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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스타열전

#18 센티미터 패스 독일 귄터 네처

친절한 시북(허지수) 2019. 11. 2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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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쌀쌀하군요 :) 어제 친선경기에서 한국축구가 0-3 대패를 당했지만, 브라질이 워낙 축구강국이니 그럴 수도 있지요! 축구 강국 독일의 명선수 한 명 업데이트 하려고 키보드 앞에 앉았습니다. 11년만의 업데이트이고, 가독성 수정과 동영상 추가 버전입니다! 권터 네처, 독일의 손꼽히는 판타지스타이자 센티미터 패스로 불리는 발군의 패스 감각을 지녔던 명미드필더입니다. 슛도 잘 차고, 세계적인 프리키커이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축구전문가로 통하는 네처의 이야기 입니다.

 

 프로필

 

 이름 : Günter Theodor Netzer
 생년월일 : 1944년 9월 14일
 신장/체중 : 178cm / 79kg
 포지션 : MF
 국적 : 독일
 국가대표 : 37시합 6득점

 주요수상 : 독일 올해의 선수상 1972년, 1973년 연속수상

 

 센티미터 패스를 자랑하던 권터 네처

 

 권터 네처는 볼을 다루는 재주가 기막혔던 선수였습니다. 화려한 볼 컨트롤 능력에 "센티미터패스"라고 불리는 놀라운 패스감각까지. 70미터나 되는 롱패스까지도 자유자재로 조절하면서 자로 잰듯한 정확한 위치에 패스를 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드리블 돌파로 슛을 날리거나, 공격수와 원투패스로 공을 주고받으면서 슛을 날리는데도 능했습니다. 세계최고 수준의 프리킥 실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이미지로 못하는 게 없는 테크니션이었습니다.

 

 잠시 1972년의 유로대회로 거슬러 올라가볼까요. 당시 독일 대표팀은 최강이라 불릴만큼 굉장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독일은 8강전에서 잉글랜드와 맞붙게 되었습니다. 잉글랜드 안방이었습니다. 독일의 기막힌 전략이 시작됩니다. 레전드 베켄바워가 경기를 조율하다가, 갑자기 권터 네처가 지휘를 하고... 두 명의 명선수들이 포지션을 바꿔가면서 경기를 멋지게 이끌어 갑니다. 잉글랜드는 홈에서 완전히 농락당하고 말았습니다.

 

 홈에서 잉글랜드가 독일에게 한번도 져본 적이 없었습니다만, 그 기록도 여기까지였습니다.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긴 잉글랜드는 그대로 1-3 으로 완패했습니다. 이 경기는 현재에도 권터 네처가 최고의 시합이었다고 평가하는 경기이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니 이 예전에 잉글랜드가 헝가리에게 비슷한 전법에 말려들어가면서 완패했던 경험도 있습니다. 헝가리가 안겨주었던 잉글랜드의 홈 첫 패배였지요.)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독일(당시 서독)은 결승에서 유로 첫 대회 우승팀인 소련을 만납니다. 하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3-0 서독의 완승. 우승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결승전 3골차 완승은 이 대회가 유일합니다. 유로 결승전은 연장전도 많았고, 팽팽한 접전도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이 때의 서독은 정말 강했습니다.

 

 1974년 서독에서 월드컵이 열렸습니다. 당연히 서독은 우승후보 였습니다. 그런데 권터 네처에게는 두 가지의 비극적 상황이 있었습니다. 당시 서독에는 너무 잘 차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지요. 발군의 기동력을 자랑하던 왼발의 마술사로 불리기도 하는 명미드필더 오베라트에게 포지션 경쟁에서 밀리고 말았습니다.

 

 왜 두 특급스타는 같은 시대에 살았는지... 요즘 같은 시대에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또한 일설에 의하면 권터 네처와 베켄바워가 사이가 별로 좋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서독의 주장으로 절대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베켄바워가 네처를 배제했다는 이야기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즉 다시 말해 한 경기장에 두 명의 명사령탑이 있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물론 네처와 베켄바워가 서로 호흡을 맞추며 잘 해나가면 좋았을 테지만, 실제로는 심지어 어떤 경기에서는 베켄바워가 귄터 네처에게 단 한 번도 패스를 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판타지스타 네처의 비극은 바로 이것입니다. 오베라트와 베켄바워와 같은 시대에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 여하튼 잘 나가던 서독은 안방에서 다시 한 번 월드컵 우승을 차지합니다. 유로-월드컵 연이어 우승이었습니다. 네처는 월드컵 활약이 거의 없습니다. 덕분에 인지도도 국내에서 상당히 낮습니다. 축구팬치고는 독일의 축구황제 베켄바워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귄터 네처는... (끙...)

 

 클럽팀에서도 귄터 네처는 멋진 활약을 펼쳤습니다. 230시합 82득점, 분데스리가 우승도 2차례나 차지하지요. 후에 레알마드리드에서도 리그 2연패에 공헌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어디를 가나, 어디에서나 잘하던 선수였습니다. 굉장히 지능적인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30대 초반인 이른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축구선수에 이어 두 번째 인생을 준비합니다.
 
