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누리교회

2014년3월2일/뱀처럼 지혜롭게(창세기3:1-7)/홍종일목사

시북(허지수) 2014. 3. 3. 19:42

영암교회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4년 3월 2일 주일 예배

뱀처럼 지혜롭게 (창세기3:1-7)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어 보내시면서 참 많이 걱정이 되셨던 모양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태10:16)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치 이리떼 속으로 들어가는 양같답니다. 그래서 우리를 지키기위해서 뱀의 지혜로 무장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뱀같이 지혜로와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뱀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 뱀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 뱀이 어떻게 했길래 뱀처럼 지혜로와라고 하셨을까요?

1.뱀은 여호와 하나님을 단순히 하나님이라고부른다
우리가 이 기사를 보면 하나님을 부르는 두가지 사례가 나옵니다.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행적을 기록하는 기사에는 예외없이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뱀과 하와, 심지어 아담의 대화에서 등장할때는 항상 여호와라는 명칭이 생략되고 단순히 하나님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엘로힘

‘여호와’와 ‘하나님’은 실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즉 ‘엘로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전능하시며 권세가 많으신 분이심을 강조하는 명칭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는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을 성실히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 되심을 강조하는 명칭입니다. 어떻습니까? 두 이름이 확연히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시대의 언약이라면 한가지 밖에없습니다. 네가 동산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다시 말해서 열매를 먹지 않으면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고 성경을 다시 읽어보면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과 아담이 맺은 언약인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 바로 여호와라는 이름입니다.

뭐냐고 하면 성경에서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하는 부분은 항상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마귀는 대화에서 일관적으로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여호와’라는 이름을 고의적으로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와 역시 ‘여호와’를 생략하고 ‘하나님’이라고만 이야기 합니다. 뒤에 보면 아담 역시 하나님 아버지를 단순하게 하나님, 엘로힘이라고만 부릅니다.

이게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바로 언약, 그렇습니다. 언약을 지키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나게 하는 여호와라는 명칭을 생략함으로서 뱀은 하와가 하나님을 단순히 권능을 가진 신이라고 여기게하고자 했다는 말입니다. 자기에게 언약을 세우신 분이 아니라 단순히 엄청난 강한 힘을 가진 신이라고 여기게 하고자 했다는 말입니다. 이런 의도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하와는 자기의 대화에서 하나님을 부를 때 여호와란 말을 생략하고 부르고 있습니다.

인간과 대조되는 강대한 권력과 능력을 가지신 분, 그분에 대한 동경과 은근한 질시를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 하나님(엘로힘)이란 명칭만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니 사탄이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그러니까 주님은 뱀처럼 지혜로와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실 여호와나 하나님이나 둘다 하나님을 일컫는 호칭입니다. 그러므로 뱀이 잘못 지칭한 것은 아닙니다.그러나 뱀은 사실을 교묘하게 재 배열해서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진실을 호도한 것입니다.
여호와란 소리를 듣는 순간 하와는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생각해 낼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여호와란 말을 의도적으로 뺀 것입니다. 우리나라말에도 아다르고 어다르다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우리말로 하면 한분의 님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유일하신 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한분 뿐이신 하나님이란 뜻이 잘 나타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한분이시지만 여러분이 실 수가 있습니다. 왜냐면 엘로힘이란 말은 복수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말로 하면 하나님들 이란 말입니다. 신들이란 말입니다. 즉 유일하지 않고 여러명의 신들이란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와는 처음으로 무엇을 느꼈을까요?

아, 신은 한분이 아니구나. 그러면 여럿의 신이 있겠구나. 그러면 나도 신이 되어서 그들 중에 들어갈 수가 있겠구나.....이런식으로 연상작용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때까지 아담과 하와는 이 세상에 신은 오직 한분 자기들에게 언약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뿐인 걸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호와란 말이 빠지고 엘로힘이란 말로만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하게 되자 그만 여러명의 신들이라는 복수의 의미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때부터 이미 불길한 조짐이 보입니다.

