번 레이몽코파도 뒤에서 아주 잘 받쳐주었습니다. 레이몽 코파의 활약은 이 해 절정을 이룹니다.

 바로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 참가하게 된 것입니다. 프랑스는 매경기 두 골이상씩 넣는 강력한 화력을 자랑했습니다. 그 중심에 바로 쥐스트 퐁텐 선수와 오늘의 주인공 레이몽 코파 선수가 있었습니다. 쥐스트 퐁텐은 58년 월드컵에서 무려 13골이나 넣으면서, 월드컵 한 대회 최다득점의 영광을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골 대부분이 바로 레이몽 코파의 어시스트에서 나왔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레이몽 코파는 3득점, 최다어시스트를 기록합니다. 득점왕은 쥐스트 퐁텐이 수상했지만, 대회 최우수선수는 레이몽 코파가 선정됩니다. 그 정도로 그의 활약은 정말 눈부셨습니다. 17세 소년 펠레가 있던 브라질이 프랑스와 스웨덴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지만, 대회 3위를 기록했던 프랑스의 활약도 뛰어났습니다. 레이몽 코파는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월드컵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1958년 유럽최우수선수상 시상식, 레이몽 코파는 같은 프랑스의 쥐스트 퐁텐 등의 선수와 많은 격차를 보이며 당당히 1위에 선정됩니다. 프랑스 선수로는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선수로서 얻을 수 있는 영광은 거의 다 누렸습니다. (월드컵 우승은 비록 못 차지했지만 말입니다.)

 이듬해 1959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레알 마드리드는 또 한 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로써 챔피언스리그 4연패 입니다. 당시 상대는 초대 대회 때 만난, 프랑스의 스타드 랭스 팀이었습니다. 쥐스트 퐁텐이 버티고 있었던 강팀이었습니다. 하지만, 디스테파노와 레이몽 코파 등이 버티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의 상대는 되지 못했고, 레알 마드리드는 2-0 으로 승리합니다. 5년 동안 몸담았던 프랑스의 친정팀을 상대하는 레알 마드리드의 레이몽 코파 선수의 기분은 어땠을까 사뭇 궁금하기도 하네요. 이 날 경기 이후로,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요? 1959년 여름에 레이몽 코파는 다시 프랑스 고향팀인 스타드 랭스 팀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그리고 1969년까지 오직 스타드 랭스팀에서만 활약하다가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보기 드문 전술가였으며, 필드의 지휘자이며, 장군이었던 플레이메이커 레이몽 코파. 화려한 테크닉과 득점능력을 겸비하고 있어서, 스타드 랭스, 레알 마드리드, 프랑스 국가대표 모든 곳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프랑스의 1세대 축구스타. 쥐스트 퐁텐의 월드컵 한 대회 최다득점기록 13골을 만들어 냈던 원동력은 바로 이 그라운드의 나폴레옹 레이몽 코파의 발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기록은 레이몽 코파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당시 58년 대회에서도 프랑스의 인기스타는 바로 레이몽 코파였습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처음으로 들어올린 프랑스인, 유럽최우수선수상에 처음으로 선정된 프랑스인, 그를 따라다니는 타이틀들은 화려합니다. 레이몽 코파는 지단과 플라티니 이전에 프랑스 축구를 이끌었던 장군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판타지스타의 원조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높이 평가합니다. 하지만 이제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이름은 조금씩 잊혀져 가게 되겠지요. 현재까지는 지단, 플라티니와 더불어서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있는 레전드 스타 중의 한 명입니다. 프랑스에서 레이몽코파, 플라티니, 지단 의 뒤를 이어서 또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 갈 명미드필더는 등장할까요. 흥미롭게 지켜봐야겠지요. 이제 지단의 황금시대도 저물었습니다. 프랑스의 제 4 세대가 유로 2008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지 기대해봐야겠지요. 이상으로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