 귄터 네처하면 경기장의 승리자이자 인생의 승리자 라는 이미지가 떠오를 정도로 뭘해도 잘하는 사람입니다. 1978년 독일 함부르크SV의 제네럴매니저(GM)로 취임합니다. 쉽게 말해 구단 관리를 하는 직업입니다. 그가 재임 중에 함부르크SV는 눈부신 성공을 거둡니다. 분데스리가 우승 3회를 비롯해서, 챔피언스리그까지 우승합니다. 귄터 네처는 함부르크의 전성시대를 열면서 막대한 자산을 벌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스포츠대리점의 중역을 거쳐서 최근에는 해설자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습니다. 동시대의 스타 베켄바워와는 방향이 달랐지만, 귄터 네처의 성공도 눈부신 것이었습니다. 해설까지도 정말 잘해서 독일의 스포츠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물 중에 한 명입니다. 한편 네처는 차범근에 대해서도 높은 평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에, 차범근 감독님도 해설자 일 때 인기가 장난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웃음)

 

 뛰어난 재능에 비해서 그 이름을 알릴 기회가 적었던 천재선수 귄터 네처, 그의 판타지스타 계보를 이어서 베른트 슈스터라는 명선수가 훗날 독일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두 선수 모두 국가대표로서는 별달리 활약하지 못했습니다. 판타지스타 선수들은 묘하게 월드컵과 인연이 없는 듯 합니다. 월드컵에서 페널티킥을 뻥차면서 욕 무지 먹었던 로베르토 바조나, 아예 출장 기회조차 없었던 데얀 사비체비치나... 등등

 

 축구해설자들은 경기장이 참 잘 보인다고 합니다. 위로서부터 경기장을 내려다 보기 때문입니다. 빈 공간이 눈에 확 들어오지요. 요즘 말로는 시야가 확 트인다고 해야 할까요. 귄터 네처의 플레이는 마치 위에서 경기장을 보고 있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한 날카롭고 정확한 패스, 훌륭한 크로스, 축구장에서 골넣는 공격수만 멋진 게 아닙니다. 가만 보면 정말 환상적인 패스를 구사하는 선수들도 굉장히 멋집니다. 보루시아MG에서 놀라운 활약을 펼치던 네처는 최초로 독일최우수선수상을 2년연속으로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전성기 귄터 네처에 대한 유명한 비화를 마지막으로 글을 마칩니다. 유로에서 잉글랜드를 완파한 것 외에도 비공식적으로 또 하나의 유명한 시합이 있습니다. 1971-72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보루시아MG는 인테르밀란을 만났습니다. 특기인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두 골을 넣었던 네처, 천재의 지휘아래 보루시아MG는 무려 7-1 의 압도적 차이로 앞서갑니다. 팬들은 당대 최강으로 손꼽히던 요한 크루이프의 아약스 VS 귄터 네처의 보루시아 의 경기를 고대했습니다. 그런에 이게 무슨일입니까! 팬들이 인테르밀란의 선수에게 깡통을 던지질 않나 경기장에 소란이 발생합니다. 인테르밀란 선수는 팬의 투척(!)에 부상을 입기도 했고, 끝내 UEFA는 이 게임을 무효처리 시켰습니다. 재시합 끝에 웃은 쪽은 인테르였고, 이 인테르밀란은 결승까지 진출해서 아약스와 맞붙어서 졌습니다. 여러면에서 네처의 현역시절은 실력에 비해 운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런!

 

 지성과 기술을, 한마디로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던 귄터 네처, 그는 정말 명선수입니다. 실력이 출중한 너무나 훌륭했던 선수였습니다. 글을 마치며 유튜브에서 영상을 업데이트 하여 준비해봤습니다. 후후, 영상의 시대! 말이 뭐 필요하겠습니까. 오늘도 감사합니다.

 

 2008. 04. 16. 초안작성

 2019. 11. 20. 영상 업데이트 및 가독성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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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바셋 네처와 베켄바워의 갈등이라...흥미진진하네여 2008.04.16 14:43
  • 프로필사진 시북 예 바셋님 저도 상당히 재밌었습니다. 분위기에서는 네처가 희생양이 되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절대강자 베켄바워랑 좀 사이좋게 지내지... 독일 대표팀 내에서도 타국팀인 레알 마드리드에 가서 뛰었던 네처를 약간 배타적으로 보았던 분위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정황으로 대표탈락은 찍혀서 그런 셈이지요. 비교적 이른 은퇴도 국대로서 운이 없어서 속상해서 그랬던게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추측일 뿐...) 참, 그리고 선수가 저렇게 매니저 등으로 성공해서 큰 돈을 번 경우가 드물다고 하네요. 선수출신이 사업 같은거 하다가 망하는 거 수도 없이 봐왔으니... 여러모로 요즘 같은 때 좀 태어났으면 하는 네처 편의 이야기입니다 ㅎㅎㅎ 2008.04.17 13:11
  • 프로필사진 재민 귄터 네처가 레알마드리드에서 폴 브라이트너와 호흡을 맞추며 뛰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아마 1975년쯤인가요..
    당시 바르셀로나에서는 천재 요한 크루이프와 요한 네스켄스가 있었죠. 정말 그 당시 그 선수들의 꿈의 경기를 생각하면 아직도 보고 싶은 경기중의 하나입니다.
    2012.09.21 10:54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아 재민님 정말이지 생각만으로도 흥분되는 그림이네요 ^^ 전설들이 제대로 붙는 경기는 사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설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하하. 댓글 감사합니다 :) 2012.09.27 20:54 신고
  • 프로필사진 김학종 클럽에서 좋은 활약을 한선수
    국대에서는 ㅠㅠ
    2013.04.21 15:01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하하, 이건 가볍게 통용되는 음모론에 불과하지만, 국대 차출은 운과 함께 강한 인상과 다른 선수과의 화합 등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의외로 국대운이 나빴던 선수가 상당히 있는 듯 해요 ^-^); 2013.04.22 17:18 신고
  • 프로필사진 임동수 유럽축구의 역사이군요
    네처, 오베라트, 브라이트너, 크러이프...
    2021.08.22 22:37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네 유럽축구의 클래식을 좋아했는데... 후후, 이제는 다른 일이 많아져서, 더 쓰기는 힘들꺼 같네요 :) 2021.08.28 21:3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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