유일하지 않고 신은 많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녀의 가슴속에는 뭔가 모를 의혹과 의심이 삭트기 시작했고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시선으로 선악과를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문득 하와는 자기가 너무 많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듭니다. 선악과를 둘러싼 비밀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만드신 짐승중에 가장 지혜로운 뱀이 그렇게 이야기 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2.뱀-쉿쉿 소리를 내다, 주문을 속삭이듯 외우다,점치다. 요술을 부리다란 말도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본문의 뱀은 마치 요술을 부려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하고 점을 쳐서 사람들을 파멸에 이르게하는 사악한 점술가와 같이 사람들을 미혹하는 존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렇게 인간에게 뱀이 가만히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벌거 벗고있습니다. 무방비 상태입니다. 그런데 뱀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무장하고 다가온 것입니다. 당연히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뱀이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간교하다는 말은 원문상으로는 사실 영리하고 신중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한글성경에서 간교하다고 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상당히 긍정적인 표현입니다.

그것은 태초에 하나님이 지으신 것 중에서 좋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잘 나타내 줍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죠. 보기에 참 좋았더라, 하나님은 자기의 창조물을 보시고는 보기에 참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뱀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지혜를 지금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3.뱀은 여자에게 접근한다
우리는 항상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이 뱀이 아담이 아니라 하와에게 접근했다고하는 점입니다. 왜 뱀은 아담이 아니라 하와에게 접근했을까요?
창세기 성경의 많은 인물들은 대부분 남자들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모세는 모두 남자들입니다. 고대 가부장권이 엄격히 지켜지는 사회에서 가정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일은 대부분 남자들이 담당합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아담에게 접근해서 선악과를 먹게 할 것 같은데 뱀은 아담이 아니라 하와에게 먼저 접근 합니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여자, 즉 하와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다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하와는 아담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들은 것 뿐입니다.
“하나님이 그러시는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다면 죽는데”

이렇게 말입니다. 만일 하와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그 언약을 들었다면 그래서 언약의 당사자가 되었다면 아마 뱀의 유혹에 조금은 더 저항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아담이 그 자리에 없고 마침 하와만 있었다면 뱀이 하와에게 접근한것도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너희더러”라는 표현이 있는 것을 본다면 뱀이 하와를 유혹하는 장소에 아담이 옆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아니라 하와에게 말을 시킨 뱀은 정말 영악합니다.
여하튼 그런 이유에서 뱀은 아담이 아닌 하와에게 접근 한 것입니다.

4.부정적인 답을 유도하다
그리고 첫마디가 “참으로-하시더냐”란 말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봐도 뭔가 부정적인 의도로 보입니다. 왜냐면 이것은 원문상으로 “참으로 사실이 틀림없느냐?”란 강한 부정의 의미가 포함된 의문문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사실일 리가 없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뭔가 부정적인 생각을 심어주려고 노력하고있습니다.
 
다음으로 나오는 말은 “너희더러-”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몇가지 뉘앙스를 풍깁니다. 마치 너희 인간들에게만 먹지말라고 했느냐, 우리에게는 아무 말도 없었는데...이런 의미로 들리게 됩니다. 물론 뱀의 이 말은 사실일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짐승들과 언약을 맺으실 필요가 있었을 까요?

그런데 뱀이 하와에게 한 이야기는 진실이면서도 어조가 부정적이고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투로 말했기 때문에 마치 “너희만 먹지 못해, 우리는 먹을 수 있어”라는 말로 들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먹지 못하기 때문에 이건 너희들에게 너무 불공평한 것 같아” 라는 의미를 하와에게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질문이 더 교묘합니다. 뱀은 하와에게 “하나님이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이렇게 물어 봅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뺀 모든 나무 열매를 먹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뱀은 반대로 이야기 합니다.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셨냐고 물어봅니다. 이렇게 물어보니까 대답은 당연히 “아니”입니다.

한때 긍정적 사고란 말이 유행한 적이있었습니다. 무슨 ‘긍정의 힘’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실생활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니까 될 수 있으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자 뭐 이런 내용이지만 뱀은 지금 바로 그 방식으로 하와에게 접근해서 그녀에게 부정적 사고를 하도록 교묘하게 질문을 조작함으로써 하와를 유혹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의 계략이 이와 같습니다. 그는 너무나 영악하고 간교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굳게 무장하지 않는다면 바로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5.여자도 하나님이라고 하다
2절에 보시면 여자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단순히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의 기사는 항상 여호와 하나님이 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자는 지금 뱀의 말투를 본받아서 바로 여호와를 생략하고 하나님이라고만 부르고 있습니다. 참 말이란게 빠릅니다. 금방 전염됩니다
왜냐면 이 본문의 후반에 나오는 아담 역시 자기의 대화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단순히 하나님이라고만 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죽을까 하노라
그런데 내용은 더 심각합니다.
만지지도 말라.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만지지도 말라는 말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와의 말일 뿐입니다. 물론 만지지도 말라는 말은 먹지 말란 말을 강조하기위해 덧붙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인간의 생각이 덧붙여 진다면 그래서 자의적으로 덧붙이거나 과장하거나 하는 것은 자의적으로 생략하거나 빼는 것 과 마찬가지로 위험한 일입니다.

“일점일획도 가감하지 말라고”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지 여기에 인간의 생각이 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멋대로 바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하와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죽을까 하노라.

그래요, 결코 , 반드시 죽는다가 아니라 죽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안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하와는 이제 자기도 모르게 내면의 욕망과 의심이 말투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뱀 정말 굉장하지요. 하와는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을 “죽을까 하노라” 는 불확실한 표현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마음대로 가감하다 보면 이렇게 명백한 진실을 외면하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결과가 초래됩니다.

7.너희가 먹는 날에는
원문은 “너희가 먹는 바로 그 때에” 라는 말입니다. 먹는 순간 하나님이 될 수가 있다는 유혹은 정말 뿌리칠 수가 없습니다. 먹는 순간 신중의 하나가 된다는 것은 하와에게 엄청난 유혹일 수 있습니다. 아담은 아무런 만류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와가 뱀에게 유혹당하는 장소에 없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뱀은 하와에게 ‘네가’ 이렇게 말하지 않고 ‘너희가’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너희가. 둘이상이 있다는 말입니다.

8.눈이 밝아 진다
그런데 우리는 뱀이 하와를 유혹하는 내용을 보고 의문을 느낍니다. 무엇이냐 하면 왜 뱀은 이 선악과를 먹으면 영생불사하는 신이 된다고 하지않았을까요?
아니면 하늘을 날 수 있다던지, 아니면 엄청난 부를 소유할 수 있다고 하지 않고 , 네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가질 수 있고 할 수 있는 신이 된다고 하지 않고 눈이 밝아져서 신이 된다고 했을까요?

여기서 눈이 밝아진다는 말은 단순히 시력이 좋아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혜가 많아진다는 말이지요. 똑똑 해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네가 알지 못했던 것도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저걸 먹는 순간 바로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게 되는데 하나님의 신비까지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왜 여호와 하나님이 저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했는지도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낙원에 살면서 결코 자신들의 부족함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배가 고프면 각종 맛있는 실과를 따먹으면 그만입니다. 짐승들은 그들을 잘따르고 결코 해롭게 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죽어보지도 않았지만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부족함을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열매를 먹으면 결코 네가 죽지않는 영생불사의 몸이 된다는 꼬임은 아담과 하와에게 전혀 쓸모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유혹하지 않은 것입니다.
다만 똑똑해 진다. 누구처럼, 하나님처럼

그래서 너도 신들 중의 하나가 된다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선악을 알 줄을-
선과 악에 대해서 알아서 신들 중의 하나가 된다고 하는 유혹
마치 인간이 너희들이 지금은 단순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처럼 되지 못했다고 꼬이면서 하와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못하도록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9.여자가 본즉
그러자 여자는 선악과를 다시 보게됩니다. 과연 그 선악과는 먹음직도 하고 잘 생겨서 보암직도 합니다.
그런데 웃긴 것은 도데체 어떻게 과일이 생겨야 지혜롭게 할 만큼 생길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설마 선악과의 표면에 나 지혜라고 써놓았습니까?

하와는 이미 뱀의 꼬임에 넘어가서 탐욕의 눈으로 과일을 보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욕심이 가득한 눈으로 과일을 다시보자 내가 반드시 저 과일 따 먹어야 될 것같은 생각이 강렬하게 듭니다.
마침내 여자는 선악과를 땄습니다. 먹고 남편에게도 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렇게나 우리에게 안목의 정욕을 경계하신 것이며 욕심을 버릴 것을 충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자기와 함께한” 이란 표현에서 우리는 아담이 범죄와 유혹의 현장에 하와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0.눈들이 열렸다
원문에는 그들이 과일을 먹자말자 바로 눈이 열렸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뱀의 말은 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엄청나게 비참한 진실이었습니다. 그들은 눈이 열려 자기가 벗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부터 그들은 평안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그 말씀대로 그들은 비로소 불안과 근심과 부끄러음을 알게 되었고 종국에는 죽을 수 밖에 없게 되는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자 두려워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숲속에 숨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로 순결하시기 때문에 죄인은 그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피하여 숨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낙원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인간들은 낙원의 문이 열리기만을 바라며 에덴의 동편에서 살다가 결국 낙원을 다시 회복하지 못하고 죽음의 길로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바로 그 죄악을 사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오셔서 자기의 순결한 육체로 우리를 대신하여 피값을 지불하신 것이, 우리를 위하여 자기를 제물로 드린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아닙니까?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대면할 수 없었던 우리를 위하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의 죄를 다 속했다. 이미 내가 너희의 죄값을 다 치렀다. 그러므로 너희는 더 이상 죄가 없다. 그래서 오늘 나와 함께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성육신 하신 주님은 그 옛날 죄가 이땅에 들어올 때의 뱀의 지혜를 우리가 배우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지혜로 사단을 대적하는 지혜를 배우기 원하셨습니다. 왜냐면 이 본문이 오늘 사탄이 성도를 어떻게 유혹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교과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뱀의 말이 맞았습니다. 과일을 먹자 말자 그들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안타깝게도 선과 악을 동시에 다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에는 무지하고 오히려 악에만 영악해 져서 온갖 비극들이 인류에게 침투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육의 눈이 열렸지만 영적인 눈은 반대로 어두워져 버렸습니다.

11.그들 자신을 위하여 치마를 만들다
그들이 제일 처음 한 일은 무엇입니까? 자기들의 벗은 몸을 가리기위해 가리개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요 한글 성경에 없는 말이 원어 성경에는 있습니다. 뭐냐면 “그들 자신을 위하여”란 말이 더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만드신 인간은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하여 살기 시작했습니다. 영적인 순결을 잃어버린 죄악의 몸뚱이가 부끄러워 그것을 가릴 가리개를 만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오늘도 사탄은 성도들을 꾀려고 온갖 교묘하게 자기를 포장하고 진리를 왜곡하며 우리가 탐욕에 눈떠기를 부추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과장하기도 하고 축소하기도 하면서 우리의 내면 깊숙이 숨어있던 탐욕과 나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허영심과 교만을 부추깁니다.

사탄의 유혹앞에서 우리가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분에 맞게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 말고 그분의 말씀 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단은 예수님께서도 칭찬하신 그 지혜를 가지고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접근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주님은 자기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동시에 뱀처럼 지혜로와라.”

-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4년 3월 2일 주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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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한메일 / stronghjs@네이버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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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업데이트가 매우 늦어졌습니다. 이럴 때마다, 기다리시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약속을 잘 지키지 못했을 때, 사람 마음에 부담감이라는 것이 심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미안한 마음에 사과부터 하는게 맞겠지요.

그런데 약속을 지키지 못했음에도 뻔뻔해 질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변명할 대상을 준비해 놓으면 됩니다. 심리학 관련으로 종종 등장하는 사례 입니다만, 어떤 어린이 집에서는 부모님이 약속시간을 부득이 못 지켜 아이들을 늦게 데리러 올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부모님이 미안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황급히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곤 했습니다. 이에, 어린이 집에서는 그래 애들 부모님이 늦을 때마다, 매번 벌금 5달러를 걷도록 하자. 그러면 좀 더 책임감이 생길꺼야!!!

그러자, 정작 부모님들은 마음 편하게 늦게 애들을 데리러 오기도 했고, 벌금을 냈으니까 뭐 괜찮겠지 라면서 미안한 마음도 훨씬 줄어듭니다. "적당히 변명할 대상"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남탓하는걸 그렇게나 좋아합니다. 나는 별로 마음도 없었는데, 하와 때문이야, 뱀 때문이야, 이런 식으로, 자신의 욕심을 정당화 하는 거지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한데도, 정작 남을 위한다면서, 너를 위한다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을 그래서 조심해야 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사기를 당해서 막대한 빚을 떠안고, 개인 회생에 들어간 것을 직접 옆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기 패턴이 그렇듯이, 시중금리보다는 좀 더 괜찮은 투자라서, 너에게 둘 도 없는 기회 라는 말에 솔깃했다고 합니다. 친구는 자신이 그렇게 순진했던 것을 지금은 많이 후회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순수한 영혼을 가졌지만, 사기와 거짓에 현혹되지 않는 현명함이, 오늘날 정말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